축복의 비결, 순종(삼상 15:10-23)
1854년부터 1856년까지,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왕국, 오스만 제국의 연합군과 러시아 제국 사이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 전쟁을 크림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이 전쟁 중에, 터키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 병원의 간호 책임자로 있으면서, 야전병원의 혼잡함과 나쁜 위생 조건, 기본적인 물자 부족 등을 몸소 몸으로 체험하고, 전쟁이 끝난 후, 1860년 런던에서 세계 최초의 간호학교를 세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의 헌신적인 간호와 봉사활동을 인정받아, 1907년 영국 국왕으로부터 여성 최초로 메리트 훈장을 받았습니다. 메리트 훈장이란, 특출한 무공을 세웠거나 과학·예술·문학 등 문화 전반의 발전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을 포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1902년 에드워드 7세가 제정한 영국의 명예제도인데, 여성 최초로 이 메리트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누구입니까? 나이팅게일입니다.
어느 날 유명해진 그녀의 이야기를 기사화하기 위해, 기자들이 찾아와서,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헌신적인 삶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 질문을 들은 나이팅게일이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비결은 하나뿐입니다. 단지 주님께서 나를 불러주신 그 뜻에 나를 맡기고 사는 일입니다.”
그녀는 왜 헌신적인 간호와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을까요?
나이팅게일은 30세 되던 날에 이런 일기를 썼습니다.
“오늘 내 나이 서른이 되었다. 예수께서 그의 선교를 시작한 나이이다. 주님! 오늘부터 당신의 부르심을 따르겠습니다. 유치했던 생각은 이제 버리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주님의 목적에 전적으로 순종하겠습니다.”
나이팅게일은 자기를 불러주신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전쟁 중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적인 간호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삶을 살고자 결단한 그녀를 사용하셔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다친 많은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보게 하였습니다. 또한 그녀를 높이 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은 대적하시되, 순종하는 사람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샘 슈메이커라고 하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10퍼센트 순종하면 10퍼센트의 행복을, 50퍼센트 순종하면 50퍼센트의 행복을, 100퍼센트 순종하면 100퍼센트의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
하나님은 100퍼센트 순종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큰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불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제목은 “축복의 비결, 순종”입니다. 올 한 해 순종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지나간 역사를 보면, 끝까지 승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 출발은 좋았으나, 나중은 실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승리한 사람들을 통하여,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또한 실패한 사람들을 통하여, 어떻게 저들이 실패하였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승리의 비결을 배워,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하고, 실패의 원인을 배워, 그 원인들을 우리의 삶에서 제거함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3:15-16절의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는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이제 뒤에 있는 것은 다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끝까지 달려감으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2-2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아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종교적인 행위보다도 주님께 순종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빠져 버린 채, 형식만 남은 제사와 제물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드리는 예배, 마지 못해 바치는 제물은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배 드리지 말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말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미가 선지자와 같은 고민을 해 보셨습니까?
미가서 6:6-7절을 보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라고 고민하였습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 교회에 나오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요구하실까요? 미가 선지자는 계속 말하기를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은, 일년 된 송아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같은 기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학개 2:8절을 보면,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역대상 29:11절에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우리의 가진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을 다 내 놓으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달라고 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헌금함으로,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욥기 1:21절을 보면, 욥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그의 가지고 있던 모든 소유물을 다 잃어버리고 난 후, 10명의 자녀를 다 잃어버리고 난 후의 고백입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라는 욥의 고백 가운데, 여러분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라는 앞부분만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라는 고백은 여러분이 절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사울을 왕의 자리로부터 버리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함께 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울 왕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아말렉과의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전쟁이 있기 전에,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아말렉 왕인 아각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죽이지 않고, 다 끌고 왔습니다. 물론 양과 소를 죽이기는 했습니다.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죽였습니다만 좋은 것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말렉을 진멸하였습니다. 소와 양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아말렉의 왕인 아각을 살려 주었고, 소와 양 가운데, 좋은 것들은 살려 두었습니다. 순종하기는 했지만, 모양은 갖추었지만, 완전한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지난해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습니다. 오늘이 42일째인데, 전국 곳곳으로 구제역이 전방위로 확산하자, 피해 축산 농민들의 가슴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구제역이 도대체 어떤 질병인가 살펴보았더니, 소, 돼지, 양, 염소, 사슴 등,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우제류)에 감염되는 질병으로, 전염성이 매우 강하며, 입술, 혀, 잇몸, 코, 발굽 사이 등에 물집(수포)이 생기며, 체온이 급격히 상승되고, 식욕이 저하되어, 심하게 앓거나, 죽게 되는 질병이었습니다.
구제역이 감염되는 경로를 살펴보았더니, 감염동물의 수포(물집)액이나 침, 유즙, 정액, 호흡공기 및 분변등과의 접촉이나 감염 동물 유래의 오염축산물 및 이를 함유한 식 품등에 의한 직접 전파가 있고, 감염지역내 사람(목부, 의사, 인공수정사 등), 차량, 의복, 물, 사료, 기구 및 동물 등에 의한 간접접촉전파가 있었습니다. 더욱더 무서운 것은 공기를 통한 전파(공기전파)이며, 공기는 육지에서는 50km, 바다를 통해서는 250km 이상까지 전파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제역 판정이 나면, 최소 3km 이내의 모든 소, 돼지를 다 죽여야만, 감염을 차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구제역이 발생한 지, 42일째가 되는데,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벌써 매몰대상 가축이 100만 마리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자식처럼 길러온 소와 돼지를 산채로 땅에 묻고 돌아서는 농민들은,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고 합니다.
병에 걸린 짐승만 죽인 것이 아닙니다. 아직 질병에 걸리지 않아도, 건강하고, 튼튼한 소와 돼지라 할지라도, 감염된 근방에 있는 모든 소와 돼지 등을 살처분 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만약, 볼품없고 가치가 없는 소와 돼지만 살처분하고, 건강하고, 살찌고, 튼튼한 소와 돼지는 죽이지 않고, 살려둔다면, 어떻게 될까요? 멈추지 않는 구제역이, 더욱더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빨리 구제역이 멈출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불순종했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사울왕의 불순종은 하나님을 진노케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사울 왕에게 보내셔서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책망을 들은 사울 왕이 변명을 늘어 놓았습니다.
20-2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버림받는 사울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봐야 합니다. 혹시 우리 안에도, 사울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이 시간 다시 한번, 진지한 자세로, 사울이 실패한 이유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 속에 있는 사울적 요소를 회개하고,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사울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을까요?
첫째, 욕심에 미혹되었기 때문입니다.
20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아멘.
사울이 말하는 것을 보면,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자기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신 대로,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과 소를 가지고 돌아온 것은,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함이었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언뜻 들어보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는, 하나님을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심이 결부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3절에서 사울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하나도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이 명령을 하셨던 이유는 출애굽기 17:14절에서 말씀하셨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그러나 사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아말렉을 치러 가면서도,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전쟁을 통해서 얻게 될 이익만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승리한 사울이, 그 전승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아멘.
지금 사울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 자기의 힘이나 모략으로 된 것으로 알고,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신 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기보다, 자기 이름을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욕심에 빠지는 중요한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결과가 나오면, 다 자기 공로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가 되고, 결국 자기 생각대로, 일을 처리하게 됩니다. 사울은 가치없고 낮은 것만 진멸하고, 좋은 것과 기름진 것은 남겼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바로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전쟁에 이겼으니, 다 죽이면 아깝다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이 도우셔서 승리했다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두 진멸해야 되지만, 내가 노력해서 승리했으니, 내 몫도 단단히 한몫 챙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척하기 위해, 가치없는 것은 죽이고, 기름지고 살진 것은 살려서 취하고자 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1:15절을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으며, 골로새서 3:5절을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사울왕처럼 물질에 대한 탐심을 가지기 쉽습니다. 물질 때문에, 눈이 어두워져서, 심령이 막혀, 우리의 마음이 막혀,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기 쉽습니다. 실상 우리가 물질에 대한 탐심을 갖는다고, 지금보다 더 부요하게 살고, 더 멋지고,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울과 같이, 모든 것을 잃게 되고, 불행하게 됩니다. 해서는 안될 고백을 하게 됩니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모든 것은 우리가 다 노력하여 얻어진 것처럼, 착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것도 나요, 열심히 사는 것도 나요, 모든 것이 내가 다 하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요,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라고 한다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합니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합니다. 내가 땀 흘려 일 한 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우리는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인정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물질에 대한 욕심, 탐욕을 버려야,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하게 순종할 수 있습니다.
“거두신 이는 여호와시요”라는 고백을,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절대 하지 마시고, “내게 주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라는 고백만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사람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2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아멘.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히틀러에 저항하다가, 젊은 나이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신학자 본 회퍼는, 그가 남긴 위대한 저서 “나를 따르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믿는 자는 순종하고, 순종하는 자는 믿는다. 순종치 않는 자는 믿을 수 없으나, 순종하는 자는 믿을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경건한 자기 기만이나 값싼 은혜가 되지 않으려면, 먼저 순종해야 한다. 부족한 순종을 부족한 신앙 탓이라 하고, 부족한 신앙을 부족한 순종 탓이라고 하여,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좋지 못한 하나의 도피이다.”
그는 미국으로 도피하여, 안락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지만, 고국에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강한 부르심에 응하여, 독일로 돌아갔고, 나치에 저항하다가, 순교를 했습니다. 그의 순교적인 죽음은, 히틀러에 대한 저항의 표시인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의 모범으로, 길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믿는 자는 순종하고, 순종하는 자는 믿는다. 순종치 않는 자는 믿을 수 없으나, 순종하는 자는 믿을 것이다.”
아주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었던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게 되는 것이 두려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왕권이 견고하게 되기 위해서는, 백성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사울이 사무엘에게 말하기를 “내가 범죄였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백성들이 자기를 따르지 않을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눈을, 더 의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왕권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백성들이 잘못된 요구를 했다면, 그것을 단호히 거절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는데, 사람들을 두려워했기에, 그들의 요구에 따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려면,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람들과 타협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10:28절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목숨을 내놓을망정,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배반하면, 영혼까지 멸망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기대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고 해도, 이제 앞으로는 사람의 눈치를 보기 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1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아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사울이 왕으로 선택된 것은, 그가 겸손했기 때문이 아니었느냐고,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지금 이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며, 사무엘이 책망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가 불순종한 중요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첫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해졌다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왕이 되어, 지위가 높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굽실거리니까, 자기가 잘나서 왕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마음이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기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영광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왕좌를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인기도 얻어야 했습니다.
여기에 생각이 집중되다보니,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중요한 것을 하나,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선택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자,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잠언 16:18절 말씀을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자존심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오해와 멸시를 받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반드시 자기가 대접받고, 영광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만한 사람은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사울은 원래 이스라엘의 수많은 젊은이들 중에서,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셔서, 사무엘로 하여금, 이름 없던 청년인 사울을,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이셨습니다. 그에게 이스라엘을 돌보는 막중한 책임을 맡기시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복종하게 만드셨습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아버지였던 사무엘도, 사울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도 그런 사울을 몹시 아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을 때, 근심하며 밤새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축복받았던 사울이, 하루 아침에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길보아 산에서, 비참한 죽음으로 일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자신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망각하고, 자기를 위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버림받은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무리 큰 축복을 받아도, 버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일꾼으로 쓰임 받았다고 해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교만해지고, 욕심을 갖게 되고, 탐욕을 갖게 되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말씀의 빛으로 살펴야 합니다. 사람들의 칭찬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보다, 주님의 순전한 사랑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순종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 그런 주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사오니,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이미 받았사오니, 이제는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탐욕을 버리고, 겸손함으로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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