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마음의 회복과 유지(잠4:23하)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를 중심으로 부드러운 마음을 회복하는 길과 그리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편의상 저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
1. 첫째는 본문 23절 하반 절을 해설하고, 그리고
2. 두 번째는 부드러운 마음을 회복하는 길에 대해서 네 가지로 설명한 후
3. 크게 세 번째는 그 부드러운 마음을 유지하는 길에 대해서 크게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23절 하반 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키 밈메누 토체오트 하임’ ‘키’는 왜냐하면 우리말 성경에서 번역이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밈메누 거기로부터 from there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로부터 ‘토체오트’ 이것은 샘들, ‘야짜’ 라고 ‘나오다’라는 단어에 명사형태입니다. ‘토체오트’ 샘들이 있다, 그런데 그 샘은 어떤 샘들인가 하면 ‘하임, 생명’ 혹은 생명의 샘들이 거기로부터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과 비교해볼 때 별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래도 차이가 있다고 하면 이것입니다. ‘왜냐하면’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지킨다’라고 하는 것보다도 더욱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할 아주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잇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니까 마음을 지켜야 할 아주 강력하고도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로부터 ‘거기는’ 어디입니까? 마음입니다. 마음으로부터 터치 엇트 하임, 생명의 샘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생명의 근원이라’고 그랬습니다. 비슷하기는 해도 좀 다릅니다.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면 거기에서 말하자면 생명의 어떤 근원을 이야기하는데 그런데 여기서는 생명의 샘들, 그래서 우선 차이가 나는 점이 ‘복수’입니다. 그래서 샘들, 많은 샘에서 퐁퐁 샘물이 솟아나듯이 그런 샘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샘들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사람의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샘들이 솟아난다는 것입니다. 그 묘사가 그림 같습니다. 지킬만한 모든 것보다도 더욱 너의 마음을 군인들이 성을 사수하듯이 그런 방식으로 지키라. 왜냐하면 바로 거기로부터, 그러니까 앞에 나오니까 강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문장의 어순상, 거기로부터 혹은 거기에 생명이 샘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어 성경에서 Springs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샘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기서 이야기하는 ‘생명의 근원’이라고 번역된 생명의 샘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 이것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우선 일반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의 삶의 근원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서 에서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아주 많이 표현합니다. 악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들은 불신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삶을 살아갑니다. 마음속에 돈에 대한 사랑이 있는 사람은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신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그 사람 속에 있는 마음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마음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하게는 이 잠언 24장 23절에서 이야기하는 여기에서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의 샘들’이라고 하는 것은 신자들 심령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복수로 표현한 것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신자답게 살아가도록 주시는 그 생명의 역사에 다양성들을 묘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은, 신자라고 하는 것은 이미 구약 시대와 마찬가지로 더더욱 신약시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신자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힘에 의해서 신자의 삶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가 말할 때 그것은 열심히 세상을 위해서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많이 베푸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렇게 평면적으로 진술하기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훨씬 더 깊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웃에게 선을 베풀고 착한 일을 하고 그리고 가난한 삶에게 많은 구제하고 그리고 도덕적이고 똑바른 삶을 살아가는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외면적인 모습이어야 된다 라고 한다는 것
그러면 그런 영혼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그래서 새 성향을 갖게 되었는데 그 새 성향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다른 말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성령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어째든 신자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실로 다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신자 안에 두신 그 생명을 통해서 역사 하시는 것은 정말 아주 칼리플 합니다. 아주 총천연색으로 신자 안에서 아주 다양하게 그 생명을 가지고 역사 하십니다.
우리들의 속 사람이 그렇게 그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을 때는 그렇게 놀라운 것입니다. 그렇게 아까 말씀드린 그런 감각을 통해서 다양한 반응을 하듯이 똑같이 신령한 것들에 대해서 그렇게 반응하면서 그렇게 다양한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죽은 사람은 전혀 그것이 없습니다. 살아서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다양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 신비를 우리들이 어떻게 쉽게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기가 막히게 생명의 근원을 단순하게 표현하지 않고 여성 복수로 표현했습니다. ‘터치엇트’ 그리고 생명의 샘들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참 신비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살면 어떻게 되겠는가. 너무 비참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기껏 성공한다고 하면 형식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생명은 하나도 없는 외식하는 종교인들이 될 것이고, 그나마 실패하면 교회도 뛰쳐나가서 막 가는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이 본문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의미입니다.
2. 크게 두 번째로 그러면 그 부드러운 마음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가.
크게 두 번째로 그러면 그 부드러운 마음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가. 이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지키라고 그랬는데 지킬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자체가 너무 강퍅해져 있어서 뭘 지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마음이 강력하게 어떻게 변화되어서 부드러운 마음이 강퍅한 마음보다 훨씬 많아야 지키지, 마음 자체가 거의 돌덩이처럼 강퍅함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지킬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면 우선 굳어진 마음이 모종의 변화를 통해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회복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상한 마음을 거쳐서 통회하는 마음, 다시 말해서 상한 마음을 거쳐서 깨어진 마음의 변화로 갈 때에 그 마음이 부드러움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나 딱딱해졌는가에 따라서 한번에 깨트려지는 깊은 통회를 통해서 굉장히 놀랍게 부드러운 마음을 회복할 수도 있고, 그리고 그 딱딱함이 만약에 정도가 심한 것이라면 한 두 번을 가지고는 안 되고 여러 번 깨트려지는 가운데 비로소 부드러움을 회복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차이는 있지만 어째든 간에 이 굳은 마음, 강퍅한 마음은 상한 심령과 마음에 깨트려짐을 통해서 부드러움을 회복한다라고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인가
1)첫째는 마음을 따뜻하게 하라,
2)둘째는 머리를 차갑게 하라,
3)세 번째는 허리를 굽히라.
4)네 번째는 무릎을 꿇으라는
1)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것
우선 이 부드러운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강퍅한 마음에 영혼의 변화를 통해서 상한 심령과 깨트려진 심령이 됨으로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근본적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첫 번째로 잘 들으십시오. 상하고 깨트리기 전에 먼저 해야 될 일이 있는데 그것은 그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게 무슨 뭐 심장온열치료법도 아니고 뭔가. 이런 이야기입니다.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그 죄의 심각성을 보이고 그리고 그 죄에 대해서 삶을 계속하면 받을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함으로서 하나님의 율법과 엄위에 대해서 눈을 뜨게 만드는 것이 회개에 이르게 하는 첫걸음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갈망하게 합니다.
그 마음을 따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지 되는가 하면 이것입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려면 신앙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가장 추천할 만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마음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래서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 마음이 딱딱해서 성경도 눈에 안 들어오면 나는 성경을 읽는 것을 잠시 쉬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쉬운 책을 읽으라고 합니다. 읽어서 마음이 이렇게 따뜻해지고 ‘나도 정말 주님의 은혜를 받고 싶다’라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쉬운 책들을 읽는 것입니다. 읽으면서 이렇게 자기 자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때에 그때 성경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이 경건 서적을 통해서 받는 유익이 굉장히 컸습니다. 우리는 책을 안 읽으려고 뜻을 세웠으니까 저는 거의 절망적이라고 봅니다. 어쩌면 그렇게 안 읽는지 정말 일간 신문만큼만 읽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정말 얼마나 안 읽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가끔 은혜를 받아도 다른 보조적 수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방 마음이 건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깊이 본질적으로 변화를 받았으면 좋을 텐데 뭐 그냥 겉만 슬쩍 구워졌는데 그리고 자기는 굉장히 변화를 받았는지 알고 꺼덕 꺼덕이며 사는데 찬바람만 지나고 나면 다시 상한 마음이 굳센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예전에 강함보다도 더 강하게 거듭나서 그래서 더 강하게 안 깨지는 마음으로
그리고 또 하나는 무엇인가 하면 찬양, 굉장히 찬양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그 찬양을 통해서 은혜를 공급받는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은 조금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긴 이야기가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찬양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그리고 찬양을 통해서 변화를 받는다라고 하는 것은 약간 한계가 있지만 그러나 찬양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신앙에 관한 지식이나 이런 것들은 총체적이지 않고 간헐적입니다.
2)두 번째는 정반대인데 ‘머리는 차갑게 하라’
두 번째는 정반대인데 ‘머리는 차갑게 하라’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정확한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뜨겁게만 하면 자기가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몇 십분 씩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통성기도 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속에는 찬바람이 횡 일어나는 경험을 해보신 적이 없습니까?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인간적인 열광이 우리의 영혼의 치유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히려 머리가 차가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몰라서 못사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은 나중 문제이고, 아는데도 그렇게 안 살고 있거나 잘못 살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몰라서 못사는 것은 성찰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알고 있는 것은 생각을 하고 성찰을 하면 파악할 수 있습니다. 몰라서 못사는 것은 하나님 앞에 비교적 잘못이 적습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께서 다 알려주셨는데도 자기가 부지런히 자기를 성찰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안 사는 것은 불 신앙입니다. 그것은 소극적인 태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 안 믿는 삶을 살려고 뻗대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파악되는 것입니다.
정말 마음을 기울여서 그것을 하나씩 깨달아가려고 하는 마음으로 아주 냉철한 머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높은 고도의 지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정직하고 진실한 자세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만 어느 한 순간에 깨달음이 오면서 자신의 영혼에 그 말씀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그런 방법보다 우회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진단해볼 수 있는 신뢰할만한 신앙의 선배와의 상담 같은 것도 자기의 영혼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3) 세 번째는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세 번째는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그것은 이런 모든 일을 하는 것,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받으려고 하고, 신앙의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하는 모든 과정이 겸비의 마음이 동반된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알고 싶다. 너는 어떻게 생각 하냐’가 아니라 ‘나의 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서 나는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고 나는 스스로 길을 알 수 없고 나는 스스로 나를 돌이킬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 이분들을 통해서 내게 도움을 주십시오.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변화를 주십시오. 이런 은혜로운 찬양을 통해서 내 마음을 열어주십시오’라는 부복하는 겸비함이 있을 때에 굳은 마음이 아주 겸비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네 번째는 무릎을 꿇으라
마지막 네 번째는 무릎을 꿇으라는 것인데 이렇게 우리의 마음이 아무리 따뜻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있고 겸비하게 하나님 앞에 자기의 마음을 바꿔달라는 탄원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없으면 그 굳고 딱딱한 마음이 깨트려질 수 없는 것입니다. 깨트려지는 것은 자기 자신이 깨질 수도 없고 사람이 와서 깨트려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이 역사 하실 때에 불과 같고 방망이와 같아서 그 굳음 마음을 깨트리는 것이지, 성령께서 역사 하시지 아니하시면 울리는 소리일 뿐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깨트릴 수 있겠습니까? 정말 놀랍습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사오니 주님 내 마음을 녹여주시옵소서. 나의 마음을 정금과 같이 정결케 해주시옵소서. 정결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나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인간의 마음을 주관하시는 주님, 내 마음을 바꿔주시옵소서. 성령의 역사로 이 일을 이루어 주시옵소서’하며 간절히 탄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런 변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부드러운 마음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1)첫째는 두려워하라
2)번째는 주의하라
3)힘쓰라입니다
1)첫째 두려워하라는 무엇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까?
가) 자기가 그렇게 부드러워도 곧 강퍅해질 수 있다고 하는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나) 두 번째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자기가 지금 그렇게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어린아이와 같이 주님을 따라가지만, 자기가 주님을 크게 배신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가능합니다.
다) 세 번째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종말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강퍅한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은혜를 받아서 부드러운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쉽게 얘기해서 은혜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늘 주님을 생각하면 눈이 촉촉이 젖어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도 기쁘고 그를 보면 주님이 그 안에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강퍅한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회복되는 것보다는 그 부드러운 마음을 유지하면서 사는 일이 훨씬 더 힘듭니다.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지식도 강퍅한 마음에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돌아올 때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많은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노력도 훨씬 더 많습니다. 즉 전쟁을 해서 한 번 승리하는 것도 힘들지만 끊임없이 무기를 준비하고 복수를 꿈꾸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스스로 보호하면서 우위에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엉터리 같은 지식으로는 절대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잘 정리되어야 합니다. 정말 책 좀 읽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정확한 빛을 갖게 만들어주는 그런 신령한 책을 한 달에 한번씩 계속 소개해도 문서선교부에서 별로 팔리지 않는답니다. 담임 목사가 꼭 필요한 책이라고 소개하면 사서 읽어야 합니다. 일년에 열두 권씩만 사서 5년만 예수 믿으면 책꽂이 하나는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한 30년 예수를 믿었으면 자신의 방안에 기독교인의 서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안 합니다. 몇만 원어치씩 먹어도 책은 비싸다고 합니다.
가)첫째는 자기가 그렇게 부드러워도 곧 강퍅해질 수 있다고 하는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이 부드럽고 눈물이 글썽거렸었는데 1년 지나고 나면 잘 안보입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고 다시 강퍅한 마음으로 변합니다. 부드러운 마음이었던 사람이 강퍅해지면 오히려 완전히 두 얼굴입니다. 은혜 받은 부드러운 마음이었을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룰수록 괜찮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강퍅한 사람, 저 사람은 정말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라고 금방 판단을 내리면 나중에 반드시 회개할 일이 생깁니다. 그럴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내 마음이 지금은 이렇게 부드러운데 강퍅해질 수 있다’ ‘강퍅할 때 얼마나 힘들었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가슴을 부여안고 고통스럽게 살던 때를 기억하면서 자기 마음의 부드러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이 수고와 희생을 크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모시고 사는 신자의 행복이여.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데, 정말 먹고만 살아도 하나님 은혜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너무너무 소중합니다.
나)두 번째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자기가 지금 그렇게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어린아이와 같이 주님을 따라 가지만, 자기가 주님을 크게 배신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가능합니다.
성경에 보면 한때는 정말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불신자와 같이 된 사람이 많습니다. 그중 한사람이 구약의 사울과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불러주셨을 때 하나님 앞에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하나님 제가 어떻게 왕이 됩니까? 우리 집안은 보잘 것 없고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하며 기름 부으려고 할 때 숨었던 사람이었는데 마음이 강퍅해지고 나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재물을 노획물로 획득하는 못된 일을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다윗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사랑스러운 우리아를 죽입니다. 두 얼굴의 사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능성이 그런 탁월한 영적인 인물들에게 일어났다면 우리에게는 확률적으로 너무 일어나기 쉬운 것입니다. 그 생각을 해야합니다. ‘부드러운 마음, 깨어진 심령 하면 나 아니겠어’했어도 언제든지 우리도 그런 배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도 믿음에서 미끄러져서 크게 타락한 사람들을 보면서 정죄하라고 가르쳐주는 대신 ‘저것이 내 일일수도 있다’고 경계를 삼으라고 합니다. 이것이 근신하는 마음이고 두려워해야 할 것들입니다.
다) 세 번째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종말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안고 그대로 주님의 심판대 앞에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세월이 흘러가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막연한 기대 속에서는 ‘했으면, 할텐데’하다가 끝나지, 정말 놀라운 일들이 그런 막연한 기대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강퍅한 가슴을 갖고 일평생동안 하나님 앞에 부끄럽게 살았는데 불현듯 어느 순간 주님이 목숨을 거두어서 주님 앞에 개인적인 종말을 맞이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불행합니까?
살았을 때는 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았어도 죽는 그 순간에는 은혜가 최고도로 달해서 주님이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 땅의 수고를 끝내고 내 품으로 돌아와 영혼이 안식하라” 하실 때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나의 사모할 자는 우리 주님밖에 없나이다”하며 올라가야 영광인데, 두려움 속에서 끌려가듯이 가는 일이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오늘 하나님 앞에 녹아진 심령을 가지고 사는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말로 근신하는 삶입니다.
2)두 번째로는 주의하여야 합니다.
가) 첫째 죄를 주의해야 합니다.
나) 두 번째로 주의해야 할 것은 세상의 염려가 우리의 마음을 딱딱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다) 세 번째 주의해야 될 것은 위선입니다.
가)첫째 죄를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는 부드러웠던 우리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염려나 근심은 좀 소극적인 요인인데 죄는 우리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강력하고 적극적인 요인입니다. 그런데 이 죄에도 양심을 거스르는 작은 죄가 있고 큰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질적으로는 마찬가지지만 그것이 마음에 미치는 효과는 다릅니다.
그런 것들도 정직하지 않으니까 죄는 죄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양심을 거스르는 작은 죄입니다. 작은 죄는 양심만 어지럽히는데 큰 죄는 영혼을 죽입니다. 그러니까 둘 다 조심해야 되는데 -그렇다고 작은 죄는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혼돈 시키고 어지럽히면서 우리의 마음을 무감각하게 하는데 그것은 아주 얇게 무감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큰 죄는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죄에 대해서 깨어있는 마음을 가지고 잘 지켜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두 번째로 주의해야 할 것은 세상의 염려가 우리의 마음을 딱딱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염려 같은 것들입니다. 염려는 결국 사랑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술취함과 방탕함과 생활의 염려로 너희의 마음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잠드는 마음, 무딘 마음, 굳어진 마음, 강퍅한 마음, 다 비슷비슷한 표현인데 어떻든 생활의 염려가 죄악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살지 않는데서 비롯된 과도한 염려는 우리의 마음에 생기를 몰아내고 우리의 마음을 점점 굳어지게 만드는 그런 효과를 가져옵니다.
더더군다나 여러분들이 특정한 쾌락에 집중적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터넷, 채팅, 낚시, 바둑... 이 모든 것들이 너무 과도하게 될 때에 반드시 경건에 해가 됩니다. 적절하게 해서 정신과 육체를 순환시키는 것은 괜찮아도 과도하면 반드시 영적 생활에 해가 됩니다. 집착을 가질 정도로, 말하자면 끊었을 때 금단현상이 올 정도로 미치듯이 빠지는 것은 모두 나쁩니다. 그런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부드러웠던 마음들을 딱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굉장히 안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물질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은혜 생활하면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복 주십니다. 여러분들의 생활이 나아지면 조금 낫게 살아도 괜찮습니다. 성경 적으로 주님이 주신 것을 어느 정도 누리며 사는 것은 정죄 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나치면 반드시 그것이 물질에 대한 집착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가져오고 과도한 물질에 대한 집착과 사랑에 대한 집착, 그것에 대한 선호함은 반드시 영혼의 원기를 감퇴시키고, 반드시 그 사람의 부드러웠던 마음을 딱딱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세 번째 주의해야 될 것은 위선입니다.
위선은 마음 바침이 없는 신앙생활이 상습화된 결과가 위선입니다. 고도의 결단을 통해서 위선자가 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치지 않는 신앙생활이 상습화될 때 위선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위선이 나쁜 이유는 외식입니다. 이 문제를 깊이 다루어 보고 싶으면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과 외식’이라는 시리즈를 들으면 많이 해결되리라고 보는데,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이 외식은 하나님 앞에 바쳐진 참된 마음이 없이 일정한 신앙의 모습을 흉내냄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으려고 하는 자기 의입니다.
이런 위선적인 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구속이 사라지고 자기 자신에 대한 우월감에 가득 차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주님을 만난 인격적인 교제가 있는 진실한 삶이 불가능합니다. 진실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위선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자기가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가 진실해지면 너무 역겨워합니다. 모두 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가 진실해지면, 진실한 사람 속에서 외식하는 사람이 너무 역겨운 것과 같은 역겨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사람 속에서 한 사람이 진실해지면 즉시 나오는 말이 ‘저만 예수 믿나. 유별 떠내’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실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힘쓰라는 것입니다.
가)첫째로 순종하기를 힘서야 한다
나) 두 번째로 거룩한 교제를 유지해나가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다) 세 번째는 은혜의 방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가) 첫째로 순종하기를 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힘쓰라는 것입니다. 무엇에 힘써야 하느냐면 첫째로 순종하기를 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성찰을 통해서-자기 성찰도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있을 때에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 순종은 우리 안에서 마음이 굳어지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훌륭한 제동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굳어지면 반드시 죄, 불순종이 친구입니다. 죄, 불순종과 함께 맞아떨어지면서 우리의 마음이 급속히 굳어지는데,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그 순종이 어떤 종류의 순종이냐면 범위에 있어서는 전 방위적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에 와서 하는 생활에 있어서만 순종하는 삶이 되어서는 안되고 자기의 직장 생활이나 가정생활의 모든 삶에 있어서 그 하나님의 말씀의 표준대로 살고자 하는 삶에 있어서의 전 방위적인 순종하는 삶의 노력이 필요하고, 정도에 있어서는 -인간이 완전히 하나님 앞에 순종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순종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을 가지고 온전한 순종이 되도록 힘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순종을 해보기도 전에 ‘사람이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인데 어떻게 온전히 순종하겠어’하는 것은 ‘대충 살지 뭐’하는 것이나 같습니다.
온전한 순종을 하려고 하나님 앞에 애를 쓰면서 살다가 결국은 인간이기 때문에 완전히 못사는 것과 처음부터 인간이 온전한 순종을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순종하지 못하는 자신을 당연시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말은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만 실제의 삶에 있어서는 마음 그 자체가 불순종하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순종하기를 힘씀으로서 부드러운 마음을 유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나) 두 번째로 거룩한 교제를 유지해나가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로는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를 계속 유지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실한 경건 생활이 부드러운 마음을 유지해 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처음 딱딱한 심령이 부드럽게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났을 때는 우발적으로 새벽기도에 나오기도 했는데 부드러운 심령을 가진 다음에는 꾸준히 경건 생활을 해야 합니다.
목양을 하면서 보면 대부분 하나님이 부드럽게 고쳐주셨는데도 이 부드러운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는 가장 커다란 원인이 견고하고 지속적인 개인 경건 생활의 실패입니다. 그것이 저항력을 앗아가 버리고 많은 은혜를 하나님이 주셔서 마음을 쇄신시키셨는데도 밀려들어오는 염려, 근심, 죄에 대한 유혹,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느슨함, 이런 것들이 집합적으로 밀려들어오면서 순식간에 마음을 점령해서 굳은 마음으로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Simple Life가 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삶을 살려고 하면 안됩니다. 쓸데없는 비생산적인 취미, 쓸데없이 과도한 시간을 낭비하는 소일거리들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자신의 영적인 생활에 유익을 주지 못하는 세속적인 교제생활도 당장 정리해서 심플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남는 시간을 모아서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사랑하는 지체들과의 따듯한 교제입니다. 이것은 아까 딱딱한 마음에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데 있어서는 하나의 준비 적인 것이었지만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거의 필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 세 번째는 은혜의 방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방편은 상당히 많습니다. 기도도 은혜의 방편이고 공적인 예배는 물론이고 여러 가지 은혜 받을 수 있는 방편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은혜의 방편이 주어질 때 그 은혜의 방편들을 활용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잊혀져버린 기술이지만 마음의 굳음을 방지하고 마음의 굳음에 저항하는 훌륭한 방편 중 믿음의 선조들이 잘 활용했던 것은 금식입니다.
금식, 예배, 기도, 좋은 세미나,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의 고백들을 통해서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 은혜 받은 사람들로부터 내가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많은 기회들을 유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사경회가 있으면 참석해서 깊이 은혜 받으려고 한두 달 전부터 결단하고 할 때 심령이 굳어지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늘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경회를 모두 마치면서 여러분들에게 결론적으로 말씀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세월이 많이 흐르고 아무리 세상의 풍조가 바뀌어도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명은 어제나 오늘이나 항상 동일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옛것과 새것이 따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의 샘에서 고전적인 부르심 속에서 안식을 누렸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소명에 불타는 삶을 살았습니다.
매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가 이러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이제껏 성화의 삶을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를 쓴 사람도 있지만 자포자기한 상태에 있는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의 영혼에는 어두움이 찾아왔고 우리는 패배를 숙명처럼 여기면서 영혼의 암흑 속에서 주님과의 교제의 단절을 느끼며 성경에서 약속한 풍성한 삶과 우리의 빈약한 삶 사이에 무한한 괴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익숙해진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의 마음은 강퍅해졌고 우리의 마음은 굳어져서 이전에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의 그 큰사랑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배신하는 삶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일반화되었습니다. 이런 삶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에 주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셨던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천하보다도 귀한 구원의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이 은혜의 불을 질러 어두운 세상을 빛처럼, 그리고 불꽃처럼 살아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예수의 생명을 전해주게 하시려고 주님이 여러분들을 소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명은 세월이 많이 흘러도 결코 빛 바래거나 쇄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그 소명을 따라 사는 자녀들과 동행하시고 어두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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