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상연구
예비적 고찰
1.1.서론
코메니우스의 교육사상은 지식과 신앙의 양대 기둥을 초석으로 한다. 지식과 신앙은 유럽의 사상적 두 원류로서 전자는 자연을 대상화한 것이고, 후자는 신을 지향한 것이다. 그러므로 코메니우스에게 있어서 인간의 이성과 신 중심적 신앙은 전인교육에의 기본적 요소이다.
"교육되어지지 않은 인간은 동물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서 교육을 통해서만 '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교육에 대한 개념은 처음 창조된 에덴교회로부터 출발된다. 하나님께서는 에덴교회를 창설하시고 '하라, 하지 말라'는 교육의 두 용어를 사용하시어 관계를 가지셨다. 구약교회인 이스라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의 개념인 '하라, 하지 말라'는 용어가 성경에 무려 2,000회 이상 언급됨을 주지할 때 이를 잘 알 수 있다.
교육적 교회로 시작된 교회가 종교화로 전락하면서부터 문제가 야기되었음을 역사가 입증한다. 기독교회가 종교화로 고착되면서 건물위주(성전을 중요시), 제사장(계급)중심, 종교인중심인 의식화, 외식화, 무지화, 샤머니즘 화된 모습으로 퇴색된 것이다.
종교화된 교회를 다시 교육적 교회로 만들기 위하여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다. 예수의 지상사역과 삶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종교화된 교회를 다시 교육적 교회로 재 정비하시사 종교화를 교육화로, 성전 화를 교회화로, 제사장화를 스승화로, 종교인화를 제자화로 그리고 계급화를 은사화로 바꾸시면서 다시금 교육 위에 모델교회인 예루살렘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그 증거로 예수께서는 지상 사역의 82%를 가르치는 사역으로 사셨으며, 호칭에 있어서도 스승과 랍비로 불리셨고, 최후 명령에 있어서도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 제자화 할 것을 명하셨다.
사도들의 삶에 있어서도 교육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초대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날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신앙적 삶을 감당했음을 본다. 사도들 역시 그들의 주된 업무가 '가르치는 것과 기도에 전무하는 것'을 인식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교육적 교회가 종교화로 본격화된 것은 주후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한 '기독교회의 로마 국교화' 라고 할 수 있겠다. 이때부터 교육적 기독교회는 교육교회에서 국가 종교화로, 날마다 모이는 교회에서 국경일로서의 주일교회로, 가르쳐 지키게 하는 교사에서 제사의식으로서의 미사 집례자로 변질된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회는 교육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점점 교회는 교육을 외면하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르네상스 교육운동을 기점으로 교회중심의 교육권이 완전히 국가로 이전된 것이다.
교육활동 위에 세워졌던 기독교회가 모든 백성의 교육권을 장악했을 때는 성경중심사상에서의 신에 대한 교육과 인륜교육, 자연교육의 통합교육을 이룰 수 있었다. 즉 교회 자체가 학교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2천번 이상의 교육에 대한 강조와, 주님의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에 의해 벧하세퍼드(초등학교과정), 벧탈무드(중고등학교과정), 벧함마드라쉬(대학교과정)와 같은 학교 교육이 모두 교회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통합교육은 교회의 종교화 현상과 교육의 국가 예속화, 르네상스 운동의 분리교육화로 말미암아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르네상스 운동의 분리교육의 영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로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분리시켜 자연에게 예속시키는 일과,
둘째로 신본주의 신앙에서 떼어내 인본주의로 만드는 것, 그리고
셋째로 교회의 교육권을 떼어내 국가 사회의 교육권으로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교육권을 교회와 종들에게 위탁하셨으며 여타의 기관이나 특정인에게 부여하신 적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성경 66권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므로 교육은 교회 안에서의 교육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일을 구체적으로 성경에 입각하여 체계화 한 사람이 코메니우스이다. 코메니우스는 형제단 교회에 소속된 목사로서 칼뱅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이자 목사이며 교육자이다. 분리교육에 반기를 들고 통합교육을 재건한 청교도들과 같이 코메니우스는 교회가 다시금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 사람일 것이다.
교회가 교육을 담당하지 않는다면 지금 미국이 그러한 추세에 있는 것과 같이 무신론과 인본주의, 세속주의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지금 미국은 청교도들의 모든 모범이 무너지고 히피와 마약, 갱단, 알코올중독, 퇴폐, 음란, 방탕 등의 범죄 수출국가로 전락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미국만의 모습이 아니다. '미국에서 기침하면 일본은 감기에 걸리고 한국은 독감에 걸린다'는 우스게 소리가 있다.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도 미국과 같은 형편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은 코메니우스의 사상과 교육이론이 절박한 시대이다. 청교도에 입각한 그의 교육철학이 암울한 이 시대에 빛으로 비추어지기를 소망한다.
인간은 교육적인 존재임을 인식할진대 는, 교육만이 인간을 온전하게 할 수 있음을 깨달을진대 는 잃어버린 교육의 본질을 다시금 회복해야 하며 교회가 이 일을 감당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코메니우스의 위대한 기독교 교육신학 사상을 우리 모두가 재정립하여야 할 것이다.
예비적 고찰
1.1.서론
코메니우스의 교육사상은 지식과 신앙의 양대 기둥을 초석으로 한다. 지식과 신앙은 유럽의 사상적 두 원류로서 전자는 자연을 대상화한 것이고, 후자는 신을 지향한 것이다. 그러므로 코메니우스에게 있어서 인간의 이성과 신 중심적 신앙은 전인교육에의 기본적 요소이다.
"교육되어지지 않은 인간은 동물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서 교육을 통해서만 '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교육에 대한 개념은 처음 창조된 에덴교회로부터 출발된다. 하나님께서는 에덴교회를 창설하시고 '하라, 하지 말라'는 교육의 두 용어를 사용하시어 관계를 가지셨다. 구약교회인 이스라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의 개념인 '하라, 하지 말라'는 용어가 성경에 무려 2,000회 이상 언급됨을 주지할 때 이를 잘 알 수 있다.
교육적 교회로 시작된 교회가 종교화로 전락하면서부터 문제가 야기되었음을 역사가 입증한다. 기독교회가 종교화로 고착되면서 건물위주(성전을 중요시), 제사장(계급)중심, 종교인중심인 의식화, 외식화, 무지화, 샤머니즘 화된 모습으로 퇴색된 것이다.
종교화된 교회를 다시 교육적 교회로 만들기 위하여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다. 예수의 지상사역과 삶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종교화된 교회를 다시 교육적 교회로 재 정비하시사 종교화를 교육화로, 성전 화를 교회화로, 제사장화를 스승화로, 종교인화를 제자화로 그리고 계급화를 은사화로 바꾸시면서 다시금 교육 위에 모델교회인 예루살렘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그 증거로 예수께서는 지상 사역의 82%를 가르치는 사역으로 사셨으며, 호칭에 있어서도 스승과 랍비로 불리셨고, 최후 명령에 있어서도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 제자화 할 것을 명하셨다.
사도들의 삶에 있어서도 교육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초대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날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신앙적 삶을 감당했음을 본다. 사도들 역시 그들의 주된 업무가 '가르치는 것과 기도에 전무하는 것'을 인식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교육적 교회가 종교화로 본격화된 것은 주후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한 '기독교회의 로마 국교화' 라고 할 수 있겠다. 이때부터 교육적 기독교회는 교육교회에서 국가 종교화로, 날마다 모이는 교회에서 국경일로서의 주일교회로, 가르쳐 지키게 하는 교사에서 제사의식으로서의 미사 집례자로 변질된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회는 교육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점점 교회는 교육을 외면하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르네상스 교육운동을 기점으로 교회중심의 교육권이 완전히 국가로 이전된 것이다.
교육활동 위에 세워졌던 기독교회가 모든 백성의 교육권을 장악했을 때는 성경중심사상에서의 신에 대한 교육과 인륜교육, 자연교육의 통합교육을 이룰 수 있었다. 즉 교회 자체가 학교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2천번 이상의 교육에 대한 강조와, 주님의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에 의해 벧하세퍼드(초등학교과정), 벧탈무드(중고등학교과정), 벧함마드라쉬(대학교과정)와 같은 학교 교육이 모두 교회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통합교육은 교회의 종교화 현상과 교육의 국가 예속화, 르네상스 운동의 분리교육화로 말미암아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르네상스 운동의 분리교육의 영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로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분리시켜 자연에게 예속시키는 일과,
둘째로 신본주의 신앙에서 떼어내 인본주의로 만드는 것, 그리고
셋째로 교회의 교육권을 떼어내 국가 사회의 교육권으로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교육권을 교회와 종들에게 위탁하셨으며 여타의 기관이나 특정인에게 부여하신 적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성경 66권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므로 교육은 교회 안에서의 교육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일을 구체적으로 성경에 입각하여 체계화 한 사람이 코메니우스이다. 코메니우스는 형제단 교회에 소속된 목사로서 칼뱅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이자 목사이며 교육자이다. 분리교육에 반기를 들고 통합교육을 재건한 청교도들과 같이 코메니우스는 교회가 다시금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 사람일 것이다.
교회가 교육을 담당하지 않는다면 지금 미국이 그러한 추세에 있는 것과 같이 무신론과 인본주의, 세속주의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지금 미국은 청교도들의 모든 모범이 무너지고 히피와 마약, 갱단, 알코올중독, 퇴폐, 음란, 방탕 등의 범죄 수출국가로 전락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미국만의 모습이 아니다. '미국에서 기침하면 일본은 감기에 걸리고 한국은 독감에 걸린다'는 우스게 소리가 있다.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도 미국과 같은 형편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은 코메니우스의 사상과 교육이론이 절박한 시대이다. 청교도에 입각한 그의 교육철학이 암울한 이 시대에 빛으로 비추어지기를 소망한다.
인간은 교육적인 존재임을 인식할진대 는, 교육만이 인간을 온전하게 할 수 있음을 깨달을진대 는 잃어버린 교육의 본질을 다시금 회복해야 하며 교회가 이 일을 감당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코메니우스의 위대한 기독교 교육신학 사상을 우리 모두가 재정립하여야 할 것이다.
출처 : 두손선교회
글쓴이 : ysong777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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