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용어 사전

[스크랩] 성화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아들 2018. 3. 14. 10:49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2:5)
1. 성화란 무엇입니까?
성화는 거룩과 같은 말로써 이 세상의 죄와 분리 되어진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화란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그릇으로 거룩하게 사용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악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마음의 상태가 주님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2:21) - (※영성)

1)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빌2:5-6)
2)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고전11:1)
3) 하나님처럼 거룩한 삶을 말합니다.(엡4:22-24)
4) 하나님 나라의 풍습을 ?는 자 들입니다.(야3:14-18)

 

2. 성화의 삶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1) 가난한 마음(마5:3)
2) 겸손(빌2:7) :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자
3) 거룩(엡1:4, 살전3:4)
4) 용서(요8)
5) 사랑(마22:36-40)
6) 침묵(약3:1-6)
7) 주는 자(행20:25)
8) 섬기는 자(막10:45)

 

3. 세상적 삶은 어떤 것 입니까?
1) 욕심 - (엡4:19)
2) 이기심(자아중심) - (롬16:18)
3) 물량주의 - (눅12:18)
4) 외형(형식)주의 - (눅18:11)
5) 교만, 시기, 미움, 악독, 향락, 음란,
6) 술수, 분쟁, 방탕, 술취함, 이단, 분냄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없는 삶이다. (롬1:28)
이 모든 것들은 육체를 따라 사는 삶이다. (갈6:19)
이러한 것들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다. (약3:15)

 

4. 히브리인의 3대 성결(창12:1-2)은 무엇인가?
①         ②         ③

 

5. 성화의 삶(=그리스도를 본받음)에 꼭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1) 말씀(성경)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2)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3) 항상 자신을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신앙의 단계 : 롬8:29-30>

 중생(구원받음)→성령세례→성령충만(성장)→성화 →영화(주님과 비슷함)
  다시 태어남
  새사람
  거듭남
  의롭다하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와 용서를 믿으며 이렇게 말한다. “이제 십자가에서 구원이 다 이루어졌으니 믿기만 하면 된다! 나는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구원의 복음을 반쪽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받은 칭의를 계속 유지해야 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회개할 때,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며 우리를 의롭다 칭하시고 율법을 범함으로 받게된 형벌을 되돌리신다. 그리하여 죄인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으로 서게 되며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과의 교제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그 후에 성취되어야 할 중요한 일이 남아 있는데, 그 일은 영혼이 진리를 통하여 성화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일 역시 믿음으로 성취된다. 그 이유는 우리가 믿음을 통하여 받는 그리스도의 은혜로서만이 우리가 성화될 수 있으며, 우리의 품성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화에 대하여 알아보자.

 

* 성화란 무엇인가?

 

성경에 나타난 복음에는 “칭의”외에 또 다른 면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그 면이 함께 이루어져야 복음이 완전하게 되며 구원이 완성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성화인데, 성경의 복음은 칭의와 성화를 모두 포함한다. 거룩함(성화)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중요한 교리 중의 하나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말하였으며(살전 4:3), 또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 기를 원하노라”고 기원하였다(살전 5:23).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다(요 17:17).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품성의 모본을 보여 주셨다.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하셨다(요 15:10). 회개하여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과 같이 되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고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가운데 거룩한 율법의 원칙과 일치하는 품성과 생애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성화(거룩함)이다.

 

성경은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을 때에 성화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칭의는 변화를 요구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 완전한 회개의 경험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여 그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있다는 증거가 그 생애에서 나타나야 한다. 그러므로 성화를 쉽게 풀어 말하자면 예수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삶 속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화는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성화된 사람만이 하늘에서 하나님과 조화되어 살 수 있기 때분이다.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죄를 싫어하고 미워하게 되며, 과거의 어두움 가운데서 살던 생활이 너무 싫기 때문에 다시는 과거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진다. 그리고 새롭게 주님과 시작한 생활이 너무 좋고, 또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므로 다시는 죗된 생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진다. 그런 사람은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되며 혹시 연약하여 쓰러졌을지라도 다시 하나님과 화목한 생애를 이어가게 된다. 거룩한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서 살 사람은 거룩하게 성화된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죄가 너무 싫어 습관적으로 늘 주님의 편을 택하고 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하늘에 가야 루스벨이 타락했던 것같은 죄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 칭의와 성화를 함께 언급하고 있는 성경절

 

칭의는 한순간의 역사이고, 성화는 일생동안에 일어나는 역사이지만 그것은 반드시 칭의와 함께 시작된다. 성경은 회개하고 거듭난 사람이 살아야 하는 생활에 대하여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은 너무나 자주 칭의와 성화를 복음의 테두리 안에서 연결해 주고 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개념이 16세기 종교 개혁을 주도한 지도자들의 지배적인 신학이였음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의롭게 된다는 것, 즉 칭의를 받는다는 것이 성서적이기는 하지만 칭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전체적인 복음과 조화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칭의와 성화를 함께 말하고 있는 성경절을 몇가지 예로 들어 보자.

 

“그 눈을 뜨게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칭의)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성화)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라” (사도행전 26:18).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칭의)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성화)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칭의)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성화) 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성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8:1-4).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칭의)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성화)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되라” (요한계시록 23:11). 

주의 기도문 가운데에서도 칭의와 성화는 하나로 결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칭의)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성화)” (마태복음 6:12, 13).

 

이렇듯이 성경에서 성화는 칭의와 늘 함께 다루어지고 있고 또 믿음과 진정한 믿음의 결과인 행함을 함께 말하고 있으며, 칭의는 성화를 수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성화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말하자면, 성화란 회개하고 거듭난 사람이 거듭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성화란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남김없이 완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것, 즉 공의로우며, 자비를 사랑하며, 하나님과 겸손하게 동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신이나 자신의 유익에는 무관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것이며, 하늘의 정신을 소유하여 순결하고 비이기적이며, 거룩하며 점이나 흠이 없는 생애를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매일 매 순간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온전한 굴복을 말한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 계시는 성령에 의해서 날마다 새로운 침례를 받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번 거듭난 후에도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의지를 계속적으로 굴복시켜야하며,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하고, 또 그런 능력을 받기 위해 늘 기도하며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 중요한 성화의 두면

 

지금까지 우리는 성화에 대하여 배웠다. 그런데 성화에는 두가지 면이 있다. 그것은 성화의 질과 성화의 분량이다. 우리가 앞에서 배운 것처럼, 회개하고 자복하여 죄를 버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고백한 죄를 계속 승리하는 생활을 유지하는 것, 곧 칭의를 계속 유지하는 상태를 성화의 질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화에는 또 다른 한면, 곧 성화의 분량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쉽게 말해서 성품의 성장을 말한다. 이것은 성화의 분량으로서, 성화의 생애를 계속하는 사람의 생애에 맺혀지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뜻한다. 매일의 생애에서 이 성령의 열매의 성품이 풍성하게 맺히고, 또 그 열매가 충실하게 익어가는것, 곧 우리의 성품이 예수님의 성품을 온전히 닮고, 우리의 생애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온전하게 반사되는 것을 성화의 분량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두가지 면을 일컬어 총체적으로 성화라고 한다.

 

우리는 매일 회개하고 거듭나는 경험을 계속하며, 또한 우리의 회개와 거듭남의 경험이 계속적으로 더 깊어지는 경험을 하며 살도록 기도하자!또한 우리의 생애에 죄를 승리하는 역사와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역사가 지속되도록 기도하자! 이것이 참된 성화의 길이다.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는 성경절은 사도 베드로의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절을 단지 방탕한 사람만을 경고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보다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성경절은 모든 해로운 식욕과 정욕의 만족을 금할 것을 말하고 있다. 경건하다고 공언하는 자들은 육체의 건강에 무관심하고 또한 부절제는 죄가 아니라고 믿으며 부절제가 그들의 영성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도록 하자. 육체적 본성과 도덕적 본성 사이에는 아주 밀접한 공감이 있다. 건강을 증진시키지 않는 습관은 어느 것이나 보다 높고 고상한 기능을 퇴화시킨다. 먹고 마시는 데 대한 그릇된 습관은 사상과 행동을 그릇되게 인도한다. 식욕의 방종은 동물적인 성질을 강화하여 그 성질이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지배하게 된다.
 

누구든지 이기적이며 탐욕적이면서 성화의 축복을 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한 그릇된 습관으로 생명과 건강의 법칙을 위반하기 때문에 질병의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고 있다. 그들은 그룻된 식욕에 방종함으로써 그들의 소화기관들을 약하게 하고 있다. 가해지는 학대에 저항하려는 인체조직의 능력은 놀라우나 지나치게 먹고 마시는 악습을 계속하면 신체의 모든 기능이 약해질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릇된 식욕과 정욕을 즐김으로 일하는 데 활력을 잃게 되고 육체적·정신적·도덕적 능력을 약하게 한다. 이렇게 허약해진 사람들이 신체를 흑사하는 대신 절제있게 살아서 건강을 증진시켰더라면 그들 자신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를 생각하도록 하자. 

 

불가능한 표준이 아님 

 

바울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살전 5:23)라고 한 말은 그가 형제들이 도달할 수 없는 표준을 목표로 삼으라고 권고한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뜻하신 것이 아닌 축복을 누리도록 기원한 것도 아니었다. 평강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만나기에 합당하게 될 사람들은 순결하고 거룩한 품성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을 바울은 알았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5-27).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 20)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흠없는 제물 

 

바울은 다시 신도들에게 글을 보낸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아무 흠이나 질병이 없는 짐승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바치라는 특별한 지시가 고대 이스라엘에게 내려졌다. 가장 완전한 짐승만이 이 목적을 위해 선택되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이 이 교훈들을 저버린 것에 대하여 가장 혹독하게 견책하셨다. 

 

“아들은 그 아비를 그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가납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 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 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1:6-13). 

 

이 말씀은 고대 이스라엘에게 하신 것이지만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교훈이 된다. 사도 바울이 그의 형제들에게 그들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호소하면서 진정한 성화의 원칙을 진술하고 있다. 그 원칙은 한갓 이론이나 감정 또는 권면의 형식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생애에 적용되는 살아 있고 활동적인 원칙이다. 그 원칙은 우리의 먹고 마시며 또한 입는 습관이 육체적·정신적·도덕적 건강을 보존할수 있는 그러한 것이 되고,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악습으로 더럽혀진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우리 몸을 주님께 드릴 수 있게 되기를 요구한다. 

 

흥분제와 마취제 

 

육체의 정욕을 삼가라는 베드로의 훈계는 차, 커피, 담배, 알콜과 몰핀 같은 모든 흥분제와 마취제의 사용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경고가 되고 있다. 이런 유의 방종은 도덕적 품성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욕망들 중에서도 유별난 것들이기도 하다. 이런 해로운 습관들이 빨리 형성되면 될수록 그들은 확고하게 욕망의 노예로 자신을 희생시킬 것이며, 더 확실하게 영성의 표준을 저하시킬 것이다. 

자기만족으로 정신능력이 마비된 자들에게는 성경의 교훈은 한갓 미약한 감명밖에 주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거스려 싸우기도 전에 건강과 생명뿐만 아니라 천국에 대한 소망까지 희생하게 될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성화되었다고 주장하던 한 부인이 만일 자기가 담배 파이프와 천국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천국이여 안녕! 나는 파이프에 대한 애착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할 것이라고 진술했다. 예수님을 둘째 자리에 두고 이 우상을 그 심령 가운데 소중히 간직하여 왔다. 그러하면서도 이 부인은 온전히 주의 것이 되었다고 주장했었다.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정욕 

 

그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진실로 성화된 자들은 올바른 육체적인 습관을 보존함으로 도덕적 표준을 향상시킬 것이며, 다니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절제와 극기의 모본을 나타낼 것이다. 모든 비열한 식욕은 불화를 일으키는 욕망이 된다. 자연법칙에 저촉되는 것은 무엇이나 영혼에 병적인 상태를 조성한다. 방종은 위의 소화불량과 간장의 마비와 흐릿한 두뇌를 가져 와서 인간의 정신과 기질을 가르치게 한다. 이리하여 쇠약해진 체력을 하나님께 드리면 흠이 있는 희생제물을 거절하시는 분께서 받으시겠는가! 우리의 식욕과 생활습관을 자연법칙에 일치시키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제단에 바치는 몸들을 마치 유대인이 희생제물을 조사했던 것처럼 정밀히 한다면 누가 가납될 것인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봉사함에 바칠 수 있는 모든 기관의 정력을 충분히 보존할 수 있도록 어떠한 일에나 그들의 습관을 단속할 것이다.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성화되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식욕과 정욕이 건강과 생명을 소모시키는 방종에 빠져 있는 동안은 마음을 하나님께 바칠 수 없다. 건강 법칙을 위반하는 사람들은 그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어떠한 점에서나 그들의 능력이 제한되어 있어서 이웃들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올바르게 이행할 수 없으며 또 전혀 하나님의 요구에 응할 수 없게 된다. 

 

영국의 수상 팔미스턴 경이 스콧트랜드의 목사들에게서 호열자를 방지하기 위하여 기도와 금식일을 지정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는 다음과 같은 실제적인 대답을 했다. “여러분의 집과 거리를 청결하게 하고 소독하십시오. 빈궁한 사람들에게 청결과 건강을 권장하십시오. 좋은 음식과 옷을 충분히 공급하며 올바른 위생적 방법을 널리 사용하도록 힘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은 기도하거나 금식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또한 주님께서도 그분의 예방법을 그렇게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는 동안은 여러분들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자”(고후 7:1)고 말한다. 그는 우리를 격려하기 위하여 참으로 성화된 자들이 누릴 자유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 2). 그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고 권고하고 있다. 그는 육체의 소욕 중 몇 가지를 “우상숭배와 … 술취함과 …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 5:20, 21)고 열거하고 있다. 그 중에 절제도 포함되어 있는 성령의 열매들에 대해 언급한 다음에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고 덧붙이고 있다. 

 

담 배 

 

야고보는 위에서부터 오는 지혜는 “첫째 성결하다”(약 3:17)고 말한다. 만일 그의 형제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보았더라면 그는 그 습관을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약 3:15)인 것으로 선언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이는 이 세대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고귀한 이름을 부르는 입술이 얼마나 자주 담배로 더러워지며 침과 호흡이 악취로 불결해지고 있는가. 그런 불결함을 즐기는 이는 그 영혼도 불결해질 수 밖에 없다. 담배의 노예가 되어서 그들 주위의 모든 것들을 더럽히고 있는 데도 완전한 성화의 축복을 누린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볼 때 나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그들에게는 하늘이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무엇이든지 속된 것은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계 21:27)한다고 선언하셨다. 그렇다면 이 불결한 습관에 빠진 자들이 어떻게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경건하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몸을 사단의 제단에 바치고 사단과 같은 태도로 담배의 향을 태운다. 이 말이 좀 가혹한 것처럼 생각되는가? 그 제물은 틀림없이 어떤 신에게 바쳐진다. 하나님은 순결하고 거룩하시기 때문에 성품이 더러운 것은 어느 것이나 받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낭비적이고 불결하고 또 거룩하지 못한 제물을 거절하실 수 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그 영예를 주장할 사람은 바로 사단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예수님은 사단의 속박에서 사람을 구출하시려고 죽으셨다. 그분은 자신이 속죄 제물이 되어 흘리신 피로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다. 예수님의 소유물이 되고, 그 몸이 성령의 전이 된 사람은 담배를 사용하는 해로운 습관으로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다. 피의 값으로 사신 그의 능력은 그리스도께 속한다. 그의 소유물도 주님의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맡기신 재물을 전혀 근거가 없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매일 소비하면서도 죄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방종을 위하여 해마다 막대한 금액을 낭비하지만 생명의 말씀에 대해서는 심령이 메말라 가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와 헌물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고 있으면서도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거나, 하나님의 사업에 부족되는 것을 공급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담배를 피우는 일로 멸망시킬 정욕의 제단에 바친다. 진실로 성화된 사람들은 모든 해로운 정욕을 다 극복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불필요한 소비의 통로는 주님의 보고를 향하게 될 것이요, 그리스도인은 극기하며 자아희생과 절제하는 데 앞장서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세상의 빛이 될 것이다. 

 

차와 커피 

 

차와 커피는 담배와 마찬가지로 기관에 해로운 영향을 준다. 차는 취하게 한다. 그 정도는 덜하지만 성질상으로 그 영향은 많은 알콜이 들어 있는 술이 끼치는 것과 같다. 커피는 지성을 흐리게 하고 정력을 마비시키는 영향이 크다. 그것은 담배처럼 강력하지는 못하나 그 영향에 있어서는 유사하다. 담배를 반대하여 세워진 논증은 역시 차와 커피의 사용을 금하는 주장이 될 수도 있다. 

 

차, 커피, 담배와 아편 그리고 독주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습관적인 방종에 탐닉되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흥미와 열심을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기도나 증언을 활기 있고 고상하게 하기에 무력한 듯이 보인다. 이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누리는 기쁨의 근원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하늘에서 온 것인가? 땅에서 온 것인가? 

흥분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아할 만한 방종이 없으면 모든 것이 다 무미 건조한 것같이 생각된다. 이것은 심신의 본성적 감각력을 약하게 하며 또한 성령의 감화하심을 더 느끼지 못하게 한다. 평상시와 같이 흥분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그는 의와 거룩함과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주림을 느끼게 되지 않고 그가 사랑하던 우상에 대해 몸과 영혼에 주림을 느끼게 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해로운 정욕에 방종하게 됨으로써 매일 매일 그들의 능력을 약하게 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있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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