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 동성애 진보침례교단 겨냥 “신학재해” 질타 | ||||||||||||
앨 몰러 박사가 노골적으로 비판 "반석 아니면 모래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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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와신앙> : 김정언 기자 】 ‘동성애’를 지지해온 데다 ‘동성결혼’까지 덤으로 지지해온 진보 침례교단인 협력침례회(CBF 이하 협침회)는 '신학 재해'에 불과하다고 남침례교(SBC) 보수신학자 앨 몰러 박사가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비록 몰러가 고의적으로 언급은 빠뜨렸지만, 협침회는 '얼굴마담' 격인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93)의 가입 교단으로도 폭넓게 알려져 있다. 평생 주일학교 교사와 빈민 집짓기 운동인 해비다트(Habitat) 수석봉사자로 반평생 일해 온 카터는 퍽 오래 전부터 동성애자들을 ‘사회적 약자’로 여기고 동정해온 입장. 협침회는 오래 전 동성애 문제로 내부 분파를 겪다가 교단 차원에서 이를 용인하기로 한 바 있다. 이하에 몰러의 글을 간추린다.
신학재해는 자연재해와는 달리 마른하늘 날벼락처럼 닥치진 않는다. 문제가 쌓여도 피할 길이 생기기도 하지만 눈앞에서 뻔히 시간이 흘러간다. 협침회/CBF는 내리막길을 내달리고 있다. 협침회는 1990년대에 자칭 '온건파' 내지 '중도파'로서, 실상 남침례회의 진보파인 새 조직체로 떠올랐다. 협침회는 처음부터 신학적 진보주의 회중들의 지원을 받은 건 아니다. 진보적이 아니어도 성경 무오성을 확신껏 밀고 간 SBC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의 입김을 받았다. 여성목회자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남침례교 성향도 '재해'의 기폭제가 되었다. CBF보다 앞서 빠져나간 진보주의 그룹도 침례교연맹(AOB)을 이뤘다. 남침례회와 협침회는 한때 주요 교회들의 교단 충성도와 상회비 납부 등 재정지원의 경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양측 산하 회중들은 같은 문제로 자주 내홍을 겪곤 했다. 20여년이 지난 이제도 양측 경쟁은 줄기차게 지속되고 있다. 남침례교와 협침회는 각각 역사의 다른 궤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각기 꾸준히 성장해왔다. 전자는 보수적 확신과 다짐을 굳혔고, 후자는 젊은 차기 리더를 대거 영입했는데 이들은 옛 SBC를 동경하지 않고 훨씬 더 진보적인 버전의 신학과 도덕 이슈로써 정체성을 굳혀가고 있다. 협침회의 정체성 위기는 시작부터 번연했다. 아울러 LGBTQ(동성애자/양성애자/변성자/의혹자) 혁명이 곧 CBF와 그 정체성의 폭발뇌관이 된 셈이다. 2000년 6월, 남침례회는 현대교회사 최초로 과거보다 더 보수적인 신앙고백 개정판인 '침례교 신앙&메시지'(BF&M)를 채택했다. 이 고백서 개정판은 목사직을 오로지 남성에게만 제한하고, 성경 무오성을 다지는 한편, 여타의 숱한 보수주의적 확신을 재확인했다. 이와 관련해 대니얼 베스털 CBF 조정관은 "5000 교회가 남침례회를 떠나 협침회에 가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큰 소리쳤다.
그러나 그해 10월, 협침회는 동성애 문제를 놓고 좌경했다는 비판에 대답해야 하는 압박을 받아 조정위원회가 교단 스태프나 선교 분야에 비독신 동성애자들도 취업할 수 있다는 조항을 배제한 조직가치관 성명을 채택했다. 이 움직임은 즉각 교단 내에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는데 특히 산하 신학계가 그랬다. 결국 베스털이 했던 대규모 SBC 이탈 엑소더스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과 10년 만에 CBF 정책에 중요한 변화가 예상되는 모멘텀이 축적돼 갔다. 리더십 상의 그런 변화는 반드시 재정 문제를 몰고 온다. 동성애를 눈감아주는 그 어떤 정책에도 분노하는 교회들이 지원을 끊어버리니까 결과는 치명적이다. 갈등은 주로 세대차의 것이었다. 2012년 CBF의 총회장 당선인은 비독신 LGBT 고용금지 정책을 삭제하자는 주문을 했다. 그러나 그런 변화는 재삼재사 미루어졌다. 그러던 판국에 '동성혼'이 합법화되어 역도덕혁명의 수문이 터졌다. CBF의 좀 더 보수적인 세력은 계속 버틸는지 모르지만 젊은 세대는 현재의 CBF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고 봤다. 신학교와 신대원 대다수는 이미 오래 전 LGBTQ 혁명에 참가했고, 그들의 졸업생들은 CBF도 여기 동조해야 한다는 식이다. 데이빗 거쉬 목사의 분석에 의하면 지난 25년간 CBF에서는 복음주의자 또는 중도보수파 침례교인이라고 할 만한 지도자와 사람들 수가 급감한 반면, 주류계 신교인들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훨씬 많아졌다. 그런가 하면 주로 텍사스에 연원을 둔 오리지널 중도보수파 사람들은 늙어가고 있다. 이제 CBF는 중도파와 실생활 진보주의자의 불편한 연맹이 된 셈이다. 후자는 더 젊고, 신규 침례교 신학교 출신들인 성직자가 대부분이다. CBF의 일부 교회들은 '친(親) LGBTQ 입장'을 굳혔고, 일부는 동성혼을 치르기도 하며, 일부는 'LGBTQ 사역자/목회자'로 공공연히 호칭하기도 한다. CBF는 지난 2016년 LGBTQ이슈에 대한 새 방향을 허용하는 '계몽 프로젝트'를 강력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 보고서가 바로 최근 발표됐으니, 도화선에 불이 붙은 셈이다. 그런데 '자율성 높이기와 친교의 반영'(HA&RF)이라는 주제의 이 보고서는 친 LGBTQ 측과 보수파 양쪽을 모두 격노케 했다. 제안 내용이 너무나 황당하고 불안정한 정책이었기 때문. 제안된 정책이 (공개적인) LGBT 사람들을 CBF 인력자원으로 쓴다는 것까진 좋았는데, 리더십이나 선교분야 할당엔 적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었다. 전자 부분은 보수파를, 후자 부분은 LGBT들의 심경을 긁어놓았다. 아울러 새 정책이 채택될 경우 이중 잣대를 낳게 된다. 하나는 CBF 유급진의 약 80%을 위한 것, 다른 하나는 감독 스태프와 일선 인력을 위한 것이기에. 이 이중성은 정의 자체가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한 구조 안에서 공존할 성격이었다. 이 보고서는 놀랄 만큼 솔직하게도, "침례교 안팎의 지구촌의 (CBF) 파트너 교단/단체들은 LGBT들의 현장고용 또는 안수를 지지하는 것을 결정적으로 거부해왔다."고 썼다. 바꿔 말하면, CBF가 그런 인력을 현지에 파견한다면 협력하지 않겠다는 게 국제 침례교회들의 입장인 셈. 보고서는 또 자신이 LGBT라고 밝힌 목회자들을 CBF 소속 교회가 청빙한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내분과 정책 불일치 현상을 겪는 CBF의 장기 생존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교단소속인 한 공개 레즈비언 목회자는 CBF가 "돈이 많은 스트레이트(즉 이성애자)의 견해와 생활이 나머지보다 더 가치있다는 식의" 그런 단층식 계급사회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사실 이런 패턴은 주류 진보계 개신교 전체에 걸쳐 같은 유형이다. 성도덕 혁명군단은 이제 교단 중도파의 입지를 점점 뺏고 죽어가게 압박을 가한다. CBF의 경우 그런 현상은 늦게 왔지만 그 끝은 뻔히 보인다. 이 모든 것은 성경의 진리성과 권위를 무시하거나 내버린 결과임에 틀림없다. CBF는 1991년 7월 9일, 성경 무오성을 거부하는 명약관화한 신학적 진술서가 포함된 대외성명서(ATP)를 밝혔다. 그 진술서는 "성경은 기독교적 가르침으로서 무오성을 선언한 적도 드러낸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하여 성경의 진리성과 신뢰성을 내버린 뒤의 신학 수정주의는 뻔할 뻔 자일 것이다. 이 보고서는 관련 성경주석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오는 6월 댈러스에서 치러질 CBF 총회는 어떤 의미에서 역사적인 모임이 될 것이다. 남침례교 등 복음주의 침례교단들은 '계몽 프로젝트'가 성경의 권위와 진리성을 무시하거나 포기한 결과가 어떤지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이 '계몽 프로젝트'는 작성자들조차 예상치 못한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진실로 '계몽적'이다. 그리고 바로 CBF 교단의 대표적인 명사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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