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치유!!! 신유!!!

[스크랩] 치유 설교에 대하여

하나님아들 2018. 2. 26. 13:09

치유 설교에 대하여

 

 

 

 

치유 설교에 대하여(1)

 

1. 낱말의 뜻

 

1). 구약

라파(레푸아, 리푸트, 마르페) - 건강, 치유하다, 건강하게 하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60회 이상 나오는 순수한 히브리어 어근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이 아비멜렉을 치유해 주는 기사가 나오는 창20:17에서 최초로 나온다. 이 어근은 또한 치료하는 인간, 즉 "의사"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창50:2). 뿐만 아니라, 열방들의 치유와 용서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된다(사19:22,57:18).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의 용례에서는 <라파>의 함축적인 의미들인 치유와 회복이라는 주제가 결합되어 있다.

많은 경우에 치유를 해주시거나 하나님의 개입에 의하지 않고는 치유될 수 없는 질병이나 파멸을 야기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2). 신약

데라페이아(데라퓨오, 데라폰) - 치유, 치료하다, 봉사하다, 종.

이 단어의 이미는 섬기다, 쓰임직하다, 병든 자를 돌보다, 취급하다, 치료하다 등으로 사용되었다. 신약에서 데라퓨오는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섬기다"를 뜻하지 않고 행17:25에서 단 한번 예배를 가르키는 데 사용되었다.

"치유하다"라는 용법이 훨씬 더 자주 사용되는데 이 치유는 단순한 의학적 처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께서 가져다 주시는 진정한 치유를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을 갖고 계시다(눅7:21). 치유는 주님의 사역에 있어서 복음 전파에 못지 않는 중요한 일부이다(막4:23). 예수께서 구원의 시대를 여시고 사람들의 병약함을 없이 하실 때 치유는 온전한 것이다(마8:17).

 

2. 성경에서의 건강과 치유

1). 구약에 있어서의 건강과 치유

구약의 말씀에서 건강은 하나님의 은사이며 물질적 번영과 함께 이스라엘의 충실한 신도들이 확고하게 기대했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질병에 걸리면 환자는 백성의 위대한 의사인 하나님을 우러러 치유와 회복을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 유배기 이후의 유대교에서는 인간의 도움에 의존하려는 자세를 부정하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인간이 병을 고치고 건강을 회복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대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아사와 같이 예외적인 인간만이 의사의 진찰을 받았다(대하16:12). 가끔 예언자들은 병든 자들에게 치료에 관해 충고했고, 종종 질병을 예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병은 영적 문제였으므로 종국적으로 치유는 개인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소생시키거나 다시 활력을 넣어야만 비로소 정당한 기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몇 가지 민간요법을 제외하고는 구약에는 질병에 대한 의학적 치료를 다룬 대목이 없다. 고대 히브리인들 사이에는 그와 같이 체계화된 치료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의 태도

예수께서 질병을 설명하려고 한 적은 없으나 개인 생활에 존재하는 병에 대한 주님의 자세는 구약의 일반적인 사상을 뛰어넘고 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인간을 온전하게 하고 구원하려는 아버지의 목적을 굳게 믿고 있었으며(요3:16, 10:10), 하나님이 내린 형벌 보다는 인간 내부의 불균형을 자아내는 악의 결과로 보았다. 주님은 개인을 육체와 영혼의 본질적인 결합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육체의 병든 자를 고치기 위해 정성을 쏟았으며, 동시에 고통당하는 자의 정신과 영혼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예수님의 치유 활동에는 전인격의 회복을 위한 심리적이면서 동시에 중대한 영적 배려가 깔려 있었다.

 

3). 사도들의 견해

마태(8:17)는 그리스도의 치유활동을 하나님께서 임명한 종의 활동에 관한 사53:4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으로 내다 보았다. 이 절의 히브리어 본문은 '질병'과 '고통'이라는 단순한 낱말을 사용하고 있어 병 고침을 바로 그 종의 역사로 돌리고 있다. 갈보리 산상의 속죄라는 각도에서 이사야의 종의 귀절을 전통적으로 해석한 내용대로라면 성육하신 주는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와 아울러 질병을 치유하신 것이다.

 

3. 성구

1) 하나님이 고치시는 일

①. 땅 - 대하7:14 ②. 백성 - 대하30:20 ③. 병 - 시41:3, 103:3

④. 상심한 자 - 시147:3 ⑤. 맞은 자리 - 사30:26 ⑥. 패역 - 렘3:22, 호14:4

⑦. 성 - 렘33:6 ⑧. 저는 다리 - 히12:13

 

2) 하나님의 고침을 받는 조건

①. 회개와 기도 - 대하7:14 ②. 기도 - 대하30:20, 시30:2, 사19:22

③.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 렘3:22 ④. 회개 - 렘35:15

 

3) 하나님이 고치시는 방법

①. 손으로 - 욥5:18 ②. 말씀으로 - 시107:20

 

4) 주께서 고치시는 일

①. 믿음이 상한 자 - 사61:6 ②. 모든 약한 것 - 마4:23 ③. 모든 병 - 마4:23

 

5) 우리가 고쳐야 할 일

①. 길과 행위 - 렘26:13, 35:15

 

치유 설교에 대한 강해 (2)

 

1. 치유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1). 제목과 본문 선택을 잘해야 한다.

치유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목과 본문 설정을 잘해야 한다. 치유 설교는 그 색깔이 아주 뚜렷한데, 설교를 많이 해 보지 아니한 사람은 그 구별을 잘못하는 경우가 있다. 제목과 본문을 성도들이 듣고 볼 때 에메 모호하게 하지 말고 확실하게 해서 이 설교가 처음부터 치유 설교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므로 설교를 듣는 처음부터 설교가 상한 자신의 심령을 치료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도록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처음부터 요절을 크게 말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제목을 함께 외치는 것으로 설교를 진행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즉 자기 문제의 해답을 기대할 수 있도록 강력한 기대를 우발시키므로 출발을 하게 하는 것이다.

반면에 제목 설교는 설교의 호기심에 의해 경청하도록 설교의 진행을 감추며 한 가닥씩 풀어 가는 것이 좋다.

 

2).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계속적으로 반복 강조해야 한다.

치유 설교는 그 전제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도와주신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복음 적인 사실을 듣는 성도들의 마음에 확실히 박혀 지도록 설교 내내 강조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그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는 순간에 그 설교를 듣는 성도들의 마음의 상처는 이미 치료되기 시작을 하는 것이며 확신되어 뿌리를 내리면 완치될 수 있다.

3). 믿음의 설교다.

치유 설교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은혜를 믿도록 하는 설교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언제나 변함이 없지만 그 사랑을 받고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시시 때때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들의 믿음에 따라 아무 일도 아닌 것들이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으며 큰 고민들이 가벼운 깃털과 같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문제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한다.

 

4). 주실 은혜를 강조한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강조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이 말씀의 의미를 확실히 알고 앞으로 주신 은혜를 강력히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을 말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점을 너무 강조하면 듣는 성도들이 부담을 느끼게 되고 다른 신앙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 조심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을 강조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몰염치한 성도들이 될 것이다.

 

5). 주신 은혜를 상기시킨다.

지금 받고 있는 은혜들을 상기시킨다. 자기 상처가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현재의 은혜를 까맣게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선 건강하여 교회에 와 설교를 들을 수 있다는 데서부터 시작을 하라. 받은 은혜를 강조함에 있어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듣는 일에는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행을---, 병에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 주신 은혜를 확신시켜 자기가 병들고 상처받은 줄로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스스로 병들어 있음을 깨닫게 하면 치유 설교는 대 성공을 한 것이며 그 성도는 이미 그 깨달음에서 상처가 나아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 성령 님의 도우심, 주님의 긍휼 하심을 강조해야 한다. 그 사랑과 긍휼 하심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 내게 주신 것임을 누차에 강조하여 믿음을 유발시키라. 아멘으로 화답하게 한다든지 박수를 치게 한다든지 다 같이 합창을 하게 한다면 효과가 더 있을 것이다. 찬송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6). 우리가 할 일은 없고 모든 은혜는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강조하라.

성도들이 교회 생활과 신앙 생활에 피곤을 느끼고 권태를 느끼는 것은 힘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오락을 할 때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지만 공부를 할 때는 지겨워하는 이유와 같다. 교회 생활이나 신앙 생활을 오락하듯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즐거움으로 이 일을 하게 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 생활이나 사회 생활, 가정 생활 등을 억지로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라. 억지로 한다는 것은 욕심이나, 불의, 자기 만족, 허영 등과 같이 바람직한 사고방식과 처신에서 생기는 것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순리를 따라 할 수 있도록 강조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모델이 된 치유 설교 가운데 언급되어 있다.

축복과 구원의 근거가 주님이심을 강조하라. 내가 내 신앙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순종하며 따라 가면 신앙 생활도 가정 생활도 아주 잘하게 될 것이다. 치유 설교는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힘을 준다.

 

2. 치유 설교가 교회에 성정에 미치는 영향.

몇 해전 '목회와 신학'라는 잡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설교를 듣고 교회를 나오는 사람이 38%라는 통계가 나왔다. 이것은 사람들이 교회를 선택하는데 설교가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설교가 좋은 설교며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인가?

 

첫째, 쉽게 해야 한다.

설교를 듣는 사람은 천태만상이다. 무식한 노인들로부터 박식한 박사들 이 있고 남녀 노소가 있으며 그들이 설교를 듣고 받고자 하는 은혜도 모두 다 다르다.

그러나 그 들이 설교에 대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알아듣기 쉬운 설교를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해야 한다. 아세아 연합 신학 대학의 「김 기홍」 교수는 설교학 강의에서 목회자가 설교를 할 때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수준을 초등 학교 3-4학년 정도로 생각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즉 설교하는 사람이 설교를 듣는 성도 누구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설교하라는 말이다. 심지어 김 교수는 설교를 한 후에 교회 안에 가장 무지한 할머니에게 ‘설교를 알아들었는가’를 묻고 ‘못 알아들었다’고 대답을 하면 ‘그 설교가 실패작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둘째, 각 개인의 생활에 관계 있는 설교를 해야 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신학 강의를 듣기 위해 교회를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활을 돕고 힘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설교를 들으려 나온다.

 

셋째, 치유적인 설교를 해야 한다.

한국의 개혁과 설교 연구 지라는 무크지가 설교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 발표한 일이 있다. 그 발표의 제목은 「10개 교회의 최근 10년간의 성장 곡선과 설교 내용」이다.

그들은 10개의 교회를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5개 교회는 년간 20%이상의 성장률을 보인 교회로서 3,000명 이상이 모인 교회를 대상으로 하고, 5개 교회는 1,000명 이하의 성도들이 모인 교회를 대상으로 10년간 10%의 성장률을 보인 교회를 선택했다. 각 교회는 교파를 초월하여 설교 제목, 내용, 주보, 통계, 관계 서적들을 중심해서 조사했다.

 

이 통계의 분석에서 대 교회며 성장이 빠른 교회일수록 치유적인 설교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 는 점이다. 치유적인 설교를 하는 교회는 성장을 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내용(특히 교리적인 설교― 교리적인 설교가 한국 교회의 성장을 둔화시킨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말씀의 정도를 걷는데 이상 기류가 형성되여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을 설교하고 있는 교회는 성장 속도가 느리거나 오히려 퇴조하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치유적 설교의 위험인 복음의 진수를 잃지 않는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면 치유적인 설교가 복음 전도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기쁨과 평안히 있어야 한다. 처음으로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평안히 있도록 설교를 해야 한다. 이하 생략 (본인의 목회학 박사 논문인 “교회 개척의 이론과 실제”중에서 발췌함)

3. 치유 설교의 병폐와 함정들

1). 치유 설교는 성도들을 교만하게 하고 자만하게 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을 강조하다 보니 사랑 받는 자의 교만이 생길 수가 있다.

 

2). 치유 설교는 설교자로 하여금 듣는 성도들에게 지나친(비 성서적인) 아첨을 하게 하는 유혹이 있다.

특히 예화나 설교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설교에 유입되는 경우에 생기는 문제다. ‘내 생각에는’하는 식의 생각을 발언하고 강조하지 말라. 그런 일들을 하나님께 망령된 일들이다. 근거 없고 꾸며낸 터부니 없는 예화도 마찬가지다.

 

3). 치유 설교는 성도들을 태만하게 한다.

태만한 성도들은 자기의 신앙 생활의 태만을 변명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하실 텐데 나는 할 일이 없다라고 변명하는 것이다.

 

4). 치유 설교는 성도의 의무를 태만하게 할 수 있다.

몸에 병이 있는 사람이 그 병으로 인하여 마땅히 해야할 일을 태만히 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타인의 도움을 바라는 것과 같은 영적 현상이 생긴다.

 

5). 치유 설교는 성도들을 어린아이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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