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답이다(딤후 3:16)
무엇?
이것은 완성되기 까지 약 1, 500년(약 B.C. 1400-A.D. 100)이 걸렸습니다. 40여명의 사람들이 동원되어 만들어졌습니다. 농부, 세관 공무원, 군대장관, 제사장, 왕, 어부, 이방 왕의 술 맡은 관원장등이 이것을 완성하는데 참여했습니다. 지금 이것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것이 됐습니다. 특급 호텔의 객실에 가면 이것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와 이슬람 국가들은 이것의 소지와 반포를 금지합니다. 소지하다가 발각되면 최고 사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무신론적인 왕들은 이것을 불태우고 땅에 묻고 칼로 베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어코 살아남아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됐습니다.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 제가 아무리 성경에 대해 찬사를 한다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성경은 위대하고 소중한 책입니다.
성경에 관한 명구
성경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많은 명구들이 있습니다.
성경 교육이 없는 대학교육 보다 대학 교육 없는 성경 교육이 낫다(윌리엄 리용 펠프스).
성경이 없이는 세상을 올바로 다스리기란 불가능하다(G. 워싱턴).
성경은 살아 있는 피조물이며, 대항하는 모든 것을 정복하는 힘을 갖고 있다(나폴레옹).
성경은 인류에게 허락하신 가장 귀한 선물이다. 구세주에게서 오는 모든 선한 것이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링컨).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우리는 성경에서 위로와 건설적인 충고를 찾을 수 있다(찰스 메이요 - 의사)
모든 문제의 해답? 그렇다면?
위대한 성경이 홀대받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팔리지만 별로 읽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고불변의 신앙의 기준이요 초석입니다. 성경은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일까요?
1. 성경은 구원의 답입니다.
무엇을 통해 구원을 얻었습니까? 성경 아닙니까? 무엇을 통해 구원받았음을 확신합니까? 성경 아닙니까? 성경에는 구원의 진리가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과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책
성경은 예수님의 자서전입니다. 어느 장을 펴도 예수님의 보혈이 발견됩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을 예언합니다. 신약은 오신 예수님을 기록합니다. 신구약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구원을 얻는 줄로 알고 상고하거니와 그 성경이 바로 나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라’(요 5:39). 그래서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당연히 성경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분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을 얻으려면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알려면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대한 무지는 그리스도에 대한 무지입니다.
복음
그래서 성경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증거해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또 요한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성경을 읽고 듣고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이 구원을 주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는 우리가 성경을 읽고 구원받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만일 내가 악마라면, 나의 최우선 공격 목표중 하나는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제임스 I. 패커).
웨슬레
존 웨슬레는 목사가 된 후에도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올드스게이트에서 열린 집회 중에서 로마서 서문을 읽는 소리를 듣게 됐습니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말씀이 성령을 통해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는 이 때 진정한 회심을 했습니다. 복음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을 가슴에 올려놓고
저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다음 기적적인 체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환상을 본 적도, 주님의 음성을 들은 적도, 병 고침도 없었습니다. 처음 한동안 답답하고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성경을 읽었습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읽었습니다. 줄을 치며 읽고 외우고 생각했습니다. 가슴에 성경을 올려놓고 성경의 하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자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고 난 다음 무릎꿇고 기도드렸습니다. 그 때 성령이 임하셔서 저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구원의 능력입니다.
영감받은 책
왜 성경이 구원의 능력입니까?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하나님의 감동’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까? 성령 아닙니까? 성령은 예수님을 알려 주시고 믿음을 주십니다. 성령님이 성경을 쓰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역사하셔서 진리를 이해시켜 주십니다. 이것을 성령의 ‘조명’이라고 합니다. 진실되게 성경을 읽는 사람은 성경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성경의 능력
1866년 토마스 선교사는 대동강변에서 성경 세 권을 조선인에게 던져주고 순교당했습니다. 그 때 토마스 선교사의 목을 친 사람이 박춘권입니다. 성경을 주워서 영문주사(營門主使) 박영식에게 가져단 준 소년이 최치량입니다. 박영식은 성경을 찢어서 벽에 도배를 했습니다. 그 집은 나중에 널다리 교회(장대현 교회 전신)가 되었으며, 박춘권은 한국 교회 최초의 장로가 되었고(1899), 최치량도 장로가 됐습니다. 그 후에 일어난 평양 대 부흥은 이 땅에 던져진 성경 사경회를 하다가 일어났습니다. 어떤 이는 성경을 비판하기 위해 창세기부터 읽다가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성경은 구원의 책입니다. 그곳에 영생수가 흐릅니다. 보혈의 샘이 있습니다. 성경을 존중하고 읽으십시오.
2. 성경은 경건 생활의 답입니다.
건강한 믿음 생활을 하려면 영적 영양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성경입니다.
신령한 젖
아이는 계속해서 엄마의 젖을 먹으며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이후에 믿음의 사람으로 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영적 영양이 계속 공급돼야 합니다. 영적인 젖, 무엇일까요? 베드로의 말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성경은 그냥 젖이 아니라 신령한 젖입니다. 영적인 젖, 영적 영양분 자체입니다. 또 성경은 순전한 젖입니다. 거짓이 없는 순수한 진리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시 19:8). 이것을 사모하랍니다. 어린아이가 엄마의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성경의 말씀을 사모하고 이해하고 배우고 듣고 암송하고 적용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십니까?
의식화 작업
저는 이것을 ‘성경적인 의식화 작업’이라고 합니다. 70, 80년대 유행했던 대학가의 의식화 작업 아시지 않습니까? 의식화 동아리에 들어가면 막스와 레닌과 북한의 주체사상을 배웁니다. 전문서적을 학습하고, 통째로 외웁니다. 먹든지 자든지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대로 행동합니다. 나중에는 골수분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데모를 하고 보도블럭을 깨서 던집니다. 의식화된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의 후배 중에는 이 때 의식화가 되어서 아직도 그 운동을 하는 자가 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우리들이 이들보다 더 철저하게 성경적인 의식화가 되어 있습니까? 정말로 성경을 내 일생의 교본으로 확신합니까? 성경의 모든 말씀에 절대적으로 ‘아멘’ 하십니까? 성경에 나의 전부를 걸 수 있습니까?
내 혈관 속에 흐르는 것?
코카콜라의 중역들은 이런 자부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피 속에는 코카콜라가 흐른다.’ 다저스의 명감독이었던 라소다는 ‘나의 심장은 푸르다’고 했습니다. 다저스의 유니폼이 푸른색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철저히 자기 회사와 하나가 됐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알되 골똘히 알고, 실천하되 철저히 실천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 골수까지 녹아들어서 성경적인 사상이 우리 속에 뿌리박고 있는 유교적인 사상을 깨버려야 합니다. 은연중에 베여있는 불교적인 사고를 부숴야 합니다.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생각, 언어, 행동, 돈, 사업 등 모든 것이 성경적인 원리에 입각해야 합니다. 뼈 속까지 변화돼야 합니다. 한 마디로 가치관의 혁명입니다. 살아도 예수를 위해 살고 죽어도 예수를 위해 죽어야 합니다. 모든 삶의 기독교화! 내 혈관 속에 성경이 흐른다! 내 생각을 성경적으로 사로잡아 주님께 복종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삶입니다.
4가지 영양소
성경은 영적 생활을 위해 4가지 영양분을 제공합니다.
교훈
성경은 우리를 교훈합니다.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교훈을 마치 교장 선생님의 훈시처럼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똑 같은 말, 잔소리, 고리타분한 말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의 교훈을 경청하는 자는 지혜와 생명을 얻습니다.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시 25:5).
책망
성경은 우리의 잘못에 대해 준열하게 책망합니다. 교만과 숨겨진 악의를 비수같이 찌릅니다. 죄인들이 성경의 책망 앞에 고꾸라져서 새 사람이 됐습니다. 어거스틴이 그랬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를 저버리고 난봉꾼으로 살았던 청년, 하나님을 알기는 했지만 결단하지 못하고 세속적으로 살면서 방황했던 그에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바르게 함
성경은 비뚤어진 인생을 바로 잡아 줍니다. 못된 성품, 무엇을 통해 바르게 하겠습니까?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품과 행동과 생각이 교정됩니다. 성경은 최고의 교도관입니다. 성경은 지식 증가가 아니라 삶의 변화를 위해 주어셨습니다.
죄가 나를 이 책에서 멀어지게 하든지 아니면 이 책이 나를 죄에게서 멀어지게 할 것 이다(드와이트 L.무디).
의로 교육함
기술을 가르치는 기술학교는 많습니다. 지식을 가르치는 학원은 널렸습니다. 의를 가르치는 곳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불의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알려 주는 것은 오직 성경뿐입니다. 성경을 배우십시오. 의의 사람이 됩니다.
변화를 모색하라
성경이 영적 생활의 보고이며, 새사람으로 변화시켜 주는 해답이라면 왜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을까요? 왜 그토록 성경을 오래 대하면서도 변화되지 않을까요?
성경관과 성경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진정으로 하나님의 권위 있는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최고의 교양서적으로, 양서쯤으로 치부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모든 문제의 최고 재판관이신 하나님이 내 삶을 향해 내리신 최고 평결로 여기지 않습니다. 도리어 성경을 내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나 내 야욕의 허가증으로 이용합니다. 성경이 수금장부입니까?
만약 우리가 성경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진리의 계시라고 확실히 믿는다면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이 천근, 만근의 무게로 내 삶을 강타하는 핵폭탄이 될 것입니다. 진리의 위력 앞에 내 삶의 지리멸렬한 지반이 송두리째 무너져 지형변경, 형질 변경될 것입니다. 말씀이 내 창자를 쥐어틀고, 심령의 창틀을 열어젖히고 내 의식과 무의식의 가장 깊은 곳을 급습해서 숨겨진 가면을 갈갈이 찢어 버릴 것입니다. 성경은 관절과 골수를 찌르는 양날 선 검처럼 내게 아프게 다가와야 하는 것이며, 천둥같이 잠자는 믿음을 일깨워야 합니다. 나의 감성만 살짝 살짝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온갖 교묘한 말로 죄를 합리화하는 나의 방어막을 무참히 짓밟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처음에는 큰 상처와 번민을 우리에게 주지만 결국에는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례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 방망이라고 했으며 바울은 양날 선 검이라고 했습니다. 그 불에 한 번 타보셨습니까? 그 방망이에 맞아서 휘청거려 보셨습니까? 그 칼에 베여서 뜨거운 피를 흘려 보셨습니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주 내가 성경을 훓고 지나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철저하게 성경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느냐 하는 것이다(집시 스미스).
3. 성경은 미래의 삶의 해답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성경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성경을 대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됩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는 자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등과 빛
성경은 우리 앞날의 소망과 지침이 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 119:105).
왜 발에는 등입니까? ‘발’은 한 스텝, 두 스텝, 이렇게 짧은 인생의 기간을 말합니다. 단기 계획이라고 말해도 괜찮겠지요? 이럴 때에는 등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이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길, 즉 먼 기간에는 빛이 필요합니다. 넓게 비추고 오래가는 빛 말입니다. 장기 계획에는 더 많은 빛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에도 성경이 빛 역할을 합니다. 성경은 인생의 중 단기, 장기 계획 모두를 인도하는 지침입니다. 계획을 세울 때 반드시 성경의 가르침을 받고 자문을 구하십시오. 길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경 속에는 인간이 직면하는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담겨 있다. 성경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머리를 바꾸어 주며, 영혼을 새롭게 한다(로널드 레이건).
신발 위의 성경
어떤 사람이 항상 구두 위에 성경을 올려놓았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외출하려고 구두를 신기전에 성경을 꼭 읽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구두를 신지 않겠다! 영의 식탁에 나가기 전에 육의 식탁에 나가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성경이 아니면 아무데도 가지 않고, 성경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하는 삶, 바로 신앙인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한 말씀 맞아요?
제가 아는 선교사님이 사역하던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났던 실화. 그분은 현지에서 복음을 전하며 성경을 현지어로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가복음 10장을 현지 그리스도인 청년 5명과 같이 번역하게 됐습니다. 한참 번역하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에 이르렀습니다.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11절).
선교사님이 이 구절을 불러 주었습니다. 그러면 청년들은 자기 말로 번역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멍하니 있기만 했습니다. 한 참 후에 “선교사님. 그 말씀 다시 한 번 불러 주세요.” 선교사님이 또 읽었습니다. 그랬더니 또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또 읽었습니다. “선교사님, 그 말씀, 예수님이 하신 말씀 맞습니까?” “맞아.” 그러자 이들이 소리를 치면서 분노해서 자신들의 조상들과 부모들을 성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조상들은 일부다처제 관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전의 선교사를 통해서 복음을 접한 지 오래됐지만 아직 일부다처제를 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족장은 5명의 아내를 두고 있었습니다. 청년들은 성경을 통해서 조상들의 행위가 명백한 죄임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주일이 됐습니다. 예배를 끝내고 난 다음, 마을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청년들이 발언을 요청하고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온 일부다처제는 잘못입니다.” 어른들이 아연 실색했겠지요? 젊은이들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것은 분명한 죄악입니다. 우리는 이 죄악을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난 줄 아십니까? 족장을 비롯한 마을 노인들이 합의해서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이미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마을에서 젊은이들이 중혼을 할 경우 출회한다.”
성경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나의 버려야 할 죄는 무엇이며, 또 취해할 선함은 무엇입니까? 이미 엎질러진 것은 어쩔 수 없다해도 지금과 미래는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당신은 새로워질 수 있고, 더욱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의해' 살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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