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선교사! 목회자란!

[스크랩] 목회자가목회자에게

하나님아들 2018. 1. 18. 23:07

목회자가목회자에게


차 례

머리말

1. 사역지는 어디나 거룩한 땅입니다

2. 대정원사 예수님과 동역하십시오

3. 심기운 곳에서 꽃을 피우십시오

4. 꿈으로 활력을 얻으십시오

5. 다시 소명과 사랑에 빠지십시오

6. 목회자만의 특권을 누리십시오

7. 사역을 위한 청사진을 가지십시오

8. 영적 거목으로 자라십시오

9.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십시오

10. 책 잡힐 것이 없는 삶을 사십시오


<저자소개>

H. B. 런던(London)과 닐 와이즈먼(Neil B. Wiseman)

H. B. 런던은 포커스 온 더 패밀리의 전도 및 목회자 상담 사역부 부회장이며, 동시에 목회자 상담소를 세워 각처의 목회자들을 위한 상담과 조언을 하고 있는 목회자를 위한 목회자이다. 그는 현재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31년동안 현직 목회를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닐 와이즈먼은 나자린 바이블 칼리지 목회 개발학 교수로, 재충전을 위해 오는 목회자들에게 설교와 목회를 강의하고 있다. 그는 소교회연구소 소장으로 섬기고 있고, 또 교회성장, 전도, 제자화에 관한 계간지 성장(GROW)의 편집을 맡고 있다. 그는 지금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20년동안 목회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머리말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격려의 말씀

시대가 험할수록 큰 인물의 영웅적 행위가 요청됩니다. 이 책은 그런 이유에서 썼습니다. 목회자들에게 자신감을 되찾아 주고, 사역의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켜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목회자들을 사회와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로 믿습니다. 목회자 각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고 있는 일을 높이 평가합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몇 년 안 남은 20세기와 21세기에 대해 사회가 잔뜩 품고 있는 영적 소망을 목회자들이 일부분 걸머지고 있다는 점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목회자든 하나님이 그를 심어 놓으신 거룩한 땅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목회자 여러분, 여러분을 여러 가지 이유에서 큰 인물입니다. 우선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여러분의 의욕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영적 군대의 규모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충성, 희생, 인내, 용기, 노고, 자비가 세상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위기는 목회자들의 이 크고 위대함을 희생적 사역에, 즉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건실한 교회를 세우고, 사회를 구속하는 사역에 쏟아 부을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직면한 도전과 문제는 교회와 문화라는 두 방향에 퍼져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선악에 관련된 추악한 내전이 벌어져 선과 의에 대한 가치관들을 갈갈이 찢어 놓았습니다. 그 결과 폭력과 소외라는 역기능이 우리 가정, 학교, 사회와 국가를 더렵혀 왔습니다. 그것을 변화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도무지 과소 평가할 수는 없으나, 개혁과 부흥은 와야 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돕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목회자들에게 모든 상황에 널려 있는 미증유의 기회들을 바라보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 활력을 가지고 다시 사역에 임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유용한 길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이 책은 효과적인 사역을 목적으로 새롭고 더 큰 개척을 시작한 목회자들을 돕기 위해 아주 기초적인 수준으로 돌아간 지침서입니다. 모든 사역자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특히 교인수가 100명 남짓하고 제직 수가 얼마 안 되는 교회의 사역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5

1. 사역지는 어디나 거룩한 땅입니다

여러분이 선 곳은 거룩한 땅입니다

젊은 목회자 부부 여덟 쌍이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이 묵고 있는 로키 산맥 휴양지를 소용돌이치며 휩쓰는 심한 눈보라 때문에 아무도 오후 운동을 하러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대화가 뜸해지자 현대판 베드로라고 할 만큼 성격이 급한 테드가 불쑥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게임 하나 합시다. 각자가 목회지에서 자기를 가장 괴롭히는 요소를 하나씩 말하는 겁니다." 다들 왜 흥을 깨느냐는 눈치였습니다. 휴양지에 왔으면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은 잠시나마 잊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테드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고, 결국 그가 자진해서 먼저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내게 가장 큰 문제는요"하고 말문을 연 그는 이렇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교회에서 거의 누구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평신도 지도자예요. 거만하고 이기적이고 접근하기 어렵고 지배적인 인물이지요. 누구든 그와 엇갈리기만 하면 사막의 폭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협박하는 방식으로 내키는 대로 행동합니다." 여러 사람이 고개를 끄덕여 그게 테드만의 경험이 아님을 인정했습니다.

사라는 조금 주저하더니 남편이 설교자의 이미지를 조금도 버리지 않는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그이는 설교자처럼 걷고 말하고 생각해요. 심지어 집에 있을 때조차 식사 기도 때는 스테인드 글라스식의 음성을 사용하지요. 목사와의 로맨스는 그리 흥이 나지 않아요." 여러 사람이 잔뜩 호기심 어린 웃음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 내 일은 끝이 없어요"라고 맥스는 좌절 섞인 푸념을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혼잡한 로스앤젤레스의 고속도로 같아서 한산한 날이 없어요. 설교를 하고 나면 또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집에서는 언제 퇴근하느냐는 전화가 옵니다. 꺼야 할 급한 불이 또 생깁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어요." 맥스는 말을 이었습니다. 댄이 말을 이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매일 쪼들리는 생활비 때문에 압박을 받습니다. 우리가 일년에 받는 사례는 고작 2천 달러뿐이라서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꾸려가지 못하는데도 어느 한 교인도 우리의 살림 문제를 이해해 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평신도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실 겁니다'하고 불합리한 말을 해요. 그 소리를 들으면 '하나님은 오직 평신도 지도자들을 통해서 목사의 사례금을 올려 주십니다' 하고 외치고 싶어요. 하늘에서 달러가 떨어지는 걸 난 본 적이 없어요."

서로 앞을 다투어 게임에 참여하면서 일종의 고통 분담 요법 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집단적인 자기 연민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했을 무렵, 데이비드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제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힘겨워요. 교인들은 타산적이고, 많은 것을 요구하고, 냉담하고, 과민하구요. 사임하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들고, 하나님께 호소도 자주 해요. 하나님께서 저를 그곳에 보내셨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를 그곳에 묶어두고 계십니다. 그곳에서 제가 그리스도를 드높이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그만두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곁에는 좋은 교인 몇 분이 있어요. 그들은 제 아내와 저를 돌아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도저히 떠날 수 없습니다. 마치 제가 거룩한 땅에 서 있는 것 같아서 말이에요."

사라가 말했습니다. "오늘 토론은 우리의 처지를 새롭게 조명하고 우리의 처지가 거룩한 땅이라는 음성을 듣게 하는군요." 그 뒤 두 시간이나 대화가 오가는 동안 여덟 부부 가운데 일곱 부부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현재의 사역지 곧 거룩한 땅으로 인도하셨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리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자기들의 사역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곳에서 능력을 입혀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간직했습니다.

모든 사역지가 다 거룩한 땅입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목회지가 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 그곳에 초자연적인 일을 이루고 싶어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황이 다 특별합니다. 모든 곳에 목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왕비 에스더처럼 여러분도 이때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이런 모든 요인들이 목회자에게 사역의 절박함을 일깨워 줍니다. 모세는 평생을 걸쳐 하나님의 임재가 사역을 모험으로 바꿔 놓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성경 주해서 메시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일깨워 줍니다. "너희가 친밀하고 잘 짜여진 관계로 나와 함께하고 나도 너희와 함께하면 틀림없이 풍성한 추수를 하게 될 것이다." 얼마나 큰 약속입니까? 얼마나 큰 가능성입니까?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을 얼마나 크게 변화시킬 능력입니까? 여러분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행동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권능을 베푸사 현재 여러분이 맡은 임지를 거룩한 땅으로 바꾸어 주고 싶어하십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서 초자연적인 일들을 이루시는 땅으로 말입니다.

모든 임무에는 일곱 가지 자원이 따라붙습니다

일곱 가지 자원은 예배와 삶을 망라한 모든 임무를 위해 쓸 수 있습니다.

자원 1 : 모든 지교회는 독특성을 지닙니다.

같은 식구라도 각기 달리 생겼듯이 어느 교회든 그 독특성을 십분 이용하는 게 성공적인 목회를 해나가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인입니다.

자원 2 : 모든 지교회는 목회자의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한 교회에서 목회한다는 건 사업 확장보다 부부간의 사랑에 더 가깝습니다. 생산적인 목회자들은 일하는 습관이 직업인이나 회사 경영자와 비슷할 수가 있지만, 반드시 따뜻하고 친절하고 용납하는 사랑의 심정을 지녀야 합니다.

자원 3 ; 하나님은 초자연적 능력을 입혀 주십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아무리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손을 들고 말 정도로 크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중대한 위기 국면 뿐 아니라 일상적인 목회 상황에도 효력을 발휘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자원 4 : 모든 교회는 성경적 설교를 필요로 합니다.

성경에 굳건히 터를 둔 설교는 모든 회중, 모든 설교자가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성경적 설교는 설교자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꾸준히 닮아가도록 만듭니다.

자원 5 : 모든 목회자는 독특한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목회자에게 구체적인 임무를 맡기시기 위해 그를 준비시키시는 과정을 보고서 놀랄 때가 많습니다. 자신이 지닌 더욱 귀한 은사들을 갈고 닦으라는 부르심을 받기보다 단순한 은사들을 그냥 사용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할 때는 문제 앞에서 좌절하게 됩니다. 단순한 은사와 귀한 은사가 모두 가치 있고 필요합니다.

자원 6 : 모든 상황에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원 7 : 모든 교회는 사람들에게 줄 것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분명한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회는 풍성한 목회를 통해 교회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에게 줄 것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귐일 수도 있고 회복일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작은 교회는 줄 게 없다고 믿도록 길들여져 왔습니다. 큰 게 최고라는 사고 방식 때문에 교회가 참교회일 때는 그 규모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강한 도구라는 사실을 희석시켜 왔습니다.

절실한 것 : 현대판 모세

이상적인 조건이 만족스런 목회를 이루어 내는 게 아닙니다. 진정한 보람은 주 예수님과 관계를 친밀히 발전시키는 데서 나옵니다. 따라서 어느 상황에서든 목회자는 "편의냐 필요냐"를 자문해야 합니다. 이상적인 조건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쉬운 목회지를 찾고 있습니까? 아니면 지금 이 과제를 그 동안 내가 꿈꿔 온 기회로 만들도록 능력을 입혀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고 있습니까? 중요한 문제는 여러분이 유용성, 편의, 풍부한 결실, 또는 만족을 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의 임무에 기회와 만족이 일치합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결실이 가장 풍부한 곳이 힘들고 벅찬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가 됐든 중요한 건 여러분이 행복하게 될까 하는게 아니라 상황을 바꿔 놓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광야의 모세에게서 배우는 교훈

오늘날 어떤 목회지들은 출애굽기 3장에 기록된 모세의 광야 시절처럼 황량하게 보입니다. 모세가 세상 명예와는 멀리 동떨어진 시시한 곳에서 늘상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오셨습니다. 불붙은 떨기나무를 제외하고는 상황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다는 자각이 모든 것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슨 행동을

하시지 않은 채 모세에게 자기 백성을 향한 영혼의 짐을 지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가 그 문제에 관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알려고 발버둥이쳤습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처럼 모세도 자기 백성에 대해 짐을 졌지만 그들을 도울 방법에 대해서는 막막했습니다. 만약 모세가 모든 유대 백성과 가축들을 이동시킬 전략을 브리핑해 보라는 요구를 받았다면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쓰기로 작정하셨고,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습니다. 목회자가 자신과 자신의 역량과 영적 성숙도와 하나님의 인도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데 따라 구체적인 상황들이 결정됩니다. 목회자들은 복음의 엄청난 에너지를 손에 들고 가슴에 품고 갑니다. 그것은 목회자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가장 절박하게 부닥쳐 오는 도전들에 맞서 싸우도록 할 만한 초자연적인 권능입니다. 이 권능이 아주 힘겨운 목회지에서도 영적인 승리를 거둘수 있게 합니다. 모세는 오늘날 목회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본보기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보내셨다는 자각 때문에 평생 충성했습니다. 모세에게는 하나님께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게 만족, 지위, 안전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모세는 판에 박힌 듯한 생활을 접어 두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거룩한 땅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잔뜩 호기심에 찬 그는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하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게 그의 생활방식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한 태도에 대해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권능을 입혀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러십니다. 또한 자신의 한계 저 너머를 바라 본 것이 오늘날 목회자들이 모세의 삶에서 간취할 수 있는 중요한 점입니다. 스스로 있는 자로부터 큰 모험과 엄청난 성취가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곳으로 보내심을 받은 뒤, 모세는 자신의 상황을 예전과 같은 시각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우리의 상황에서 바라보시는 가능성을 인식한 뒤에는 예전과 같은 시각으로 현 상황을 볼 수 없습니다. 목회자는 거룩한 대의에 참여하여 하나님과 함께 멍에를 멤으로써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강력한 의의 도구가 됩니다. 목회자들은 하나님이 새로운 영적 돌파구나 분명한 대안을 주시기 전에는 맡은 임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사역의 기반을 든든히 닦아 놓기 전에는 섬기는 곳의 열성적인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회중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식구처럼 사랑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목회자가 사역지를 고향만큼 사랑하는 법을 터득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목회자에게 회중을 위해 살고 죽을 각오를 하라고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청사진은 때로 우리가 감당하기에 너무 크고 복잡하게 보일 수 있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서 자기의 목적을 이룰 계획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으로는 많은 사역이 교회 밖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도시의 거리들, 피폐해 가는 농촌 마을들, 세련된 문화 중심지들과 무질서하게 얽혀 있는 근교 도시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메마른 영적 광야들이 복음의 씨가 풍성한 열매를 맺고 예수께서 대정원사가 되시는 우거진 정원으로 변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 오간 대화를 가만히 읽어 보면 자기 중심적인 모든 합리화에 이의를 갖게 됩니다. 출애굽기 3장과 4장에서 배우는 교훈들에 다시 한 번 귀기울여 보십시오.

교훈 1 : 아무도 의기 소침하거나 "왜 하필이면 저를?" 하고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대답하십니다.

교훈 2 : 다음과 같은 말로 하소연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하나님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큰 확신을 주어 모세를 격려하십니다. "나는 네게 한두 가지 기적을 일으킬 권세를 주어 그들의 이목을 사로잡게 할 생각이다."

교훈 3 :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부적합한 점들을 내세우거나 자신을 과소 평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모세의 자기 합리화에 지치신 하나님은 명령과 약속으로 대답하십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교훈 4 : 하나님께 다른 사람을 보내시라고 제안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나님은 한 가지 약속을 하심으로 대답하십니다. "너를 도울 사람을 보내리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자산이 장애보다 월등히 크므로 이제 우리 시선을 재조율합니다. 90년대 나머지 기간과 새로운 세기는 복음에 대한 두려운 저항과 아울러 복음으로 인한 엄청난 생산의 시대가 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민첩하게 일하고 조건을 달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로 사역에 임한다면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극대화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지속적으로 확신할 것을 요구합니다. 복음이야말로 사회에 부닥쳐 있는 도덕적 혼동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라는 확신을 가지라고 강권합니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인격, 영적 완전, 하나님 나라 사역을, 다시 한 번 부럽고 인기 있는 것으로 만들 때가 왔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이니라" 요15:16

2 대정원사 예수님과 동역하십시오

대정원사는 여러분의 사역지에 대해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곳에 가서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으로 거룩한 땅 사역을 위한 과제를 설정하십니다. 이 과제에 담긴 모험은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비추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살펴보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몇 년 전 저자이자 강사인 밥 벤슨은 켄터키에서 열린 수련회에서 "예수께서 우리를 들판뿐 아니라 옥토로도 생각하시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의 논지는 목회자든 평신도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이런저런 방해를 받게 마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히 들어야 하는데 뿌리 없는 종교 열정, 공포스런 박해, 좌절에 빠뜨리는 근심, 이생의 염려, 재리의 유혹, 또는 목회자들에게는 재난이 없는 데서 생기는 유혹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신자들뿐 아니라 사역자들도 우리 주님이 베푸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오는 옥토와 같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들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부는 비옥한 반면에 나머지는 메마르고, 돌밭이고, 단단하게 다져져 있거나 가시 덤불에 덮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굉장한 씨를 들고 있습니다. 추수의 법칙은 심은 대로 거둔게 된다고 약속합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의 씨앗이 재생산해 낼 수 있는 것에 새로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복음이라는 좋은 소식을 꾸준히 심으십시오. 목회에서 참고 기다리는 것은 아주 힘겨운 일이 될 수 있지만, 복음을 심고 거두는 데는 무궁한 인내가 필요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누구나 여러 해 동안 지체하다가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을 한 명쯤은 알고 있습니다. 악천우를 지내더라도 추수 때가 되면 구속받은 백성과 새로워진 교회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새 땅을 개간할 때입니다. 어떤 냉소자의 비평은 아주 정곡을 찌릅니다. "미래학자들은 지식이 5년마다 변한다고 말하지만, 교회는 40년에 걸쳐 스케줄을 변경하는 문제를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표결에 부쳐 부결시킵니다." 물론 상황을 과장한 말이긴 하지만, 실제로 교회는 변화를 거부하는 것으로 또는 변화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슬프게도 교회가 심지어 신중이라는 미명하게 변화를 거부할 때는 황금과 같은 기회들을 많이 놓치게 됩니다. 우리 문화에 불어닥친 급격한 변화 때문에 혼동에 빠져 있다 보면 초대교회에 관한 성경 기록이 기독교 메시지를 새로운 지역, 민족, 인종, 문화에 전하는 혁신적인 전략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기가 쉽습니다. 초대교회의 전략이 바로 우리의 전략입니다.

거룩한 땅을 경작하는 방법

첫째, 혁신에 문을 열어 놓읍시다. 변화는 늘 있기 마련인데 왜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를 버리고 변화를 이용하지 않으십니까? 사회의 동향을 관찰하고 이용하여 새로운 목회 방식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바라보는 방식과 그들이 교회의 사역에 대해 나타내는 반응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둘째, 만사가 다 형통할 수만은 없다는 점을 인정하십시오. 교회에 약점들이 있고 사역에 실패가 있음도 인정하는 게 부흥을 향해 한 걸음 성큼 내딛는 것입니다. 교회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다는 점을 인정합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다들 교회를 부흥하고 초점을 다시 조율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런 쪽으로 무슨일이 일어나야만 한다는 느낌이 목회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습니다. 셋째, 초자연적 연결 고리를 회복하십시오. 판에 박힌 듯이 목회를 하다 보면 목회의 중심에 하나님의 자원들에 닿아 있는 초자연적 연결 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기가 쉽습니다. 대다수 목회자들이 하나님께 능력을 받지 않고도 설교하고 상담하고 심방하고 위로하고 기금을 모으고 인도할 수 있지만, 이런 일은 하나님께 도움을 받는다면 누구라도 더욱 잘할 수 있습니다. 넷째, 도덕 각성에 힘쓰십시오. 이러한 재각성이 일어나려면 죄악된 관습을 비판하는 용감한 지도자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극우적인 고집 불통이나 시대 착오적 청교도의 유물들이라는 낙인이 찍힐 각오를 가지고라도 교인들과 시민들에게 믿음으로 도덕적 당위와 모험을 감내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목회자가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 무의미를 말끔히 씻어내십시오. 창조주께서는 인간 영혼에 의미 있는 삶을 살려는 욕구를 심어 놓으셨습니다. 누구나 자기 인생을 중요하게 꾸려가고 싶어합니다. 누구나 생계를 유지할 뿐 아니라 보람 있는 생활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본연의 목적을 좀더 분명하게 다시 붙잡을 때 마치 쇠가 자석에 끌리듯 허다한 사람들이 교회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개인들에게 삶의 의미를 제시해야 하는 중차대한 사명에 관해서 훨씬 더 구체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여섯째, 여러분의 목회를 "분갈이" 하십시오. 목회자에게 분갈이의 가능성은 무궁 무진합니다. 자신의 설교 능력이나 상담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헬라어를 다시 한 번 공부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인간 관계나 창조적 작문에 관한 강의를 청강할 수 있습니다. 매월 하루를 정해 기도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더 큰 열정과 깨달음을 가지고 사역을 해낼 수 있도록 현 상태에 좀더 성장을 위한 여유를 낼 수 있습니다. 일곱째, 문화적인 위협을 뿌리치십시오. 세속주의, 세련, 안전은 막다른 길입니다. 마치 이 세가지가 인생의 가치 있는 목표인 것처럼 사회의 많은 부분들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목회자들조차 때로 사회의 가치관에 의해서 위협감을 느낍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우리는 그런 세속적 가치 체계에 갇힌 사람들에게 누구보다 복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역을 위한 미래를 창조하십시오. 조지 갤럽은 미래를 만드는 과정을 이렇게 처방합니다. "사람들의 놀라운 영적 체험을 듣고 그들로 하여금 깨닫고 그 체험에 기초하여 세워 가도록 도우십시오. 어떻게 하면 믿음을 발전시키고 더욱 효과적으로 삶에 적용하며 지도자로서 더욱 잘 훈련을 받을 수 있는지 가르치십시오. 사람들을 믿음의 공동체에 들어가게 할 뿐 아니라 기존 교인들을 뒷받침하기도 하는 구도 역할을 하는 소그룹 구성원들을 격려하십시오. 사랑의 심정을 품고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마음을 일으키십시오. 영적 자양과 신앙 교육을 베풀 중요 대상을 설정하십시오."

멋진 열매를 맺으십시오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는 하나님이 도우시겠다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말씀을 생각하고서 매순간 힘을 얻으십시오. 성경 위인들이 거둔 승리를 여러분 자신의 승리에 대한 약속으로 여기십시오.

*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습니다.

* 요셉은 유혹하는 여인을 뿌리쳤습니다.

* 세례 요한은 자신의 영예를 예수께 돌렸습니다.

* 바울은 감옥에 갇혔을 때 한밤중에 찬송을 불러 곤경을 극복했습니다.

*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잘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3 심기운 곳에서 꽃을 피우십시오

기회를 십분 활용하십시오

낯익은 목회지에서 새로운 꽃을 피워 내려면 기회를 면밀히 검토해 가면서 기존의 목회 활동을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처한 대부분의 상황은 아무도 겉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막대한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도에 힘쓰는 것이 행정상의 일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 목회를 더 빨리 성장케 하며, 건강한 결혼 생활을 위해 교육을 하는 것이 대개는 이혼자를 대상으로 자립 상담을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역이 활짝 꽃피고 좋은 열매를 맺고 튼튼한 뿌리를 맺기 바라십니다. 자기 백성이 모든 곳에서 살찌고 사랑받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모든 목회자가 다 똑같이 보이거나 똑같은 비율로 자라거나 똑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바라시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여러분이 있는 곳에 심어두신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에서 가능성을 보십시오

어느 교회가 새 목회자를 구하는 광고를 냈는데, 거기서 그 교회가 묘사한 내용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의 표면 밑에 깔린 잠재력을 드러내 줄 숙련된 석공을 찾습니다. 이 장래의 보석은 펜실베이니아 주 중남부… 교회에 오시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지런한 손과 예리한 눈, 그리고 놀라운 결과를 내는 데 가세할 의지가 있는 분이라면 다음 주소로 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모든 교회가 그 잠재력을 드러내는 데 가세할 숙련된 석공을 기다리는,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일 수 있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여러분의 다이아몬드를 다시 한 번 세심히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는 영원한 교회에 속한 살아 있는 세포입니다. 목회의 가능성들은 무한하고 영원합니다. 그 가능성들을 뚜렷이 보려면 "하나님, 당신의 추수밭 가운데 이 부분에서 무엇을 이루시기를 바라시나이까?"하고 자주 물어 보아야 합니다.

목회자가 매번의 목회지를 더 나은 곳으로 영전하기 위한 발판으로 여길 때는 기회가 보이지 않는 현상이 반드시 심화됩니다. 그런 태도는 매번의 목회지를 일시적인 곳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목회를 제한되고 질식당하고 예속당하도록 만듭니다. 그가 미처 모르는 동안 그가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하는 기회들은 그가 있는 곳에 이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좋은 것을 기다리느라 허비하는 시간의 비용은 엄청나게 클 수 있습니다. 이런 태도를 갖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를 위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덧없이 흘러가 버립니다. 우리가 치유할 수 있었던 문제 가정들이 우리가 손 놓고 있는 동안 이혼 법정으로 갑니다. 우리가 구주께로 인도할 수 있었던 무고한 어린이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듣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 갑니다. 교인들은 영양 실조에 걸립니다. 우리의 사역 열정은 식습니다. 그러나 목회의 전제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역으로 부르신다는 건 하나님이 목회자를 친히 구속하고자 하시는 비참한 상황과 친히 구원하고자 하시는 사람들에게 보내신다는 뜻이 아닙니까? 목회란 하나님이 자격이 없는 우리를 지옥인 이웃집으로 보내사 그곳을 좀더 천국답게 만드는 게 아닙니까? 하나님은 그곳에 누군가를 화해의 사절로 두셔야 합니다. 쉬운 곳을 갈망하는 목회자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관해 들어 본 적이 없는 곳으로 가기보다 이미 복음이 들어가 뿌리를 내린 곳에 가기를 바라는 선교사와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에게 배울수 있는 두가지 관점을 생각해 볼까 합니다. 예수님은 두가지 관점에서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하나는 더러운 발을 씻기 위해 수건을 사용하신 것과, 다른 하나는 십자가에서 더러움을 씻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쉬운 곳을 원해도 하나님은 대개 우리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급료가 낮고 사택이 비좁은 척박한 곳에 우리를 필요로 하실 수 있습니다. 아마 빈민굴이 된 도심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도덕이 문란한 곳에 우리를 보내실 것입니다. 관계가 단절되어 갈갈이 찢긴 교회로 보내실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사납고 탐욕스럽고 남을 착취하는 사람들에게로 가서 섬기기를 바라실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예수님의 관점에서 가능성을 평가하기 시작할 때 회중은 의외로 가능성을 지닙니다. 그러면 교회와 공동체는 영적 각성을 위한 준비가 되는 셈입니다. 물론 믿기지 않을 만큼 힘겨운 사역이 목회자로 하여금 절대적으로 하나님만 의존하게 만듭니다. 왜 두려워하고 왜 위협을 당합니까? 우리는 전능자와 능력을 받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느 목회자든 완전한 목회지를 꿈꿀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다음 번에는 환상적인 상황을 맞아 깜짝 놀라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목회지는 시골교회나 도시 빌딩 교회, 아니면 신도시 개척 교회나 100년 이상 된 교회, 아니면 가정 성경공부 모임이나 500명 또는 5,000명이 모이는 교회일 것입니다. 비결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심어 놓으신 곳에서 꽃을 피움으로써 여러분의 목회지를 이상적인 곳으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가능성에 대한 시야를 훨씬 넓혀서 어느 젊은 목회자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지혜를 내놓습니다. "나는 목회자가 영적 성공을 경험하기 전에는 자리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견해는 사역지마다 지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게하고, 다른 사역지로 이동하는 데 따르는 인간적 좌절과 경제적 비용을 막아 줍니다. 목회를 활기차게 해나가는 데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요인은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려는 의지입니다. 캐나다의 어느 교회 지도자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어느 교회든 자신의 주도하에 그곳에서 영적으로 중요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목회자를 모실 권리가 있습니다. 만약 목회자가 자기 사역지가 지닌 가능성들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잠재력을 찾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효과적인 사역이라는 가지를 자라나게 하는 나무 줄기는 단순한 전략이 아니라 목회자의 지도력입니다.

지금 계신 곳에서 성취를 찾으십시오

처음 목회자가 되려 했을 때 품어던 심정에 다시 불을 붙이십시오. 그동안 이뤄 놓은 일을 보고 기쁨을 얻으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 사역 구석구석에 흘러들어서 얻게 된 승리를 축하하십시오. 일에 너무 집착하는 성향을 잘 다스려서 큰 영혼으로 성장할 시간을 내십시오. 목회에 관한 지난 시대의 책들과 새 책들을 읽어 자신의 목회 사역을 위한 수준점을 확립하십시오. 배울만한 성공 모델들을 찾으십시오. 목회 생활을 유연하게 만드는 이런 일을 규칙적으로 하면 영적인 침체와 직업적인 수동성 그리고 피상적인 성공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성취는 내면의 작업입니다. 목회자들은 자기 사역에서 높은 수준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회중이나 공동체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성취는 목회가 무엇인지 알고 열정적이고도 창의적으로 해나가는 데서 뿌리가 박힙니다. 목회가 힘차고 만족스러우면 다른 누구보다도 본인이 가장 잘 압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지를 압니다. 이것이 목회에서 의미를 측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불행하게도 목회자가 다음과 같이 말해 가지고는 한줌의 성취감도 얻지 못합니다. "만족스러운 목회를 해야 하는 줄은 알지만 분기점도 없고 행운도 없고 선천적 능력도 없습니다." 그보다는 의지만 있으면 훨씬 더 큰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편이 낫습니다.

한가지 경고를 새겨 들어야 합니다.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자기들의 과거에서는 하나님의 채워 주심을 쉽게 구분하지만 현실에서는 갈등합니다. 왜 하나님이 여러분의 현재 상황에서 역사하시는 손길을 주의해서 관찰하지 않고서 과거를 보는 정상적인 시력을 자꾸 높이려고 노력합니까? 왜 현실의 괴로운 상황을 근사한 성취로 바꿔 놓지 못합니까? 화려하게 꽃피우는 일은 우리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까?

자신의 중요성을 이해하십시오

하나님은 어느 때보다도 지금 여러분을 더욱 필요로 하십니다. 인류는 헌신적인 목회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의 사역이라는 소금이 없다면 사회가 썩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빛이 없다면 어둠이 지금보다 훨씬 짙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번에 펴낸 위기에 처한 목회자들에서 논했듯이, 무단 이탈하는 목회자들이 늘어나고 누구나 교구 목회가 과거보다 힘들어졌음을 인정합니다. 목회를 힘들게 만드는 원인들에는 교인들의 이동, 교인들의 산만한 분위기, 도덕적 절대 기준의 쇠퇴와 각계에서 쏟아지는 비현실적인 기대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쇠퇴는 목회를 힘겹게 만들지만, 여러분 같은 목회자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현실이 우리를 혼동시켜도 우리는 사회의 영혼에 믿음과 의와 진리를 다시 각인시킬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일 수가 있습니다. 고통하는 세계가 얼마나 우리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지 인식해야 합니다. 국내와 세계를 휩쓸고 있는 도덕 부패와 영적 붕괴에 대처할 수 있는 비결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인정합시다. 영혼이 않고 있는 중병이 무력한 개인, 가정, 교회, 사회에서 나타납니다. 사이비 목회자들이 대중에게 염증을 느끼게 합니다. 문화가 도덕적 혼돈에 서 있습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대중 매체들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신종 타락상을 보도합니다. 뉴스 해설자들은 최신 공학을 사용하여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멸망이 막 모퉁잇길을 돌아오고 있다고 예고합니다. 설상 가상으로 많은 지역의 교회들은 현대 문화의 병든 모습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원인은 고사하고 증상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있거나 아주 미미한 반대의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우리를 엄몰하고 있는 부도덕한 시궁창을 말끔히 제거하려면 기적적인 영적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각성 운동이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초자연적인 능력에 힘입어 다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싸움을 너무 일찍 포기하는 목회자들이나, 직업적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두려운 대적을 처음 보자마자 돌아서서 도망치는 사람들은 이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웃에게 사죄와 은혜와 화해에 관한 하나님의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주가 전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표류하는 사회를 건지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입니다.

변화를 창조적으로 이용합시다

홍수 때 흘러가는 성난 강물처럼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옛 가설들은 도전을 받고 폐기됩니다. 모든 게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서 엄청난 속도로 흘러내려 갑니다. 그리고 모든 지교회는 이 대혼돈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지도자들의 교체, 교인들의 이동, 경제적인 격변과 교리의 희석화가 교회의 변화를 가중시킵니다. 아무리 변화를 거부하는 교회라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듯이 동일하게 남지 않습니다.

목회자들은 때로 회중 전체가 변화를 단단히 배척한다는 잘못된 지레 짐작으로 목회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회중이 언제나 변화를 배척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들은 보수적이기로 유명해도 더 이상 변화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변화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고, 많은 교인들이 변화를 두려워하여 거부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러나 변화를 진보로 여겨 환영할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문제는 교회가 변할 것인가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변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쟁점은 이런 것입니다. 무슨 목적으로 변하는가? 무엇에 대해서 변하는가? 변화가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것인가?

변화를 창조적으로 이용하기를 바라는 목회자라면 순수한 인격을 지니고 창조적인 상상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목회자가 무엇을 생각하든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큰 경고가 있습니다. 새로운 변화는 필요한 변화와 똑같지 않습니다. 변화를 위한 변화는 때로 교회를 파멸시킵니다. 만약 교회가 꽃을 피우려면 현재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목회를 하기 위해서, 그리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서 변화를 창조적으로 이용해야 합니다.

성경적 사명에 초점을 모읍시다

불확실한 목표는 언제나 훼방을 놓습니다. 목표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그만큼 뿌리가 뒤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교회 본연의 목표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런 우선적인 목표들을 회중에게 자주 전달해야 합니다. 이런 이해가 없을 경우 교회는 사소한 일에 빠져들거나 비생산적인 활동에 과도히 손을 뻗칠 수가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교회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모르고 있을때는 내적으로 평범하거나 무력케 하는 무감각에 빠져듭니다. 목회자들은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목회자가 얼마나 드문가를 안다는 건 두려운 일일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이 거룩한 것이고 윤리적인 것인지, 무엇이 우선적인 것인지를 판단하지 못할 때 교인들의 삶과 사회에서 해내야 할 독특한 역할을 상실합니다. 사명을 명쾌히 이해하려면 목회자는 여러 가지 무거운 질문들을 하고 대답해야 합니다. 현대 목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어떤 원칙들이 세대가 변해도 지속됩니까? 누가 목표를 정합니까?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데 어떤 표준을 사용할 것입니까? 이렇게 초점을 명쾌히 밝히는 과정은 평신도 지도자들, 교인들, 목회자가 함께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을 하면서 유념해야 할 것은 회중은 구호가 들리지 않으면 모이는 법이 없다느 사실입니다.

현실을 충분히 선용하십시오

마르틴 루터는 현실의 도전을 붙잡았을 때 당시의 세계를 변화시켰고, 역사에 고귀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존 녹스, 존 웨슬리, 드와이트 무디, 빌리 그레이엄, 그리고 그 밖의 위대한 전도자들이 같은 일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의 용사들은 과거를 사용하여 현실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각 세대가 어떻게 복음을 현실의 가능성들에 과감하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전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늘이라고 하는 날에 복음을 현실로 만들기를 바라십니다. 목회자들은 때로 어떤 특별한 일이 자기들에게 일어나기를 기다리면서 세월을 허송합니다. 그 결과 현실에 충분히 발을 딛고서 살지 못하며, 새로운 기교가 미래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간과합니다. 현재의 기회를 낭비하는 또 하나의 사례는 목회자가 목회 능력을 배양하는 데보다 교회 정치에 더 많은 시간과 생각을 할애할 때 발생합니다.

옛날 강의 노트 어디에선가 저자 미상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인용해 둔 적이 있습니다. "어제는 효력을 상실한 수표이고, 내일은 어음이며, 오늘은 손에 쥔 현금입니다. 그것을 지혜롭게 사용하십시오." 이것은 목회자에게 아주 좋은 조언입니다. 지금이 좌절이나 무력감의 안개를 헤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호기입니다. 기다리는 일을 중단하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심어 두신 곳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하십시오. 목회에서는 두 번째나 세 번째나 네 번째 시작이 첫 번째 시작보다 더욱 기운나게 하고 더욱 충족감을 주고 더욱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부이지만, 오늘로도 충분합니다.

좌절감에 도전하십시오

어떤 목회도 온통 좌절감으로만 이루어지거나 온통 만족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느 목회자든 그 둘을 골고루 만나게 됩니다. 구약성경에서 요셉은 형들의 행동이 옳았다고 결코 인정하지 않았으나, 그가 좌절감을 대할 때 지닌 정신 자세는 그의 인생의 질과 활동 결과, 특히 애굽에서 지내던 시절의 결과를 엄청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아주 힘겨운 시절에도 유익을 끼치고 평정을 잃지 않은 결과로 마침내 벅찬 승리가 찾아온 것입니다.

좌절감을 분명히 하고 직면하노라면 견디기 힘든 상황과 남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좌절감에 대한 느낌과 좌절감을 갖게 된 데 자신이 행한 역할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좌절감이 일으키는 결과들을 무디게 하는 방법을 배우시지 않겠습니까? 돈 걱정, 신경 쇠약, 가족 또는 교인들에 대한 걱정에 도전하십시오. 허구에서 사실을 추려 내십시오. 그러면 영적인 건강과 정서적 안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가치 위계를 존중하고 좌절감을 극복하고 살 때 그런 성취의 가능성은 항상 여러분 편에 있습니다. 도전을 받을 때마다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승리를 쟁취할 기회로 바라보십시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는 로마서 8장 31절의 진리가 변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과찬을 선용하십시오

교인들이 우리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말을 들을 때는 위축되기 쉽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실제보다 설교를 더 잘한다고 믿습니다. 실제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한다고 믿습니다. 실제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한다고 믿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훌륭한 목회자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능력에 힘입어 교인들이 여러분에 대해 믿는 바대로 한 번 되어 보십시오. 교회사에서 대단히 특출한 몇몇 목회자들은 회중의 사랑을 받아 위대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가 회중의 평가대로 되려고 노력하면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하나님이 큰 능력을 베푸시는 일을 경험할 기회가 생깁니다. 목회를 훌륭하게 하는 데 이런 칭찬의 말이 얼마나 큰 가능성을 던져 줍니까! 칭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형제 자매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섬기고 우리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도록 돕습니다. 교인들이 여러분에게 하는 칭찬을 행위로 옮김으로써 목회를 활짝 꽃피우지 않으시겠습니까? 과찬을 선용하면 유익을 얻게 됩니다.

이제는 한 교회에 단번에 활력을 불어넣을 때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러분의 교회입니다. 이제는 한 목회자를 단번에 정밀검사할 때입니다. 그는 다름 아닌 여러분입니다. 이제는 무슨 대가를 치르든 여러분의 목회가 하나님의 임재로 활활 타올라 상처받고 당혹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여러분의 교회로 건져 올리고 단번에 변화시킬 때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심어 놓으신 곳에서 활짝 피어나십시오.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2:17

4 꿈으로 활력을 얻으십시오

불가능한 꿈을 꾸십시오

꿈은 모험을 위한 원료입니다. 사람을 살리고 산을 옮기는 강력한 원료입니다. 은퇴한 어느 지혜롭고 나이 지긋한 설교자가 목회를 갓 시작한 두 젊은이와 함께 동네를 거닐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회자는 꿈꾼 것 이상을 얻지 못하는 법이지." 그건 어느 세대든 목회의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무릇 목회자는 복음과 복음이 회중에게 끼치는 초자연적 영향에 초점을 맞춘 꿈을 꾸어야 합니다. 슬프게도 현실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주어야 할 게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은 또한 얼마나 절망적인 상태에 있습니까? 예수님과 비교할 때 세상이라는 경기장에 선 그 누구도 도덕적으로 뒤틀린 세상에 치유책을 내놓지 못합니다. 참기독교만 우리 도시들의 영혼들을 구속할 수 있고, 만연한 개인주의를 심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회중의 눈길을 하나님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어하시는 사명에 돌릴 수 있습니다. 꿈을 꾸고 섬기고 영적 변화의 대리자들이 되기에 얼마나 적절한 때입니까? 꿈은 성취의 씨앗입니다.

꿈꾸는 이들이 돌아오게 합시다

교회에는 꿈꾸는 자들이 많아야 합니다. 사역 현장에서 꿈꾸는 자는 하나님이 모든 교회에게 되기를 바라시는 것을 가장 우선적으로 꿈꾸어야 합니다. 모든 사역이 다 누군가의 꿈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꿈을 주시는 하나님은 새로 꿈꾸는 것이 의심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정복하는 첫걸음임을 여러분에게 깨우쳐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새 활력을 얻고 위대한 꿈을 꾸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꿈을 여러분에게 주기를 바라십니다. 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상상하고 소망하고 예상하고 기대하고 꿈을 꿀 수 있는 능력을 새롭게 불어넣어 주실 수 있습니다. 영혼에 새로운 꿈이 타오르게 하십시오. 사역을 향한 우리의 꿈은 믿음과 소망이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소망은 우리 인생의 방향을 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꿈을 꿀 만한 이유를 우리가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것보다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소명, 대의, 헌신, 회중, 세계 그 모두가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꿈꾸게 하는 이런 자산들에서 설혹 활력을 얻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가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는 성경이 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는 불의 앞에서 침묵하고 오히려 묵종함으로써 생긴 두려운 비상 사태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막의 폭풍 작전과 보스니아 분쟁처럼 뚜렷한 전선을 긋기가 어렵습니다. 적군의 무기는 신체를 죽이는 않아도 목회자들을 정서적으로나 영적으로 불구자로 만들어 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결과 목회자의 꿈은 이지러지고 꺼집니다. 위기는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목회의 모래 수렁이 생존이라는 형태로 그들을 사로잡습니다. 그들은 믿음, 품위, 생계 수단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이런 필사적인 노력을 하면 할수록 자존심, 아내와의 관계, 아버지로서의 지위, 그리고 교회와 사회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손상을 줍니다. 또 다른 목회자들은 높은 소망을 품었다가도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대가를 지불할 의사가 없는 교인들 때문에 좌절을 맛봅니다.

무슨 일이 속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독교가 지닌 막대한 내면의 에너지를 불합리한 이유들 때문에 그냥 낭비해 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고 싶어하시는 일에 대해 새로운 비전을 가집시다. 진지해집시다. 필사적으로 노력합시다. 갈급해집시다.

다시 새로운 꿈을 꿉시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목회자들에게 우리 주님은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는 생기를 불어넣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약속은 지극히 절망적인 상황에도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느끼는 꿈꾸는 자들에게 다시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이름없는 전초지에서 변변치 않은 자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 말씀은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여러해 목회를 하는 동안 내게는 그만두고 싶었던 월요일이 많았습니다. 목사로서 주일을 훌륭하게 지키려고 숱한 계획을 세웠으나 나쁜 일들이 재를 뿌려 놓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교회의 중요한 사람이 나를 실망시켰고, 기후가 나빴고, 교인들이 많이 빠졌고, 새 신자가 둘째 주일에 출석하지 않았고, 주일학교 교사 세 명이 아파서 출석하지 못하겠다고 전화를 했고,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았고, 오르간 반주자가 그만두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 시절에 나는 경륜이 깊은 조언자에게 내 기분에 관해서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이 내 목회를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나는 그게 하나님께서 목사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만드시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의 약속은 초자연적으로 풍성하게 이루어집니다. 그 "모든 것"이라는 말은 너무 좋아 사실이 아닐 것 같습니다. 또 어떤 연륜 깊은 설교자가 동료들에게 "그 말씀은 너무 좋아 사실이 아닐 수 없다네"라고 말한 것과도 같습니다.

꿈을 꾸었다가 좌절에 빠진 분들이여, 정신을 차리십시오. 온전하게 예수님만 바라보십시오. 예수니믄 여러분에게 오래된 아주 중요한 말씀을 들려 주고 싶어하십니다. 마음을 모아서 주께서 하시는 두 가지 단언을 들으십시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들으셨습니까?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패배를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성령으로 능력을 입혀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에 울려퍼질 때 소망은 되살아납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그게 무슨 소리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큰 꿈이 발휘하는 기적의 능력

목회자가 꿈을 되찾을 때 모두에게 득이 됩니다. 그에게 득이되고 가정에, 교회에 득이 됩니다. 주변 세계에 득이 됩니다. "모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잠자는 여러분의 소망을 흔들어 깨우십시오.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기회들에 붙은 먼지를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는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말끔히 털어내십시오. 그런 다음 여러분의 목회지를 하나님께서 보시는 방식으로 보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곳에 두신 이유는 그곳에서 중대한 일을 일으키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계신 목회지에서는 하나님이 들어 쓰실 수 있는 사람이 오로지 여러분뿐이며,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이 쓰시기로 계획하신 사람이 여러분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게 됩니다.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써서 당신의 꿈을 이루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믿는 건 아주 진지하고 온 영혼을 기울여야 가능한 일입니다. 나는 이름없이 하나님 편에서 꿈을 꾼 몇 분을 소개해드립니다.

20대 중반의나이에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창고에서 빈민들을 대상으로 교회를 시작한 내 친구 목회자가 생각납니다. 로스앤젤레스 선교회로부터 영적 사회적 거처를 제공받다가 그 선교회를 나온 뒤 출석할 교회가 없던 사람들을 그는 섬기고 있습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그 교회와 목사의 가정은 매주 심각한 재정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부활한 생명들이 하나님 나라의 미래에 발휘할 능력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필리핀계 중년 여성을 알고 있습니다. 이 여성은 필리핀에서 이주한 중국계 이민들을 대상으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매주일 베이 에어리어에 있는 어느 교회로부터 친교실을 빌어 쓰고 있습니다. 이 여성은 하나님이 자기를 그곳에 두셨고 그 교회의 미래가 안전하다고 믿습니다. 그 꿈은 그녀의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께 나오는 사람들에 의해서 성취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 중부 은퇴자 촌에 있는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한 목회자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목회자로서의 다른 모든 의무를 수행하면서, 아울러 적극적인 개인 전도를 통해서 5년만에 15명의 기혼 남성들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최근에 더욱 큰 교회로부터 초빙을 받았으나 그 회심자들을 도무지 버려 두고 갈 수 없어서 거절했습니다. 그 회심자들이 각기 가정을 신앙으로 세워 감에 따라 그의 꿈은 실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모든 교회에 대해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 계획을 성취할 사람을 발견하시면 말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이든 생명력 넘치는 목회를 이끄는 주님이십니다. 죽은 교회들을 살려 내는 게 그분의 전공입니다. 죽어 가는 교인들을 소생시키고 싶어하십니다. 목회자들에게 새로운 원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어하십니다. 목회자의 아내와 자녀들이 다시금 웃고 노래할 많은 이유들을 갖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교회의 주께서는 자기 교회를 위해서 여러분에게 주셨던 꿈을 현실로 이루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서 계십니다. 도전은 여러분의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이 갖고 계신 꿈을 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꿈꾸는 자였던 바울에게서 소망을 얻으십시오.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서 어떻게 꿈을 실현시켜 주셨는가를 회상하고는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찬송을 드렸습니다. 그리스토퍼 콜롬부스는 꿈을 꾸었고 대륙을 발견했습니다. 베토벤은 숲과 골짜기를 거닐면서 자기 교향곡들이 어떻게 울려퍼질지를 꿈꾸었습니다. 그리고서 작곡을 한 다음에는 꿈꾼 것과 똑같은 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목회자들은 콜롬부스와 베토벤에게서 사역에 생길 수 있는 일들을 예측하는 것에 관한 교훈을 배웁니다. 비슷한 진보를 공학, 운송, 운동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어떤이는 변경 지역들을 시험합니다. 기록이 깨집니다. 새로운 기법이 시도됩니다. 옛 방법은 폐기됩니다. 사람들은 재훈련을 받고 사기가 올라갑니다. 왜 케케묵은 옛날 목회 방법을 시험하지 않으십니까? 왜 오늘날 세계에 효과적으로 충격을 줄 혁신적인 방법으로 목회를 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영원한 새로우심을 강조하십시오. 처음 나온 사람들의 눈을 통해서 여러분의 교회를 보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교회 안팍의 충격적인 꿈 파괴자들을 거부하십시오.

세속적인 꿈 파괴자들. 살인, 강간, 폭력 범죄, 낙태, 이혼, 혼외 출산, 외설스런 텔레비전 프로그램, 저속, 냉담, 냉소주의, 천박하고 진부한 행위, 물질주의, 세속적 인본주의, 불경건한 이교, 직업, 연금, 노후, 가정, 건강문제 등 그 길이가 끔찍하게도 깁니다.

교회의 꿈 파괴자들. 교묘한 꿈 파괴자들은 교회 담장 안에 은밀히 잠적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종교적으로 들리는 한 괜찮다고 믿는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의 독선 때문에 꿈이 쉽게 파괴됩니다.

현실에 만족하는 꿈 파괴자들. 많은 목회자들이 자기 힘, 경험, 역량, 지혜에 기댐으로써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성취하려는 꿈을 훼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충족적인 제자들에게 복을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모든 노력은 모질고 좌절감만 일으키는 투쟁이 되고 맙니다. 히브리서 11:6 말씀이 사실로 입증될 때가 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어떻게 하면 다시 꿈을 꿀 수 있습니까? 언제쯤 자신의 결핍을 깨닫고 하나님께로부터 더 많은 열정과 능력과 활력을 얻어야 한다고 인정하게 될까요? 꿈을 따라갑시다. 부활의 생명과 인격의 변화와 거룩한 생활로 돌아갑시다. 비록 그것이 많은 곳에서 현대인들에게 비현실적인 것으로 판단 받더라도 말입니다. 역사에는 하나님이 자기들을 시켜서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변화시키리라는 꿈을 꾸고 실재로 하나님의 인도로 꿈을 실현시키신 많은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와 우리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꿈을 다시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은 상상과 소망과 더불어 시작합니다. 그 꿈은 사람의 발상과 구체적인 환경에서 믿음에 의해 연료를 공급받습니다. 그 꿈은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유지됩니다. 고통을 넘어서서 꿈을 꿉시다. 어떤 고통과 번민이 여러분을 괴롭힐 때는 부활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을 처단하려고 계략을 꾸미던 자들이 최악의 일을 저질렀을 때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꿈을 위한 든든한 기초입니다. 우리에게는 절대 신실한, 믿을 만한 분이 있습니다. 원수의 간계에 개의치 말고 꿈꾸십시오. 사탄은 여러분을 가능성보다 문제 자체에 몰두하도록 만들 때 목회가 무너진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여러분의 목회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 놓고 그것이 발생한다고 믿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런 건 발생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소망이 없다고 믿게 만들고 싶어합니다. 교회의 연약함에 구애받지 말고 꿈을 꾸십시오. 교회는 연약하지만 죽지는 않습니다. 교회사에서 이 시대만큼 교회가 수많은 죄에 한꺼번에 포위되고 허다한 제자들이 연약과 좌절에 빠진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가 다시 강건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려면 수많은 강단에서 우리 시대를 위한 성경의 의미를 외치는 꿈꾸는 자들과 선지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생명은 있으나 부흥이 절실합니다. 지치고 병들고 빈혈이 심하고 사방을 포위하고 있는 허다한 악들 때문에 마음이 산란합니다. 이렇게 약해질대로 약해졌으나 아직은 날고 있으며, 세상의 마지막 생존 기회를 걸머지고 있습니다. 교회에 사명을 불어넣기 위한 공식은 "꿈+열정+우선 순위=목적 성취" 입니다.

꿈꾸는 유력한 이들에게서 배우는 꿈꾸는 법

모세는 민족 해방을 꿈꾸었습니다. 만약 모세가 하나님의 꿈을 따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용기를 얻고 싶으면 성경 기사를 다시 읽어 보십시오. 양치기 모세에게 하나님이 주신 꿈을 생각하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모세가 사막 저 끝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의 삶에 전격적을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장애물들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면서 모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되어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모세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자기 백성을 이끌었습니다. 바로가 뒤에서 추격해 왔습니다. 그 장애는 오늘날 여느 목회자가 가장 곤란한 날에 만나는 장애보다 컸습니다. 만약 모세가 먼저 손익 계산을 철저히 해보았더라면 그 꿈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약속의 땅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꿈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 꿈을 꾼 적이 없는 정탐꾼들이 장차 살 땅을 정탐하고 오라는 명령을 받고 나갔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견지하기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데 능했습니다. 그리고 정탐꾼들이 꿈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여생을 좌절 속에서 보냈던 일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 사건은 오늘날의 꿈꾸는 자들이 현실을 진단하는 정탐꾼들을 선정할 때 아주 주의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또한 꿈이 희미하게 되거나 죽도록 내버려 둘 때 우리도 똑같은 잘못을 범하는 셈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힘을 공급받지 못한 채 마지못해 교회를 운영해 가는 시늉만 하게 되며, 목회가 왜 그리 지루한지 답답해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핑계와 편견과 두려움에 스스로 결박당한 채 약속의 땅을 곁에 두고서 번민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꿈꾸는 자들은 꿈이 좌절될 경우 우리가 모르는 사람에게 항구적이고도 부정적인 결과들을 입히게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유념해야 합니다.

테레사 수녀는 이 세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꿈의 영웅입니다. 미미하고 겸손한 수녀였던 테레사는 교회를 위한 무의미한 활동에 회의를 느끼고서 인도 캘커타로 가 그곳에서 집 없고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긍지와 용기를 주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여건은 결코 좋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가던 초기 단계에 그녀는 가난한 지역에서 작은 건물을 얻어 빈민들에게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첫 환자는 쥐와 구더기에게 반쯤 먹힌 갈 곳 없는 할머니였습니다. 이 불쌍한 인간을 자신의 작은 요양원으로 데리고 들어와 사랑을 베풀고 목욕을 시키고 죽을 때까지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 뒤로 수천명의 사람들이 자기가 보살핌과 사랑을 받은 줄을 알고서 죽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자기 사역을 설명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은 자기가 사랑을 받는 줄을 모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왜소한 수녀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꿈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꿈이 비참한 데서 그녀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줄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미미한 어느 한 여성이 기독교의 자선을 적극적이고도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온 세상에 도전을 주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그녀의 사역이 비록 주변적이기는 하나 그 영향은 엄청나게 큰 유익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사역이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각각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꿈을 믿도록 만든 큰 동인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의 회중이 스스로 꿈을 꿀 수 있도록 회중을 위해 꿈을 꾸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교회로 하여금 꿈을 꾸고 실행하도록 만들라고 세우신 꿈꾸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교회를 위한 기적과 같은 가능성들로 여러분을 격려해 주고 싶어하십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손 쓸 수 없는 제약들을 초자연적인 기회로 삼으려는 꿈을 여러분이 꾸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들이 하나님의 전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히려 손 쓸 수 없는 처지가 하나님께서 그 나라의 전진을 위해 웅대한 꿈을 꾸라고 하시는 결정적인 시점일 때가 많습니다. 최악의 난관들을 기적과도 같은 꿈의 실현으로 바꾸어 놓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모세가 그랬고, 테레사 수녀가 그랬습니다. 모세의 동족은 상황을 바꿔 놓을 용감하고 헌신적인 지도자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들은 꿈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데다 꿈을 이루려는 의지도 박약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일관성 있게 행동했고 동족의 불신앙과 우매무지함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꿈은 자신이 인도로 가서 그곳에서 죽어가는 빈민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섬기지를 원치 않는 그 사람들에게 테레사를 배정해 주셨습니다. 죽을 병에 걸려 극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대다수 기독교 사역자들은 완전히 의욕을 잃었을 것입니다. 자기 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도 할 수 없는 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누가 사역 대상으로 삼으려 하겠습니까? 그러나 테레사 수녀는 그렇게 했습니다.

다른 많은 꿈꾸는 자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큰일을 하고 있지만, 여러분은 그들에 관해 별로 듣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론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외딴곳에서 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께는 아주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대단히 중요한 방식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는 예수님의 약속을 의지합니다.

꿈을 버리지 마십시오. 청소년 야영 집회 때 아직도 불리는 오래된 찬송가가 있는데, 그 가사는 놀라우리만큼 정확합니다. "하나님은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전문가입니다. 다른 어떤 능력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하십니다." 꿈을 푯대로 삼아 목회를 해 나가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발생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분발하십시오. 열정과 꿈을 한데 묶어 새로운 목회 방법을 발견하십시오.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민수기 27 : 16,17

5 다시 소명과 사랑에 빠지십시오

옛 열정에 다시 불을 지피십시오

"농구로서는 더 이상 보여 줄 게 없다"고 마이클 조단은 30살의 나이에 농구계 은퇴 사실을 알리는 기자 회견장에서 말했습니다. "꿈의 팀"이라 불리우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미국 농구 대표팀의 일원이었던 조단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9년 동안 이 환상 특급 열차를 탔습니다. 이제는 다른 것을 탈 때가 되었습니다" 조단의 은퇴는 힘을 잃은 목회자들과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지교회 목회자로서는 열정을 잃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끊임없이 불을 붙여 주지 않을 경우 목회 열정은 식거나 아예 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농구에 대한 의욕과는 달리 목회에 대한 열정은 새로운 도전, 좋은 기회, 하나님이 함께 일하신다는 신선한 깨달음 앞에서 다시 불붙을 수 있습니다. 농구 스타가 보수나 인기에 관심을 두는 것과는 판이하게, 목회자는 진리, 운명, 소망, 믿음 같은 궁극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다룹니다.

어느 신문 만평은 큰 앙고라 고양이를 재판장으로 묘사했습니다. 피고인석에 앉아 벌벌 떨고 있는 새끼 고양이에게 재판장은 "너는 나쁜 고양이였으므로 아홉 번의 삶을 고양이로 살아야 하는 벌을 내린다."는 언도를 내렸습니다. 목회는 아홉 평생을 계속 살아야 하는 종신형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명을 하나님이 목회자를 가련하게 만들고, 가난하게 만들고, 결혼 생활과 가정 생활과 일터에서 웃음을 앗아가도록 만들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일종의 심판으로 생각합니다. 당치 않은 생각입니다. 왜 목회를 흥미 진진한 삶의 방식 이하로 봐야 합니까? 왜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명예롭게 목회 사역에서 손을 뗄수 있도록 만들어 줄 기회를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까? 목회자 본인들이 목회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게 아닙니까?

소명 의식이 약하면 사역의 계절이 언제든간에 불만족스러운 목회라는 건조한 사막에 이르게 됩니다. 반대로 소명을 건강하게 하루하루 확인하면 목회의 모든 국면에 힘을 얻게 됩니다. 소명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활력을 주며 그를 영적으로 살아 있게 만듭니다. 목회의 의미를 예리하게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를 인생의 주경기장, 즉 사람들이 불확실과 걱정뿐 아니라 출생, 인생, 죽음, 질병, 단절된 관계, 건강, 소망 같은 궁극적인 문제들과 씨름을 하는 곳으로 데려다 놓습니다. 소명은 우리가 결혼식에서, 병원 대기실에서,무덤에서, 세례식과 성찬식에서, 그리고 착한 사람들이 품음직한 "지금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라는 삶을 구체화하는 질문들 앞에서 예수님을 대표할, 평생 유효한 면허증입니다. 목회 소명은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에 혁명을 일으키려는 강한 의지를 주는 동시에 목회에 강한 추진력을 줍니다. 하나님이 불어 넣으시는 이 에너지는 우리를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데려가고, 그들이 우리 없이는 살 수 없게 될 때까지 그들 곁에 머물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그것은 튼튼하고 오래가는 구두 가죽으로 무장한 복음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먼저 내리시는 목회 소명은 당사자의 능력이나 기술이나 전문 지식이 관계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소명은 믿음, 헌신, 순종과 관계됩니다. 소명은 대부분 하나님이 우리의 정체성과 긍지에 영향력을 미치시는 존재의 핵심에서 시작하여 세상의 빈궁이나 옆집 또는 건너 마을의 상처 입은 사람에게로 옮겨 갑니다. 소명은 삶의 의미를 밝혀 주고 삶에 목적을 주는 경향을 띠며, 초자연과 지상의 영역을 결합합니다. "목회 소명"이라는 두려운 말은 불붙은 떨기나무와 번개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지만, 동시에 특권을 얻는다는 이미지와 하나님의 뜻에 기쁘게 순종하는 종이 된다는 이미지도 떠오르게 합니다. 소명은 하나님의 세상의 일부에, 그 고귀하고 영원한 부분에 충격을 주는 데 쓰임을 받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소명은 하나님이 나를 보내시는 곳에서 내가 일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미지의 영역으로 가라는 부르심이지만, 절대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이 함께 일하실 것을 언제나 약속합니다. 그것은 어디로 가느냐보다 누가 인도하시느냐를 아는 게 더욱 중요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소명받은 목회가 인생에서 겪는 고상한 경험들 가운데 그 어느것도 하나님과 만난 사건을 능가하는 것이 없습니다. 소명받은 사람은 자기가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그의 영혼에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힙니다. 소명을 내리시는 분은 소명을 받는 자만 들을 수 있도록 지극히 개인적으로 부르시지만, 당사자로서는 그 소리가 마치 천둥 소리처럼 들리며, 그 인상은 대개 평생 지속됩니다.

목회 소명에 관해서 자주 듣게 되는, 앞날이 매우 어둡고 예속된다는 내용의 모든 말에 대해서는 반드시 의문을 제기하고 좀더 나은 말을 위해서 배척해야 합니다. 믿음, 소망, 성실, 신용,봉사 같은 영광스럽고 힘찬 무장하라는 부르심의 단어들을 배합하여 즐거운 처방을 이뤄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목회자의 소명에 세워 주시는 기쁨과 모험과 재미가 훨씬 더 부각되어야 합니다. 목회는 모험입니다.

목회라는 현실적인 모험

목회에 대해 다시 불붙는 현실적인 사랑은 결혼한지 10년이나 반 세기가 지난 뒤 배우자를 사랑하는 이유를 긴 목록으로 만드는 것과 더 비슷할 수 있습니다. 결혼과 목회 생활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주고 받은 베테랑들은 그것이 첫사랑만큼, 아니면 그 이상으로 충만한 만족을 준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목회를 하게 하는 매력적인 동기입니다. 목회자의 사역을 개인적이고 신선하고 친근하게 유지시켜 주는, 가슴 설레게 하는 믿음의 차원입니다. 그 밖의 다른 동기는 결국 좌절시키고 단명케 합니다 사랑은 개인에게 안전 장치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와 사람들에 대한 사랑 없이 하는 목회는 무절제한 자기 만족 그리고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쉽게 전락합니다. 그러면 목회자는 거만한 돌팔이 종교가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늘 주시할 수 있습니다. 신참 목회자이든 경험자들이든 평생의 사역을 통해서 자랄 수 있는 목회에 대한 성숙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이 없으면 효과적인 목회를 오래 지속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기독교 신앙은 생물학이나 물리학 연구처럼 개념적이긴 하나 삶의 구체적 현실에 적용할 만큼 구체적이지 못한 고도의 학문적 추구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순간에는 주께서 우리 생각을 명쾌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 주시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믿음은 추상과 모호한 개념의 영역에서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의 영역으로 옮겨갑니다. 그렇게 되면 성(聖)과 속(俗) 사이에 세워진 인위적 장벽이 무너집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목회자들, 즉 조용한 곳에서 총사령관에게 명령을 받는 그들의 마음과 정신에서 빛나는 사역이 흘러나옵니다. 그결과는 이렇습니다. 목회가 명쾌하게 되고 우선 순위가 분명해지며, 그로써 우리는 구체적인 필요를 지닌 실제 사람들의 낯선 개념, 혼동스런 배경, 유치한 신념을 대상으로 일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목회자로 하여금 목회상의 밀과 가라지를 구분하도록 도와주시며, 그로써 목회자는 자신의 목회적 우선 사항들과 활동들 가운데 어떤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어떤 것이 자신의 높은 지성을 자랑하거나 이기적 관심을 묵인하기 위한 것인지 구분할 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신선한 소망, 새로운 시작, 그리고 실제이든 가상이든 모든 제약들 저 너머를 보는 큰 비전이 모든 목회자의 소명에 있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 큰 비전은 목회자로 하여금 자기 교회에 대한 선명하고 뚜렷한 비전을 발전시키도록 도와주며, 목회자는 그것에 힘입어 남들이 가능성을 보지 않은 상황에서 가능성을 바라봅니다. 목회 소명은 목회를 하는 만큼 온전히 그리스도처럼 되라는 부르심입니다. 소명은 목회자로 하여금 자기가 누구이며 어느 분의 소유가 되었는지를 늘 기억하게 합니다. 만약 허용만 한다면 이 과정은 우리를 하나님의 소중한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고 우리 인생을 아주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의욕을 갖게 하고 심지어 우리가 이르게 된 데에 편안함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은 목회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알도록 요구합니다. 직접 높은 곳에 올라가 보지 않고서는 사람들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갈 수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목회 소명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섬기는 주인을 더욱 닮도록 만듭니다. 어느 젊은 목회자는 그 점을 분명하게 겪었습니다. 그 일은 십대 소년의 장례식을 막 마치고 무덤을 뒤로 하고 나오던 그에게 소년의 아버지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발생했습니다. "아까 내 아들 무덤에서 하신 말씀을 내가 다 믿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이 그 말을 믿는다는 걸 내가 안다는 것은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목회 소명이 목회자의 믿음과 인격에 끼치는 마음과 영혼의 확장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확장은 우리를 더 낫고 더 정결하고 더 구주를 닮게 만듭니다. 그 과정은 어느 목회자의 논평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저를 목회자로 부르셨습니다. 그것이 내가 하나님을 닮게 될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목회를 깊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회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게 해준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시작하십시오. 목회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표출하면 여러분의 목회 생활은 교인들에게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칩니다. 여러분은 교인들이 성장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여러분은 자상한 목회자에서 격정적인 선지자로, 탄원하는 제사장으로 변신하게 될 것입니다. 본인의 삶도 풍성해 질 것입니다. 더 크고 더 고귀하게 설 것입니다. 더 영적이고 덜 세속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살고 투쟁하고 죽을 이유를 갖게 될 것입니다. 목적 의식과 변화하고 있다는 의식과 자기 가치를 회복했다는 의식을 느낄 것입니다. 목회를 감싸 안으십시오, 그러면 목회는 여러분이 꾼 꿈보다 훨씬 고상한 방법으로 여러분에게 사랑을 돌려 줄 것입니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왕상 19:11

6 목회자만의 특전을 누리십시오

비견할 수 없는 혜택들

만족 1 : 여러분의 전공을 강조하십시오 어떤 목회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현실을 논하면서도 간혹 부끄러워하는데, 왜 그러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에디슨은 전기를 자기만 알고 있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알렉산더 벨도 전화를 자신의 독창적인 상상속에 가두어 두고서 세상에 알리기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역량있는 의대 교수가 최신 암치료법을 발견하고서 그것을 세상에 알리기를 거부한다면 어떤 심판을 받겠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좋은 소식을 우리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소심함을 극복하고서 우리의 초자연적 전공을 거리에 전할 때입니다.

만족 2 : 건강한 결혼 생활이 목회에 활력을 줍니다. 목회자가 가정을 건강하게 세워가는 목적은 목회를 더욱 신뢰성 있게 만들거나 인상 깊게 만들려는 데 있지 않고 자신과 아내가 더욱 온전해지려는 데 있습니다. 의미를 다지기 위한 출발점은 결혼과 목회가 가치 위계의 맨 윗자리를 놓고 경쟁하도록 방치할 때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것은 목회와 결혼 생활이 서로 보완해 주고 힘을 주는 것입니다.

만족 3 : 가정의 실현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튼튼하고 안정된 가정은 가정을 위해 행동하고 가정과 함께 행동하고 가정으로 하여금 서로를 위해서 행동하게 하는 균형 위에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가정과 우리의 가정은 공통점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만족 4 : 사랑은 양방 도로입니다. 사랑, 지지, 믿음과 소망은 초대 교회를 한데 결합시킨 접착제 였습니다. 그들의 상표는 "저들이 서로를 어떻게 사랑하는가 보라"였습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그들을 세상이 미처 겪어 보지 못한 영혼 구제와 교회 설립이라는 가장 생산적인 일을 하도록 내보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랑이 우리에게 지속적인 만족을 주는 주된 원천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만족 5 : 승리자의 이상들 목회자의 참된 권위와 정직은 목회의 모든 국면을 위해 맨 밑바닥의 기초가 됩니다. 학위, 안수 증명서, 목회자의 복장은 중요하게 보이지만 목회를 영적으로 권위있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신뢰성은 그리스도로부터만 옵니다. 목회자가 모범적이고 아름답게 그리스도 중심적인 삶을 살면 반드시 신뢰성이 증가합니다. 또한 목회자가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살면 모든 사람이 거룩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가능할 뿐더러 마음을 사로잡는 일이라고 믿게 됩니다. 목회자가 늘 보람을 느끼고 싶다면 주기적으로 자신을 평가해야 합니다. 자기 평가는 인생의 질을, 즉 인생이 고귀하고 고상한가 아니면 저급하고 추한가를 확인할 기회를 줍니다. 또한 지속되는 보람은 진실되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순수한 생활에서 흘러나옵니다. 이런 문제들을 토론하고 직면하는 단순한 행위로도 치유 효과를 거둘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자유로운 삶이라는 뜻밖의 중대한 발견이 목회자의 내면 세계에 끊임없는 보람을 가져다 줍니다.

이것은 아주 특별한 혜택들입니다

목회 사역을 보람되게 해 가는 것보다 더 성취감을 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진 파울러(Gene Fowler)가 요약해 놓은 말이 마음에 듭니다. "어둠이 내려 게임이 끝난 뒤에라도 사랑과 추억은 오래 남을 것입니다." 지속되는 보람은 목회를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잘 수행하는 데서 옵니다. 힘과 성취감이 따르는 뿌듯한 기억이 깨어 있는 동안 언제라도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효과적인 사역을 한 행복한 기억은 특히 우리 영혼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해묵은 고통이 되살아날 때 우리 영혼을 곧추세웁니다. 활력을 주는 기억들을 모두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목회자든 보람스러웠던 기억들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다만 그 많은 기억들을 잊거나 하찮게 생각할 뿐입니다. 다른 어디서 그런 권위 있는 발견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목회가 내가 섬겼던 사람들에 의해서 다시 내게로 돌아온 부메랑이 되었을 때 나는 아주 크게 빚진 심정으로 값진 경험들을 되새깁니다.

혜택을 최대한 누리십시오

끊임없이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모든 그리스도의 종의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번화가에서든 외딴 구석에서든 하나님이 여러분의 목회에 심어 두신 특별한 혜택들을 누리십시오. 여러분만 누릴 수 있는 특전들을 십분 활용하십시오. 그리스도가 흠뻑 배인 목회에서 흘러나오는 모험들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목회상의 많은 특전들이 즉시 제공됩니다. 그 밖의 특전들은 평생을 두고 조금씩 제공됩니다. 어떤 것들은 인생의 절반이 다 흘러간 뒤에야 슬며시 다가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특전이 제공될 순간은 장차 하나님께서 "잘하였도다!" 하고 말씀하실 날에 찾아올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있는 보람된 것들을 향유하십시오, 그것들에 힘입어 결혼 생활을 의미 있게 가꾸어 가고, 자녀를 훌륭히 양육하고, 남들이 볼모지라고 말한 곳에서 초자연적인 교회를 세우십시오. 무엇보다도 목회 생활을 통해서 명예롭고 권위있고, 묵인과 통제가 언제나 일으키는 온갖 속박들에서 자유로운 삶을 일궈갈 힘을 얻으십시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 : 11, 12

7 사역을 위한 청사진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은 제대로 목회를 할 만한 독특한 은사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우주를 무한히 다양하게 구상하셨습니다. 자연에는 하나님의 독창성이 단풍나무 잎사귀 하나하나에, 눈송이 하나하나에, 산봉우리 하나하나에 비칩니다. 하나님의 독창성은 심지어 인간의 코와 음성과 발가락에도 나타나 미소를 자아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다른 모든 사람과 달리 독특하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특별한 방법으로 쓰실 수 있도록 독특한 사람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께서는 여러분이 남을 모방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위해 중요한 일을 이루도록 친히 도우실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부적절한 포부 때문에 좌절을 겪는 이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어느 시골 목회자는 외딴 목회지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좋은 곳이긴 하나 자기에게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많은 동료 목회자들이라면 좋아했을 목회지입니다. 중년인 그는 도심에서 독립 노선을 걷는 목회자가 되려는 꿈을 이룰 길이 없을 거라고 느낍니다. 그는 자신의 좌절스런 심정을 적어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언제나 도심에서 일하고 싶어했습니다. 세속 직업을 가지고 생활을 해 가면서 무임금 목회자로서 빈민들을 섬기려는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 늘 보아 온 전통적인 목회자들과는 다른 노동자 목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이 실현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골 목회는 하루가 다르게 더 지루하게 만듭니다. 온종일 나는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보모처럼 돌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들의 헌금과 전통은 문제를 실제보다 더욱 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열정은 다 사라졌습니다. 이제 인생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고 있습니다. 꿈을 한 번 시도나 해볼 수 있을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지역에 따른 좌절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그 실재를 인정하고 다음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로 해결해야 합니다. 만약 목회자가 개인의 안녕과 완성에 반하여 발목이 잡혔다는 느낌을 바꿀 수 없을 때는 다른 목회지를 찾거나 새 목회지를 개척해야 합니다. 또 다른 대안도 가능한데, 그것은 이 책의 취지이기도 합니다. 지금 있는 곳에 머물면서 그곳을 거룩한 땅으로 바꾸어 보십시오. 대부분 지역에 따른 좌절은 목회자의 정신상의 문제일 뿐 교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중요하게 간주되지 않습니다. 지역에 따른 좌절의 해결책은 두 가지 일에 여지를 주는 현 상황을 위해 구체적인 사역 청사진을 마련함으로써 시작됩니다. 하나는 현 상황에 가장 시급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목회자 개인의 달란트와 재능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독특성을 개발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은사와 헌신을 든든히 믿고서 여러분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시려는 모험스러운 전략을 선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목회가 여러분에게 적합한지,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지를 발견하도록 폭넓은 자유를 주십니다. 심지어 어디서 목회를 할지를 결정할 자율권을 여러분에게 주십니다. 이 자유는 잘못 사용할 경우 하나님 나라와 우리 자신에게 혼동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교회의 목회자 채용 절차가 까다로워집니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목회자들이 종종 지나치게 겸손하거나 부끄럼을 타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남들에게 잘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 자랑처럼 들리거나 자기가 특정 목회지를 탐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자기가 잘하는 것이 무언지를 몰라서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가 자신의 달란트를 묻어 버릴 때 목회의 지루함이 가중됩니다. 그러나 적시에 적소에서 적절한 재능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위대한 일을 이루는 데서 최대의 성과가 나옵니다. 목회자가 자신의 독특한 은사를 사용하지 못할 때 하나님 나라와 그의 회중은 고생을 합니다. 그 결과 싫증은 커 가고 영향력은 줄고 하나님이 그의 목회에 쓰시려고 하시는 회중의 달란트들을 부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목회의 모든 부분에서 최상의 적성을 원하십니다. 적성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탁월함과 평범함을 결정합니다. 완전한 목회를 하려고 하면 아주 천박한 목회로 이어지기가 십상입니다. 어느 목회자도 목회 수행에서 완전에 가까이 접근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 점을 인정하기가 싫더라도 우리들 대부분이 "실패가 내 전공입니다" 하고 냉소하는 목회자의 처지를 자신의 처지로 쉽게 느낍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 주심이 없으면 사역이 본질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논의가 되는 일은 드물지만, 하나님께 능력을 입는다는 이 문제가 이 시대 교회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일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훌륭한 교육을 받았더라도, 아무리 열정이 뜨겁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받지 않고는 아무도 목회를 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나 충분한 통찰력이나 충분한 달란트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슬프게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힘으로만 목회를 하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나 초자연적 자원들은 그것을 구하고 사용하는 자들에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사용하기로 정하십니다. 또한 공동 노력이 유익을 줍니다. 교인들을 의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부적격성을 인정하는 목회자를 돕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나섭니다. 그러한 자기 표출이 사람들에게 돕겠다는 심정을 일으킵니다. 그 결과는 놀랍습니다. 돕는 이들은 만족을 얻고, 대의가 전진하며, 목회자는 공동 노력으로 용기 백배합니다. 그러나 때로 주위에 만연한 완벽 놀음이 목회자를 자승 자박의 상태에 빠뜨립니다. 그런 상태에서 목회자는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또는 실제보다 더욱 경건한 것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을 느낍니다.

나는 어느 목회자와 처음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목회에 대해 겪고 있던 혼동을 다루었습니다. 교인수 125명의 교회를 15년간 목회해 온 그는 자신의 미래를 털어놓으면서 내게 상담역이 되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는 기력이 없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력을 많이 하는데 결과는 갈수록 왜소해지는군요. 시간을 쪼개서 더 일에 매달리지만 반응은 갈수록 신통치 않습니다." 새 신자가 더 늘어나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한 그는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였습니다. 교회 문제로 생긴 가정 문제를 감추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는 게 의미를 대신했습니다. 그는 지치고 좌절했습니다. "지난 넉달 동안 30대 중반의 좋은 부부 6쌍이 우리 교회를 떠나 다른 지역의 교회로 갔습니다. 그들은 이 교회의 영적 중추이자 재정의 핵이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떠난 부부는 떠나기 직전에 내게 이렇게 쏘아 붙였습니다. '모르시죠? 우리는 다 목사님 때문에 이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좋지 않은 쪽으로 변했습니다. 과거에는 시대에 뒤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10년 전과 똑같이 구태 의연한 방식으로 교회를 이끌고 갑니다. 그런 방법은 더 이상 먹혀들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의 말이 옳을까봐 걱정입니다."

그의 문제는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안고 있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교리적이거나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관점과 방법에 관련된 것입니다. 그 교회를 떠난 교인들은 아마 설명할 수는 없었어도 그 목회자에게서 실제 세계에 부딪혀 보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그가 너무 순진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건강치 못하게 과거에 얽매어 있는 것으로 보였고, 그것이 그들에게 관심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더 나아질 가능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떠났습니다. 떠난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특히 목회자에게 그게 얼마나 슬프고 곤란한 상황입니까?

직접 목회할 부분을 늘 남겨 두십시오

현대 목회에서는 효과적인 사역 이양이 중요한 요소이고 직접적인 목회는 감소 추세입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목회자가 교인들과 목회를 분담할 때 교회는 영적으로 건강해집니다. 이런 유익한 추세는 평신도에게 권한을 부여할수록 그들이 영적으로 성장해 가고 사역도 더 많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목회를 전부 다른 사람들에게 이양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목회자가 자기는 관리만 하고 직접적인 목회는 다른 사람들에게 분담시킨다면 충분히 꽃이 피고 자라날 수 없습니다. 목회자 자신이 수건과 대야를 들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정기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목회하는 일을 더 이상하지 않으면 목회의 아주 중요한 요소를 포기하는 셈입니다. 목회자가 직접 목회에 참여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섬길 기회를 포기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목회자가 교인들과의 접촉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고,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고 교인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게 됩니다. 목회의 많은 부분을 분배하는 동시에 직접 목회를 해간다는 것은 역설입니다. 이 시대 목회에는 참여와 분배가 필요합니다. 권위를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권위와 영향력은 여러분을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목회자들은 때로 권위를 남용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에서 능력이 있기를 바라는 목회자가 행정상의 문제에 대해 자기 판단이 그르기 때문에 때로는 판단권을 자의로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권위 자체가 지도자를 무오하게 만드는 법은 없습니다. 유능한 목회자들은 권위에 연연하기보다 평생 접하는 모든 자료로부터 배웁니다. 많은 목회자들은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일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직업적으로 정체에 빠집니다. 다른 목회자들은 졸업장이나 학위를 받는 그 날로 정신을 닫아 버립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놓친다는 게 얼마나 안 된 일입니까. 배움과 개인 발전은 즐거울 수가 있고 언제나 목회자로 하여금 자기가 심기운 곳에서 꽃피도록 도와줍니다. 권위 있는 지도력은 상당 부분이 중요한 직책을 맡음과 동시에 시작되긴 하지만, 반드시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참된 지도력도 안수를 안수를 받음과 동시에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지도자가 되지 못한 채 평생 목회자 직위를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외면에 자리잡은 지도자의 도구는 따뜻한 설득, 조건 없는 사랑, 그리스도의 진영을 위한 충성입니다. 혼동과 위기의 때에 회중으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지도자는 독자적인 생각의 힘에 주의를 모을 수 있습니다. 아마 지금과 같은 때에 교회는 그런 지도자들의 군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목회자들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지도력을 키워야 합니다 책과 세미나와 상담에서 도움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가까이에 있고 더 편리한 배움의 자료가 종종 무시됩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와 세상을 살아 있는 교실로 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지도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늘 현실 생활에 민감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전문가들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서도 지도력에 관해 배울 만한 말을 주의깊게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부분에서 얻은 착상을 목회에 적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유행을 좇는 목회자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기업과 정부를 주도하는 사람들을 주시하고 의문을 던집니다. 사실상 발전해 가는 지도자는 모든 부분에서 오는 통찰과 착상에 눈과 귀를 열어 둡니다. 이 모든 자원들은 어떠한 목회지에서라도 매우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낼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엡 4 : 1

8 영적 거목으로 자라십시오

자신을 영적으로 가꿔 감

목회자들은 영적으로 몸매를 망쳐 버리기가 쉽습니다. 오랜 시간 설교하고 가르치고 상담하는데 영적 기력을 소진하면서도 자신의 영혼을 가꾸는 데 필요한 기력은 남겨 놓지 않습니다. 영적 기력 없이 활동하려면 항상 피로와 긴장을 느낀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현실과 당위 사이의 불일치에 괴로워 합니다. 그러고는 사역할 힘이 없어 현기증을 느끼고 탈진해 버립니다. 열정에 타오르는 일 없이 소진해 버립니다. 때로는 이목 때문에 경건을 억지로라도 지어내 보려고 합니다. 영적으로 깊이가 없으면 생활의 여러면에 영향을 미칩니다. 목회자는 좌절을 느끼고 쉽게 유혹을 받습니다. 직업으로서의 목회와 개인의 믿음을 별개로 여겨 둘이 서로 가까워지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뿌리를 잃고, 방어적이 되고, 겁에 질립니다. 큰 영혼으로 자란다는 것은 훨씬 많은 것을 약속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삶과 목회의 모든 면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정교하게 짜여지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합니다. 그것은 활기찬 목회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발전에 초점을 맡춥니다.

도처에 널려 있는 원료

목회는 누구든 개인적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들 가운데 가장 풍요로운 중심부로 나를 데려갑니다. 그러므로 설교한다는 것은 믿음의 원료들을 다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성경의 위대한 진리를 설교할 때 하나님이 그 본문을 사용하여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세워 주시는 것과 똑같이 그 진리에 의해서 주조됩니다. 목회의 보살핌은 믿음을 가장 행복하고 가장 슬픈 인생사들에 적용할 아름다운 기회의 창을 줍니다. 행정상의 과제와 지도자의 책무는 믿음을 실천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목회를 한다는 건 내 영혼을 강하게 만들고 내 믿음을 장부답게 만드는 영적 자원들을 다룬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건강을 위한 기회를 많이 만드십시오. 우선 영적 성장을 대중에게 보이기 위한 종교적 겉치레 이상의 중요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가까운 기회들을 십분 사용하여 영혼들을 하나님께 가까이 인도해야 합니다. 목회를 직업 이상의 것으로 만드십시오. 또한 엄격한 영적 건강 요법을 따르십시오. 목회자가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기도, 성경 읽기, 금식, 경건서 독서, 영적 교제와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 등 전통적이고 믿음을 형성시키는 행위들로써 하나님을 늘 새롭게 만나야 합니다. 신선함이 빈도수보다 더욱 중요한 듯합니다. 또한 영적 건강이란 하나님과 마음이 통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 마치 사랑에 빠질 때처럼 관심과 동질감과 온정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깊이 사귀면 눈이 열려 은혜의 놀라운 비밀들을 보게 되고 평생 보람을 느끼며 사역을 하게 됩니다. 영혼을 성장시키려는 이런 노력이 교인들에게 열심을 불러 일으키고,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의욕을 불어넣어 주며, 목회자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보람을 줍니다. 영적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은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신시란 약속이 실현되게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

큰 영혼으로 자라기 위한 여덟 가지 방법

1. 영혼의 친구를 사귀십시오. 이상적인 영혼의 친구란 주께 은혜를 구하는 심정으로 그의 고통을 들어 주고, 힘을 주고, 기대게 해줄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친구 목회자를 격려할 때와 매정하게 비판할 때를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그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가장 절실한 비판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안주하려는 유혹을 뿌리치십시오.

3. 성도의 간절한 기도. 기도로 뒷받침되는 힘이 목회에 힘을 줍니다. 알려지지 않은 기도가 주변에서 우리를 뒷받침합니다. 여러분의 목회를 위해 하나님께 아뢰려고 할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4. 성경에 대한 애정에 다시 불을 붙이십시오. 현실을 염두에 두고서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에 질문하십시오. 본문에 자신을 대입하십시오.

5. 기도의 장애를 극복하십시오.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걸림돌을 만듭니다. 응답이 지체되면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생각되고 때로는 하나님이 잔인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은 데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삽니다. 버리지 못한 근심은 바뀔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장애들로 인해 우리 주님과의 진실한 대화를 방해 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6. 하나님을 즐거워 하십시오.

7. 대담하고 진보적인 기도를 드리십시오.

8. 영적인 자기 관리에 힘쓰십시오.

목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큰 영혼

* 큰 영혼은 능력 있게, 따뜻하게, 구원하려는 태도로 설교합니다.

* 큰 영혼은 상처입은 사람들을 보살피고 그들에게 구주를 소개합니다.

* 큰 영혼은 예배자들을 하나님의 엄위로운 임재 안으로 인도합니다.

* 큰 영혼은 강한 가정을 세우고, 결혼을 소중히 여기고, 교회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봅니다.

* 큰 영혼은 값싸고 공허한 말 대신에 초자연적인 성취를 추구합니다.

엄청난 가능성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목회로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큰 것을 계획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목회를 하는 동안 그리스도를 닮고 상상 밖으로 삶의 진전을 이룩하기를 바라십니다. 목회는 만약 목회자가 되지 않았다면 절대로 가려고 하지 않을 모험이 가득한 곳으로 여러분을 데려갑니다. 목회는 만약 여러분이 목회자가 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영향을 주도록 만듭니다. 여러분은 보잘것없는 상태로 하나님과 동역함으로써 특권들을 누리며, 다른 직업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습니다. 정말로 영혼이 성장하면 신뢰성도 커지고 그리스도를 위한 열정도 뜨거워집니다. 큰 영혼으로 자라면 산성처럼 교회의 성취와 비전을 갉아먹는 부식을 말끔히 씻어냅니다. 영혼이 성장하는 수많은 목회자들은 원칙과 소망과 헌신과 확신과 도량과 종의 태도와 상상력과 창의력과 거룩한 삶에 새로 불을 지필 수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역대하 7:14

9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십시오

쉬운 말로 부흥을 일으키십시오

하나님에 관해서 그리고 교회의 기능 방식에 관해서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목회자가 먼저 하나님과 새롭게 만나지 못하면 회중도 영적 장부가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부흥의 첫 단계는 목회자 자신이 어떻게든 부흥되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진정한 영적 각성은 목회자로 하여금 현재 상황에 거룩한 불만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부흥은 우리를 다시 신앙의 기본자세로 돌아가게 하고 흔쾌히 그리스도를 위해서 헌신하려는 의욕을 다시 심어줄 것입니다. 그러한 부흥은 우리 영혼을 하나님 앞에서 겸손케하고, 자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개인의 의를 심각하게 생각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한 부흥은 그리스도를 새롭게 사랑하고 영혼을 다해 경배할 마음을 일으킬 것이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심없이 섬길 힘을 줄 것입니다. 전염성 있는 이런 부흥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다시 한 번 보람되고, 기쁘고, 유익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거룩한 영향력을 지닌 설교를 할 수 있게하여 상처 입은 세상을 복음으로 초대하고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껍데기로 만족하지 말고 본질을 봅시다. 부흥의 참본질이 무엇입니까? 무슨 원동력이 부흥을 일으킵니까? 하나님은 참부흥을 일으키기 위해서 목회자와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철저히 살피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에 비추어 목회를 끊임없이 평가하기를 바라십니다. 깊음과 순종이 얕음과 겉치레를 대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흥을 통해서 목회자의 가슴과 회중의 가슴에 각성을 일으키려고 하십니다. 개인으로서 그러한 부흥은 하나님을 영혼의 성채로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께서 외적인 죄를 사하시고 내적인 부패를 치유하도록 내맡기는 것입니다. 참부흥은 죄와 반역과 불순종에서 돌아설 마음을 일으킵니다. 참부흥은 겸비하고 하나님의 낯을 구하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변화할 것을 요구합니다. 참부흥은 난처한 지경에 빠뜨리는 자기 주권을 내놓는 대신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와 뜻을 받아들이는 파격적인 거래를 하게 만듭니다.

부흥은 거룩한 불만에서 시작됩니다

불만 1 : 처음 사랑을 잃어버림. 아주 오랫동안 이 시대 교회들은 수고와 인내와 거짓 선지자를 따라가지 않은 점을 들어 스스로 높은 점수를 매겼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에베소인들에게 분명히 말하기를, 그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썩 훌륭한 일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에배소 교회는 그런 일들을 잘해냈지만, 요한은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하면서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불만 2 : 교회 일꾼들이 사생활로 죄를 지음 교회 일꾼들의 죄를 다룰 때에는 다음 여섯 가지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 하나님은 교회 일꾼들이 거룩하기를 바라십니다.

* 신도석에 앉은 사람들은 목회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교회 일꾼들의 생활 형태를 더 잘 압니다.

* 영적으로 자격이 없는 일꾼들은 목회자가 변화를 촉구할 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영적인 가식을 계속 용납한다면 당사자는 결국 자기 영혼을 잃을 수 있습니다.

* 영적으로 자격이 없는 일꾼들은 대체로 목회에 제동을 겁니다.

* 외인들은 교회 일꾼들이 모범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을 안 다음에는 절대로 교회에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불만 3 : 교회가 세상 정신을 따라감. 세상 정신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보다 세상의 가치관을 택합니다. 세상 정신은 세련됨, 안전, 자존을 앞세워 우리에게 세상적인 사고와 행동 방식을 강요합니다. 세상 정신은 때로는 교회에서 성취에 대한 집단적 자부심이나 영적 헌신에 대한 자부심이나 예배 의식에 대한 자부심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교회는 자기들의 경건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그들은 구별되기 위해서 구별되지만, 영적 교만이 실제로는 스스로를 속이는 세상 정신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세상 정신은 교회가 취하는 방법들도 감염시킬 수 있습니다.

불만 4 : 교회가 경이감을 상실함

언제 부흥이 필요한가?

찰스 피니는 교회가 부흥을 필요로 할 때를 파악하기 위한 목록을 내놓았습니다.

* 사랑의 결핍 : 신자들 가운데 형제애와 신앙 확신이 결핍되어 있을 때

* 불화와 분열 : 신자들 가운데 불화와 시기와 험담이 있을 때

* 세상 정신 : 교회에 세상 정신이 있을 때

* 교회에 있는 죄 : 교인이 심하고 추한 죄를 지은 사실을 교회가 확인할 때

* 논쟁과 불일치 : 교회에 논쟁 분위기가 팽배할 때

* 악이 사회를 지배함 : 악인들이 교회를 압도하고 욕할 때

* 죄인들이 태평하게 지냄 : 죄인들이 죄를 깨닫지 못하고 태평하게 지낼 때 부흥이 필요합니다.

참 부흥은 기도로 시작됩니다. 중보 기도없이 목회자, 교회, 국가에 대한 영적 대각성이 일어난 경우는 없었습니다.

부흥은 교회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부흥과 부흥의 주된 목적은 신앙의 위인이나 강력한 교회를 만들어 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부흥은 교회를 본연의 목적으로 돌려놓고, 더욱 온전하고 건강하고 강인하고 심지어는 구속적으로 만드는 데 그 본의가 있습니다. 또한 어느 경우든 참부흥에는 항상 남다른 기도가 있게 마련입니다. 신자가 겸손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초자연적이고 만족스러운 기도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신자가 진실로 기도할 때 절박한 부흥의 필요는 채움을 받습니다. 또한 부흥은 개인을 죄와 그 파괴적인 결과들에 직면케 합니다. 치유책은 언제나 그랬듯이 동일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영적 안녕을 염려하는 모든 이들의 중보 기도와, 성경에 근거를 둔 주제에 대한 권위 있는 설교, 그리고 새 교인이 과거의 죄에서 변화받은 일을 자유롭게 가증할 용기를 얻는 분위기입니다. 사도행전 4:32-35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것을 이 시대 회중들이 받아 사용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 시대에 부흥이 일어날 큰 가능성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초자연적 능력으로 복음을 전했고, 성령 충만을 받았고, 예수의 부활을 증거했고, 큰 은혜를 받았고, 토지를 팖으로써 안전과 탐욕을 버렸으며, 궁핍한 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어느 지교회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과 같게 들리지 않습니까?

부흥의 불을 켜둘 때입니다

스펄전은 말합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람도, 새로운 계획도 아니고 다만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뿐입니다. 하나님께 그것을 구합시다. 아마 하나님은 세상을 그 기초부터 흔드실 준비가 되어 있으실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자기 백성에게 강한 능력을 부어 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실 것입니다. 지나간 여느 세대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 교회를 생명력 있게 만들 그런 능력을 말입니다." 불을 붙여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엔진을 달구고서 "주님, 제 안에서 주님의 사역을 회복시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합시다.

영적으로 새로워진 목회자

아래의 간증은 회복을 체험한 목회자가 쓴 것임이 분명합니다. 안타깝게도 글의 출처가 불명확합니다.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들의 사귐"의 일원입니다. 내게는 성령의 능력이 있습니다. 물감은 이미 엎질러졌습니다. 나는 이미 선을 밟았습니다. 결단을 내렸습니다. 나는 그분의 제자입니다. 뒤를 돌아보거나 그만두거나 속도를 줄이거나 되돌아가거나 조용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내 과거는 구속되었고, 현재는 의미가 있으며, 미래는 안전합니다. 저급한 생활, 방황, 시시한 계획, 쉽게 하는 굴복, 색깔 없는 꿈, 무기력한 비전, 일상에 찌든 대화, 인색한 구제, 째째한 목표를 이제 나는 버렸습니다. 탁월함, 번성, 지위, 승진, 갈채, 인기가 내게는 더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올곧고 첫째 가고 상위에 포함되고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고 보상을 굳이 받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임재에 힘입어 살고, 믿음으로 의지하고, 인내로 사랑하고, 기도로 일어서고, 능력으로 일합니다. 내 시선은 고정되었고, 내 걸음은 빠르며, 내 목표는 하늘이고, 내 길은 좁고 험하고, 내 친구는 없고, 내 안내자는 듬직하며, 내 사명은 분명합니다. 나는 매수당할 수도 없고, 타협할 수도 없고, 우회할 수도 없고, 미혹당할 수도 없고, 되돌아 갈 수도 없고, 희석되거나 지체할 수도 없습니다. 희생해야 할 순간에 도피하지 않고, 역경 앞에서 주춤거리지 않고, 원수의 식탁에서 타협하지 않고 인기의 늪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평범의 미로에서 방황하지 않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끝까지 설교하고, 끝까지 기도하고, 끝까지 지불하고, 끝까지 간직하고, 끝까지 남을 때까지는 포기하지도, 입을 닫지도, 다 타 버리지도 않겠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분이 오실때까지 가야하고, 빈털털이가 될 때까지 베풀어야 하고, 모든 이들이 알 때까지 전파해야 합니다. 그분이 자기 백성을 모으려고 오실 때 문제 없이 나를 알아보실 것입니다. 내 색깔은 뚜렷할 것입니다. 그것이 내 색깔을 뚜렷하게 만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엡 5:3

10 책 잡힐 것이 없는 삶을 사십시오

울타리 세우기

실제로 목회자들은 숱한 유혹에 포위되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 유혹들은 그들의 신뢰성을 시험할 뿐 아니라 그들의 사역을 희석시킬 수도 심지어는 파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혹들은 목회자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서 생기를 고갈시키는 도덕적 출혈을 멈추기 위해서 매일의 사역에 높은 울타리를 세워야 한다는 점은 암시합니다.

울타리 1 : 도움을 청한다. 문제가 있으면 도움을 청하십시오. 그러나 필요할 때 도움을 얻어 사용하지 않으면 세상에 있는 모든 도움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방, 영혼 관리, 조기 노력이 필요합니다.

울타리 2 : 정직의 규율에 따라 산다. 정직의 규율을 발전시키는 일은 도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자각을 일으키는, 스스로 채택한 도덕 규율을 충실히 지킬 때 시작됩니다.

울타리 3 : 기도 동지를 만든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목회자도 하나님과의 관계, 기도 생활, 결혼 또는 가정 생활에 관해서 터놓고 지내는 기도 동지가 필요합니다. 이 관계는 목회와 가정에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을 구하는, 성(性)이 같은 두 사람간의 계약입니다.

울타리 4 : 가정에 열정이 식지 않게 한다. 만족스런 결혼이 목회자의 성적 순결에 최상의 보장입니다. 내쉬빌에 있는 광고 회사 사장 스티브 딕스가 기독교 사업자들에게 조언한 말은 목회자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의 승패가 정말로 판가름 나는 곳은 가정입니다. 가정은 우리가 다른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가장 먼저 성공을 해야 하는 경기장입니다."

울타리 5 : 다른 사람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다. 우리는 다른 목회자들이 실패하는 것을 너무 자주 보며, 그럴 때마다 우리도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혹시 똑같은 실수는 범하지 않으리라는 마음이 들더라도 남들의 실패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악한 유혹이 찾아 왔을 때 우리가 어리석게도 죄를 짓건 타락하게 될는지 누가 압니까?

울타리 6 : 마귀를 계속해서 대적한다. 목회자가 영적으로 단호히 대적하면 마귀는 그를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는 강하지만 패배를 모를 만큼 강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실 때 증명하신 대로 마귀는 하나님 말씀과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대적할 때 우리를 떠납니다.

울타리 7 : 진짜 남자는 추문 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정욕을 다스립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렇게 지각 없는 죄와 어리석음에서 자기들을 지켜 주시도록 내맡깁니다. 생각이 바른 사람이라면 어찌 결혼 생활이 주는 오래된 사랑과 깊은 만족을 마다하고 부정을 택하겠습니까?

울타리 8 : 균형 유지에 힘쓴다. 근무 시간, 영혼 관리, 일의 강도, 가정, 우선순위를 적절히 배합하여 목회의 균형을 유지하는 건 평생 해야 할 작업입니다. 균형을 온전히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긴 하지만, 매일 매주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면 목회는 아무런 계획이 없을 때보다는 더 균형이 생길 것입니다.

울타리 9 : 제재 수단을 확보한다. 제재는 공식적일 수도 있고 비공식적일 수도 있지만, 그 자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는 목회의 많은 부분을 혼자 또는 일대일 관계로 수행하기 때문에 겪는 위험들을 잘 압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신뢰할 만한 현실 진단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울타리 10 : 영혼의 친구를 사귄다. 나는 여러 해를 서로 알고 아껴 준 영혼의 친구 다섯을 생각하고서 흐뭇해 할 때가 많습니다. 이 다섯 친구는 나를 위해 격론을 벌이곤 했고, 나도 그들을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려 하는 이들 평생의 친구들과 관계를 맺어 오면서 말할 수 없이 큰 복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 관계는 오랫동안 대화하고 논쟁하고 함께 지내고 공개적으로 정직하게 속을 털어 놓음으로써 발전했습니다.


높은 울타리와 열린 마음

튼튼한 울타리는 우리 가정을 지켜 주고 값싸고 수상하고 부도덕한 일을 하지 않도록 막아 줍니다. 창조적이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방법으로 울타리를 세우는 동안에는 이런 관점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주고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건강한 가정이 얼마나 목회와 가정관에 생기를 불어 넣는지를 역력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침 식탁에서, 가족과의 대화에서, 그리고 침대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높은 울타리에 대한 열의를 삶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나 목회 둘레에 높은 울타리를 세우되, 좋은 친구들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영접하는 방법으로 세우십시오. 사람들을 사랑하되 그리스도가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고 그 애정을 실증하십시오. 특이한 사람들일지라도 섬기십시오. 마치 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말입니다. 여러분의 목회 둘레에 건강한 울타리를 세우면 사람들을 좀더 건설적으로, 좀더 즐겁게 섬길 수 있습니다. 나무랄 데 없는 삶을 사는 것은 목회를 구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합니다. 이런 방식의 삶은 목회를 어렵게 만들지 않고 사람들고 하여금 우리를 신뢰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목회를 더욱 쉽게 만듭니다.

목회자가 역량이 모자라 목회를 그만 두는 경우는 드물고, 오히려 정결치 못하기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룩한 인격이 목회의 근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순결하고 능력있게 만들어 주시는 인격은 우리가 목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석과 같은 매력을 지닙니다. 이것이 불확실하고 소외되고 도덕적으로 불안정한 세계에서 목회자에게 감수성과 안정과 원기를 줍니다.

* 목회자가 목회자에게 ~ 정가 ₩8,000원

H.B.런던,닐와이즈먼 이길상 / 생명의말씀사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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