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가죽옷의 복음(The Garments of Skin)

하나님아들 2018. 1. 11. 00:07

가죽옷의 복음(The Garments of Skin)

                                          창 3:20-21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미국의 위대한 신학자요 목회자인 요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Princeton 신학교 교장 시절, 그의 딸에게 청혼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훌륭했지만 딸의 성격은 괴팍했습니다. 양심에 걸린 아버지는 청년에게 충고합니다. “내 딸 하고 결혼할 생각 말게.”

“제가 따님을 사랑하는데도 안 됩니까?” “글세, 안 돼.” “따님도 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반대는 계속됩니다. “내 딸은 자격이 없네.” “따님도 크리스찬입니다.” 이제 아버지 에드워드 목사님이 큰 소리로 말합니다.

“젊은이, 고집 부리지 말게. 누구와도 살 수 있는 건 하나님의 은혜 뿐일세. 그럼 자네가 하나님이란 말인가?”

 

하나님은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용서하시며 구원을 베푸시고 긍휼을 베투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한량없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행동은 항상 선하신 주님의 본성에서 우러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최초의 인류를 위하여 완벽한 환경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아담 하와는 욕심과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금령을 어겼고, 그 결과 엄청난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앞 부분에 보면 범죄한 인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들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그리고 놀라운 구원의 약속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15절).

그리고 오늘 본문 20절입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지금까지 단순하게 ‘여자(잇샤)’로 불리웠던 하와에게 이름이 부여되는 순간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많은 경우 그 존재의 특성과 가치를 보여줍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뱀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먹게 함으로 인류로 하여금 고난과 죽음의 굴레를 쓰게 한 죄의 원흉에게 ‘하와’란 이름이 주어진 것은 큰 의의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하와’는 ‘살다(하야)’에서 유래하여 ‘생명(life)'이란 뜻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아담을 보십시오. 그는 여자의 후손이 사탄의 권세를 부숴버린다는 15절의 하나님의 은혜 언약을 확신했습니다. 그는 임신한 여자를 본 적도 없고 아이를 가져본 적도 없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아담은 자신의 아내가 여자의 후손을 낳으므로 영원한 생명을 이을 것을 굳게 믿고, 이를 소망하는 심정으로 아내의 이름을 ‘하와’ 즉 ‘생명’이라 지은 것입니다.

이러한 예언적 이름을 가진 하와를 통해 이어지는 생명의 맥은 오늘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의 축복을 받은 성도들에게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들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시되 가죽옷을 지어 입힌 사실을 보면서, 죄는 미워하면서도 범죄한 인간 자체만은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애정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속 사업을 통한 인류 구원의 소망도 강하게 가지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가죽옷을 지어주신 하나님의 이야기, 그 속에 들어 있는 생명의 복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지어 입히신 가죽옷은 앞서 인간이 만들어 입은 옷과 여러 가지로 대조를 이룹니다.

7절에 나오는 바와 같이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으나,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

특히 7절의 ‘치마(하고르)’가 단순히 엉덩이 둘레만을 가리는 것인데 반해 본절의 ‘옷(케토네트)’은 상체를 가리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외투(garment)'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질긴 짐승의 가죽으로 온 몸을 감싸는 의복을 지어 입히시는 자비를 베푸신 것입니다. 이제 에덴동산을 떠나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다시한번 크신 긍휼을 베푸셔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제 에덴 동산에서 나가야 하는 아담 하와를 위하여 친히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그들에게 아직 옷에 대한 개념도 없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앞에 닥칠 험한 자연에 적응하도록 준비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로 자연까지 오염되고 훼손되어 열악한 환경으로 변하게 된 사실을 아셨습니다. 이제 인류 앞에는 무서운 난관이 닥치게 된 사실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옷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보여주셨고, 자연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무화과나무 잎으로는 안 됩니다. 무화과 잎사귀는 쉽게 말라버리고 부숴지기 때문에 인간의 수치를 가리워 줄 의복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얕은 지식과 지혜로는 험한 세상을 견뎌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간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채우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을 따를 때 하나님이 도우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께서 말씀하신 바를 그대로 행할 때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2. “죄는 불행과 죽음을 가져온다”

 

가죽 옷 이야기에 담겨 있는 복음의 또 다른 면은 ‘죄는 인류에게 참혹한 불행과 심지어 죽음을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옷을 짓기 위해 짐승의 가죽이 사용된 것은 인간을 위해 짐승이 피흘리고 죽은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이 지은 죄를 감싸기 위해 죄 없는 짐승이 대신 희생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동물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동물의 우는 소리, 솟구치는 피,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고통 등등. 아마도 아담 하와는 짐승이 죽임 당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이 지은 죄는 온 세상에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이제 동물 왕국 뿐 아니라 온 우주가 혼돈과 무질서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아담 하와는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곧 죽는다,” “오직 하나님 신뢰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인간의 범죄는 참으로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인간의 삶은 참혹한 불행 가운데로 빠져들게 되었고, 결국 죽음 앞에 모든 인류가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레온 우드(Leon Wood)박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에 대해 언급하면서, '징계를 받은 남녀 120만 명이 광야 유랑기간(38년 6개월)동안 죽었다면 매일 85명 가량이 죽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장례를 치르는 시간이 12시간을 잡는다면 1시간에 7명씩 장례를 치러야 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는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죄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데스 바네아의 사건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과, 앞으로 다가오는 세대의 불신앙의 무리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의 결과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보여준 큰 경고가 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참혹한 사건을 들라 한다면 히틀러 정부에 의해 수백만의 유태인이 학살당한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제랄드 라이트링거(Gerald Reitlinger)라고 하는 독일 사람이 히틀러에 대해 쓴 글에 보면, 580여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히틀러는 가스실을 만들어 집단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라이트링거는 수백 명의 유대인들이 발가벗긴 채로 가스실로 들여보내진 후 한꺼번에 죽어나오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가스실에 들어간 유대인들은 가스가 새어나오는 것을 느끼고 서로 모여들면서 작은 창문이 달린 거대한 철문을 거세게 두드리며 몸부림치게 된다. 철문 앞에서 그들은 서로 할퀴고 치고 받으면서 결국은 끈적끈적한 피를 뿌리며 피라미드처럼 시체로 쌓이게 된다. 25분 후 전기 펌프식의 배출기가 가스로 가득 찬 실내의 공기를 제거하면 거대한 철문이 열리고 고무장화와 가스마스크를 쓰고 호스를 손에 든 유태인 모범수들이 들어간다.

그들이 처음에 하는 일은 피와 오물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시체를 올가미와 갈고리로 떼어내어 금을 찾거나 독일인이 전략물자로 간주하고 있는 이빨과 머리털을 뽑는 소름 끼치는 일이 시작된다. 그 일을 한 다음에 그 시체들은 들것이나 화차에 실려 용광로로 옮겨져 태워진 후 분쇄기로 들어가 아주 고운 재로 변하여 화물 트럭으로 솔라강 하류에 뿌려졌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짐승을 잡아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 것은 인간의 필요를 채워주실 뿐 아니라 범죄로 말미암아 시작된 불행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짐승이 피 흘린 것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의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예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하자마자 피흘림을 통한 속죄의 방법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죄인의 수치를 가려주신다”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은 앞으로 낙원 외부의 거친 환경을 준비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죄악으로 인한 인간의 수치를 가리워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무화과나무 잎사귀는 인간의 수치를 가리워줄 의복으로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낙원에서 추방하기에 앞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그들의 수치를 가리워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죽옷의 복음에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류의 수치를 가려주신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아무런 죄도 없는 짐승의 희생이 요구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초의 죽음은 죄를 범한 인간에게가 아니라 죄로 인해 드러난 인간의 수치를 가려주기 위해 죄 없는 짐승에게 찾아왔습니다. 이 사건 속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악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피흘려 죽으신 십자가 사건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추악한 죄를 가리기 위한 의의 옷을 만들기 위해 그 자신이 죄가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더러운 죄를 가려주시기 위해 죄 없는 짐승을 희생시키셨듯이 또한 죄 없으신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양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죽옷의 복음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이 죄인의 수치를 가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가죽옷은 인간의 외적 수치는 가릴 수 있었지만 인간 내면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영적 수치는 가리워줄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러한 수치는 인간을 단지 부끄럽게하는 차원을 넘어서 인간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죄인을 대신해 피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의의 옷을 만들어 인간의 근본적인 수치를 가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책감과 수치심을 벗어버리고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우리를 대신하여 보혈을 흘려주신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는 길밖에 없습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시 아담 하와가 희생된 짐승의 가죽 옷을 입음으로 수치를 가렸던 것처럼, 십자가에서 희생의 보혈을 흘리신 그리스도의 의를 옷입는 모든 자들은 지은 죄가 무엇이든간에 모든 죄의 수치를 온전히 가리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롬 12:14) 거룩함을 얻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가죽옷에는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죄를 범한 인간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는 생명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하담 하와는 거기 서서 이 사실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가죽옷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여자의 후손이 당할 상처’를 엿볼 수 있고,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의 의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희생제물이 피를 흘려 목숨을 버렸듯이 구주께서 자신의 피를 흘려 인류의 죄를 대신하신 구속의 역사가 가죽옷의 이야기 속에 배어 있습니다. 피흘림, 이 길만이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이 피흘림의 역사입니다. 일찍이 아담의 아들 아벨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림으로 가인에 의해 피흘려 죽었습니다. 홍수 후 노아는 제단을 쌓고 피흘림의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은 이를 흠향하셨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옮겨온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아 짐승의 피를 뿌렸습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 성막의 번제단에서 드렸던 제사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수백년 동안 수없이 드렸던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의 제사들, 그리고 솔로몬 성전에서 흘려졌던 엄청난 생축의 피흘림 --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의 보혈.

 

아담과 하와는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가죽옷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배웠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아벨의 모습에서 그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희생의 길이요 피흘림의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죽옷의 복음은 이제 우리도 하나님 앞에 흠없이 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여 우리의 삶 전체를 주님께 내맡길 때 하나님은 이를 의(義)로 여기십니다.

우리가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헌신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앞길에 모든 필요한 것으로 넉넉히 채워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시키고자 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 박순오 목사 (대구서현교회)​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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