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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유기성 목사)

하나님아들 2017. 8. 3. 22:35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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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0-58

 

고전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부활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고백한다는 것은 위험하기까지 한 일입니다.

이 말은 기독교는 두 가지 중의 하나라는 말입니다.

유일한 진리의 종교이든지, 거대한 사기꾼이든지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기독교는 거대한 사기꾼 집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기독교를 무너뜨리려면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임을 밝히면 됩니다.

 

부활절과 성탄절은 세상의 반응이 다릅니다. 성탄절은 세상이 함께 기뻐해주지만, 부활절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싫어합니다. 그래서 부활절 믿음을 보고 성도와 세상과 구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로마 당국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님을 밝힐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문은 로마 당국에게 너무나 골치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당국은 결국 예수님의 시체를 내어 놓지 못했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이들만 박해하고 맙니다.

부활의 이야기는 제자들이 조작한 것도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부활의 최초 목격자를 여인이라고 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당시 여자의 증언은 법정에서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처음에는 자신이 예수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부인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무자비한 핍박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이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부활 신앙은 단순히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믿는 것만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에 더 이상 죽음도 두렵지 않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칩니다.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실로 엄청난 말입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 중에 가장 강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망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다가도 "너 죽고 싶어?" 그러면 끝입니다,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그 많은 기적을 보았던 제자들도 "너 죽고 싶어!" 한마디에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고전 15:26에 보면 "마지막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했습니다. 죽음이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죽음을 도구로 삼아 우리를 위협하며 하나님과 등지게 만들고, 죄짓게 만들고, 거짓의 자리로 몰아넣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죽음이 예수님의 부활로 꺾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 순교 할 때도 자기에게 돌 던지는 자를 향하여 기도하고 순교했습니다.

 

로마 당국은 그리스도인들을 맹수, 혹은 화형과 십자가형을 통해서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그들이 죽음 앞에서는 벌벌 떨면서 살려달라고 애걸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찬송 부르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 오히려 로마가 복음화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될 때, 우리의 삶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1944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합니다. 그 후 전세는 급격히 기울었지만 1년 정도 더 지나서야 전쟁이 최종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전 유렵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독일 나치에 점령당한 지역의 사람들은 이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웬일인지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이겼다!”확신이 생겼습니다. 아직 나치의 점령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미 해방된 것 같았습니다.

1945년 중반 싱가포르에 있는 일본 전쟁포로 수용소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포로가 단파 라디오를 통하여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소문이 퍼지자 수용소 분위기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포로 상태였지만, 마치 이미 풀려난 것처럼 웃고 울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부활절을 지키는 우리에게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승리할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아직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승리가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은 단순히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결정적이고 실제적인 영향을 끼치는 날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언제나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노르망디에 미군들이 성공적으로 상륙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던 유럽 사람들처럼,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있음을 알게 된 포로수용소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가슴이 뛰는 것입니다.

여전히 죄와 마귀가 득세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육신이 우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요!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 , 그리고 모든 더러운 죄의 세력이 반드시 꺾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줍니다. 우리는 완전히 죄에서 승리할 것이고, 죽음의 권세를 이길 것이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끝까지 가 볼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에 우리는 이 역사의 마지막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을 사는 마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주님 혼자만의 부활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부활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십자가에서 주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또한 부활의 주님과 함께 연합하였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만으로는 우리가 부활신앙으로 살지 못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믿게 된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 안에 임하였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했을 때, 제자들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지만 공개적으로 담대히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제자 도마는 여전히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습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고기 잡으러 디베랴 바다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대단한 충격을 받았지만 부활하셨다고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기 시작했습니다.

부활을 전한다고 두들겨 맞고, 죽음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을 때는 오히려 소극적이었던 제자들이 순교를 무릅쓰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였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자신들 마음에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이 약속이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실 때 성취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부활 신앙으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의 주님을 눈으로 보고도 여전히 아무 힘이 없었다니까요!

그러나 부활의 주님이 마음에 임하였을 때, 삶이 완전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만 부활의 주님을 모시고 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면 누구나, 언제든 그를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2,000년 뒤 지금 여기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놀라운 일이고 믿기 힘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신 것보다 더 분명한 부활의 증거는 없을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멈추면 금방 느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역사가 멈추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오히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면 금방 느낍니다.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예배 때, 속회 때, 교사회의 때, 성령의 역사를 느낄 수 없는 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데, 그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갈급함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을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여러분,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는 복을 누구에게 위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과 동행하는 놀라운 복을 목사에게 맡겨버립니다.

목사님이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이 말씀해 주세요.

왜 주님께 직접 나아가지 못하십니까?

저는 평신돈데요!

 

유진 피터슨은 [일상 부활을 살라]는 책에서 마귀가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과는 바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평신도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평신도라고 말할 때, 그 말에는 비전문가라는 생각이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무슨 말입니까? 나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비전문가예요. 나는 주님과 관계에 있어서 비전문가예요.

나의 영혼의 문제까지도 전문가에게 맡기려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셔서 우리 안에 오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사는 일조차 예수 전문가를 따라 가는 것으로 대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보다 어느 목사, 부모, 인도자가 더 중요한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실제로 마귀는 대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고 방탕하고 비열하고 간음을 저지르게 함으로 우리 영혼을 파괴하려는 복잡한 계략을 짜내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히려 죄책감에 눌려 지내다가 갑작스런 회개로 주님께로 극적으로 돌이키기 쉬운 것입니다. 마귀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이, 그저 평신도라는 생각만 우리 안에 슬쩍 밀어 넣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의 주님과 직접 동행하려 하지 않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신도 근성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품 계발이나 교회의 복음 전파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약 백 년 전, 영국의 기독교 저술가 체스터턴 (G. K. Chesterton)은 평범하고 기본적인 인간의 활동마저도 전문가들이 독점해 가는 경향에 대해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 찬송하던 것이 그리 옛날 일이 아닌데 지금은 한 사람이 마이크 앞에서 대신 노래를 불러 준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노래를 더 잘 부른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말입니다. 체스터턴은 이렇게 내다보았습니다. 만약 일이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웃을 수 있다는 이유로 한사람만이 웃게 될 날이 오고 말 것이다"

 

여러분, 어떤 사람만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는 전문가가 되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 허락된 은혜요 축복입니다.

 

고전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것이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며 살았던 초대교회의 분위기였습니다. 죽음을 이긴 승리입니다. 그래서 권면하는 것입니다.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예수님의 부활을 정말 믿는 사람은 시련과 문제 앞에서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믿는다면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부활의 주님이 하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 찾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족과 성도들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과 만나고 있다면 부활하셔서 우리 마음에 오신 주님과 함께 그를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사람에게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 살펴야 합니다.

이 믿음이 분명할 때,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는 무서운 죄성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사람을 만나면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죽음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으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을 믿는 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상대가 원수라 해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축복할 수 있게 됩니다.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이제 혼자서 고민하고 결정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결정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임하신 주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 그 분이 하시는 일을 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주님께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그럴수록 주님은 우리의 모든 존재와 행위 속에 점점 더 임재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부터라도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며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 봅시다.

우리가 후회하지 않고 손해 보지 않을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라입니다.

주님이 믿는 것을 믿고, 신뢰하고, 그대로 살고, 실천에 옮기고, 소중히 여길 때 우리에게 승리가 옵니다.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려고 애를 쓰면서 제게 변한 것이 믿음입니다. 나의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면 이기지 못할 것이 없지 않느냐는 확신입니다.

 

죄와의 싸움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될까?” “정말 되는 것인가?” 회의가 들 때가 많습니다.

 

상담 메일입니다.

또 음란한 죄를 지었습니다. 분명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고, 1년 동안 제가 다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기도했었는데, 또 무너졌습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다시 그 사람을 만나고, 또 다시 죄를 지었습니다.

다시 그런 죄를 짓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1년간의 나의 기도와 나의 봉사와, 나의 신앙이 다 교만이었다는 것만 보입니다. 저는 지금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안에 성령님께서 떠나셨을까봐 전 너무 두렵습니다.

저는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또 죄를 진 제 모습이 이젠 너무 힘듭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죄를 이길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니 믿어집니다. 죽음을 이겼는데요!

 

저는 주님 안에 주님은 제 안에 거하는 삶, 주님은 포도나무요 저는 가지인 삶도 될 것을 믿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니까요!

 

전에는 되었으면 좋겠다!”였습니다. 그러나 솔직한 믿음은 되겠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며 살면서 지금은 된다!”로 바뀌어 있습니다.

 

간이 작고 소심하고 완벽주의 성향까지 있어서 무엇이든 좀처럼 추진력 있게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영성일기 사역을 보면 제가 신기할 정도입니다.

안된다고 아우성이고 쓰러지는 이들도 봅니다. 그러나 저는 결국 될 것을 믿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하시는 일임이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기도할 때, 부활의 능력이 임함을 느낍니다.

불가능해 보이는데 믿어집니다.

 

간증: 신선미권사

 

아멘! 말씀 그대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서야할 영적 자리는 부활 동산입니다,

죄를 애통하는 자리도 지나고, 고난의 십자가 동산도 지나고, 부활의 동산에 이르러야 합니다.

기도를 해도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나는 말할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는 회개 기도에서 그치지 말고 속죄의 주님을 감사하는 자리에 서야하고 거기서도 멈추지 말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긴 부활의 환희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죄에서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이기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고 기도합시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소식이 우리를 모든 문제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붙잡고, 이제부터 죽음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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