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 즉 마귀는 사람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본보는 김기동 목사 인터뷰에 이어 독자들의 요청으로 이단 정죄에 관한 실상과 진실을 심층 취재하여 연재하고 있다. 편집자주
쪻 마귀의 속성에 대한 근본적 오해
한국교회나 기존의 신학계가 마귀론 및 마귀의 속성에 관하여 갖고 있는 대표적인 오류 중의 하나가 마귀 즉 사단이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간주하는 내용이다. 성경에 나온 한 구절 또는 두 구절에 대하여 면밀한 주석적 연구나 문맥적 이해 없이 너무도 경솔하게 판단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신구약성경 전체의 입장을 살펴보면 마귀(사단) 또는 천사 일반은 사람의 몸 밖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일관되게 나와 있다. 또 그런 면에서 사람의 몸 안에서 활동하는 귀신과는 속성 및 사역에 있어서 확연히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천사(마귀)가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러한 속단이 정확한 판단을 가로막고 있는 바람에 귀신의 존재에 대해서까지도 너무나 쉽게 사람 속에 들어가 있는 천사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즉 ‘천사는 사람 속에 들어간다’라는 명제와 ‘귀신은 사람 속에서 활동한다’는 명제가 결합되어 ‘귀신은 사람 속에서 활동하는 천사다’라는 명제로 결론지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더 많은 성경적 근거에 따라 귀납적으로 판단한다면 이러한 논증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즉 ‘천사는 사람 속에 안 들어간다’라는 명제와 ‘귀신은 사람 속에서 활동한다’는 명제를 결합하면, ‘천사와 귀신은 속성과 활동양상이 다르다’라는 명제를 거쳐서 ‘천사와 귀신은 다른 존재다’라는 명제로까지 전개될 수도 있다.
따라서 천사(마귀)가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는 마귀론 전반과 귀신론의 핵심에 걸쳐서 가장 중요한 논점 중의 하나인 셈이다.
이미 61회차 글에서 “몸 밖에서 탈출을 도운 천사들”이라는 소제목 아래 천사의 사역은 사람의 몸 속이 아니라 사람의 몸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간단히 살펴본 바가 있다.
특별히 누가복음 22장에 나오는 ‘유다에게 들어간 사단’의 의미를 병행본문인 요한복음 13장을 통하여, 그리고 참조본문인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감옥탈출사건을 통하여 고찰해 보았다.
그 부분은 기존신학이 천사가 사람의 몸 속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견해를 주장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증거로 제시하는 구절이기에, 다시 한번 여기에 부분적으로 인용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 구절에 대한 기존의 해석이 반박될 수 있다면, 천사가 사람의 몸 속에 들어온다는 견해는 성경적 근거가 희박한 추정 또는 편견 또는 착각에 불과하다는 결론도 불가피하다고 하겠다.
쪻 사단의 침입에 대한 병행구절들
천사가 몸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두드러진 성구는 누가복음 22장 3-4절이다.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책을 의논하매”
누가문서의 후반부라고 할 수 있는 사도행전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다.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 5:3) 그런데 여기서는 사단의 존재가 들어간 것이라는 해석보다는 사단의 영향력 또는 사단적인 생각이 가득한 것이라는 해석을 강조하기 위해 별도의 단어(에플레로센)로 표현하고 있다(스탠리 토우센트, 『사도행전』, BKC 23, 두란노).
한편 이 구절들의 병행본문 또는 요한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한복음 13장 2절은 같은 상황을 다른 측면에서 묘사하고 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즉 사단이 직접 몸 안에 들어갔다는 뜻이 아니라, 사단의 생각 또는 사단적인 생각이 마음 속에 들어간 것을 의인화하여 줄여 쓴 것으로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또는 분석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사단이 들어간다는 표현의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는 27절의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요 13:27) 즉 가룟 유다의 배신 이야기의 앞뒤를 사단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는 과정으로 둘러싸서 표현함으로써 포위구조(inclusio)를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유명한 WBC 주석의 요한복음 저자인 비슬리-머리가 요한복음 13:2과 연관하여 제시한 두 가지 해설이다. 하나는 여기에 사용된 ‘마음’이라는 단어가 신약성경적 용례로 볼 때 어떤 존재가 들어가서 머무는 공간적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생각과 의지라는 심리적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구절의 어법을 이해하는데 유익한 병행구절로 요한계시록 17:17을 참조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즉 생각 또는 마음을 넣어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요한적인 정형구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쪻 사단적 생각의 침입과 의인화
‘사단이 들어갔다’는 표현에 대한 누가문서의 의미와 요한문서의 의미는 일치한다고 보아야 한다. 둘 다 사단이라는 존재의 실제적 침입이 아니라 사단이 주는 생각과 영향력의 심리적 침입임을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실체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의인화된 표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겠다.
이것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 16:23)고 말한 원리와 동일하다. 베드로는 사단이 아니라 사단적일 뿐이다. 사단이 베드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단적인 생각이 베드로 속에 있을 뿐이다.
우리는 선악과를 먹은 하와의 범죄현장으로부터 이 모든 상황이 반복되어 왔음을 통찰할 수 있다. 사단(마귀)이 뱀을 이용하여 하와를 유혹하면서 사단적인 생각을 하와의 마음 속에 슬그머니 넣어주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일단 그것을 용납하기 시작한 하와는 점점 더 그러한 생각에 영향을 받고 이끌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하와의 생각과 대답과 행동은 점점 더 사단이 바라는 대로, 사단이 넣어준 생각대로 이끌리게 되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묘하게 왜곡되기까지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결국 사단적인 생각이 사단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었고, 사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성경은 ‘사단이 들어갔다’는 의인화된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예수를 팔게 된 가룟 유다의 경우에도, 또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봉헌물의 일부를 감추게 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에도, 동일한 원리와 과정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사단이 그 마음에 가득하여’ 즉 ‘사단적인 생각이 그 마음에 가득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단적인 행동을 감행했던 것이다.
쪻 몸 밖에서 일어나는 사단의 활동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성구들을 제외하면 천사가 몸 안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성구는 전혀 없는 셈이다. 오히려 몸 밖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주는 성구만 신구약성경 곳곳에 나타나 있다.
광야에서의 시험 직후 예수를 몸 밖에서 수종드는(마 4:11) 천사들의 사역이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시에 예수를 몸 밖에서 돕는(눅 22:43) 천사들의 사역을 볼 때에도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합당하다.
특히 61회차 글에서 살펴 본 베드로의 탈출기사는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감옥탈출사건은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롯의 소돔탈출사건과 유사하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은 천사의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하여 모범답안을 제시해주는 것과 같다.
두 경우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천사가 롯의 손을 잡아서 이끌어낸 것(창 19:10, 16-17)이나,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우고 이끌어낸 것(행 12:7-9)이나, 천사가 그들의 몸 안에서 그들을 움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몸 밖에서 그들을 끌거나 인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천사가 사람의 몸 안에 들어올 수 있다거나 사람의 몸 안에서 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해 왔던 기존신학의 천사론(귀신론)을 재고해 보도록 만든다.
천사는 사람의 몸 안에서 활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몸 밖에서 활동하는 존재임을 성경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구절들은 귀신의 정체를 몸 안에 들어온 천사로 간주하는 기존신학의 견해가 타당하지 않음을 반증하는 소극적(negative)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천사는 처음부터 물리적인 육체가 없는 영적 존재로 지음을 받았고 영원히 그런 상태로 존재하며 그런 방식으로 활동한다. 그들이 사람의 연약하고 제한적인 물리적 육체 안에 들어올 이유가 전혀 없다. 천사가 가진 일정한 정도의 초월적 능력으로 인하여, 사람의 육체 속에 굳이 들어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지배하는 것에 관한 한, 몸을 지배하는 것보다 마음과 생각과 의지를 지배하는 것이 더 근원적이고 절대적임을 성경은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하와의 경우처럼, 가룟 유다의 경우처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처럼, 사단은 사람의 몸 밖에서 사단적인 생각을 넣어줌으로써 사람을 근원부터 억압하고 지배하는 것이다.
전용관부장 jjk6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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