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절망을 희망으로(사38:1-8)

하나님아들 2016. 6. 2. 16:13

2008.08.24대민(주일낮)  

 

*절망을 희망으로(사38:1-8)

 

오늘의 시대를 보면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절망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인생고에 의한 것입니다. 즉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뉴스와 각종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들을 보면 경제의 전망이 암훌하게만 느껴집니다. 앞으로 차츰 나아진다는 기미도 볼 수 없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현실을 보면 여전히 부정적이고, 절망적입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것들은 신바람 나는 이야기들 보다는 메마르고 거친 소식들뿐입니다. 현실은 보이는 것마다 절망이요, 들리는 소리마다 절망이요, 나타나는 현상들이 모두 절망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마음에는 절망이 가득하고, 우리의 생각 속에는 낙심이 가득합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하나님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타자를 배워서 회사의 비서로 채용됐습니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서 손가락이 썩어가는 무서운 병에 걸렸습니다.

점점 병이 악화되어 손가락 마디를 하나씩 잘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인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절망에 빠집니다.

그때 목사님이 찾아가서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문을 닫으실 때, 다른 문을 열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믿고, 열심히 치료를 받은 결과 부인은 병에서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회사의 직원으로 복직되었습니다.

그녀는 절망의 골짜기를 지나 소망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내 손가락이 잘려지는 것이 무섭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내 자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가장 큰 염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정지 표시가 아니라 방향 표시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의 상황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정지신호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예비하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라는 방향표시입니다.

그 방향을 따라 순종하면 놀라운 은혜와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절망의 상황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희망을 포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희망이 있어 보이는데 절망 가운데 빠지는 사람이 있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데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절망은 금물입니다. 절망은 우리의 미래를 희미하게 만듭니다. 하나님 자녀 된 성도들에게도 절망적 상황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망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절망하지 말고 이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전진의 기회로 삼아 절망을 극복하며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감당할수 없는 위험천만한 일을 만났을 때 가 있는데 이에 반응하는 3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원망하고 불평을 토하는 사람 둘째, 체념하는 사람, 셋째, 절망하고 낙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는 본인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절망적 상황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할지라고 희망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없는 사람은 어려움 당할 때 두려워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오히려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찾으므로 평화를 누리를 복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은 우리에게 정망적인 상황이 찾아온다 하여도 이 절망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들은 내 앞에 캄캄한 어려움이 오고 절망적인 환경 가운데서도 희망을 찾는 길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전환시킬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함께 알아보면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히스기야왕이 병들어 죽게되었는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그 생명이 15년이나 연장 받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왕은 25세에 왕위에 등극하여 29 년동안 성군 다윗 시대에 버금가는 태평성세를 이루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산당을 헐고 우상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는 앗수르왕의 침략을 받자 유대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부터 회개하고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를 쳐서 일시에 멸망시키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왕에게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여 주었습니다. 이 말씀은 죽음을 준비하라는 최후의 통첩이었습니다.

사실 세상에서 죽음보다 더 절망적인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어떻게 할것입니까?

 

1.선한 일을 추억하며 극복할 수 있습니다.(3)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너무 중요합니다. 아무 의미 없이 적당하게 살아간다면 아무것도 남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무엇이든 남긴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뜻있는 삶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될 것이요 사람 앞에 칭송을 받는 삶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한 일을 많이 하게 되면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그 선한 일 까닭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히스기야는 이 선한 행실을 추억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 것일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행한 선한 일을 살펴보면 히스기야는 이전 선왕들이 의지하던 모든 것, 즉 산당, 주상, 아세라 목상, 등을 제거하는 데 철저함으로서 훌룡한 종교개혁의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대한 깊고 진실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참된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하나님앞에 추억할 만한 선한 일을 남겨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까? 히스기야가 선왕들이 섬기던 우상을 타파하며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처럼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타파하고 하나님앞에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바른 행실로도 하나님앞에나 사람앞에 보일 것이 있어야 합니다.

착한 행실을 해야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불신 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광 돌리게 끔 만들라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착한 행실이란 우리의 성실함과 충실함과 희생과 사랑과 인내 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착한 행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증거하는 수단이 되고, 말씀에 대한 착한 행실은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실천함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착한 행실은 그리스도인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 즉 그의 외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백마디의 말보다는 조그마한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로 믿음을 보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한 삶을 통해 불신자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래도 이 세상에서 악한 일을 남기는 것보다는 선한 일을 남기는 것이 하늘나라에서도 상급이 클 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사람들에게 이름이 남겨지는 일이 될것입니다.

그리고 착한 행실은 분명히 추억할 만한 일입니다.

사실 동물들에게는 추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가 없으니 미래도 없는 것입니다. 옛일을 추억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창조된 사람만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사람만이 거울을 가지고 자신과 삶을 들여다보고 과거를 회상할 수 있습니다. 추억은 우리에게 그리움을 안겨다 줍니다.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것은 지나간 일들을 추억하면서 자기 자신을 다시금 뒤돌아보는 것에서 옵니다.

하지만 좋지 못한 과거는 추억하기 싫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여생동안 선한 일을 많이 남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히스기야도 절대 절명의 순간에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선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였습니다. 착한 행실을 추억할만하게 남긴 사람은 현재의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과거를 추억하며 더 나은 미래를 바라 볼 수 있습니다.

 

2.통곡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3)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우리가 참으로 답답한 일을 만나면 어떤 모습이어야 하겠습니까?

아마도 통곡하며 우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통곡이란 소리높여 슬피우는 것을 말합니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자식을 잃고 통곡하는 여인의 모습을 연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통곡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입니다.

화재로 인하여 살던 보금자리를 잃고 통곡하는 가족들을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히스기야에게 찾아온 상황도 통곡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입니다.

앗수르왕 산헤립이 침략을 해와서 위기를 만났는데 도무지 막아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히스기야왕이 하나님앞에 나아가 적왕이 보낸 선전포고의 편지를 펼쳐놓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가 이성을 구원하겠다."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천사를 보내셔서 그 밤에 앗수르의 군사 18만 5천명을 하룻밤에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산헤립왕을 니느웨성으로 돌아가게 하여 죽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안심하고 두다리 뻗고 살만한데 갑자기 무서운 질병이 찾아 온 것입니다. 이때 왕의 나이는 고작 39세였습니다. 그런데 한참 열심히 살아볼려고 하는 무렵에 그의 앞을 질병이 가로막고 선 것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그를 삼키려고 다가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망의 상황에서 히스기야가 한 일은 바로 통곡하는 기도였습니다.

통곡은 회개보다 더 강한 통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옛날 베드로가 그러했듯이 통곡하며 회개하는 기도는 이처럼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도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 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이사야 55:7)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덧 입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 즉 회개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령에 통회하는 자를 권고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이사야 66:2).

히스기야는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은 영혼에 쌓여 있던 온갖 더러운 오물을 씻어냈습니다. 그리고 영혼을 순수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눈물은 세상의 헛된 마음을 버리고 그 자리를 주님으로 가득 채우는 기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즉 이렇게 울부짖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곧바로 응답을 주셨습니다. 이사야가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미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돌이켜 왕에게로 나아가 병은 낫고 15년 더 살 것이라고 전하였습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이 이렇게 빨리 나타난 경우는 그렇게 흔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울부짖는 사람들의 기도에 귀를 잘 기울이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어 달려 기도하면 대체로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빠르게 응답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4백년 동안 고난 당한 끝에 그 고난 속에서 울부짖어 구원을 호소하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하여 보내셔서 그들을 거기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부르짖는 두 소경의 간청을 들으시고 그들의 눈을 뜨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통곡하는 기도란 이 세상을 향한 모든 소망이 끊어진 상태에서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기도함을 말합니다. 통곡하는 기도는 우리가 평소에는 좀처럼 할 수 없는 기도입니다. 별 문제가 없고 절박한 상황이 아닌 때 우리는 통곡하며 울부짖어 기도하지 않습니다. 통곡하며 울부짖는 기도는 모든 생각과 힘을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시켜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입니다. 통곡하며 울부짖는 기도는 여러 가지 제목을 가지고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오직 한 가지 급박한 위기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통곡하며 울부짖는 기도는 불이 났을 때 다급하게 119에 전화를 걸어 숨넘어가는 소리로 불났다고 신고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면 119 소방대원들이 만사 제쳐놓고 달려오듯이 하나님도 울부짖는 기도에 빠르게 응답하셔서 구원하여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히스기야 왕처럼 위급하다고 울부짖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의 선왕이었던 아하스 왕은 이스라엘­수리아 동맹군이 침략해 올 때 '하나님만을 조용히 바라고 기다리라'고 하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을 듣지 않고 성급하게 앗시리아에 원군을 청하므로 유다 나라 전체를 그 속국으로 만드는 우(愚)를 범하였습니다. 통곡하며 울부짖는 기도는 평소에 하나님을 공경하고 의지하던 신앙의 받침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통곡하며 울부짖는 기도가 즉각 응답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평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한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눈물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고 베드로의 통곡이 하나님께 기억되었듯이 히스기야의 눈물도 하나님께서 보시고 하나님의 긍휼을 베푸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펄젼은 '성도의 눈물은 천국 가는 고속도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눈물은 막힌 길을 뚫는 다이나마이트와 같고 닫힌 문을 여는 만능열쇠와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사방이 막힌 것과 같고 모든 문이 닫힌 것과 같은 상황을 만날 때는 무엇보다도 지난날의 죄악을 깨끗히 내어 놓고 회개, 자복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려야 히스기야와 같은 은총을 덧 입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이 통곡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 계십니까? 히스기야처럼 통곡하며 울부짖는 기도를 통하여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으로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3.기도에 응답을 확신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5)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네가 네 수한에 십 오년을 더하고”

 

히스기야는 기도하면서 결사적인 기도를 하면서 반드시 응답이 있을 것으로 확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러한 기도를 원하고 계십니다.

마가복음11장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고 하였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잘 받는 비결 중에 하나가 미리 받은 줄로 믿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백세나 되어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고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로마서 4장 20절)고 하였습니다.

병자를 위해 기도할 때도 반신반의하고 기도 받으면 안됩니다. 야고보서 1장 5-6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절이 중요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모압과 암몬과 마온 사람들이 연합 군대를 모아 유대의 여호사밧왕을 치러 왔습니다. 기도의 사람 여호사밧왕은 애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하고 기도한 후에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하는 음성을 듣고 받은 줄 믿고 거룩한 예복을 입고 “여호와께 감사하세”하며 찬송을 부르며 나아갔더니 하나님이 복병을 두어 연합군대를 다 쳐서 멸하고, 연합군대가 서로 치고 받으며 다 죽어 버렸습니다. 받은 줄로 믿고 감사하며 찬송했더니 이런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단, 정욕으로 잘못된 동기에서 기도하고 억지로 믿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있는 자신을 봅니다. 하나님앞에서 기도하면서 자신을 보면 자신의 속셈과 위선까지 다 보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바로세웁니다. 그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할 때 진실을 말하게 되며, 그러기에 비록 더딜지라도 선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도한 사람의 문제를 위해서 배후에서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그 어떤 대화보다 중요하고 효과적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문제의 매듭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남이 아닌 자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대화를 하면 문제가 부작용 없이 풀려나가게 됩니다.

성도는 기도의 위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는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기도는 응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네 기도를 들었고”라고 한 것은 이미 받은 줄 믿고 기도 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힘들고 어렵습니까?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기도하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뀔것입니다.

기도로 모든 난관을 이기고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대민성결교회
글쓴이 : 진리수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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