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03대민(주일낮)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9-10)
성도는 거룩한 백성이요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의 긍휼을 얻은 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얻은자들의 모임입니다. 긍휼이란 하나님의 속성의 하나로서 비참한 상태에 있는 자를 불쌍히 여기는 일입니다. 성도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가 사람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은 체면문제가 걸려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면 그것만큼 복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긍휼을 얻은자 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자의로는 절대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의 열심이나 간절함으로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야 합니다.
로마서9장16절에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아무도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죄의 형별을 받아 마땅한 자들입니다. 우리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진정으로 거듭났다면, 구원의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수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택된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계십니까? 아무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을 놓고 자랑할 권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잘났다고 뻐기는 엘리트들을 선택하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선택된 민족이지만 결코 우수한 민족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에는 자랑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리석고 연약하며 멸시받은 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습니다.
성도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 손에 달렸습니다.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거부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지옥의 자식이고 그 사람이 버림받은 자요 선택되지 않은 자입니다. 이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진리입니다. 이미 이 사실을 항의하며 부당하다고 하는 그 자체가 자기 자신에게 있는 선한 것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아래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긍극적인 목표는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도 아니고 달음박질한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 받은 자는 이것을 아는 자입니다. 내가 힘씀으로 축복을 받고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를 사랑할 자로 불러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담아내는 도구로 여길 뿐입니다. 헌금을 해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담아내는 도구로 생각하고, 예배를 드려도 마찬가지고 봉사를 해도 역시 같은 생각으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의 행함은 뭔가 받아내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자로서 자신이 받아 누리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표현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때문에 모든 일을 즐거움으로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행동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의지와 애씀으로 행동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자 하신 자를 사랑하신 사랑으로 행동하며 살아가는 성도로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긍휼을 얻은자의 삶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긍휼을 입은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 책임은 교회밖에 있는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있도록 전도하는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긍휼을 먼저 얻게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 여러가지 봉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것이 소극적인 일이라면, 보다 적극적인 것은 바로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명령을 그의 전 생애동안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말씀하셨고, 다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 전에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지상 최대의 명령이요, 인간이 해야 할 최고의 과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에서 복음을 전하고, 동네에 복음을 전해야 함은 물론이요, 이 민족의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서 힘써서 긍휼을 얻은자로서 책임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긍휼을 얻은자는
1.하나님의 백성입니다.(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택하셔서 하나님 자녀로 삼아 주신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긍휼은 얻은 하나님의 백성은 택하신 족속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이유가 성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7장6절 이하에 보면
첫째, 기업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택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6절) 기업은 자기의 소유입니다. 자기 생명이요, 재산이요, 자기 삶 전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24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업이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의 내용이 얼마나 심오한지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당신의 가장 큰 농사가 뭐냐고 물으면 부모는 자녀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은 자기 아내라고 하기도 하고, 자기 남편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자기가 가장 사랑하고 관심이 많은 그것이 바로 자기 기업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가장 관심을 기울여주시고, 가장 귀한 사랑으로 입혀준 자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둘째, 복 주시고 번성케 하시려고 택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로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13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고 번성케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예비해두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비해두신 그 복을 우리가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긍휼을 얻는 하나님의 백성은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는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왕같은 제사장의 위치에 우리를 놓으셨습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들의 중간에 서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사람들로서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제물을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라틴어로 제사장은 '다리를 놓아주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구속받은 그의 백성들이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사이에 서서 다리를 놓은 역할을 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가 왕적 제사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섬기면서 또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왕적 영광에 동참한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아무 때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최고도로 발달한 나라에서도 대통령이나 수상을 만나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까다로운 절차를 걸쳐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중간에 누구를 통하지 않아도 직접 만나도록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아무나 받을 수 없는 긍휼을 얻는 성도들만의 고유한 특권입니다.
또한 긍휼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한 나라입니다.
거룩한 나라란 성별된 나라란 뜻입니다. 우리가 거룩하지 못하지만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비록 죄와 허물로 얼룩져 있지만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어주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백성답게 말과 뜻과 행동이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나라에는 다스림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마귀가 우리를 다스리면 불행입니다. 불신자는 마귀가 다스리고 있습니다. 믿는 우리마저도 마귀가 다스리려고 공격을 합니다. 그래서 마귀의 공격을 이겨야합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평안해 집니다. 우리가정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우리교회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을 때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나라에는 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인 성경에 의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혹시라도 성경 말씀을 벗어나지 않기를 애써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 때에 행복해지고 은혜를 받습니다.
2.어두운데서 불러 낸자들입니다.(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두움은 분별을 방해하고 볼 수 없게 만듭니다. 어두움은 질서를 방해합니다.
어두움은 사탄이 활동하는 최적의 순간이요 최적의 상황입니다.
어두움은 죄를 지을 가능성과 유혹이 왕성해져 인간을 나약하게 만듭니다. 죄를 지으려는 사람이 어두운 곳을 찾고 어두운 곳을 못 찾으면 빛을 가리고 죄를 짓습니다.
어둠은 신분을 감추기에 충분한 조건입니다. 이런 실제의 어두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 상징적인 어두움입니다. 고통과 괴로움, 수고와 슬픔, 풍랑과 좌절을 어두움에 비교합니다. 시편 90편에도 "인생 70이요 강건하면 80이지만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얘기를 하지만 그 인생의 자랑거리는 수고했던 것, 고생했던 것 그리고 슬픔당했던 순간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생 중에도 밤(어두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요즘같이 어려운 때, 보통 어려움이 아닌 정말 캄캄한 삶의 어두움에 부딪혀서 눈물 짓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부부생활도, 자녀 교육도, 사업도, 취업도, 생각대로 되지 않고 한숨만 나오는 어두움에 잠긴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육체의 질병으로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눈물나며 가슴 찢고 싶은 사연 없이 사는 사람이 이세상에 어디있습니까? 누구에게나 기막힌 사연은 다 있습니다.
또한 신앙생활에도 밤(어두움)이 있습니다.
주일 성수 잘하고, 십일조 생활 철저히 하면서 이름없이 빛없이 봉사하며 정말 칭찬받을 만하게 신앙생활하는 예수님의 사촌 같은 사람에게도 어두움과 고통, 괴로움은 있습니다. 때로는 기도 많이 하는 사람에게도 있고, 때로는 장로님들에게도 목회자에게도 어두움이 있습니다. 또한 더 좋은 은혜의 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연단시키는 시험의 밤이 있습니다. 욥처럼 너무 잘되고 평안하면 사탄의 질투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자신의 교만과 나태로 인해 시험을 불러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매맞는 어두움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가 예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빛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주님을 등지고 어두움을 향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일상의 밤이나, 인생의 밤 그리고 신앙의 밤은 어두움이라는 생각이 앞서 칙칙함과 스산함과 그리고 음침함 그래서 피하고 싶은 고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밤이, 어두움이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봐도 알 수 있고 우리의 삶을 통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어두움’은 ‘사탄의 속박, 죄악의 사슬, 사망과 지옥의 권세’를 말합니다. 이런 어두움의 세계에서 우리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신 권능으로 어두움의 권세 즉 사탄의 속박과 죄악의 사슬, 사망과 지옥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3.선전자로 부르신 것입니다.(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중에서 우리를 택하여 주셔서 왕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그의 소유된 백성을 삼으신 목적이 바로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여 하심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선전한다 에 해당하는 원어는 어떤 사실을 밖으로 드러내어 “보고하다” “발표하다”라는 뜻을 기본적인 의미로 하며 “감춰져 있던 어떤 사건의 진상이나 알려지지 않은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잘 알도록 공표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해야 하는 우리는 이전까지 감추어져 있던 진실을 과장하거나 꾸며서 알리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의미와 보내신 자의 의도대로 세상 사람들에게 정확히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한 마디로 선전(P.R.)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대형 건물 옥상 위에는 으레히 대형 선전 네온싸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길거리엔 각종 선전 프래카드로 길을 메우고 있고 또 시청료를 달달이 꼬박꼬박 받아가는 K.B.S. 방송도 순간 순간 선전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품 선전은 물론 자기 선전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의 긍휼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해야 합니다. 선전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자랑한다는 말 과 같습니다.
여려분 한 주간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 그 은혜를 얼마나 자랑하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받은 은혜를 자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선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9장24절에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하나님을 바로 깨닫는 것이 과연 자랑할만한 것이며, 또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자랑하며 남에게 전할 때 그것이 전도가 되어 다른 사람까지 구원하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지혜와 용맹과 부함은 하루 아침에 이슬처럼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예례미야 9장23절말씀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로 쌓아 올린 바벨탑은 무너지고야 마는 것이며 어제의 부자가 오늘 빚더미에 앉아서 쫓겨가는 것을 볼 때에 용맹도 인간의 부함도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자기의 지혜나 용맹이나 부함을 절대로 자랑하지 말고 오히려 그 지혜와 용맹과 부함을 주신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의뢰하고 자랑하시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자랑할것이 많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돌이켜 보아도 용서가 되지 않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대속해 주심으로 천국 백성이 된 것은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그것만도 감사한데 질병과 사고 많은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아시고 일용할 양식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행복한 가정을 주시고, 직장을 주시고, 건강을 주심으로 이렇게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은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세상에서 인간들은 하찮은 일을 하고서도 생색을 내며 자기를 자랑하기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그처럼 큰 은혜를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고 지속적으로 내려 주시면서도 사람들과 달리 은밀하게 당신의 존재를 감추시고 계시는 것은 이슬과 같은 은혜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받아 누리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불신앙이요, 배은망덕한 죄인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손해 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고 있는 그 자신의 마음속에 기쁨과 평화를 찾아볼 수 없는 불행인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나에게 주어진 좋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베풀어 주신 은혜임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에는 항상 감사과 더불어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얻은 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마음껏 선전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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