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
벧전 1:9
지난 7일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재미교포인 홍혜선 전도사의 한국 전쟁 예언과 그것을 믿고 피난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노아의 방주를 탄 사람들' 편이 전파를 탔다.
이날 방송에 따르면 홍혜선 전도사는 지난해 9월 '한국전쟁메시지'라는 제목으로 "2014년 12월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일어난다."는 주장을 담은 영상을 게재했다. 또 홍혜선 전도사는 일부 한국 교회를 돌며 '12월 한국 전쟁설'을 전파했다. 홍 씨는 "북한군이 땅굴을 통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며 "아이들을 잡아먹고, 여성들은 제2의 정신대로 만들 것"이라고 예언했다. 또한 그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피난을 떠나라"고 말했고, A교회 목사와 신도 30여명, B교회 목사와 신도 약 50여명 등이 미국, 태국, 캄보디아, 필리핀, 피지 등 외국으로 피난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홍혜선 전도사의 전쟁 예언은 이뤄지지 않았고, SNS에 홍 씨를 비판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홍 씨는 '그것이 알고 싶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3월 26일 주님이 온라인에 전쟁 예언을 올리라고 해서 올렸다. 주님이 한국에서 발표하라고 했고 한국에서 집회를 하라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 피난민들의 처지에 대해 "그 가족 문제는 그 가정이 알아서 해야 한다. 어떻게 똥 기저귀까지 갈아주느냐. 자기들끼리 빨리 소통을 해서 해야지. 왜 남의 가정사를 내가 신경을 써야 합니까. 자기가 원해서 피난간 것이고 자신들이 불안해서 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의 믿음의 모습이 잘못되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왜 홍혜선의 전쟁예언을 믿고 외국으로 피신했을까? 외국으로 나아간 사람들을 찾아간 기자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12월에 전쟁이 나지 않았는데 왜 돌아가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각종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 징조이고 그래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스스로 불안해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의심하지,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지켜 주시고, 원수 앞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믿음의 결국은 영혼 구원”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믿음의 결국은 영혼구원
우리의 믿음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예수 믿고 복 받아라. 예수 믿고 성공해라. 예수 믿고 잘되고 행복한 것이 우리의 믿음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목적은 영혼의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방면에서 쓰고 있습니다.
행 16장에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찬송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구해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큰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리고 바울과 실라가 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간수가 죄수가 도망한 줄 알고 자결하려고 할 때 바울과 실라가 그를 말렸습니다. 그 때 간수가 묻습니다. 행 16: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바울이 대답하기를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간수가 물은 구원과 바울이 대답한 구원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간수는 옥문이 열리고 죄수가 다 도망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당시 법에 의하면 죄수가 도망하면 간수는 그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간수가 말하는 구원은 죄수들의 탈옥에 책임지고 받을 형벌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일 것입니다. 반면에 바울과 실라가 말한 구원은 하나님과의 화해의 차원에서 말하는 영혼 구원이었습니다.
막 5장에 나오는 혈루증 앓는 여인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12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12년 동안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재산을 다 써버렸고, 이제 지쳐서 더 이상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여인은 많은 무리 가운데 끼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막 5:28-29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여인이 생각한 구원은 질병에서의 치료였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훙 예수님은 그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하시는 말씀이 막 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입니다.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시지만 영혼의 구원이라기 보다는 질병에서의 구원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승리할 때 “구원받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즉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말이 전쟁, 질병, 죽음 등 삶의 재난과 불행에서 건짐받았을 때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질병, 가난, 전쟁, 환난,...에서 건짐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가난에서 구원받을 수 있고, 믿음으로 질병에서 구원받을 수 있고, 믿음으로 불행한 환경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잘 곳이 없어서 길가에서 잠을 잤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익지 않은 무화과 열매를 찾았고, 벼 이삭을 비벼야 했습니다.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주머니, 전대, 신발을 챙기지 못하도록 한 이유는 그들이 그런 것들을 준비할 형편이 안되는 가난한 자였는지도 모릅니다.
질병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질병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질병이 있었습니다. 사단이 주는 가시라도 표현하였습니다. 그것은 아프고 고통스러운 질병이라는 의미, 그리고 복음전파에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될 정도록 심각한 질병이라는 말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질병에서 구원받기를 간절히 세 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질병에서 놓임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질병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음성을 듣습니다. 약한데서 온전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반드시 믿는다고 해서 질병에서 구원받고, 믿는다고 해서 가난에서 구원받고, 믿는다고 해서 어려운 환경에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질병과 가난과 어려운 환경에서 구원하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서 이기고 승리하도록 우리를 이끄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 있으니 영혼의 구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영혼이 구원받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벧전 1:10-12에 보면 더욱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의 결국이 영혼의 구원이라는 것을 예언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살피던 것인데, 그들 안에 계신 성령께서 알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통해 일어남을 알았으며, 성령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하여금 알리게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 성령충만한 전도자들에 의해 전해진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이것이 우리가 전할 복음입니다. 예수 믿고 복받으세요. 이것은 세상이 원하는 복음입니다. 이것을 가르쳤기 때문에 악한 이단과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서 잘못된 길로 나가는 믿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영혼이 구원받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결국, 결론입니다.
2. 영혼이 구원받는 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베드로는 왜 믿음의 결국은 구원이라고 하지 않고 믿음의 결국은 영혼 구원이라고 하였을까?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왜 베드로는 구원이라고 하지 않고 영혼구원이라고 했을까? 땅에서의 구원에 집착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구별해 쓴 것이 아닐까? 예수 믿으면서도 여전히 땅에서, 육신의 일들, 가난, 질병, 저주스러운 환경, 고난 등에서 건짐 받기만 소망하는 자들에게 진정한 구원은 영혼의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국으로 영혼 구원은 결국 잃어버린 첫 사람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며, 에덴의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이는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영혼 구원이라고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부어넣으셔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을 에덴에 두시고 하나님과 함께 하며, 에덴의 모든 것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허락하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어서는 안된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뱀의 꾀임에 빠진 하와가 먼저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고 아담에게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그 불순종의 죄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들의 분순종의 죄에 대하여 분명한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창 3:16-17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이 임신의 고통으로, 수고로 바뀌었습니다. 다스릴 땅에 저주스런 땅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이 찾아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두로 도는 불칼로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인간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서 쫓겨난 저주와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은 그 인간을 구원하시길 원하셨습니다. 구원은 저주와 죽음의 자리에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의 실패로 저주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들은 두 번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셔서 에덴을 회복시키시고, 생명나무의 은혜를 입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결국인 영혼 구원입니다.
영혼 구원은 에덴회복입니다.
에덴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하나님과 함께 있는 곳입니다. 천국은 무엇입니까? 황금길, 수정성이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천국을 말할 때에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시고, 지금 여기에 있다고 하시며, 미래에 있을 천국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마음이 천국이고, 하나님을 모신 그곳이 천국이며, 하나님이 계신 영원한 그곳이 천국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에덴에서 쫓겨난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위해 십자가 보혈을 흘리신 주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영혼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가 기쁘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송이 즐겁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의 시간이 행복합니다.
영혼구원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잃었던 생명나무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에게는 생명나무가 주어졌었습니다. 그런데 불순종한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생명나무에 대해서 성경은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생명나무를 저버리고 사망이 이른 인생들에게 영원한 생명나무를 회복시키는 것이 영혼구원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른 인생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요 3:15-16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을 믿을 때에 영생을 얻습니다.
요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영생을 가졌기에 육신의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영생을 가졌기에 땅의 것들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영생을 가진 자는 모든 것은 가진 가장 부요한 자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믿음의 결국은 영혼구원입니다. 축복이나 성공이나 행복이 아닙니다.
성도의 축복은 영혼구원, 성도의 성공은 영혼구원, 성도의 행복은 영혼구원입니다.
영혼구원받은 성도로 하나님과 날마다 함께 하는 성도,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 참된 소망 가운데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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