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세례

하나님아들 2016. 4. 8. 23:19

그리스도와 함께 받은 세례

로마서 6:1~11

바울은 5장까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교리(Justification)를 언급하고 이제부터는 성화의 교리(Sanctification)를 논하고 있습니다.
중생은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라면, 성화는 점진적인 것으로 변화와 성숙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로 그 이름이 생명록에 올라가게 될지라도 그리스도의 온전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신앙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러한 믿음의 고백대로 산다면 이는 살아있는 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 전에는 자만할 수가 없었기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2)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끊임없는 성장 속에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1. 거듭난 믿음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1절).
이 말씀이 어느 절과 연관되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5:20),
2) 죄와 은혜에 관해서 하신 말씀(5:21),
3)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5:16),
4)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3:8),
이상의 예들은 5장까지 기록된 모든 말씀을 배경으로 하여 새로운 변론을 펼쳐나가려는 시도인 줄 압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1-2절).
원문으로는 결코 아니라는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2절).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씀은 우리가 죄악의 뿌리에서 자라지 않고 그 영향력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효력이 상실된 법이라면 저촉 받을 필요가 없지요.
저가 중국 연변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마친 후에 저를 안내했던 0집사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공산혁명이 일어나고 집단 농장제도가 실시될 때에는 우리가 군대식으로 일을 하고 양식은 배급을 받았으나 여름이 되면 양식이 다 떨어지고 말았는데 80년대 문화혁명이 일어나면서 토지를 농부들에게 나눠준 다음부터는 양식이 남아돌고 생활도 여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중국에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선교사들의 활동은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체제 하에서도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도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어 무너진 교회가 재건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참된 신앙은 어떠한 이념이나 체제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육신의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롬 7:1).
남편 있는 여인은 아내의 도리를 지켜야 하나, 남편이 죽은 다음에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들도 죄의 멍에에서 벗어날 때 진리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게 됩니다.

2. 세례의 의의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3절).
세례가 무엇입니까? 세례는 주님께서 승천하기 전날 밤 분부하신 성례입니다(마28:19).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으로써 예수의 새 언약 곧 대속의 은혜와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례의 의미를 살펴보면,
1) 잠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4절).
여기서 바울은 물속에 잠기는 의식을 통하여 세례 받은 관습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울이 의도하는 목적은 세례를 받을 때에 신앙고백을 통해서, 예수와 함께 장사되므로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게 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가 어떻게 될까요? 진리의 진수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왜 우리가 흠모해야 합니까?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하였습니다.
2) 씻는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3:21).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사하소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사유의 은총을 의미합니다.
3) 충만하게 한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마3:11).
이는 주의 이름으로 받을 성령의 세례를 말씀한 것입니다. 그 은혜가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9:23)는 말씀은 세례와 함께 임하는 주의 권능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인이 고치지 못하는 의사의 병도 고쳐주십니다. 저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인 우리 교회 M집사님이 본인의 건강이 나빠져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의사가 병이 들면 누가 치료를 해주지"하고 농담을 하였지만 의사라고 병들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신장이 안 좋아 휴가를 얻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출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주일 저녁 예배를 드리고 심방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십시오. 주의 권세와 능력이 임할 줄 믿습니다.
4) 예수와 연합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예수와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4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은혜를 감사드리십시오. 나에게 비록 의가 없고, 공로가 없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의가 내게 임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5절)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례를 통해 주님과 한 몸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죽으심이 내 죽음이 되고, 예수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칭의와 성화
칭의가 중생과 관계되어 있다면 성화는 성장과 관계가 됩니다. 우리가 주의 은혜로 거듭남과 동시에 근본적으로는 예수와 연합을 이루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중국 여행 때 둘째 주일을 계림에 있는 중국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강대상 뒤에 임마누엘을 중국말로 "以馬內利", 또 영어로 "God be with us"라는 글귀를 붙여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에 우리는 한국에서 온 목사들이요, 또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수립하여 우리나라 대통령이 중국을 다녀가고, 중국에서는 리펑 총리가 서울에 왔던 일과, 장쩌민 주석도 오리라는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은 복음과 무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로 우리가 중국 땅에 갈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므로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감사할 일은 과거에는 그들이 우리 민족의 원수였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같이 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그러나 동일한 은혜를 힘입었다 할지라도 성장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경건 생활에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예수의 인격을 닮아 가는데 육신의 생각대로 치우치면 영이 병들고 죽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취업 중인 외국 근로자들은 2년간 벌어 본국에 돌아가면 집을 사고 자동차도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해마다 임금 투쟁을 연례행사같이 하면서 저축은 늘려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소비 풍조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내실을 갖추지 못한다면 국제 사회에서 설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영이 병들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임무에 따라 진리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4. 예수의 지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6-7절).
진실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거듭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육신을 입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온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두 가지 의지로 인한 갈등으로 번민하였습니다. 의의 병기로 주님께 헌신하십시오.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19절) 하였습니다.

5. 부활의 소망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8-9).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다스릴 법이 세상에 있을까요? 없습니다. 사망도 그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11절).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오 자유, 오 자유 나는 자유하리라 비록 얽매였으나, 나는 이제 자유하리 자유 주시는 내 주님께"
예수의 지신 십자가는 인류의 죄 값을 지불한 것이므로 믿는 사람은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은혜를 망각하지 마십시오. 은혜로 사는 몸 이제 어떻게 살아야 옳을지 스스로 결정하십시오. 취사선택의 자유는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21-22절).
우리가 은혜를 힘입은 사람으로 불원간 주님 앞에 설 때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생각해 보셔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십시오. 원한 맺힌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물질이 부족하다고 믿음까지 작은 사람이 되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가난한 자에게 더 큰 믿음을 주십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창조의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주의 뜻 이룩한 후에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아멘 -







출처 : 칼빈과 성경산책
글쓴이 : 주님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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