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조용기 목사] 그리스도와 함께 (고후 4:10-11)

하나님아들 2016. 4. 8. 23:07

2013. 6. 23. 주일설교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장 10~11)

 

 

 


 


< 서론>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개별적인 노력과 힘쓰고 애씀으로 신앙적 성숙에 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시고 그 영혼이 떠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데는 우리로서는 보탤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자란 점이 있어야 우리가 보태고 뽑지만 모자란 점이 없이 다 이루었을 때는 뽑고 보탤 것이 없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의 구원을 위해서 33년 동안 이 땅에 와 계셨고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면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뺄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믿고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항상 그것을 우리 마음속에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는 구원을 위해서는 인간에게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 요구하는 것입니다. 세상종교치고 여러분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그러면 구원을 받는다는 조건을 안 세우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기독교만은 다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기 때문에 다 이루어 놓은 것 할 일이 없습니다. 10번을 물어도 다 똑같은 대답입니다. 주님, 우리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할 일 없다. 내가 다 이루었다. 잠시 있다가 또 주님, 우리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할 것 없다. 내가 다 해버렸다. 믿고 의지만 하라.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주님이 다 이루어 놓은 것 우리가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믿고 감사할 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테텔레스타이. 이 말은 상업적인 용어로 사용된 말이었습니다. ‘테텔레스타이’라는 단어가 쓰여진 문서가 발견 되었는데 거기에 뭐라고 했느냐면 ‘완전히 돈을 다 지불했다. 빚지지 않았다.’ 그 내용이 덧붙여 있었습니다. 완전히 지불 되었다는 영수증의 의미로써 테텔레스타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의 빚을 90%만 갚은 것이 아니고 99.9%만 갚은 것도 아니고 완전히 갚아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수 이름으로 나오면 하나님이 아무리 눈을 닦고 보셔도 죄가 안보입니다. 허물과 죄를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테텔레스타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마지막 고통을 당하시고 난 다음에 그 마음속에 여러분을 보시고 우리를 보시고 테텔레스타이. 내가 다 지불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참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큰 은혜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 본론>
1.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아버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조상은 누구입니까? 아담이지요? 아담 안에서는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죄인이요 죽었다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새로운 인류 조상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새로운 인류를 생산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옛 아담의 자손들은 예수님이 끌어안고 십자가에서 죽을 때 같이 법적으로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어서는 안돼요. 우리 옛사람이 그리스도를 모시므로 함께 죽은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할 때 혼자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나를 안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죽고 주 안에서 부활하셔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천국 내 천국, 예수 보좌 내 보좌, 하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1절에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완전히 하나된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앉아있지만 실제 하나님이 법적으로 볼 때는 예수를 구주로 모신 사람은 예수의 죽음을 덮어쓰고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장사지내고 부활할 때 예수님을 따라 함께 부활해서 이미 하늘 보좌에 앉은 자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내가 예수 믿는 다는 것은 마음으로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인즉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곤란할지 몰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역사하신 계획과 노력이 거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로 6절에 보면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예수 믿고 난 다음 물로 침례를 받지 않습니까? 그 이면에는 뭐냐면 예수님 안에서 함께 무덤에 장사지내 버리고 또 물에서 올라 올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활해서 일어났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 침례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침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장사지낸 바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해서 이제 예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아닌 예수 사람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 사람. 나는 세상 사람이 아니고 예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보십니다. 마귀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꼭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 성경에 보면 역시 그것을 강하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죽으면 갖다가 파묻어 버리지 죽은 사람을 집안에 같이 데리고 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법적으로 죽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법적으로 호적에 빨간 줄이 그어버리고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사람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새사람을 하고 사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새사람을 가지고서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산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과정을 우리 마음속에 잊지 말고 늘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나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는 분이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힐 이유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이유는 나 때문에 또 그렇다고 당신 왜 십자가에 죽었습니까? 우리 목사님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돼요. 어느 목사님이 할머니 한 사람을 물로 침례를 베푸는데 문답을 하는 사람에게 올바른 대답을 하기 위해서 가르쳤습니다. 할머니 예수님이 누구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혔나요? 그러면 날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렇데 대답하세요. 또 물었습니다. 할머니 내가 물어볼테니까 대답하세요. 예수님이 누구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습니까? 날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됐습니다. 꼭 그렇게 대답하십시오. 침례받기 전에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할머님, 예수님이 누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나요? 우리 목사님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다시 나만 위해서 못 박힌 것이 아니라 할머니 위해서도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요. 그것 압니까? 하니까 우리 목사님이 그렇게 안 가르쳤는데요? 그렇게 되면 정말 잘못된 신앙고백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조용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힐 뿐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누구든지 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 사람의 일생의 십자가를 다 주님이 통해서 죄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날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깨달아 알면 우리가 늘 마음속에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9시간 동안 몸을 찢고 피를 흘리고 고통을 당할 때 주님께서는 나 때문에 고통당했다. 날 위하여 십자가에 중한 고통을 당했지 자기를 위해서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늘 마음속에 상상하고 믿고 여러분 스스로 입술의 고백을 늘 해야 되는 것입니다. 너는 예수님 통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과거 청산하고 죽은 사람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너는 살아난 사람이다. 깨달아 알면 머릿속에 십자가를 바라보고 상상하고 입술로 자꾸 고백하면 이 신앙이 굳어지고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했다는 사실을 늘 말하면서 그것을 머릿속에 상상해보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우리가 머리에 상상한 것을 입술로 시인하면 실제적인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는 것 이것은 우리 생애 속에 안 보이는 것이 보이도록 만드는 기적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주님의 진리를 마음속에 그려보고 믿고 고백하면 실제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예수 믿은 사람도 이 과정을 통하지 않으면 눈에 안 보이는 것이 현실생활에 보이도록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여러분이 마음속에 꿈이라도 분명히 그려보고 그리고 그것을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바라보고 믿고 말하자. 아주 간단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운명을 바꾸는 기적을 불러오게 되는 것입니다.

2. 율법이냐 은혜의 선물이냐
우리는 항상 우리의 삶속에 율법을 통해서 구원 받았느냐 은혜를 통해서 구원 받았느냐 이것을 생각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 자신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주인이 됩니다. 율법은 내가 나를 섬기고 살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내가 걸머진다. 어릴 때부터 장성한 사람이 되어 죽을 때까지 모든 삶의 책임은 내가 걸머진다. 그러므로 나는 내 마음대로 산다. 내가 주인이니까 누가 시키는 대로 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산다. 아담이 선악을 스스로 분별하겠다는 것도 그것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악을 분별해서 주는 대로 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겠다. 나도 하나님처럼 좋은 것은 내가 좋은 것은 좋고 내가 나쁜 것은 내게 나쁘다. 하나님 판단 받기 전에 내가 판단해서 살겠다. 그렇게 반역의 생각을 갖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반역하여 쫓겨나온 천사장인데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하다가 버림받은 제1호인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이 좋다하면 자기가 나쁘다고 하고 하나님이 나쁘다고 하면 자기가 좋다고 하고 마음대로 삽니다. 자기 정신을 아담에게 불어넣어 주어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마귀와 똑같이 하나님을 반역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는데 아담은 하와와 더불어 선악과를 먹고 죽었습니다.
창세기 3장 4절로 5절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뱀이라고 하여서 기어다니는 뱀 말구요. 마귀가 뱀의 형상을 입고 온 것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과 똑같이 되어서 동등하게 인생을 살게 된다고 마귀가 꾀어서 거기에 넘어가서 그들은 독립을 선포하고 만 것입니다. 독립을 선포한 사람은 이제는 모든 행동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해요. 하나님의 법을 자기 힘으로 지켜야 돼요. 자기 힘으로 안 지키면 아무도 도와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짐도 다 내 짐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도 다 내 짐이니 내가 짊어져야 되고 일도 다 내 일입니다. 내가 다 해결해야 되고 모든 일에 내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은혜는 주님에게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고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께 내어 맡깁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를 책임져 주셨으므로 주님이 주인입니다. 우리 인생에.. 내가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기 때문에 주님이 내 책임을 다 짊어져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짐을 진 것도 주님이 대신 짊어져 주시고 내가 해야 될 일은 주님이 대신 해 주시고 우리는 그 결과에 다 이룬 결과만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한다. 다 주님이 맡았습니다. 주님 내가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다 맡았는데 네가 할 일은 없다. 그래도 뭐 있을 껄요? 없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주인이라. 네가 다 내게 맡겼은 즉 나는 내가 다 이룰터이니까 나중에 열매만 거두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짐을 지고 고달픈 사람을 보고 율법주의자가 되어 있으면 네가 너 위해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죄의 값은 너가 지불하라.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종이 되면 주님이시여! 이 죄짐을 어떻게 할까요? 내가 다 맡아서 청산했으니 너는 평안히 하나님의 은혜를 즐기면서 살아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어주사 나의 책임을 대신 짊어져 주시므로 하나님 앞에 설 때 마음에 죄책감이 없이 가슴을 딱 펴고 설 수 있는 것은 죄도 하나님이 짊어지시고 짐도 하나님이 짊어지시고 문제도 하나님이 짊어지시고 예수님 안에서 다 청산했으므로 우리는 다 이룬 예수님의 날개 밑에 편안하게 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설 때 오늘 죄 없습니다. 완전히 씻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수고와 무거운 짐도 주님께 맡겼으면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야훼 야훼라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네가 할 일은 부르짖는 것이지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은 내가 다 맡아서 하고 너는 내게 부르짖어 부탁한 것을 내가 완전히 이루어서 주는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죄도 청산해 버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도 주님께 맡겨서 주님이 우리 위해서 일을 해주시고 죽는 것도 우리 대신 죽어주시고 사는 것도 우리 함께 살아주시고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이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살아주기 위해서 이 자리에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을 건널 때 물이 엄몰하지 못하게 하시고 불이 붙을 때 타지도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배워야 할 것은 언제나 내가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그것을 마음에 생각하고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에 휴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염려하고 근심하고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갖기를 원치 않습니다. 가져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맡았는데 우리가 왜 또 짊어져야 되는 것입니까? 모든 것을 다 주님께 기도로 맡기고 감사하고 찬송하고 사랑하고 순종하면 주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 내가 다 책임진다. 내가 다 돌보아준다. 걱정하지 말아라. 그렇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참된 신앙을 가지려면 주님 안에 안식을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 주님이 쉬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쉴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을 믿고 쉴 줄 아는 것을 배운 사람은 참된 신앙의 도리를 배운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도 늘 불안, 공포, 벌벌 떠는 것은 일을 자기가 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할 일은 맡기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구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책임을 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주의 약속을 믿고 맡기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레마를 주십니다. 주님이 맡았다. 걱정하지 말아라. 레마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레마를 따라서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3.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기적
오늘 우리의 참 삶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과 같습니다.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 그로써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일은 주님이 십자가 걸머지고 다 책임져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하나님이 그렇게 취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그러므로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예수님께서 날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니 내가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께서 내 속에 들어와서 나를 대신하여 살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신 주님을 믿고 사는 것이 우리 크리스챤인 것입니다. 그저 믿습니다만 하면 여러분은 천국의 백성이 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죄에서 해방되고 허물에서 놓여남 받는 것에만 적용하지 말고 병들었을 때도 똑같습니다. 내가 병에서 고침 받으려면 먼저 합법적으로 내 병을 청산했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깨달아 압니까?

4. 이 과정을 삶에 적용하라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다고 말하죠.
구약 이사야 53장에서 보면 저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 슬픔을 당했다고 말했지요.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내 병을 전담해 주셨다. 테텔레스타이. 갚았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해야 될 일은 십자가에서 내 병을 다 짊어지고 청산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마음속에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생각이 나는 죽겠지. 나는 못살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안돼요. 십자가를 바라보고 저 십자가에 예수님이 나의 질병을 다 짊어지고 고통당하여 청산했다는 것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이 내 병을 청산한 것을 늘 바라보고 그 다음에는 마음속에 기도하면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날 위하여 질병을 짊어지고 고통을 다 청산했으니 이제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기적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난 다음에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앉으나 서나 나는 병이 나았다. 나는 건강해졌다. 암은 떠나갔다. 관절염은 떠나갔다. 보고 믿고 말하는 것 이를 통해서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다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그러므로 오늘 병드신 분들은 예수님이 날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병을 걸머졌다는 것을 깨닫고 여러분이 앉으나서나 여러분 자신을 볼 때 병자로 보지 말고 십자가를 통해서 바라보고 나은 것으로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가장 건강하고 쾌활한 사람이 된 것을 마음속에 늘 꿈꾸고 바라보고 그 다음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믿었으면 그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버스를 타고 갈 때도 시인하고 내릴 때도 시인하고 집에 들어가서 밥 먹을 때도 시인하고 잠잘 때도 시인하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얻었느니라. 그러면 하나님의 치료하는 능력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능력이 성경에 가득하게 약속되어 있을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잘 유도해서 내게 이루어지도록 해야지 구경만 해서는 소용 없습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이 된 것처럼 예수 십자가에서 병을 앓은 것은 내 병을 대신 짊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바라보고 이제 건강하게 된 내 모습을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고백함과 동시에 치료의 능력이 여러분 몸속에 따라 들어오는 것입니다. 한번 해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참 평안하게 살게 될 것인 것입니다. 그것만 아니라 여러분 우리가 축복 문제도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나를 믿는 백성은 머리가 되고 꼬리되지 않고 아래 내려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 나는 모든 것이 꼬리가 되고 머리가 안되고 늘 남에게 동냥해야 되고 남에게 동양해 주면서 살지 못하고 이러냐. 마음이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내 생애 속에 실천되도록 과정을 밟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저주와 가난을 대신 짊어졌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이는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하나님이 아담이 범죄 했을 때 저주했습니다. 땅을 저주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못사는 것입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저주를 대신 짊어졌습니다. 어떻게, 저주받은 자는 십자가 못 박아 달아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매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저주가 예수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다 청산되었다는 것을 바라보고 그리고 난 다음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내 저주를 담당했으므로 예수님 축복 내 축복, 아브라함의 축복 내 축복, 그렇게 여러분께서 믿고 그 다음에는 입술의 말을 늘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께 복 받은 삶을 산다. 머리되고 꼬리되지 않는다.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는다. 자꾸 자기를 축복하고 복 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선언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가난과 실패를 걸머진 것을 마음속에 그려보고 그 다음에 그것을 믿고 그 다음 입술로 중얼거리면서 고백하는데 별 볼일 없을 것 같아도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실제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축복이 보이는 내 세계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은 여러분이 그러한 마음에 사차원의 영성을 협조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여러분 주위에 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약속이 내 것이라는 이유를 알아야 돼요. 예수님이 채찍에 맞았으므로 혹은 십자가에 매달리므로 내 저주를 담당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리고 알고 난 다음에 그것이 내 것이라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내가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잘 된 것을 바라보고 그 다음에는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한평생 목회하면서 세계에서 최대 교회를 이룩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늘 교회 빈자리가 없이 꽉 들어찬 것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바라보았었습니다. 늘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믿고 나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의 목회자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이루어주셨습니다만 오늘날도 그것이 습관이 되어가지고서 어느 교회나 어느 강단에 가서 빈자리를 보면 안절부절하고 편안하지 않아요. 자리가 꽉 차야지 비어 있으면 마음이 평안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언제나 다른 교회 가면 목사님 보고 당신 현재 자리가 비었으니 마음속으로라도 꽉 들어찬 교회를 바라보십시오. 바라보면 본대로 그 다음 믿으시고 믿으면 믿은 대로 그 다음 입술로 고백하십시오. 고백하면 고백한데로 될테니까... 다른 사람이야 뭐라고 말하든 나는 꽉 들어찬 교회 그것을 마음속에 바라보고 그것을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어떤 사람은 듣고 난 다음에 당신 좀 돌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좋은 방향으로 돌았지 나쁜 방향으로 안돌았으니까 그대로 하라고.. 그대로 하면 그대로 되는 거라구요. 오늘도 여러분 제 말을 들으면서 저렇게 말을 쉽게 하는데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 저렇게 하느냐. 정말 될까? 제가 새파란 신학교 졸업생이 와서 말을 한다면 그렇게 질문해도 좋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50년의 세월을 목회하면서 지나온 세월이라구요. 다 시험해 봤다구요. 박수쳤으니 여러분 박수친 대로 될지어다. 여러분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을 약속해 주셨는지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주님이 얼마나 여러분 가난한 것 싫어했든지 여러분 가난을 대신 짊어지고 고난당하고 가난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보고 이런 말을 해요. 조목사님이 자꾸 예수 믿으면 축복받고 잘 산다고 하는데 예수님이 다른 성경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라고 말했습니까? 부자가 천당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조목사님 식으로 다 되면 부자는 다 천당에 못 올라가지 않습니까? 내가 왜 천국에 가면 부자가 와글거리는데? 천국은 부자가 사는 곳인데.. 그 말은 부자가 돈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천당 못들어간다는 말이지요. 가난한 사람은 쉽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 의지하면 부자로 만들어 줄줄 알고서 쉽게 믿지만 이미 부자가 된 사람은 내 구할 것이 없는데 뭐 모자란 것 없는데 뭘 믿으려고... 전도를 안 받으니까 구원 못 받는다는 것이지 부자가 천당, 그냥 부자기 때문에 그냥 못 들어간다는 말은 그렇게 해석하면 안된다고 말했었습니다. 이 성경 우리가 고린도후서 8장 9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하나, 둘 셋.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서로 맞바꾼 것 아닙니까? 저의 부요함을 여러분에게 주고 여러분의 가난함을 저가 맡고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었다고 했으니까 오늘 여러분 위해서 가난하게 된 것입니다. 또 누가 묻거든 조용기를 위해서 가난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말하지 마시고 날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 그는 자기의 부요함을 내게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성경 참 기막힌 성경입니다. 그가 부요하신 자 아닙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가난할 수 있습니까? 부요하신 자로서 산과 들에서 주무시고 얻어 잡수시고 이 세상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한 것은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셔서 자기의 부요가 여러분에게 넘어가게 하기 위해서...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여러분은 항상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내 가난을 다 담당했으므로 나는 부요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꿈꾸십시오. 여러분을 바라볼 때 부요하게 된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시라구요. 그리고 난 다음 믿으십시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고 입술로 고백하십시오. 나는 부자다. 나는 잘산다. 나는 도와주면서 산다. 나는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다. 나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 무엇이든지 일이 술술 잘되어 가는 것입니다. 문제가 풀리고 좋은 일이 생기고 나중에 지나고 보니까 부자가 되어 있더라구요.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이 실제로 살아서 여러분을 위해서 역사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 우리 이것도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이 땅을 저주해 버렸는데 그래서 우리가 일어서고 앉은 곳마다 가시와 엉덩퀴가 나고 괴로운 인생을 살았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저주를 담당해서 청산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였다. 야~ 그러면 여러분이 어떠한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조용기는 복 받은 사람이다. 여러분은 복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복 받은 교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한국에 많으면 한국이 복 받은 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의 유명한 대학교 경제학 박사가 한국에 와서 강의할 때 자기가 가만히 조사를 해보니까 신흥국으로써 부자가 된 나라마다 부자가 되기 전에 교회가 왕성하고 예수 믿는 신도의 수가 많아졌더라. 그렇게 공산주의자가 그의 입술로 고백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 받은 사람이 많으면 그 나라가 복 받은 나라가 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주님이 간구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이 오늘 집에 들어가거든 복 받은 사람이 들어간다. 그렇게 말씀하십시오. 밥상을 대하시면 복 받은 사람이 밥상을 대한다. 잠자리에 들어가거든 복 받은 사람이 잠자리에 들어간다. 입술로 축복하면 그것이 실제로 나타나기 때문에 바라보고 믿고 말한다. 이 법칙은 다 행할 수 있으므로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바라보고 믿고 말한다. 그러면 되는 거에요. 나중에 또 잊어버리지 말구요. 그러면 우리가 축복도 받고 병도 그 법칙으로 낫고 축복도 그 법칙으로 축복도 받고 천당 가는 것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천국가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를 통해서 대속했다는 것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라보고 꿈꿀 때 지옥에 가있는 나를 꿈꾸면 안돼요.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있는 내 자신을 늘 상상하고 꿈꾸고 그리고 믿고 나는 천국 백성이다. 나는 영생복락을 얻었다. 사는 것과 죽는 것 다 겁나지 않는다. 그렇게 담대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
그러니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고 사는 것이 이미 초월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생명이니 우리는 예수님을 모셨으므로 생명을 얻어서 죽음도 겁나지 않고 사는 것도 겁나지 않습니다.
골로새서 3장 1절로 4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이제는 예수님과 내가 일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천당 내 천당, 예수님 보좌 내 보좌, 예수님의 삶 내 삶. 이와 같이 엄청난 새 인종이 된 것입니다. 아담 족속이 아니라 예수 족속이 된 것입니다. 아담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담으로 죽음을 상속받은 우리가 예수 안에서 죽고 부활 영생을 상속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우리가 얻은 축복은 도저히 말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믿음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율법적으로 나의 행위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노력해서 내가 힘써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순종하므로 주님께로부터 죄 사함도 받고 의롭게 되고 믿고 순종하므로 모든 허물도 청산되고 거룩하게 되고 믿고 순종하므로 병도 낫고 믿고 순종하므로 축복도 받고 믿고 순종하므로 천당도 가고 모든 것이 믿고 순종하므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므로 예수 믿는 신앙생활은 알고 보면 정말로 편안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주님이 대신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을 믿고 순종하고 선물을 받아서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다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헬라어 단어 하나쯤 외워 놓으면 참 재미있습니다. 테텔레스타이. 무슨 말하거든 테텔레스타이를 아냐? 다 이루었다. 주님이 날 위해서 구원도 이루시고 치료도 이루시고 저주에서 해방도 이루시고 천당도 이루었다. 테텔레스타이. 그러면 다 이루어 놓았으니 내가 할 일이 없지 않느냐.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 결론>
신학자 매튜 헨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서 십자가의 승리를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는 여러분의 치료입니다. 그의 고뇌는 여러분의 평온이고, 그의 신음은 여러분의 노래입니다. 그의 아픔은 여러분의 위로이고, 그의 수치는 여러분의 영광입니다. 그의 죽음은 여러분의 생명이고, 그의 고통은 여러분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났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지면 십자가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거꾸러 생각하면 돼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천당으로 데려가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를 영원히 살리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고 채찍에 맞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병의 채찍에 맞지 않게 하심이고 예수님이 굶주린 것은 우리가 부자가 되어서 잘 먹고 잘 살려고 만드신 것이요 모든 고통은 예수님이 여러분과 날 위하여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강한 믿음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하고 환경을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한 복음의 은혜를 우리가 알고 깨닫고 믿음에 굳게 서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보면 예수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은즉 그러므로 믿음에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죄의 종, 허물의 종도 되지 말고 병의 종도 되지 말고 저주의 종도 되지 말고 죽음의 종도 되지 말라. 예수님이 주인이 되었은즉 우리는 다른데 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품안에 안겨서 예수 이름을 가지고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누리라고 주신 상속을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출처 : 참좋은제자들교회
글쓴이 : 이서영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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