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
찬송가 : 415장 십자가 그늘 아래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본문 : 로마서 6장 1-14절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시작하면서 - 복음을 깊게 안다는 것의 의미
한 때 모 개그프로그램에서 한 개그맨이 ‘그까이거 대충~’이라는 말을 유행시켰습니다. 아파트 경비 복장으로 나와서 누가 어떤 것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까이거 대충~’이라고 말하면서 아주 쉽게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현대인들이 어떤 문제를 깊게 살펴보기를 싫어하고 대충 대충 하는 성향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복음을 접할 때도 ‘그까이거 대충~’이라는 식으로 복음을 접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가다가 사람들이 ‘목사님들은 그 간단한 복음을 왜 이렇게 어렵게 설교를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듣습니다. 복음이란 예수님 믿고 구원받는 간단한 것인데 뭐 그것을 그렇게 머리 아프게 어렵게 설명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그렇게 알고 있다면 우리는 정말 복음을 대충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로 이렇게 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10년, 20년 복음을 듣고도 여전히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으로만 안다면 우리는 복음을 정말로 대충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깊게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그 풍성한 삶과 유익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 복음 안에 잠기어 얼마나 풍성하고 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깨닫고, 그대로 사는 것이 복음을 깊게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이 바로 이 깊은 복음의 은혜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
우리는 지난 시간에 로마서 5장 말씀을 통하여 복음이 우리 신분과 본질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전에 우리 안에서 죄와 사망이 왕노릇 하였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 안에서 은혜와 생명이 왕노릇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그렇게 우리의 영혼에서 일어난 본질적인 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울서신을 읽다보면 한 가지 의아한 점을 느끼게 됩니다. 바울이 계속해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또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죽과 부활하려고 힘쓴다고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3:10-11)”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바울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직접 예수님을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바울이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단지 바울뿐만이 아니라 ‘우리’라는 단어를 쓰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세례를 받을 때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는다고 말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3절)”
이 말씀은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우리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새생명으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례는 단순히 의식적인 세례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그 분을 인격적으로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예수 그리스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했던 그 경험을 우리도 그대로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생소합니까? 이 말이 어렵게 들립니까? 그런데 오늘 이 진리를 말하는 어투를 보시기 바랍니다. 3절 끝에 보니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 성경에는 이 부분이 맨 앞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이 진리를 이야기하기 전에 당연하다는듯이 ‘너희가 이 진리를 알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6절에는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당연히 알고 있는 것처럼’이란 말입니다.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는 것은 그 당시에 복음이 전파되면서 당연히 전파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믿고 있는 진리였다는 것입니다. 안타갑게도 2000년 전 제대로 된 성경책 한 권 없었던 로마 사람들도 알고 있었던 복음의 기본진리를 이 시대 사람들은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내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나의 신분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있고, 깨닫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일평생 이 진리를 모르고 단순히 예수님 믿고 천국 간다는 것만 알고 신앙 생활한다면 우리는 너무나 큰 은혜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는 이 진리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5절에서 이렇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는 것을 ‘그리스도와의 연합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5절)”
이 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가 그 분과 연합하게 되어 그 분의 십자가의 죽음과 경험을 우리의 영혼과 삶에서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복음의 깊은 진리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또 우리 삶에서 실현하도록 노력해야하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크게 두 가지 진리로 나누어집니다. 5절 말씀에서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5절의 상반부에는 ‘만일 우리가 그의 죽이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절의 하반부에는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십자가에서 죽음을 경험하면 또한 반드시 그와 함께 부활도 경험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무엇인지를 6절부터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먼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 6절과 7절에서 바울은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 가운데서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여기서 옛사람이란 누구입니까? 아담과 연합되어 있어서 아담의 죄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죄의 지배를 받고, 죄의 종노릇을 하던 그 옛사람을 말합니다. 자기 중심성에 사로 잡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오직 이 세상의 쾌락만을 쫓아가던 그 옛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실까요?오늘 말씀에 보니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고, 이제 그런 자들의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왜 죽으셨습니까? 가장 먼저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단순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내가 믿고, 영혼 구원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내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다운 자유와 행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주신 은혜인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 시간 이 말씀을 깊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이 얼마나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죽으셨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그 모진 삶을 사시고, 결국에는 벌거벗겨 십자가에 메달리게 되었습니다. 로마군병들의 채찍에 맞고, 사람들의 조롱을 당하고 결국에는 손과 발이 못박히며 처절하게 십자가에 메달리며 물과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이런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당했을까요? 우리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값진 피를 흘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단순히 우리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뿐만 아리라 우리의 삶까지도 구원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복음을 내가 간직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이제부터는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4절에 보니 우리가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 무덤에 장사되었다는 것입니다. 장사되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완전한 죽음을 확인하고, 무덤 속에 묻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의 모든 관계가 끊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 중에서 죽은 사람에게 빛을 받으러 다니시는 분이 있습니까? 죽은 사람에게 억울한 일이 있어서 무덤에 따지러 가는 분이 있습니까? 물론 그 자녀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채무나 원한을 이어 받기는 하지만 죽은 사람은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산 사람들이 억울하고, 손해 보는 것이지 죽은 사람은 그 모든 억울함과 손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죽으면 이제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몸부림치던 것, 세상에서 지키려고 했던 알량한 자존심, 내가 세상을 살아가던 인생의 모든 방식들이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전에는 죄의 종이였습니다. 죄는 우리의 노비 문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려먹고, 끌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죄가 아무리 노비문서를 가지고 있어도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것은 신앙이 깊은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에게만 해당되고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아!’ ‘그렇게 살면 얼만나 좋겠어 그런데 나는 아직 그 정도의 신앙에는 이르지 못했어!’ 라고 말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하고 있고, 장사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단어들은 모두 과거형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모든 사람은 내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란 내가 그렇게 십자가에서 내 옛사람이 죽었다는 믿음 가운데 사는 사람입니다.
이 말이 때로는 믿겨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내 자신은 여전히 옛사람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내 영혼이 구원받았다는 것이 눈에 보입니까? 그러나 믿음으로 믿고, 내가 영혼을 구원받을 자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여전히 나는 옛사람의 모습으로 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이것을 믿고, 그 믿음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복음의 진리이고 우리가 믿고 행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또 한 가지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8절과 9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라(8-9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내 옛사람이 십자가에 죽었으면 이제 예전의 나는 죽고 새로운 사람이 사는 것입니다. 내 안에 나를 주장하던 옛자아가 죽고 이제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사는 것에 대해서 여러가지 측면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예전과의 삶과 단절된 삶이라고 말합니다. 즉 예전에 사망이 나를 주관하고 있었고, 죄와 함께 있었다면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예전의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새로운 목적으로, 새로운 방법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의 삶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결혼하신 후 혹시나 총각이나 처녀행세를 하신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너무나 젊은 얼굴때문에 이런 오해를 받으신 분도 있겠지만 우리가 결혼을 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한 여자의 남편이 되면 이제 다시는 그 예전의 시절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설사 이혼을 한다고 해도 그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제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의 쾌락을 즐기고, 세상에서의 성공만을 위해 살던 그 예전의 내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예전의 나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울이 6장의 부분을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이 5장에서 우리가 죄의 지배 가운데서에 은혜를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면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하자’ 복음을 비웃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은혜를 더 하게 하려면 죄를 더 지으면 되겠네(1절)”
이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2절)”
그리고 바울은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여 다시는 죄 가운데로 가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전의 나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자신의 신분과 본질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닌ㅁ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6:11)”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일의 삶에서 내가 죄에 대해서 죽어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에 대해서 살아 있는 사람으로 여기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매일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은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내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다는데 나는 여전히 옛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느냐고 말할지 모릅니다. 여기서 몸의 문제가 나옵니다. 바울은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분명하게 말한 후 이제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2-13)”
여기서 바울은 ‘몸’과 ‘지체’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가 비록 영혼이 구원을 받았으나 이 세상을 사는 몸의 구속은 아직 받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과 동시에 우리의 육신까지도 구속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은 여전히 죄의 습관 가운데 남아 있습니다. 육신이 죄의 습관 가운데 남아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육신이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이원론적 사상이 아닙니다. 몸이 여전히 죄된 삶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었지만 내 육신은 여전히 죄 가운데 살던 옛사람의 행실과 생각과 말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신학교를 갔을 때 신학교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와 있었습니다. 일류대학을 나온 학구파들, 세상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온 사람들, 또는 장사나 사업을 하다가 온 사람들, 또는 거친 삶을 산 사람들까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 그들이 예전의 방식대로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사역을 하는 것 이였습니다. 학문적이었던 사람은 학문적으로 사역을 하고, 거친 삶을 살던 사람은 거친 방법으로 사역을 합니다. 장사나 사업을 하던 사람은 장사나 사업의 방식으로 주의 일을 합니다. 영혼은 구원받았고, 사명이 주어졌지만 여전히 몸에 익은 방식대로 사역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학생들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건만 여전히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 가졌던 세상 방식대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쓰던 거친 말과 날카로운 말을 하고, 예전에 가졌던 혈기를 그대로 부리고, 예전에 쓰던 세상적인 방식과 계획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전에 세상에서 즐기던 쾌락과 정욕을 내 육체가 그대로 기억하고 있어서 계속해서 그곳으로 나를 돌이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 옛 생활습관과 생각, 자존심, 교만등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다시는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내 육신과 세상에서의 삶 가운데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날마다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육신이 내 삶을 주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나를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 카이퍼라는 신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의 이 세상의 삶이 끝나기까지 옛 사람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이다.”
또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결국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또한 우리 삶에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십자가에 내 죄성을 못 박는 사람만이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며 진정으로 복음을 깊이 알고, 그 복음대로 사는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끝맺으면서
말씀을 맺으면서 제가 한 가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교실에서 맨발로 뛰놀다가 게시판에서 떨어진 압정을 하나 밟았습니다. 그 순간 교실 전체가 난리가 났습니다. 제가 엄살히 하도 심해서 죽을 듯이 소리를 지르며 울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모두 모여들어서 큰일이 난 줄 알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압정을 빼려고 하는 순간 제 발을 건들지도 못하게 울었습니다. 얼마나 정신없이 울었는지 압정이 빠졌는지도 모르고 울었습니다.
여러분! 발에 압정 하나 박히는 것도 이렇게 아픈 것입니다. 그런데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창에 옆구리가 찔려서 죽는 것은 얼마나 아픈 일일까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런 아픔을 동반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처음 교회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던 순간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갈등과 아픔, 그리고 핍박이 있었습니까? 그것이 내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아픔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픔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에서 매일같이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참아야 하고, 그리스도인이기에 손해를 보아도 참아야 하고, 그리스도인이기에 때로는 아픔도 소리내지 못하고 혼자 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기쁨과 은혜는 바로 이렇게 십자가에서 못 박힐 때 있는 것입니다. 내 손과 발에, 그리고 내 심령 깊숙한 곳에 십자가의 상처들이 남겨질 때 진정한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가 맛보아야 할 가장 깊은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갈라디아서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6:14)”
여러분들의 심령과 삶 가운데 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의 여정에 십자가의 흔적이 있기를 바랍니다.복음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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