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편 84:1~12
(여는 말)
2주 전 토요일에 청소년 열린예배 마지막 시간에 『불의 전차』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영화는 1924년 파리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영국의 100m 달리기 대표로 출전하였던 '불의 전차'라는 별명을 가진 에릭 리델의 이야기였습니다. 많은 영국인들은 에릭 리델이 틀림없이 금메달을 따서 나라의 명예를 드높여 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00m 예선 경기를 주일날에 치르기로 결정하자 에릭 리델은 출전을 포기하고 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배신자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격려하기 위해 왔던 왕자도 섭섭함을 표현했습니다. 에릭 자신도 3년동안 쉬지않고 훈련해왔던 날을 생각하며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에릭 리델은 개인의 영광이나 나라의 영광보다 신앙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주일날 경기를 포기하였습니다. 대신에 그는 며칠 후 자기의 주 종목이 아닌 400m 경기에 출전하기로 되었습니다. 400m 경주에서 에릭 리델은 처음부터 힘차게 선두를 달렸습니다. 사람들은 저러다가 심장이 터지겠다고 염려를 하였으나 에릭 리델은 끝까지 힘차게 달려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고 '불의 전차'라는 그의 별명을 더욱 빛냈습니다.
에릭은 고국으로 돌아가자 많은 영광을 버리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1925년 중국에 선교사로 간 에릭은 20여년간 중국인과 함께 생활하고 일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했습니다. 1943년 다른 1800명의 적대국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본군에 의해 포로가 되어 2년간을 감옥에서 보내다가 종전을 눈앞에 둔 1945년 2월 뇌종양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에릭은 많은 사람들에게 육상선수로 기억되지만 자신이나 그를 잘 아는 친지들은 그가 크리스챤으로서의 경주를 하는데 온 생애를 바친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에릭처럼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자기 만이 지키는 가치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에릭이 평생을 지키며 헌신했던 그 가치,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 주는 축복을 시편 84편을 읽으면서 함께 찾아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시편 84편은 3연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째 연은 1~4절, 둘째 연은 5~8절, 셋째 연은 9~12절입니다.
먼저 첫째 연을 보시겠습니다. 첫째 연은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1절에서 '주여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고'라고 탄성을 올리며, 2절에서는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내 영혼이 쇠약해질' 정도라고 합니다. 3절에서는 심지어 주의 제단에 보금자리를 만든 참새와 제비를 부러워합니다.
이 노래는 명절에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입니다. 원래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자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입니다. 그러나 이 노래를 부르는 모두가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자의 복을 바랍니다. 다윗은 시편 23:6에서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 또한 여호와의 집에 거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으신 분입니다. 에덴동산에 있을 때 아담은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도 어디서나 그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과의 대면 장소를 점차 제한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시내산에서 만나주신 하나님이 이제 성막을 짓게 하시고 성막 안에서만 만나주십니다. 그것도 제한된 사람과만 만나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후에는 성전에서만 만나주셨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성전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자기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 곧 성전의 앞뜰을 사모하여 쇠약해질 지경입니다. 왜 그 집이 그렇게 사랑스러우며, 심지어는 그 집의 마당을 그렇게 사모합니까?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 집의 주인, 곧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왜 여호와의 집, 성전을 '주의 장막'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 장막'이란 다윗이 지은 주의 장막, 곧 '다윗의 장막'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5:16에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모서 9:11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다윗의 장막'에는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다윗의 장막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이었습니다. 다윗의 장막에는 하나님의 추억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실 다윗의 장막은 볼품 없었습니다. 이 장막은 임시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블레셋에게 빼앗겼다가 돌려 받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임시로 마련한 장막에다 두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짓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 짓기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은 임시로 마련한 그 장막을 기뻐하셨습니다. 거기에는 다윗왕이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는 열망이 있었고, 하나님을 향한 순전하고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 장막에서 그때부터 36년간 일년 365일 일주일 7일 하루 24시간 매일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였습니다. 한밤중에라도 일어나면 언제나 이 성막으로부터 들려오는 성경 암송의 소리와 찬양과 악기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겸손하고 순전하며 간절한 마음 보시고 그 장막에 임재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장막, 우리도 이 장막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이 장막을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그 장막의 앞뜰, 궁정을 사모하는 마음이 내 영혼을 쇠약케 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기고 우리를 매일매일, 순간순간 늘 만나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집에 우리가 거하면서 하나님과 사귐이 있을 때 그것이 바로 복중의 복이 될 것입니다.
2.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둘째 연은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시온은 본래 예루살렘 성의 한쪽 구릉의 이름이었습니다. 다윗왕이 빼앗긴 언약궤를 되찾은 후에 시온의 동산 위에 장막을 치고 그곳에 언약궤를 두고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나중에 그 자리에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때마다 법궤 위에서 인간을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뵈오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순례의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야트막한 동산인 시온은 이제 거룩하신 하나님의 집이 있는 시온산이 되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장소가 바로 시온입니다.
시온의 대로는 시온에 이르는 넓고 평탄하게 뚫린 길을 말합니다.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분명하고 확실한 길이 있는 사람입니다. 중간에 막힘도 없고 걸림도 없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염려가 없습니다. 언제나 안전하게 그곳에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온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 지내고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망하는 순례자의 입장에서 잘 닦여진 길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란 바로 마음 속에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통로가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주께로부터 힘을 얻게 됩니다. 문제의 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6절에서는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라고 노래합니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에게도 눈물 골짜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스럽고 서러운 눈물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저희가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에라도 그 곳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수많은 샘들이 솟아나는 풍요로운 곳이 되고 가을비가 촉촉이 내려 밭에 파종하고 경작하기에 적당한 아름답고 비옥한 땅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연못처럼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에게는 시온의 대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바로 '기도'입니다.
3.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셋째 연은 더욱 주께 의지하고픈 시인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10절에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합니다. 원래 문지기는 낮고 미천한 자리에서 궂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시인이 왜 성전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까?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영광을 맛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늘 하나님의 영광을 뵈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갈망하는 다른 사람에게 그 틈을 열고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게 해 줄 수 있는 특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기는 장면이 역대상 15장과 16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여기에서 보면 하나님의 언약궤를 석달 동안 맡아왔던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이 언약궤를 옮길 때 운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을 봅니다. 뿐만 아니라 오벧에돔은 자손 대대로 언약궤를 따라 다니며 장막과 성전의 문지기가 되는 것을 봅니다. 왜 오벧에돔이 언약궤를 따라갔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언약궤를 모신 3개월 동안의 기억이 너무나 복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짧은 동안 하나님이 복 주셔서 오벧에돔은 갑자기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그 재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 내버리고 언약궤를 따라갑니다. 자신에게 참된 복은 재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뵈올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인이 성전의 문지기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은 바로 오벧에돔의 마음입니다. 문지기라도 좋으니 성전 가까이 있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입니다. 에릭 리델이 세상의 명예를 버리고 선교사가 되어 중국으로 간 것도 바로 이런 마음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소망하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우리 교회가 소망하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저는 이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비쳐 나오는 성전의 문틈과 같은 은혜의 자리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가 은혜를 듬뿍 받아 누릴 뿐 아니라, 이 문을 붙잡고 틈을 열어 젖혀서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비춰주는 성전의 문지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즐겨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본성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 복을 받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분이 주기를 원하시는 복을 누리는 자는 그분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비록 성전의 문지기가 될지라도 주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 주님이 우리의 해가 되고 방패가 되어 주시며, 은혜와 영화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제 아내는 운전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젊을 때 보행 중 큰 사고를 당한 기억도 있고, 결혼 초기에 운전을 하다가 가로수를 뽑은 일도 있어서 운전에 대한 공포감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가 길눈이 몹시 어둡다는 사실입니다. 운전을 하게 되면 길눈이 밝아진다고 말하지만 길눈이 어두우니 불안해서 핸들 잡기가 겁나나 봅니다. 심지어는 집 근처에서 산책을 할 때도 새로운 길로 접어들면 집을 찾지 못해 헤매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길 눈 어두운 사람이 편안하게 운전하고 편안하게 산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지도입니다. 이 나라는 거리의 체계가 잘 되어 있어서 처음 가는 길을 찾을 때도 지도만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항해하는 배는 나침반이 꼭 필요합니다. 맑은 날은 태양의 위치나 북극성의 위치, 우리 남반구에서는 남십자성의 위치를 통해 방향을 알 수 있지만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망망한 대해를 항해하는 배를 상상해 보십시오. 반드시 지도와 나침반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을 항해하는 우리에게도 지도와 나침반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인생은 처음 살아봅니다. 항해하는 배에는 베테랑 선원이 있지만 우리가 가는 이 인생의 항로에서는 누구나 처음 가보는 길을 갑니다. 이 생소한 길을 갈 때 무엇을 의지하시겠습니까? 인간의 경험을 담은 많은 책들도 있고 철학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답이 없습니다. 문제만 잔뜩 적혀 있습니다.
유일하게 답이 있는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인생항로의 지도와 같습니다. 우리가 의존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에게 나침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침반은 맑으나 흐리나, 바람이 부나 잔잔하나, 낮이나 밤이나 언제나 우리의 갈 길을 밝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길의 빛이요 발의 등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가운데 복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늘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예민한 삶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복된 삶의 비결입니다. 이 비결을 깨달은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세상 권력이나 부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참된 복, 그 복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사도행전 20:32에서 바울 사도는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짐승 잡는 성전이 없고, 성령이 거하시는 교회가 성전입니다. 교회가 성전이 되는 것은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공동체인 교회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며, 하나님을 향한 시온의 대로, 기도의 길을 닦으며, 하나님께 의지하는 가운데 모든 복을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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