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하나님께 영광 사람 중에 평화(081225)

하나님아들 2016. 4. 8. 13:44

하나님께 영광 사람 중에 평화
누가복음 2:8~14
  
(여는 말)
성탄절입니다. Merry Christmas!! 메리 크리스마스 !! 우리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메리가 무슨 뜻인가요? '즐겁다', '기쁘다'는 뜻이죠. '기쁜 성탄을 축하합니다.' 하는 뜻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였습니다. 그런에 크리스마스가 왜 기쁩니까? 왜 즐겁습니까?
제가 어릴 적에, 물론 교회도 다니지 않았고, 예수를 믿지 않았지만 크리스마스는 즐거웠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밤새 놀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나, 고향을 떠나 계신 형님들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습니다. 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씰을 의무적으로 모두 구입하도록 했습니다. 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무렵에 우표처럼 생긴 씰을 팔아 모금을 했습니다. 12월 중순부터는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나왔고,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무언지도 잘 모른채 연말의 망년회 분위기로 크리스마스를 즐거워했습니다.
제 아내나 제 아들 딸들의 크리스마스는 또 다릅니다. 크리스마스 때는 교회에서 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 각각 즐거운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곤 했습니다. 성극을 준비하기도 하고 가족별 찬양대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행사가 끝나면, 교회에서 준비한 선물 보따리를 메고 인근 아파트단지를 방문해서 선물을 주기도 했습니다. 새벽송(頌), 밤송(頌)이라고 부르는 행사로서, 늦은 밤에는 교인들의 집을 방문하며 성탄을 축하하는 찬송을 불렀고, 집에서 준비해놓은 사탕이나 과자를 내놓았습니다. 밤송을 돈 젊은이들이 교회로 돌아와 모여 밤을 새며 게임도 하며 놀았습니다.
제가 해밀턴에 처음 교회를 개척했을 때 저희 찬샘이가 아직 어렸습니다. 찬샘이와 같이 어린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 준비한 선물을 교회에 모아놓고, 성도님 중 두어 분이 산타 복장을 하고, 가정을 방문하여 자는 아이를 깨워서 선물을 건네주며 눈꽃송이 스프레이를 뿌리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습니다.
이런 사정은 오늘날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크리스마스는 그냥 즐겁습니다. 인구의 1.5%밖에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일본에서도 크리스마스는 큰 명절처럼 시끌벅적하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왜 즐거운 날입니까? 왜 기쁜 날입니까? 오늘은 성탄절의 의미를 새겨보는 가운데 주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오늘 본문 10절~12절에 보니,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어떤 소식을 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일은 기쁜 일입니다. 간혹 원하지 않는 아기를 가지게 되었을 때 반기지 않는 경우도 드물게 있지만 기본적으로 새 생명을 얻는 일은 기쁜 일입니다. 아기가 난 집만 아니라 이웃집까지 기쁩니다. 오늘 유림이가 처음 출석했는데, 유림이의 탄생은 우리 교우들 모두의 기쁨이었습니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윌리엄과 해리 두 아들을 낳았을 때 메스콤이 대단했었습니다. 2년전에 일본에서도 왕자가 태어났다고 뉴스에 떠들썩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왕가에 왕자가 드물다고 합니다. 하바드 출신의 외교관으로 왕세자 나루히또의 비(妃)가 된 마사꼬는 영국의 다이애나 왕비에 버금가는 인기가 있었지만 왕자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국왕 아키히토의 막내아들인 아키시노노미야가 재작년에 왕자를 얻었던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왕자의 탄생 때문에 난리가 났지만 우리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아무런 기쁨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건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 한 아기의 탄생이 온 백성에게, 온 인류에게 큰 기쁨이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온 인류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온 인류의 구세주 Savior, 곧 그리스도, 메시아로 그분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당시의 모습은 사람들 눈에는 그다지 큰 사건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로마가 다스리던 시절에 로마의 황제 아구스도(옥타비아누스)가 아들을 얻은 것도 아니고, 당시 이스라엘을 위임 통치하던 헤롯대왕이 아들을 얻은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한 귀퉁이 베들레헴이라는 자그마한 동네에서 요셉과 마리아라는 이름 없는 유대인 부부 사이에 한 아기가 태어난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기뻐 노래하는 대 사건이었습니다. 세상의 온 백성에게 그 영향이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모든 인류에게 의미가 있는 커다란 사건이었습니다. 그 아기는 온 인류의 구주,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아기는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셔서 스스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분이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그분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탄생은 온 인류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이었기 때문에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소리 높여 기뻐하며 노래하였습니다. 그 노래의 내용을 살펴봅니다.

 

2. 하나님께 영광
홀연히 하늘에서 천군 천사들이 합창하여 찬송하는 소리가 들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4절)
하는 노래였습니다. 이 노래는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이다는 내용, 또 하나는 예수님의 탄생은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입니까?
영광(glory)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honor)"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가 드러나는 사건'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 위대함과 탁월함으로 인하여 모든 찬사와 감탄을 돌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보면 요즘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피겨 선수 김연아가 그랑프리 파이널이라는 대회에서 2년연속 우승을 해서 세계 제1의 피겨선수로 칭찬과 높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피겨 스케이팅 실력이 김연아 자신만 아니라 조국 대한민국과 한국인 모두에게 영광을 안겨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사건은 너무나 아름답고 빛나는 사건이라서 하나님께 모든 찬사와 자랑이 다 돌아가는 사건, 영광의 사건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가운데 위대하고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빛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탁월하고 대단하신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의 삶은 한 마디로 "버림의 삶"입니다. 지극히 위대하시고 거룩하시고 높으신 하나님께서 지극히 보잘 것 없은 우리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의 그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화려한 왕궁도 아니고, 사람들이 우러러 볼 명문가의 저택도 아니고, 심지어는 그럴듯한 여관도 아닌 가축이 자는 외양간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가축이 여물을 먹는 구유 안에 뉘어졌습니다. 철저히 자기를 버리신 하나님의 겸손하심이 예수님의 탄생에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그후 많은 준비를 거쳐 30년 후에 세상에 나타나셔서 3년 간의 공생애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통해 보여주신 삶 전체도 철저히 자기를 버리신 삶이었습니다.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도회의 저자거리에서, 소외 받고 멸시받는 가난한 사람들의 치유자가 되어 주시고, 선생이 되어 주셨으며,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소 수치스러운 죄인의 사형도구인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기까지 자기를 철저히 버리고 낮추셨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자리를 내려놓으신 것은 둘째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까지도 내려놓으셨습니다. 조롱과 멸시를 당하시고 발가벗겨져서 혹독한 채찍질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런 모든 버림의 결과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2:23~25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매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밀알로 썩으신 사건이었으며 하나님의 자기부인의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일생의 자기 버림의 삶으로 말미암아 수억년을 관통하여 전이나 후나 수많은 인류에게 구원이라는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나님의 이 구원 사건은 인류의 범죄로 이해 훼손된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새롭게 회복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위업 가운데 가장 위대한 위업은 창조하신 세계를 다시 재창조하여 원상복구(原狀復舊)하는 일, 바로 구원(救援)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 모든 찬미와 명예를 돌려드릴 만한 사건, 곧 하나님께 영광인 것입니다.

 

3. 사람들 중에 평화
예수님의 탄생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었지만 이 땅에서는 사람들 중에 평화였습니다.
'사람들 중에 평화'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평화, peace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평화란 '전쟁이나 분쟁,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하며 화목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없고 탈이 없이 평온한 상태입니다.
우리 조국을 생각해보십시다. 남한과 북한이 1950년~1952년, 3개년에 걸쳐 혹독한 전쟁을 치르고 그 후 56년 이상 전쟁이 없이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것을 평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쟁은 휴전 상태(truce), 쉬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 많은 세월동안 수많은 크고 작은 전투들이 벌어졌고, 전투가 없다 하라도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갈등이 늘 있어왔습니다. 그런 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 외교관들은 대체로 한국을 매우 선호합니다. 월급 외에 위험수당이 월급만큼 나온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스러워도 잠재된 위험이 있는 긴장과 갈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담이 범죄한 이래 늘 긴장과 갈등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습니다. 지금 세계가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가운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듯이 발버둥치고 돈을 벌지 않으면 먹고 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늘 불안함이 있습니다. 서로 자기 것을 지키고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합니다. 조금 방심하면 내 몫을 빼앗깁니다.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러한 죄와 악 가운데서 투쟁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평화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살아 활동하시는 동안, 서로 용납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돌아보며, 서로 손해를 보고, 서로 유익을 끼치며, 자기를 죽임으로 상대를 살리며, 상대를 살리면서 자기가 정녕 살아나는 그러한 생명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셔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려고 하신 것은 결국 이 땅에서 사람들 사이의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사람들 사이에 악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길은 저마다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열어놓으신 하나님과의 화목의 길을 따라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죄인의 자리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화목을 이룬 사람은 이제 하나님과 한 편입니다. 하나님과 한편이 된 사람들은 서로서로 한 편이 되었습니다. 이제 서로 사이에 적대관계를 끝냅니다. 그러면 사람들 사이에 평화,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몸으로 하는 교회의 지체로서 서로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단순히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 보지 않습니다.
서로 개인적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로만 보면 용납하지 못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격, 기질,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기호가 달라서 도저히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개인대 개인은 온전히 화목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늘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로 봅니다. 나도 하나님의 자녀, 이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 우리는 형제, 그러므로 서로 화목할 수 있습니다. 비록 나와 맞지 않아도, 나도 그리스도의 지체 저도 그리스도의 지체, 비록 기능이 다르고 모양이 다르더라도 손과 발이 한 몸인 것처럼, 우리가 서로 한 몸이 되어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케 함으로써 바로 '사람들 중에 평화'를 이룬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절은 왜 기쁜 날입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사건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 가운데 가장 위대한 걸작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을 등졌던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개인 간의 화목은 개인들 간의 평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사람들 중의 평화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번째 하신 일이 누가복음 4:18에 나와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으심을 통해서 스스로의 사명을 드러내신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바로 희년(禧年, Jublee)의 선포입니다. 모든 어그러진 것을 원상회복시키고,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고통과 왜곡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평화의 선포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 21, 26)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그토록 평화를 주시기를 원하신 대로 '사람 중의 평화'를 이루는 길이셨습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쁜 성탄절을 맞아서 사람들 사이에, 가족 안에서, 이웃 간에, 특별히 교회 안에, 세상에서, 사람 중에 참된 평화를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거리에서 흥청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가지 행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 사람들 사이에 평화로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아기 예수의 오심의 의미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화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 간에 평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혹 우리 삶 가운데 화해하지 못한 부모나 형제, 이웃이 있습니까? 화해하는 것이 예수님의 탄생을 참된 의미로 축하하는 일입니다. 평소 돌보지 못하던 이웃을 돌보는것, 특별히 소외된 이웃들, 연로하신 분들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땅에 사람들 중에 평화를 이루는 기쁜 성탄절이 될 것입니다.
Merry Christmas!!
기쁜 성탄을 축하합니다.

출처 : 길벗
글쓴이 : 송명헌(1)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