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갈라디아서 2:20
(여는 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오늘이 마지막 주일 송년주일입니다. 모레 수련회 들어가서 수요일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 우리는 2008년을 완전히 보내고 2009년 새해를 맞을 것입니다. 세월이 빠르군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한 해 잘 사셨습니까?
헬라어에는 시간을 뜻하는 두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입니다.
크로노스는 자연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말합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면 하루가 지나고,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바퀴 돌고 나면 일년이 지나갑니다. 지나간 인류의 역사도 크로노스의 시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역대기가 바로 크로니클(Chronicles)이고, 나니아 연대기가 바로 Chronicle of Nania인데, 여기에서 쓰인 연대기라는 말, 크로니클(Chronicle)이 크로노스에서 유래되었지요. 크로노스의 시간에 대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보면 인생은 숱한 우연적인 사건이 불연속적으로 지나갈 뿐입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카이로스입니다. 카이로스는 특정한 시간을 말하며, 구체적인 사건의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중요한 뜻이 담긴 시간을 의미합니다. 야곱이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난 시간이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시간입니다. 우리가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빚으심 가운데 새롭게 창조되는 시간이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카이로스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느끼는 절대적인 시간이지요.
크로노스가 남의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나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찬양단 이름이 "카이로스찬양단"입니다. 젊은 때의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의미있게 보내고자 하는 귀한 결단이 담겨있는 이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시간은 어떠했습니까? 2008년도 한 해 동안 카이로스로 잘 사셨습니까? 잘 사셨기를 바랍니다. 이제 2009년도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2009년도를 잘 살기 위해서라도 2008년도를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잘 산다는 말은 어떤 말입니까? '잘 산다'라는 말은 단지 '부유하다', '건강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의미있고 가치있고 보람있게 산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시간을 크로노스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카이로스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까? 성경에서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1.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크리스찬으로서 잘 사는 길은 잘 죽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신 그 자리에 자기도 못박혀 죽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2000년의 역사 동안 길이 기억되고 기념될 만한 귀한 삶을 보람되게 잘 살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죽는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첫째는 율법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본문은 바로 앞 19절에 이어진 말씀입니다. 19절 말씀이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하였습니다. 바울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고 말한 첫번째는 바로 이 율법에 대하여 죽는 것을 말합니다. 16절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사람이 행위의 선(善)으로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우리는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살면 별 갈등 없이 살 수 있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죄책감 없이 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간음하고, 사기 치고, 남을 착취하고, 인간 위에 군림하고....그러면서도 양심에 그다지 큰 가책 없이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바르게 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우리는 더 많이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율법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율법을 범하고 사는 우리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대하여 죽습니다. 율법이 뭐라고 자극하고 찔러도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반응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19절 하반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율법을 향하여 죽을 때에만 하나님을 향하여 살 수 있습니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우리가 기댈 구석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율법의 행위에 기대는 대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는 길입니다. 율법에 대하여 죽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사는 법입니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율법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율법은 도무지 필요 없다는 율법무용론, 도덕폐기론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율법을 폐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율법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 때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보면, 신앙생활을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나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 안에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됩니다.
둘째로 죽는다는 것은 육체의 욕망에서 죽는다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5:24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정과 욕심은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본성은 죄악 덩어리입니다. 갈라디아서 5:19~21입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성경에서 말하는 육체란 우리 몸뚱아리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보면 육체는 혈통과 학문적 배경, 신앙적 열심까지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몸뚱아리의 생물학적 욕구도 포함하지만 나아가 감성적, 정신적인 욕구까지 포함합니다. 부와 권력, 명예까지 모두 육체에 해당합니다. 모든 자기중심적인 동기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과 활동까지를 육체라고 합니다.
육체가 죽는다는 것은 자기의 만족을 구하지도 않고 자기 체면을 살피지도 않으며,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동기가 자기에게 있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가 날마다 죽는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31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가끔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나날들이 아닙니다. 날마다입니다. 매일매일, 순간순간 죽는 것을 자랑합니다. 육체의 욕망대로 살아가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죄를 죽이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남들 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습관이나 잘못된 자존심까지 버리는 것입니다.
죄악 덩어리인 내가 죽는 길은 오직 성령으로 사는 길입니다. 갈라디아서 5:25~26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2. 죽음으로 생명을 얻으라
내가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내가 죽어야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이 사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로 인해 어그러진 인생을 건져주시는 구세주(Savior)로 이 땅에 오셨으며, 매일매일 우리의 인생을 주장하시는 주님(Lord)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우리의 삶에서는 예수님이 주님(Lord)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폭군으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백마를 타고 군대를 거느리고 천상에서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외양간에서 나셔서 구유에 누이신 아기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막무가내로 지배하고 우리 위에 군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인격적으로 우리를 대하시는 분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물의 가장 걸작품 masterpiece로 인간을 만드실 때 가장 독특한 특징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도록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특성을 품고 있습니다. 창조적 능력, 사랑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성적 분별력과 의지적 결단력이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 인간의 특성 중에 가장 뛰어난 특성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방법도 가장 뛰어난 특성을 살리는 방법 대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철저히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스스로 자발적으로 결단하고 따를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자기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개신교 최고령의 목사이신 방지일 목사님이 성탄메시지를 주셨는데, "믿음이란 자기를 없애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24에서
누구든지 나를 좇으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지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자기가 죽고 내주(內住)하시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자발적으로 따를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다 그 과정을 거쳤습니다. 모세가 80세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올해 감리교단은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감독회장으로 출마하신 분들이 서로 자기를 죽일 수 없다고 버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독회장이 두 명이나 나와있고, 그나마 사회의 법정에서 둘 다 자격이 없다고 판결이 나와서 다음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분들은 자기들이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감리교단 전체를 죽이고 있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부끄럽게 만들고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전체가 세상의 숱한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지도자, 곧 목사들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죽이지 않고, 교회를 사유화하고, 모든 사역의 공과를 자기 자랑과 자기 이익으로 연결합니다. 나아가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의 책임입니다. 아무도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끊임없이 살아 오르는 자아로 인하여 넘어지고 좌절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으로 인하여 우리가 누릴 복이 무엇입니까? 믿어서 얻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신앙에서 얻는 평강과 치유, 회복, 자유함,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 하나님이 일하시며, 하나님이 일하시면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해도 우리 삶에는 진정한 변화는 없습니다. 내가 죽어야 남편도 살고 아내도 살고, 가정도 살고 교회도 살고, 사회도 살고, 모두가 변화됩니다.
어느 가정주부의 편지입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참으로 열심히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전도회장에 구역장 등 교회생활에도 무척 열심이었지요. 하지만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남편은 저의 이런 생활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결혼 하고 얼마동안은 함께 교회에 다녔지만 마침 교회가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던 터라 그 모습에 실망한 나머지 등을 돌려버리더군요. 그때부터 제 생활도 남편에게는 눈에 가시처럼 보였나봅니다. 새벽예배 문제로 심하게 부딪힌 뒤 남편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나보다 교회가 더 좋아? 교회 목사나 사모가 나보나 좋냐구?” 그러면서 자기가 이렇게 구걸하다시피 하는데 어떻게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느냐면서 제가 그러면 그럴수록 자기는 더 예수를 안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불화를 안고 사는 것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극동방송에서 불신 남편을 둔 아내들을 위한 가정메시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죽도록 얻어맞으면서 무조건 교회에 가면 남편이 구원받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막연하게 알아왔던 제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고 오직 저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믿지 않는 남편을 구원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소식지에 실렸던 믿지 않는 남편과 함께 사는 아내들의 간증을 읽으면서 마음에 큰 도전도 받고 지금까지의 제 행동에 큰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걸핏하면 교회 문제로 다투는 저희를 보고 “엄마! 또 교회 때문에 싸워?”라고 말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제게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인도하시는 중에 조금씩 남편의 마음이 읽혀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저의 사랑이 필요했었나 봅니다. 매일 교회활동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공허하고 외로웠을까 생각이드니 남편이 측은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남편을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며칠 뒤 남편이 또 제게 전과 같은 비슷한 하소연을 하더군요. 이번에는 남편을 지긋이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남편을 안아 주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이 남편에게도 전달되었는지 그 이후로 남편도 저를 조금씩 더 이해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하나님의 선한 진리와 방법을 가르쳐주셔서 남편의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해주셨던 거지요. 덕분에 저희 부부는 다시 마음을 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한 직장에서 다시 신나게 일하는 남편, 집에 와서도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요새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주님이 예비하신 구원에 더 가까이 와있음을 보게 됩니다. 작고 작은 저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기쁨으로 이 순종의 길을 걷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답니다
3. 죽음으로 섬기라
혹시 죽고 싶으신 분이 있으십니까? 정말 못살겠다 싶으신 분이 있으십니까? 이 예배를 마치고 내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으신 분이 있으십니까?
일이 도무지 풀리지 않고, 애써 노력했는데 결과는 내 생각과 정반대이고, 미치도록 답답하신 분이 있으십니까?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분이 있으십니까?
잘 죽는 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 잘 죽어서 이 모든 고통과 아픔에서 벗어나서 정말 잘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죽은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상처도 없습니다. 상처도 따라 죽게 마련입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안겨주는 미움도 죽고, 안달복달하며 지키기를 원하는 내 자신에 대한 사랑도 죽고, 이익을 잃을까봐 애닳아 놓치지 못하는 욕심도 죽고, 내가 죽으면 모든 것으로부터 치유가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께서 사신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그리스도가 대신 살아주시는 내 인생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오직 승리 뿐입니다.
이젠 더 이상, 내 생각대로 살지 않습니다. 내 상식이나 내 습관대로 살지 않습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1:17)
고 했습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것은 내가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논리가 아닙니다. 이론이 아닙니다. 삶입니다.
미국에는 드럭 스토어라는 게 있습니다. 일종의 수퍼마킷입니다. 미국에서 전국에 1,700개의 프랜차이즈 지점을 가지고 있는 에커드 드럭이라는 기업형 마켓이 있습니다. 그 회장 에커드는 어느 주일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전체 지점에 플레이보이나 펜터하우스 같은 도색잡지의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지점주들은 이익이 줄어든다고 아우성이었지만 에커드 회장은 이제는 자기는 죽고 자기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에커드 드럭 스토어는 그 일로 더욱 유명해져서 사업이 오히려 훨씬 번창하였다고 합니다.
믿음은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하는 신앙의 행위로 표현이 되지만 그것 자체가 믿음인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의무감 때문에 체면 때문에 어떤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맺는 말)
성도 여러분, 올해 한 해 이모저모로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충성을 하면서, 또한 교회를 열심히 섬기시면서 보내신 한 해이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산 한 해가 과연 카이로스의 시간이었는지 크로노스의 시간이었는지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한 해 잘 사셨습니까? 만약 아쉬움이 있다면 우리는 새롭게 한 해를 잘 살기 위해 이 한해를 잘 마무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합니다.
만약 내년에도 내가 살아서 펄펄 대면서, 좌충우돌 부닥치면서 산다면, 아무리 열심히 충성을 해도 율법에 대해 죽지 않고 의무감으로 섬기고, 또 나의 만족, 나의 체면을 위해 한 일이 되고 말 것이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실망하며, 상처 입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바쁘게 살지만 허망한 크로노스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한 해라면, 나는 능력이 없지만 능하신 주님이 풀어주시고 헤쳐주신 승리의 삶이 될 것이며, 비록 실패해도 낙심치 않으며, 성공해도 자만치 않고, 내 안에 존귀해지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나의 삶이 복되고 보람찬 카이로스의 삶이 될 것입니다.
내년 2009년도를 올해보다 더 나은 카이로스의 해로 보내기 위해서, 2008년도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먼저 결단할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입니다.
다같이 갈라디아서 2:20절 복음성가를 함께 부르시고 마치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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