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에베소서 4:12
(여는 말)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셔서 교회를 만드시고,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만세 전부터 감추어오셨던 비밀의 지혜와 경륜, 하나님의 계획을 밝히 드러내 보이십니다. 이 계획은 천사에게조차도 알리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심중에 있던 비밀의 계획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쏟은 하나님의 파트너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야 하는데, 그 첫째는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를 위하여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여야 합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고, 우리 믿음도 하나입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나 은사는 다양합니다. 기질이나 생김새도 다르고 자란 환경이나 살아가는 조건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하늘 위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십니다.(엡 1:10) 이것이 교회에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지도자를 주셨습니다. 오늘은 교회 지도자가 해야 할 일, 곧 교회가 추구해야 할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에서 말하는 다양한 직분의 사람은 모두 교회의 지도자로서,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입니다. 그 세부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신학자들의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단순히 말하여 교회의 지도자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지도자를 세우신 목적을 12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가 읽은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①성도를 온전케 하며, ②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③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 등 세 가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부분을 개정개역에서는 ①②가 연결되어 (1)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2)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으로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와 를 바꾸어서 '하며'를 '하여'로 바꾸니 이렇게 말이 달라지는군요.
이 부분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원문을 자세히 보면 ②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③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 앞에 똑같은 전치사( )가 붙어 있습니다. 이 전치사는 영어로 'to'에 해당하는 단어인데, "결과가 ~이다"라는 뜻입니다. 곧 성도를 온전케 하는데, 그 결과가 ②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③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to (the) work of ministry, to building of the body of Christ)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가 할 일을 단순화시키면 (1)성도를 온전케 하여서, (2) 봉사의 일을 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과, 교회를 세우는 일 사이에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이 끼여 있는데, 곧 성도가 온전해지는 것의 결과는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수준이 되는 것이며, 봉사의 일을 하게 될 정도로 성도가 온전해지면 교회가 세워진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자세히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교회에서 봉사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봉사의 뜻
먼저 '봉사(奉仕)'라고 하는 이 단어의 뜻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봉사로 번역되어 있는 단어의 헬라어는 diakonia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동사형은 diakoneo 이며, 여기서 파생된 다른 명사가 diakonos 입니다.
성경에서 diakoneo 라는 동사(verb)는 수종들다(마 4:11), 섬기다(마 27:55), 일하다(눅 10:40), 돕다(행 19:22), 봉사하다(벧전 4:10), 집사의 직분을 하다(딤전 3:3)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원래 노예가 주인을 섬기는 것을 묘사하던 말이며, 차츰 교회 안에서 어떤 직임을 맡아 봉사한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성경에서 diakonia 라는 명사(noun)은 섬기는 일(롬 12:7), 직분(롬 11:13), 봉사(행 21:19), 준비하는 일(눅 10:10), 구제(행 6:1), 부조(행 11:29), 사명(행 20:24)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크게 나누어 어떤 직임을 맡아 봉사한다는 뜻과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돕는다는 뜻이 포괄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 적용한다면, '봉사', 곧 diakonia라는 말은 교회 안에서 다양한 직임을 맡아 돕는 것과, 교회 안팎에서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돕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diakonos 라는 명사(noun)은 하인(요 2:5), 일군(롬 16:1), 사환(마 22:13), 섬기는 자(마 20:26), 사역자(고전 3:5), 집사(딤전 3:8)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가 오늘날 deacon(집사)라는 직분에 나타나 있는 말이며, 장로, 권사, 집사 등 교회의 여러 섬기는 직분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봉사라고 번역하였을 때는 사실 diakonia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 담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헬라어 원어를 그대로 쓰기도 합니다. 기억해두실 만합니다. 봉사라는 말보다는 섬김이라는 말이 부족하나마 좀 더 가깝습니다.
2. 성도의 온전케 됨과 봉사
성도의 온전케 됨은 봉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 관계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성도의 온전케 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온전케, 온전한 으로 번역되어 있는 말에는 여러 단어가 있습니다. 지금 12절에서 "성도를 온전케 하며"에서의 "온전케"는 ton katartismon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 단어는 katartizo(kata(~향하여)+artizo(complete))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katartizo는 '부러진 뼈를 맞추다', '찢어진 그물을 깁다' 는 뜻입니다.(마 4:21) 무언가 일그러지고 어긋나서 바람직한 상태에서 벗어난 것을 원상 회복시키고 복구시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성도들을 온전케 한다'는 뜻은 침체된 영혼을 회복시키고, 상한 심령을 치유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완전무결하게 완성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아지는 과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교회 지도자가 해야할 첫번째 역할은 성도들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교회는 치유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나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을 치유하는 곳이 교회이며, 그 치유를 돕는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육체의 질병이나 장애뿐만 아니라 정신이나 감정의 상함도 교회에서 치유되어야 합니다. 영혼의 갈급함, 영혼의 상함도 교회에서 치유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치유공동체입니다.
마태복음 4:23에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가르치심, 복음 전파, 치유, 이것이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의 사역을 요약한 말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 지도자 곧, 목사의 할 일은 성도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며, 치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곧 치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섬겨야 합니다. 아픈 곳을 고쳐주고, 상한 마음을 위로해주며,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이 말은 성도들이 아프면 병원에 갈 것 없이 교회에서 다 치료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모든 방법으로 치료하고 회복시키는 일에 관심을 쏟고 기도하며 돌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 지도자, 오늘날 목회자의 사명은 성도들을 회복하고 치유하여 온전하게 되도록 돕는 역할입니다. 섬기는 역할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교회 지도자들만의 일은 아닙니다. 상처나 아픔, 침체에서 회복되는 성도들 또한 섬기는 데까지 회복되어야 합니다. 곧 성도들이 회복되어서 봉사의 일을 하게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0:28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여기서 섬기려 한다는 말이 바로 '디아코네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 모두의 삶의 목적이 예수님처럼 섬기는 데 있습니다. 섬김은 우리를 온전케 합니다. 치유합니다. 곧 치유와 섬김은 상호작용을 통해서 상승합니다. 섬김을 통해 치유가 일어나고 치유를 통해서 섬김으로 나아갑니다.
한국의 어느 여고 교장선생님이 문제아로 퇴학처분의 징계를 받게된 아이들 몇 명에게 어떤 복지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정신지체 장애아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5일동안 하는 것으로 마지막 기회를 주어 선도에 성공하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하기 싫어 도망다니며 숨었지만 복지시설에서 5일동안 봉사활동 하면서 이 아이들의 생각이 180도로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제가 홀트 아동복지회를 한 번 방문하여 한나절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 짧은 경험을 통해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게 궁금한 점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한 방에 20명 이상이 수용되어 있는데, 나이 40이 넘은 어른부터 2~3세의 젖먹이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밖에서 들어온 자원봉사자들이 화장실을 청소하고, 옷을 빨아주지만, 밥을 먹고 방 청소를 하는 것은 장애아들을 돌보는 한 사람의 보모가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납득이 되지 않아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보모는 와서 자세히 관찰해 보라고 했습니다. 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20명 이상이 넘는 장애인들이 있지만 그들을 한 사람의 보모가 다 돌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애인들이 서로 서로 돌보는 것입니다. 스스로 기저귀도 갈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 장애인을 그보다 조금 상태가 나은 사람이 기저귀도 갈아주고, 밥도 떠먹여 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자기들 수준에서 서로 돕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정신의학계에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공동치료라고 합니다. 환자들끼리 서로 도울 때 정신병이 가장 치료 효과가 높다고 합니다.
교회는 공동치료가 일어나는 치유공동체입니다. 이웃이 침체해 있을 때, 서로 용기를 주고 서로 격려를 하면서 함께 살아나는 곳이 교회입니다.
간혹 영적으로 침체되어 더 이상 교회를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기쁨으로 섬겨야 하는데, 도무지 힘이 들고 기쁨이 없는데, 이런 마음으로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너무 가증스런 위선이 아닌가?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때 기쁨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기쁨이 없을 때는 섬기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섬기되 기를 쓰고라도 기쁨으로 섬기라는 뜻입니다. 기쁨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서로가 서로를 섬겨서 신앙의 참맛을 누립시다. 천국을 이루고 멋진 교회를 만들어 보십시다. 남이 잘해주기만을 기다리면 영영 지옥과 같은 교회 밖에 만들지 못합니다. 내가 먼저 깨어지고, 내가 먼저 낮아져서, 내가 먼저 이웃을 섬기면, 상대가 그것으로 치유되고, 나를 섬길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먼저 제가 성도들을 섬기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온전케 되도록 섬기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각자가 봉사의 일을 하게 되도록 섬기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서로 봉사의 일을 하는 것, 서로 섬기는 것이 여러분을 서로 치유하게 될 것입니다. 서로 온전케 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선순환입니다.
열심히 섬기는 사람의 기를 꺾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투가 어떻다." "태도가 어떻다" 서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가운데 서로 죽어갑니다. 단점을 보지 마시고 장점을 보시고, 서로를 섬기는 가운데 서로가 살아가는 교회를 이루십시다.
본문 다음 13절에서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온전한이라는 단어는 12절의 온전케라는 katartizo와는 다른 단어, teleion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성숙한이라는 뜻입니다. 인격적으로 성령의 열매가 맺어져 고상하고 기품있는 인격적 성숙을 말합니다.
서로 치유하고 섬기는 과정을 통해서 마침내 13절에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라고 표현된 성숙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2. 교회를 세움과 봉사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성도들을 온전케 함과 아울러 교회를 세우는데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교회는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이 모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의 봉사가 필수적입니다. 모여 예배하기 위해서는 예배를 위한 찬양을 인도하고, 반주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자의 봉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생각해보십시오. 예배를 위해 직접 봉사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도 예배당의 문을 열어주시는 분, 예배당의 청소를 하시는 분, 꽃꽂이 장식을 하시는 분, 아동부 교사로 아이들을 지도하시는 분, 다른 성도를 ride해 오시는 분, 맛있는 간식을 준비하시는 분, 소그룹을 인도하시는 분, 재무를 보시는 분,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고 관리하시는 분 등등, 다양한 봉사의 손길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이런 다양한 봉사의 손길을 통해서 교회는 성립이 되며, 운영이 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은 다른 누구를 위함이 아니라 교회를 위함입니다. 교회가 바로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따라서 몸을 세우기 위한 봉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위한 섬김일 뿐입니다.
더러는 목사를 위해 충성을 하고 실망합니다. 더러는 목사가 싫어서 섬기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모든 섬김, 봉사는 목사를 위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몸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위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봉사는 교회를 세우는 일,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을 때에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모든 충성된 봉사, 섬김의 기준은 오로지 교회를 세우는 일인가? 아닌가?에만 판단을 두고 결정을 하여야 합니다. 목사가 미워도 그리스도를 위해 섬기며, 목사가 고와도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봉사는 교회 안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교회 밖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단지 구원받은 백성으로서만 우리가 의미가 있다면 아마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받는 즉시 천국으로 불러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른 인생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먼저 구원받은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세상을 구원하는 손길이 되며,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을 향한 의무가 있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고 세상을 섬기는 손발이 되어야 합니다.
봉사는 교회 밖을 향할 때, 첫째로는 구제 relief로 나타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돕는 일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개신교의 성장은 멈춘 반면 천주교는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핵심은 국민들이 카톨릭이 주는 이미지에 호감을 갖기 때문입니다. 카톨릭은 가난하고 약한 이웃과 함께 하는 교회라는 이미지를 주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개신교 교인들 안에서도 많이 동조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천주교에 새롭게 귀의하는 사람들의 상당 부분이 개신교 교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교회 성장에는 열심히 전도해서 성장하는 축과 세상에서 빛의 소명을 감당함으로 성장하는 축이 있습니다. 후자의 중심에는 디아코니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실 본문에서는 봉사의 일을 하는 것과 교회를 세우는 일이 동격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물론 봉사와 교회의 일은 다릅니다. 교회와 무관하게 봉사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성도라면 개별적인 신앙활동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것은 교회를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부르심에 응하여 이웃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곧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예수님처럼 이웃을 섬길 때는 교회를 떠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이웃과 세상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바로 섬길 때 건강합니다. 교회는 온전케 된 성도들의 봉사로 세워집니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는 세상을 향한 디아코니아, 봉사로 더욱 건강해집니다. 그 봉사는 바로 개인 성도들의 섬김입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회를 앞두고 설레임과 무거움으로 봉사라는 주제를 살펴보았습니다. 봉사가 없으면 성도의 온전함도 없고, 교회의 세워짐도 없습니다. 봉사가 필수적입니다.
이 봉사가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우러나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온전케 함, 곧 치유가 일어나야 합니다. 치유는 서로의 섬김을 통해 가능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하십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서로 사랑하십시다. 사랑하는 가운데 치유받고, 치유받은 그 은혜로 봉사하십시다. 그리고 다름 아닌 바로 나의 봉사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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