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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님이 귀하게 쓰시는 사람

하나님아들 2016. 3. 30. 18:01

주님이 귀하게 쓰시는 사람

딤후 2:19-21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도공이 흙을 퍼가서 물레를 돌려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적당하게 가마에서 구워진 후에 화원으로 팔려갔습니다. 화원주인이 거름과 흙을 뒤섞어서 그릇에 쏟아 붓고 화초를 심었습니다. 이 화분은 자기가 좀 더 고상한 그릇이 되지 못하고, 화분이 되어서 냄새나는 온갖 거름을 보듬어 앉고 있는 것이 늘 불평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옆에 있던 화분이 말했습니다. “다른 그릇이 되지 못했다고 불평하지 마. 너는 백합을 키우고 있단 말이야.” 얼마지 지나지 않아 정말 이 화분은 백합꽃을 활짝 피우게 되었습니다. 자기 안에 있던 냄새나는 거름으로 백합꽃을 피워낸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다 칭찬을 했습니다. “어머, 저 화분 좀 봐. 아름다운 백합꽃이 피었네. 정말 향기로운 멋진 꽃이야.” 그제서야 화분은 자기가 가치 있는 존재인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겉모습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가가 그 가치를 결정합니다.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요즘 이 시대는 사람의 가치를 외모로 평가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외모 가꾸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심지어 부모님이 주신 얼굴과 신체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예뻐 보이겠다고 성형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50대 여인이 심장마비로 죽어서 천국에 갔는데 죽은 자를 확인하는 명단에 없더랍니다. 천사가 다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이왕에 온 것이니 내 명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나 보자고 생각하고 몇 살까지 살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천사는 90살 넘게 산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너무 기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성형외과에 가서 쌍꺼풀 수술하고, 주름살 제거하고, 뱃살도 제거했습니다. 1주일 뒤 퇴원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다시 천사 앞에 가서 90까지 산다더니 고작 2주일밖에 못살았다고 했더니, 천사가 하는 말이 너무 고쳐서 착각했다고 하더랍니다.

외모를 너무 고치는 것을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외모로 콤플렉스가 있는 분들은 외모를 고치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합니다. '맥스웰 멀쯔'라는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가 '새로운 미래를 소유한 새로운 얼굴'이라는 책에서 성형수술로 얼굴을 고친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애의 문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얼굴이 달라지니까 마음과 생각이 달라지고, 인생관도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형을 한 후에도 여전히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형수술을 한 여자들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나름대로는 성형이 예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이 ‘옛날 얼굴이 더 낫다.’고 말할 때, 또 가까운 친구가 ‘너 성형했다는데 어디 했느냐’고 말할 때,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졸업 후 한 번도 못 만났던 친구가 자기를 알아볼 때라고 합니다.

성형한 후에도 여전히 불만이 있는 사람들을 이 의사가 연구해 본 결과, 마음속에 있는 얼굴을 바꾸지 않는 한 인간은 외모를 아무리 바꾸어도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자화상을 성형수술 해야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입니다. 예수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는 내면에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눅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세상은 물질적 가치를 최고로 칩니다. 물질적 소유를 과시하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사는 지역을 고급주택지역으로 바꿉니다. 서울의 부촌은 마을 입구에 경비가 서 있어서 아무나 출입하지 못합니다. 부자들은 잘 가꾸어진 정원, 높은 담, 삼엄한 경비가 부자 마을임을 나타내 주는 그런 곳으로 이사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전화를 받을 때 자기 이름을 대지 않고 동 이름을 댑니다. “서초동입니다. 구기동입니다. 청담동입니다.”

자동차로 자기 소유를 과시합니다. 의상이나 악세사리로 부를 과시합니다. 우리는 명품이면 다 똑같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말 부자들은 명품도 한정 생산품을 가지고 다니면서 부를 과시합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사건이 있습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 부목사로 부임을 했습니다. 겨울철에 부임했기 때문에 외투를 입었습니다. 그 외투는 저의 장모님이 막내 사위가 목사인데 변변한 외투가 없다고 셋째 사위가 부천에서 의류가게를 할 때 거기 가서 하나 사준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버버리코트나 제가 입은 코트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외투를 입고 출근을 한 첫날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외투가 멋있다면서 제 목덜미를 잡고 레이블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도 그 외투가 무슨 레이블인지도 몰랐습니다. 그 목사님이 읽어준 레이블은 “신세기”였습니다.

그 때는 왜 그 목사님이 제 외투의 깃을 까뒤집어서 레이블을 확인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분과 몇 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그분의 정신세계를 일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명품을 소유하면 자기의 인생도 명품이 되는 줄 알지만 명품 인생은 세상의 명품을 소유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의 손에 들려질 때 명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를 무엇으로 평가하십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가치를 잴 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으므로 천하보다 귀한 절대적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그 절대가치는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에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인간의 절대가치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절대가치를 깨우친 사람들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드리게 됩니다.

다음은 사람의 활용가치입니다.

본문은 사람의 활용가치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큰 집에는 여러 재질로 만들어진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요즘에는 질 그릇, 사기 그릇, 양은 그릇, 플라스틱 그릇, 스텐 그릇, 크리스털 등이 추가 될 것입니다. 모든 그릇은 쓰임새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 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자기 필요에 따라서 그릇들을 사용할 것입니다. 이 다양한 그릇 중에서 주인이 필요할 때 꺼내서 쓰기에 합당한 그릇이 가치가 있는 그릇입니다.

대학에서도 유능한 인재를 뽑고자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해서 공부만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창의력을 가진 학생을 뽑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활용가치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제도가 생겼습니다.

주인이 필요할 때 언제나 쓰기에 합당한 그릇은 깨끗한 그릇입니다.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 귀하게 활용되는 그릇은 언제나 깨끗한 그릇입니다. 아무리 재질이 귀한 것으로 만들어졌고, 아무리 그릇 모양이 예쁘다고 할지라도 설거지가 되어있지 않은 더러운 그릇은 귀한 자리에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식사를 준비할 때 안주인에게 필요한 그릇, 쓰일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그릇은 언제나 깨끗한 그릇입니다. 깨끗하지 않으면 결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쓰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깨끗한가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자만 주님의 나라에 받아들이십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제사 제도를 주셨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주셨고, 매주일 예배를 통하여 십자가 사건의 체험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모든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십자가 사건을 경험하며 사죄를 받고, 하나님과의 교제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격려와 교훈을 받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한 주일을 살아갈 새 힘을 얻도록 계획되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림으로 우리는 모든 죄와 허물에서 사함을 입고, 주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다섯 가지 요인이 있다고 합니다. 복수심, 야망, 질투, 욕심, 자존심입니다. 이런 것들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사람은 더러워지고, 이런 것 때문에 주님께 쓰임 받지 못합니다.

가끔 남편들은 부인들이 친구들 만나고 돌아와서 불평스럽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여자분들끼리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뻔합니다. 그들 중에서 잘 나가는 남편하고 사는 여자가 남편 자랑할 것이고, 또 다른 여자는 은 자기가 사는 고급 아파트 자랑을 할 것이고, 또 다른 여자는 부동산 투기한 것이나 주식 산 것을 이야기할 것이고, 또 다른 여자는 아이들 공부 잘하는 이야기나 유학 보낸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또 그들이 타고 온 고급 승용차를 보고서 생각할 것입니다. “나만 남편 잘못만나서 이렇게 초라하게 살고 있다.” 여러분, 그것은 남편 잘못 만나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친구가 잘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자존심이 상했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질투가 들어왔고, 여러분의 마음 속에 욕심이 생긴 것이 문제입니다.

 

또 활용할 가치가 있는 깨끗한 그릇은 깨지지 않은 그릇이어야 합니다.

깨진 그릇은 아무리 깨끗하게 닦는다고 하더라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깨끗하다는 말 속에는 온전한 그릇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음식물을 담을 때 음식물이 줄줄 새버린다면 그런 그릇을 쓸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금으로 만들어졌어도, 아무리 화려해도, 아무리 티 없이 깨끗한 것처럼 보여도 깨진 그릇은 쓸 수가 없습니다. 깨진 그릇은 활용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손에 들려서 쓰임 받으려면 온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맡은 일에 신실하게 충성해야 하고, 언제나 변함없어야 하고,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깨진 그릇인지 아닌지는 작은 일들을 맡겨보면 압니다. 주님은 교회를 통해서 맡겨진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보십니다. 별로 대단하지 않은 일, 그렇게 크게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일을 맡겼을 때 새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헌금위원, 안내위원, 찬양대원, 찬양단 단원 등 교회에서 하는 일들 중에 맡은 사람이 빠지면 다른 사람이 하면 되는 일들, 한 두 사람 빠져도 별로 문제되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자꾸 빠지면 깨진 그릇입니다. 작은 일에 새는 그릇은 큰 일에는 더 많이 샙니다. 깨끗하고 온전한 그릇이 되어야 활용가치가 있어서 주님께 쓰임 받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모든 선한 일에 준비된 그릇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미리 준비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쓰고자 할 때 바로 준비할 수 없습니다.

장신대 초창기에 어떤 신학생이 전도하느라 공부는 뒷전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기말시험을 볼 때 이 학생은 열심히 기도하고 시험지를 보았지만 공부를 안한 탓에 답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험지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성령님은 정답을 다 아십니다.” 그 후 교수님이 채점을 해서 시험지를 돌려주었는데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 성령님 100점, 학생은 0점”

준비되지 않으면 시험지의 답을 쓸 수 없는 것처럼 주님이 쓰시고자 할 때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경건 훈련에 열심을 내어 깨끗하고 온전한 그릇이 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쓰시고자 할 때 귀하게 사용되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길손들의 쉼터
글쓴이 : 길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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