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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익숙한 것에서 떠나십시오.

하나님아들 2016. 3. 30. 18:00

익숙한 것에서 떠나십시오.

마 15:1-9

 

생활의 달인이란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전에 한 아주머니가 소개 되었습니다. 골프공을 재생하는 공장에서 작업을 하는 분인데, 깨끗이 세척한 골프공을 만든 회사별로 분류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큰 프라스틱 박스를 여러 개 놓고, 골프공을 주어서 여기저기 빠른 속도로 던졌습니다. PD가 확인해 보니 골프공들이 그 통에 정확히 들어갈 뿐만 아니라 제조사별로 정확하게 구분이 되었습니다.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남보다 몇 배나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익숙하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유익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면에 익숙하다는 것은 우리를 망하게 하기도 합니다.

비즈니스 계에서 익숙한 것에 머물면 그것은 곧 망하는 길입니다. 일본의 소니는 전자 제품 분야에서 세계 최고였습니다. 그러나 최고라는 자만에 빠져 있던 순간 싸구려 제품만 생산하고 있던 삼성이 무섭게 기술을 개발하면서 소니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삼성이 휴대폰 시장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더니 지금은 아이폰에게 밀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파이어스톤이란 타이어 제조회사가 70년간 포드자동차에 타이어를 납품하며 부동의 1위를 하다가 미쉐린이 만든 레이디얼 타이어에 밀려서 망하기 직전에 일본의 브릿지스톤에 인수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회사든 세계 1위라고 자만하고 혁신을 개을리 하기 시작하는 순간 도태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익숙한 것은 편한 것입니다. 신발도 신던 신발이 편하고, 옷도 입던 옷이 편합니다. 사람도 알던 사람이 편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불편합니다.

제 차가 노후 되어 자주 고장이 나고, 사고의 위험성이 커져서 새로 차를 구입했습니다. 한 1주일 정도 탔는데, 예전에 타던 차보다 몇 배나 더 좋은 차인데 몸에 맞지를 않아서 운전이 훨씬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예전에 타던 차는 새 차를 사서 11년이나 계속 탔기 때문에 차는 고물이었지만 몸에 착 달라붙어 차에 올라앉기만 하면 내 몸의 일부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새 차는 아직 몸 따로 차 따로이기 때문에 여간 조심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고물차를 팔고, 새 차를 타게 될 때 불편함 보다 유익함이 훨씬 많습니다. 운전할 때 안전장치가 많기 때문에 훨씬 안전하고, 배기량이 좀 더 크기 때문에 훨씬 부드럽게 차가 움직입니다. 그러나 낯설기 때문에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익숙한 것을 버리거나, 익숙한 것에서 떠날 때 우리는 불편을 감수해야할지 모릅니다.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과감히 익숙한 것에서 떠나야 합니다. 익숙한 것을 과감하게 떠날 때 새로운 세계에서 살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는 지금보다 무섭게 변할 것입니다.

전 국제기계협회 회장이었던 윈피싱어 (William Win- pisinger)는 한 보고서를 인용하며 “향후 30년 이내에 세계 전체의 재화를 생산하는 데 현재 노동력의 2% 정도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50년대에 미국 전체 노동력의 33%가 제조 부문에 고용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 절반인 17% 미만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기계화, 자동화로 인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추세로 간다면 앞으로 사람이 필요 없는 무인 공장의 출현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익숙한 것에서 떠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신앙과 영적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익숙한 것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고향입니다. 거기에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과 이웃들과 땅과 재산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곳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고향은 익숙한 곳입니다. 안전한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곳은 아브라함이 있을 곳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거기는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고, 세속적인 문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거기에 있으면 익숙한 것들이 많아서 편하고, 안전하고, 즐겁지만 하나님은 떠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란 땅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동생들은 아예 거기에 눌러 앉았습니다. 왜 아브라함이 하란 땅에 오래 머물렀을까요? 그래도 하란은 살기에 좋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갈대아 우르와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자기 고향과 비슷한 문화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익숙한 고향을 완전히 버릴 수 없어서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서도 떠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으로 왔습니다.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위험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살아가기에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곳으로 아브라함을 부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부르신 이유는 아브라함을 복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복을 받으려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그런데 와 보니 물이 부족해서 우물을 파야했습니다. 기근이 들어서 애굽으로 피신도 해야 했습니다. 안전도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병사를 길러야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까? 갈대아 우르에서 오히려 더 복을 누렸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이곳에 불러내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단순히 세상 복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낯선 땅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했고, 하나님이 비를 주셔야 했고, 하나님이 먹을 것을 주셔야 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복, 그 믿음 안에서 믿음의 조상이 되어 칭송받는 복, 그의 후손에서 메시야가 탄생하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믿음 익숙한 것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익숙한 세속적인 문화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익숙한 것을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살아야 하는 곳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 가족들을 초청함으로 애굽에 내려간 후 400년 동안 애굽에서 살았습니다. 애굽이 이스라일 사람들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곳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세의 인도를 받아 고향과 같은 나일강 하류 고센 땅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광야를 걸어서 가나안 땅을 향해 가게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먼저 물이 부족했습니다. 또 먹을 것이 부족했습니다. 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신선한 다양한 음식들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민 11:5, 개정)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편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익숙한 것을 떠난 것에 대하여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익숙한 애굽을 떠나야 했습니다. 애굽을 떠나지 않고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익숙한 것을 떠나서 가나안 땅에 가기 위해서 광야로 나가는 것입니다. 광야에는 고생스러운 것이 많고, 위험한 것들도 있고, 견디기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무한한 인내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광야를 지나야 가나안 땅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어부였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바다가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가족들이 생활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그들은 고기를 잡아야 살았습니다. 거기를 떠나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천직이려니 했습니다.

주님은 고기를 잡는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3년을 육지에서 살았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일거리,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자 그들은 다시 익숙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고기 잡으러 바다로 간 것입니다.

주님은 다시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들을 불러 재차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익숙한 것을 떠나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익숙한 것을 떠나야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립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비판하고, 예수님이 그들을 책망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비판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통은 조상 적부터 내려온 관습입니다. 익숙한 것입니다. 전통 중에는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에 왜 그것을 하고 있는지를 그 의미를 잊어버린 것들도 많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비판을 듣고, 그들이 전통으로 알고 지키고 있는 것들 중에서 의미가 왜곡된 것을 예로 들어 그들을 비판하셨습니다. 부모님께 드려야할 용돈을 부모님께 드리지 않고 하나님께 바치면 부모님께 용돈을 안 드려도 된다는 장로들의 전통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주님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마음으로는 하나님께서 멀리 떠나 있는 외식하는 자들,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예배하고, 기도하고, 섬기는 것에 너무 익숙해집니다. 며칠 전에 친구 목사님과 함께 천천동의 어느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식당에는 우리 말고도 몇 분이 더 있었습니다. 몇 테블에 손님들이 앉아있었습니다. 우리 바로 옆자리에 여자분 네 분이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먼저 온 그분들에게 음식이 나오자 여자분 중 한 분이 감사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분들에게서 나오는 혀를 굴리고, 어휘들을 익숙하게 반복하는 발음으로 유창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기도하옵나이다. 등등의 어휘를 사용해서 꽤 오랫동안 기도했습니다.

저는 그 기도소리를 옆에서 들으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식당에서 뜨거운 음식을 앞에 놓고 그렇게 오랫동안 공개적으로 기도하는 믿음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그 분은 기도에 참 익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누가 저에게 와서 부탁을 하는데, 그분처럼 부탁했다면 저는 절대로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진실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무 입에 발린 말을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익숙한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그것이 주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고, 주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해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떠나는 것입니다. 익숙한 것을 떠나서 주님과의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비록 현재 삶의 자리가 아무리 안정되고, 편안하고, 부유하고, 권세가 있고, 돈을 잘 벌고,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자리라고 하더라도 주님과의 새로운 만남과 관계설정을 위하여 주님이 부르실 때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결단이 신앙입니다.

 

익숙한 것을 떠날 때 중요한 것은 들음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든지, 설교를 통해서 주의 말씀을 듣든지, 아니면 기도하다가 말씀을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에 따라 떠나야 합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 떠나는 것은 또 다른 익숙함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입니다. 항상 깨어서 주님의 말씀을 듣도록 귀를 기울이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늘 새롭게 들어야 합니다.

한 청년이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다는 성경 말씀을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다가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으면 이 산더러 옮겨 바다에 빠지우라 하여도 그대로 된다는 말씀에 더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한강을 걸어보리라 생각했습니다.

한강변에 가서 “물위를 걸을 줄 믿습니다.”하고 물 위를 걸었습니다. 발을 물 위로 한발 내 딛자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른 발을 내 디뎠는데 또 물에 빠졌습니다. 아무리 믿습니다라고 기도하고 외쳐도 물위로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화가 났습니다. 성경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목사님께 와서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한마디 하셨습니다. “주님이 형제에게 물위로 오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떠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떠나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 생활에 절대로 익숙해지지 마십시오. 익숙해 진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늘 주님 앞에서 두려움을 가지고 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면서 듣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날마다 새로운 길을 떠나는 믿음만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주님 이외에는 믿을 분이 없는 곳으로 떠나는 모험입니다.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도 주님이 지시하는 곳을 떠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여러분의 전 인생을 걸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떠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익숙한 것에 머물면 외식하는 자가 됩니다. 익숙한 것에서 떠나십시오. 낯선 곳으로 떠날 때 깨어있게 되고, 항상 길을 묻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낯선 곳을 향해 떠나서 늘 주님께 물으며 살아가는 삶이 진실한 믿음의 삶입니다.

 

믿음은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누리는 능력이며, 행복이며, 축복입니다. 이는 익숙한 것을 떠나는 자만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 주님의 부름을 받고 익숙한 것에서 떠나 주님이 예배하신 복된 미래를 향해 나아가십시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떠나십시오.

“밧줄을 풀고

안전한 항구를 벗어나 항해를 떠나라.

돛에 바람을 가득 담고

탐험하고, 꿈꾸며, 발견하라.”

 

 

 

 

출처 : 길손들의 쉼터
글쓴이 : 길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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