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교사의 자질과 역할
세계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급격한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무질서한 사회구조 속에서 겪는 필연적 과제로 기피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상황의 원인들이 그러한 것에서 멀리 떠나도록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과제를 두고 그것을 피할 수 있을까라는 반문을 할 수 있는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참된 교사, 좋은 스승이 없는데서 기인된다고 보아야 한다. 교육부재, 교육의 위기 등은 실상 선생은 많은데 스승이 적다는 말 한마디로 설명 될 수 있다. 굶주림에 대한 아우성이 천지를 진동하고 음산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온통 주변을 휩싸고 있는 현실을 눈감아 외면하기에는 너무도 우리(교사)의 책임이 막중하기만 하다.
주님은 그 모든 책임을 바로 교사된 우리 자신에게 물어올 것이기 때문이다(막 9:42, 마 18:14). 지금에라도 뜻을 돌이켜 그 모든 죄들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이 주님의 강력한 요구사항이다. 오늘 말씀은 교사의 자질과 역할에만 그 내용을 한정한 것은 참된 교사는 반드시 전략과 전술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바 교사의 자질과 역할이야말로 교사의 전략과 전술 수립에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되며 교육목표 성취의 생산적 수단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교사라는 직분을 주시고 그것으로 많은 이들을 가르치게 하셨다.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전할 책임이 교사에게 있고, 그리스도의 몸을 건강하게 바로 세울 계획이 있다. 오늘 본문 말씀 눅 2:40 구절은 세례 요한의 어릴 적 성장 모습을 묘사한 눅 1:80의 내용과 비교된다. 그리고 2:52절은 이 구절에 대한 보충 내용이다. 이것은 예수가 12살이 되기(42절) 이전의 이야기이다.
2. 좋은 교사의 자질
좋은 교사란 바람직한 교사, 사표(師表)가 되는 교사, 능력 있는 교사, 이상적인 교사, 자질 있는 교사 등을 총체적으로 이른 말이다. 따라서 좋은 교사란 반드시 좋은 교사가 되는 자질과 능력들을 갖추고 있기 마련이다. 즉 사람 누구에게나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 자질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 자질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John L. Lobingier는 이렇게 말했다.
첫째, 교회내의 기독교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둘째, 교회학교 교사는 인간성이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셋째, 교회학교 교사는 그가 기독교 교육을 가르치는 이유에 대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넷째, 좋은 교사는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며, 공과와 그 이상의 것을 알아야 한다.
다섯째, 좋은 교사는 민주적 접근방법으로 학생들과 동료로서의 친교 속에 들어가야 한다.
여섯째, 좋은 교사는 학생들이 어떻게 배우는지를 알며, 학생과의 관계에 있어서 보다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Hart와 Witty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교사의 자질을
첫째, 공부에 도움되는 자료, 과제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teaching의 실례를 들어줄 때
둘째, 유쾌하고도 행복스럽고 온유하며 쾌활하고 유모어가 있는 농담을 잘할 때
셋째, 학급 집단의 일원으로서 인간적이고 사람을 잘 따르고 친해줄 때
넷째, 학생에게 흥미가 있고 이해할 때
다섯째, 은밀하게 학급조정을 하며 관심을 가질 때
여섯째, 공부를 흥미 있게, 공부에 대한 욕망을 일으키는 학습활동을 만들어 줄 때
일곱째, 배운 것이 많이 있을 때
여덟째, 교과에 정통하고 다루는 방법을 알 때
아홉째, 사람을 좋아하는 인성을 가질 때
열째, 등급결정에 공평하고 시험에 공정할 때
열한째, 무뚝뚝하지 않고 까다롭지 않으며, 말이 많지 않고 비꼬지 않을 때
이같이 개괄적이고 서술적인 것과는 달리 Herman H. Horne은 교사의 자질을 육체적 자격, 이지적 자격, 감정적 자격, 의지적 자격, 일반적 자격으로 세분해서 논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교사의 자질을 기본적 자질, 영적 자질, 정신적 자질, 신체적 자질, 사회적 자질 등으로 나누어 그 의미를 다룬다.
영 적 자 질 (동기화) |
<개념 모델>
기본적 자질 |
정신적 자 질 (개념화) |
사회적 자 질 (기술화) |
육체적 자질 (동력화) |
1) 기본적 자질(인격:Personality)
H. W. Byrne 는 알파벳을 기준으로 아주 적절한 자질들을 다루었다.
P에 해당되는 요소 : 인내, 평화, 참을성, 개인적 용모, 체격, 예절바름, 자세, 실제성, 기민성, 정확성
E에 해당되는 요소 : 정직성, 교육, 효율성, 지속성, 에너지, 융통성, 열성
R에 해당되는 요소 : 신뢰성, 재원의 풍부성, 존경, 책임, 민감성
S에 해당되는 요소 : 희생, 학위, 자기 통제, 감각, 봉사, 침착, 예민성, 감수성, 신중성, 영성, 힘, 동정
O에 해당되는 요소 : 목적성, 활달성, 낙관주의
N에 해당되는 요소 : 단정, 담력, 고귀함, 재주, 지식
A에 해당되는 요소 : 정확성, 행동, 업적, 적응성, 연설, 민첩성, 이타성, 야망, 사귐성, 적합성, 매력
L에 해당되는 요소 : 지도력, 자유, 사랑, 충성
I에 해당되는 요소 : 이상, 이념, 상상, 공명정대, 독창성, 통찰력, 영감, 지능, 관심, 직관
T에 해당되는 요소 : 솜씨, 기질, 유순함, 사상, 절약, 관용, 성실성
Y에 해당되는 요소 : yourself at your best(최선을 다하는 자신)
즉 좋은 교사는 위와 같은 인격적 요소들이 잘 조화를 이루게 될 때, 교사로서의 훌륭한 자질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2) 영적 자질
영적이라는 말은 ‘합리적, 합당한, 이상적인’의 뜻을 가진 말이다. 영적 자질이란 온당하여 합법적인 그리고 이성적인 자질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가장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자질에 속한다. 그럼 영적 자질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첫째, 하나님의 실존과 현존에 대한 의식과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둘째, 소명의식이 철저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을 향한 헌신적인 봉사가 있어야 한다.
넷째, 항상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다섯째, 성경지식에 능통하고 근본적 진리에 관한 이성적이고 진실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여섯째, 늘 기도하는 자여야 한다.
일곱째, 이웃에 대한 깊고 진실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여덟째, 솔선수범의 선한 본을 보여야 한다
특별히 교사의 영적 자질은 구약시대 제사장들이 가졌던 임무 속에서 추출해 낼 수 있다.
제사장이 백성을 하나님께 이끌어야 했던 것처럼 교사도 말씀으로 하나님의 교육해야 했다.
첫째, 제사장은 레위 지파이며 그 중에서도 아론의 후손이어야 했다. 즉 선별된 자였다.
교사는 존재이다. 반드시 하나님께 속한 자이어야 한다. 구원의 확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주체의식에 대한 바른 관점을 제시함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때 확실해진다.
둘째, 제사장은 헌신해야 했다는 점이다. 자기 중심의 생활을 용납하지 않으며,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원리를 찾아내고 그의 뜻 안에 살아야 한다. 교사는 희생을 강요받는 직분이다. 가치 있는 거룩한 직책이다. 하나님이 쓰시도록 헌신해야 한다.
셋째, 제사장은 누구나 기름부음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이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따라서 제사장은 자신을 무제한으로 드려 일하는 자이다. 교사에게 있어서도 역시 성령의 인도와 성령 충만함이 있어야 한다.
3) 정신적 자질
교사의 열정만 틀에 박힌 채 굳어있는 상태를 아는 체하는 교사라 한다. 교사는 아는 체하는 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정신적 자질을 개발해 가야만 한다. 특히 교사로서 정신적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창의적인 사람이란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많은 관심과 해결에 가치를 부여하고, 새로운 영역으로의 개설을 좋아하며, 같은 일의 반복을 싫어한다. 그리고 생각이나 태도를 굽히는 것에서 과감히 이탈하는 용기와 끈기를 보이며, 복잡하고 모호한 것들을 회피하지 않고 즐겨 도전하는 정의적 특성을 가진다.
분명 정신적 자질은 영적 자질에 뒤지지 않는 것으로 지적 작용에 의한 지각, 인식, 개념으로 설명될 수도 있는 것으로 대체적으로 상식과 통념에 반대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정신적 자질을 가진 교사는 진보하지도 않고 퇴보하지 않으며 결코 자신의 위치를 쉽게 포기하거나 망각하지 않는다.
4) 사회적 자질
참된 교사는 자기만을 생각하는 독선인이 아닌 주변인(周邊人)이랄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에 관계하는 이해에만 얽매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며 공동체에 관심을 둔다. 본질적으로 자기를 초월한 이타적인 자인 것이다. 정신적 자질이 개인적이고 내재적 자질이라면, 사회적 자질은 다분히 공동체적이고 외부적인 것이 된다.
H. W. Byrne는 사회적 자질의 구성요소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연설․ 이해력, 재치․동정, 지도력․매력, 재원의 풍부성, 정확성․실제성․책임성, 신뢰성․신중성, 성실성․정직성, 관용․존경, 이타주의, 야망․의존성이 그것이다. 그 사람의 사회성은 곧 그가 속한 공동체에 투입되어 본질적인 면에 깊은 가치와 내면에 깊이를 더하는 요소가 된다. 사회적 자질을 가진 이는 그 집단의 특성과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leader ship을 소유하고 그러한 leader ship을 가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5) 신체적 자질
신체적 자질은 결코 부차적이거나 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체적 자질은 사실상 모든 자질을 동력화 하는데 있어 기초적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적, 사회적 자질들이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표면화되어야 하는 바, 그 행동의 원동력이 되는 신체적 자질들이 요구된다. 신체적 자질(훌륭한 용모, 육체적 인내력, 건강한 신체, 넘치는 활력, 또렷한 음성, 올바른 습관 등)은 곧 추진력의 상징이다. 분명히 내용 못지 않게 그것을 담는 형식도 중요하다.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체적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활력은 학생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며, 그의 깨끗한 용모는 학습의욕에 플러스적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할 것이다. 분명한 그의 목소리는 아동들을 감화시키는 힘이 클 것이고 그의 자연스런 행동들은 어린이들의 태도형성에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3. 좋은 교사로서의 역할
Richard E. Rusbuldt는 교사의 기본적 역할로 전달자(communicator), 계획자(planner), 조직자(organizer), 유도자(motivator), 번역자(translator), 촉진자(facilitator), 창조자(creator)가 되는 것으로 보았다. 교사에게는 이같이 자신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는 것이다. 이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명확한 인식을 할 때, 교사는 가르치는 것에 대한 사명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기능 수행의 지침을 가지므로 하나의 활력소를 가진다.
|
<개념 모델>
동기부여 학습환경
생활 선각자
지도 조력자
역 할 |
교정자 자질
촉발자 개발
중계자 상담자
경건 동반자
2 Line - 역할 훈련 문제
해결
3 Line - 업무 수행상 인간관계
교육적 기능
1) 조력자로서
교사는 원칙적으로 그들을 돌보는 자이다. 돌봄은 격려와 자극, 인도와 보살핌, 동정과 협력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격려란 아동들이 용기와 자신을 갖게끔 북돋아 주는 것이다.
인정해 주고 도와줌으로 아동들을 고무한다. 교사는 말로서, 기도로서, 진리를 표명하는 것으로, 그들과 함께 있어주는 것으로, 우리가 가진 것들을 나누어줌으로써 그들을 격려할 수 있다(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행 20:35). 교사는 어린이들이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잘 인식할 필요가 있다. 보살핌이란 들어올린다(lift up), 잡아 올린다(take up), 품는다(bear), 운반한다(carry), 업는다(put up), 잉태한다(to be pregn-ant)는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다. 교사는 이런 면에서 섬기는 자이며, 철저한 봉사자인 것이다. 특히 교사는 그 역할에 있어 그들의 주변 환경을 도와주어야 한다.
“미움을 받으며 자라나면 잘 다투게 된대요.
힐란을 받으며 자라나면 남을 헐뜯게 된대요.
놀림을 받으며 자라나면 남과 어울리지를 못한대요.
모욕을 받으며 자라나면 항상 죄의식과 열등감을 갖는대요.
격려를 받으며 자라나면 자신을 갖는대요.
칭찬을 받으며 자라나면 감사할 줄 알게 된대요.
공정하게 다루어진 아이는 신뢰를 배운대요.
용서를 받으며 자라난 아이는 인내를 배운대요.
안정된 분위기에서 자라면 신념을 갖게 된대요.
주변의 인정을 받으며 화목한 환경에서 자라나면 참 삶을 영위하는 지혜를 배운대요. “
위의 글처럼 교사는 이러한 것들을 도와주는 자임을 알아야 한다.
2) 촉발자로서
교사는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세계를 불러 일깨워야 한다. 그러므로 교사는 가능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들을 잠재워서는 안 된다. 그들을 두들겨 깨워야 한다. 어쩌면 그들을 일깨우는 일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포기되어서는 안 될 사명이 있다. 베드로는 배우는데 매우 느렸고 혈기가 있었으며, 도마는 고질적인 의심꾼이었다. 그렇다고 주님이 이들을 포기하셨는가? 오히려 주님은 이들을 훈련시킴으로 가장 훌륭한 복음의 수종자들이 되게 하셨다.
교사는 잠재워진 그들의 재능을 깨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빛을 발할 수 있는 그들의 재능을 묻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책임이 누구에게? 바로 교사에게 있는 것이다.
교사는 “예, 아니오”를 구하는 질문(어느 것인가?, 이것이 맞는가? 식)을 함으로 사고력, 발표력, 분석력, 종합력, 평가력을 신장시켜야 한다. 칭찬은 인정해 주고 신뢰해 주는 표현이기 때문에 큰 힘을 얻게 된다. 칭찬 속에는 감사와 보상과 위로가 포함된다. 이러한 것들은 교사의 긍정적 가치 평가인 동시에 잠재의식을 깨우는 수단이기도 하다.
3) 상담자로서
세익스피어는 「13세부터 20세 사이의 시기가 없었으면 좋겠다. 아예 잠들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할 만큼 아동들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아동뿐만이 아니다.
현대는 자기 실존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무신론적 자만과 물질문명에 휘말린 가치관의 타락, 그리고 vision 없는 현실주의로 심한 갈등과 번민에 허덕이며 고뇌하고 있다. 문제는 반드시 파괴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그 문제들을 피하거나 제거해 버릴 것인가는 자세보다 어떻게 그런 문제들을 건설적이고 창조적 방향으로 조종하고 다룰 것인지를 생각하고 그 방법들을 익혀가야 한다. 가끔 절망이 아동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로부터 인간을 회복시키고 인간을 재발견하여 주어진 삶 속에서 자유와 생명, 가치와 성장,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실망이나 좌절 없이 생을 구가하도록 안내하는 작은 인간혁명이 바로 상담이다. 상담에 있어서 가장 큰 도구는 성경이다. 상담자는 인간의 삶에는 한계가 있으며 또한 재능을 활용하여 자신을 가치 있게 주님께 바침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며 그리스도 안에서 보다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4) 동반자로서
교육의 특징 중 하나는 쌍무적(雙務的)이라는 점이다. 학생이 교사에게 배울 뿐만 아니라 교사도 학생에게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교사와 학생은 다함께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의미있는 것이며, 무엇이 가치있는가를 탐구하는 동지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동지의 의미로 함께 일하는 사람(롬 16:21, 고후 6:1, 막 16:20), 서로 일하는 협조자(고후 8:23), 협력자(빌 4:3), 노고를 같이 하고 있는 사람(고전 16:16), 돕고 섬긴 동료(빌 2:25), 함께 돕는 자(follow helper), 함께 일하는 자(follow worker)의 뜻을 취하고 있다. 먼저 교사는 그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인류의 위대한 교사들은 일단의 모방적 후계자들, 또는 제자들을 거느리며 그들 자신들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게 했으며 그 제자들은 수업으로부터라기보다는 그들의 교사들이 행하는 제반 사실로부터 배울 수가 있었고 축복된 진리가 인격적인 증언에 의하여 타인에게 전달될 수 있었으며 또 이어서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지곤 했던 것이다. 동반자로서 교사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일면은 교사 자신의 개방성이라는 점이다. 완벽한 자기 개방은 자신의 정체를 어린이들에게 기꺼운 마음과 신실한 마음으로 드러내어 진실을 보여주는 결과를 불러일으키며, 이 일은 그들의 진취성을 자극하고 감정적 밀접성을 더하여 교사 자신의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라. 그러면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도움에 능력을 부여할 수 있다. 어린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 그들의 참다운 동지, 고귀한 친구가 되고 소중한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다.
5) 중계자로서
현대사회는 기능을 중요시한다. 기능공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현대사회의 이런 단면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보아진다. 그래서 실존의 가치는 되어 짐보다 움직임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어떤 기능을 가지고 어떤 역할을 감당하느냐를 묻는다. 이런 사회적 요청으로 영적인 인간보다 공작인을 배출하는 것을 교육의 이상으로 삼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모든 사람을 기계의 부속품과 같이 문명의 노예로 만들어 인간다운 인간을 찾을 수 없게 만들 위험이 있다. 스위스의 교육가 pestalozzi는 “학교 교육은 인간교육이 아니고 학술교육이기 때문에 불안하다”라고 했으며 19세기 유명한 영국의 정치가 Welling은 학교 교육만으로는 다만 약삭빠른 악마를 만들뿐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교사의 첫째 되는 역할이라면 아동을 하나님께로 연결시켜 주는 중계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독교 진리의 모든 원천자이신 하나님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교회 교육은 아동들로 하여금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 되도록 이끌며(벧후 1:4, 골 3:10),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자라기까지(엡 4:13) 인도되어야 한다. 교사는 이 모든 기독교적 교육 목표에 입각한 하나님의 사람을 양성하는 일에 주력해야하며 이같은 일에 중계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6) 교정자로서
한자의 고형을 뜯어보면 원래 교(敎)자는 아이들에게 몽둥이 찜질을 한다는 뜻이 모여 교라는 회의문자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처벌이라는 용어를 쓸 때 단순히 아동을 처벌하는 징계수단 이상의 훈육과 통제, 질서의 수립, 훈련, 양육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진정한 처벌은 적극적인 요인으로서의 인도의 관념과 처벌을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 아동에게는 일정한 질서와 규율이 요구되며, 거기에서 순응과 인내를 배운다. 어린이를 순간적 충돌과 변덕스런 자신들의 감정에 내팽개쳐 두는 것은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하는 책임을 포기하는 결과밖에 아무 것도 없다. 처벌은 엄부(嚴父)적이고 자모(慈母)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곧 정의를 드러내는 엄한 매와 그러면서도 아이를 감싸주는 따뜻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훈육은 처벌보다 선도 내지는 지도를 앞세워야 하며 치료나 교정보다 예방에 역점을 두어야 하며 꼭 처벌이 요청될 때는 임상적 판단뿐만 아니라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동기와 감정들을 함께 평가의 요소로 포함시켜야 한다.
다음에 제시하는 영국 기독교사회의 체벌기준을 따르는 것이 무방할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너무 빈번한 처벌은 효과를 상실한다. 처벌은 특별한 강조점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 이유가 당위적인 것이어야 한다. 위반행위에 대한 지나친 처벌은 삼가야 한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보복의 감정이 표현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처벌은 공정무사(公正無私)해야 한다. 또한 기를 죽이는 무모한 처벌은 피해야 한다. 그리고 처벌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시효가 지난 처벌에 대한 신체상 처벌은 자제한다. 그리고 학생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한 처벌은 스스로의 자멸과 학생들의 분개를 일으키는 타당한 근거가 될 수 있다.
7) 선각자로서
교사는 학생의 행동을 이끌어 주고 그러한 활동이 일어나도록 그 자신이 스스로 행동하고 이룩하는 자여야 한다. 그는 꿈과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염려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있으며 또한 일정한 방향을 설정하여 영향을 미치는 효율적이고 개인적인 역이익이 되게 개발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참된 교사는 행동의 솔선수범을 보이고자 하는 강한 열의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학생으로 하여금 바람직한 목표를 달성하도록 최고의 능력이 발휘되게 유도하는 선각자여야 하는 것이다. 교사에게는 진리의 영원한 추구자, 가치의 탐구자, 생명을 탐색하는 구도자, 허위를 파헤치는 개혁자적 자세가 요구된다. 그러므로 그는 기꺼이 땅에 떨어져 희생하는 일에 자신을 불사르는 자이어야 한다. 사마귀란 놈은 교접을 하고 난 뒤에 수컷이 암컷에게 잡혀 먹힌다. 연어의 경우에는 배란에 대한 대가가 곧 죽음이다. 밀알도 재생산을 위해서 죽는다(요 12:24). 이같은 희생에 대한 각오 없이는 앞서는 자가 될 수 없다. 교사에게는 많은 난관과 어려움이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것을 능가하는 사람이다. 그 모든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하는 자이다.
4. 나가는 말
19세기 독불 전쟁에서 패전한 독일은 피히테의 교육 입국론에 입각하여 초등학교 교육으로부터 다시 시작하여 만 60년 만에 다시 독불 전에서 승리하고 패전의 굴욕을 씻었다. 제2독불 전에서 개선하여 돌아온 모르토게 장군은 “오늘의 독일 승리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고 독일 초등학교 교사에게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었다. 어릴 적부터의 가르침이 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는 의미다. 교사는 어린 아동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가진 책임은 크다. 교직은 결단코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부과된 직업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며 스스로 우리 자신의 양심의 부름을 받아 짊어진 십자가이기도 하다. 또한 자진하여 짊어진 멍에이다. 물질적 보수를 기대하거나 강요에 의해 수행되는 노동이 아닌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자원하여 정열을 쏟아 바치는 봉사이다. 교육이상향(Educatopia)은 교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참된 교사, 좋은 스승은 우리의 절박한 교육 부재, 암담한 교육위기시대에 가장 필요한 재원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교사라는 직책이 가진 커다란 의미를 말이다. 자신이 가진 직분에 불만을 토로하거나 재능의 없음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야말로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장 충성된 제자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 교사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교사의조건 (0) | 2015.07.18 |
---|---|
[스크랩] <글> 교사 세미나 - 휼륭한 교사의 자질 요건 (0) | 2015.07.18 |
[스크랩] 청소년 이고그램 (0) | 2015.07.18 |
[스크랩] 자아상태분석표 (이고그램) (0) | 2015.07.18 |
[스크랩] 논단 - 환타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 (0) | 2015.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