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언어 - 릭 조이너
1) 성령의 언어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분의 길들과 - 이것들은 우리의 길들이 아닙니다.
그분의 언어를 - 이것은 우리의 언어가 아닙니다 - 소개 하시기 위해
꿈과 환상을 사용 하십니다.
꿈과 환상들은 성령의 언어 입니다.그리고 성령의 언어에 있어서
그림은 천개의 단어들 보다 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꿈과 환상들은 대개 사실들 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전달 합니다.
우리가 이 특별한 메시지들의 암호를 푸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바을은 고린도인들에게 이것을 설명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 2:14 - 15)
인간의 본성중 가장 기본적인 것들중의 하나인 호기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의 창조를 보다 깊이 이해힐수 있도록
우리를 탐구의 길로 내 몹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그의 신부에게 사랑을 호소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계속해서 우리를 자신 가까이로 이끌려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신비들을 측정해 볼 수있는
또 다른 인식의 영역으로 들어 가도록 우리에게
손짓하고 계신것입니다.
바울이 하늘로 들려 올라 갔을 때 그는 말할수 없는 것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영지주의자들은 비밀스런 지식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가
그들을 좀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고 주장하면서
분파를 형성했지만 바울은 이 지식을 어떤 다른 분파를
형성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영적 진리들은 인간의 정의에 의해 그렇게
쉽게 제한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거나
혹은 그것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일을 굳이 해보려고 한다면
우리는 이단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만약 꿈 혹은 환상이 정말로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분별합니까?
먼저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그 안에 지니고 있는
영적인 사람이 됨으로써 그것들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2) 꿈과 환상의 근원을 분별함
우리의 주요 목표들 중 하나는
항상 영적인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사람들이 되기 전 까지는
꿈과 환상들과 같은 성령의 요소들이 우리에게
어리석은 것 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되었을 때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리의 성령 자신에 의해
인도함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꿈들과 환상들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그것들이 단지 우리들 자신의 정신적 활동의 결과인지를 -
혹은 심지어 원수들로 부터 온 것인지를 -
분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것이 주요한 방법입니다.
먼저 영적으로 된다는 것은 성령의 열매를
가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만약 사랑보다는 불의한 분노 혹은 두려움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우리는 분노의 영
혹은 두려움의 영에의해 보내진 메시지들을 받을수 있도록
열린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것들이
주님께로부터 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가 화가 났거나 어떤 특정한 사람에 의해
상처를 받았다고 느낄 때 만약 이 상처가 우리 영혼에
깊이 자극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나는 나의 현재 마음상태에 의해 채색될수 있는
꿈들이나 환상들은 결코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어떤 사람에 대해 불의한 분노를
가지고 있는데, 그에 대한 나의 관점을
변화 시킬수 있는 꿈이나 환상을 보았고
그래서 내가 그를 용서하는것이 더 쉬워졌다면
나는 그것이 아마도 성령으로부터 왔을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성령에 의해 주어진 것은 항상 그분의 본성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본성은 성령의 열매로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등등(갈5:22) 화해의 사역은
성령의 사역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하나님께 화목시키고
우리들 서로를 화목 시키기 위해 노력하십니다.
이와는 반대로 원수는 항상 교회안에 분열을 야기 시키고
그것을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이러한 분열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꿈들과 환상들은
원수로 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내던져 버려야 합니다.
꿈 혹은 환상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분별하는
두번째 방법은 그것들이 결코 교리를 확립하기위해
우리에게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새로운 교리를 확립하기 위해
어떤 꿈이나 환상 혹은 계시를 주시는 예를
성경에서 단 한번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분별을 위한 기본적 지침입니다.
대부분의 꿈들과 환상들은 마게도냐 사람에 대한
바울의 꿈과 같이(행16:9-10) 특정한
개인적 인도함을 위해 주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에게 이방인 고넬료에게 갈 것을
지시했던 환상과 같이 어떤 성경적 진리들을 강조하기 위해
주어진 환상의 예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만 교회가 아직 그안에서 걷고 있지않고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한 진리였습니다.
이 환상을 통해 베드로는 시므온이 예언한 것에 대한
대답을 주었습니다.즉 예수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빛이 될것이라는 것입니다.(눅 2:32)
이 환상의 결과는 어떤 새로운 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진리를 조명하는것이었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아마도 꿈을 해석하기 위한
기본 공식을 갖기를 원힐것입니다.
그러나 그런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꿈에 대한 가장 위대한 성경적 해석자의 한사람인
요셉은 이 위대한 소명을 준비하기 위해
한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는 겸손과 용서를 배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은사는 위대하고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자들에게만
위탁될것입니다.
즉 겸손한 자들입니다.
물론 어떤 기본 원리들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기본원리일 뿐입니다.
요셉은 어떤기본원리들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이것을 말씀해 주셔야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예들로부터 배울 수있고
그후에는 우리경험으로부터 배울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모든 진정한 계시에 있어서
그분이 해석의 열쇠를 쥐고 계실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이 그것을 여셔야 합니다.
오직 겸손만이 우리를 은혜로 인도 합니다.
우리는 단지 꿈과 환상의 해석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모든 것에 있어서도 모두 완전히
은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겸손과 친밀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열쇠입니다.
그리고 종종 이 친밀성은 우리측에서의
비밀엄수를 요구합니다.
두사람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들의 비밀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자신이 말한 것이 모두 다른사람들에게
공개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떤연인이
계속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겠습니까?
여기서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교리 혹은
성경의 예언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과 함께 나누고 있는
개인적인 교제에 대해서입니다.
[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