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8. 20. 주일 낮설교
설교제목 : 묵은 땅을 기경하라
성경본문 : 호세아 10:12
지난세기의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무엇인가 새롭게 바꾸고 변화를 구상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새마을 운동을 이야기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무엇인가 사회를 바꾸고 잘사는 국민이 되게하기 위하여 내놓은 새마을 운동의 기본 정신이 바로 근면과 자조와 협동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신계발을 근간으로한 사회운동은 60- 70년대의 농촌을 크게 변화시키게 되었고 식량의 자급과 또한 소득증대라는 획기적인 사회의 변화를 이룩하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 때의 새마을 운동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침일찍 마을회관 스피커에서 아침마다 잘살아보세!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하면서 새마을 노래가 확성기를 통해 흘러 나왔습니다. 이러한 사회운동이 그당시 농촌의 의식을 깨었고 농촌의 주택개량이라하여 농촌의 지붕을 벼겨내고 모두 스렛트지붕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동남아의 힘들게 살고있는 개발도상에 있는 여러 나라들이 지금도 새마을 운동을 배우러 한국에 오시는 분들이 종종있는데 이는 그당시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이룩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권력을 잡은 한 정치가의 폭력배와 죄에 대한 극단적인 대처를 경험한 적도 있습니다.
그의 구상은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근본적인 죄의 요인들을 모두 제거해 버린다면 범죄가 없는 살기좋은 나라로 변화가 되고 발전하지 않겠느냐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구상하여 내 놓은 것이 삼청교육대였습니다. 그리하여서 사회를 어지럽피고 범죄의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4등급으로 분류하여 잡아 들였습니다.
A급: 조직폭력이나 공갈 치기배의 간부급이나, 상습폭력배 중 폭력 실형전과 2범이상, 기타 흉기를 소지하고 극악한 행동을 한자와, 마약의 현행범들.
B급: 조직폭력과 공갈치기배의 행동대원, 정치 경제 폭력배, 상습도박자, 사기꾼, 강도, 절도, 밀수마약 전과자로서 재범의 위험이 있는 자.
C급: 폭력사실이 경미하고 우발적인 범죄자.
D급: 초범이나 죄질이 경미한 경우, 그리고 학생이나 소년으로서 직업과 거주가 일정한 자들은 재범하지 않겠다는 본인의 서약과 후견인의 보증을 받고 훈방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준하에 당시 6, 7만 명이 검거되었고 그 중 4만 여명 정도가 삼청교육대로 끌려가 혹독한 훈련을 강압에 의하여 받게 되었습니다.
위의 두 지도자들이 사회운동이나 강제적인 제도를 통하여 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그러한 운동과 제도들을 통하여 사람들을 변화시키려는 의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의도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강압적인 훈련을 통하여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할지모르나 근본적인 변화는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운동과 계도는 사람들의 영혼을 온전하게 변화시키려는데 초점을 맞춘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세상과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즉 자신의 치적과 자신의생각을 성취하는데 더 큰 비중을 두었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조치와 제도들을 통하여 얼마나 사람들이 변화가 되었습니까? 물론 어느 정도의 변화는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단지 두려움과 압박에 의하여 마지못해 따라오는 정도에 불과할뿐 아마도 그들이 기대했던 총체적인 변화는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형식적인 변화와 외적인 변화에 불과한것이지 내면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서 인간들이 만든 이념이나 체제나 제도는 환경이나 겉은 바꿀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의 속마음이나 심령은 변화시킬수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들은 그마음이 부패된 죄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이미 죄악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부패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고 정결케 한다는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먼저 나 자신의 진정한 변화가 없이는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변화시키려고 시도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변화되는 과정을 겪었더라면 아마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나라를 변화시키고 그리고 사람을 변화시켰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요소는 자기 자신 스스로가 먼저 철저히 변화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 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예수를 안 이후에 자신이 새로워지고 변화가 되기위하여 유혹의 욕심을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쫒는 옛사람을 벋어버리고 새사람이 되기 위해서 매일 매일 옛것을 벋어버리고 심령을 새롭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구약 에스겔서 36: 26절에도 보면 새영을 너희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것이며 또 내신을 너희에게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따라서 행하는 사람이 되게 하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마음속에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야지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육체가 주도하는 인간의 삶과 성령이 주도하는 인간의 삶은 다른것입니다. 육체중심의 사람은 나중심에서 살고 성령 중심의 사람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세상 속에서 함께 섞여 살아가지만 육체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욕망을 따라 살아가고 성령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같이 사업하고 같이 직장생활을 하고 같이 활동하는데 움직이는 주도력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중심의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주의 이름을 찬양하게 되어있고 시간만 있으면 주님이 기뻐하는 일들을 합니다. 그러나 육체 중심의 사람은 시간만 있으면 자신의 욕망을 체우려고 죄를 짓고 어디를 가든지 자기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5: 19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맺는것과 분쟁과 시기와 다틈과 당짓는 것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육체의 소욕을 벋어 버리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방의 빛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 빛을 보는 모든 민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인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특히 호세아서를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순결한 신부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남자를 따라가는 음란한 고멜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호세아라는 선지자로 하여금 그의 부정한 아내 고멜에게 지순한 사랑 즉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고 모든 것을 용납하는 사랑을 보여주는 삶을 살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이는 호세아선지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오래 참으심의 마음이 어떤지를 깨닫게 하고 그 입술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심정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호세아 2:19-20에 보면 하나님은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위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아름다운 신부로 삼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이방신을 따라 감으로 스스로 불순종과 불충실의 관계에 빠짐으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서의 위신을 잃어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변함없는 사랑과 언약의 신실하심을 확인시켜 주시면서 신부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에게 신실한 신랑이 되고 그들을 그의 사랑을 받는 신부로 세우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외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6:3).
또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한다고 ”(6:6).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번제를 드리면서도 정작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모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외치는 것이 그들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바르게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신이고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시며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알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해야 할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의와 긍휼을 부어 주시어 다시 그들로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나라요 그 분의 영광의 빛을 비추는 나라로 세워주시려고 항상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그러한 의와 긍휼 을 받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묵은 땅’은 하나님과 그들 사이를 가로막는 여러 가지 요소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습관화된 죄의 요소들을 갈아 업으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죄로 습관화되고 체질화된 그들의 완악하고 패역한 마음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몇칠전 주차장 옆에 풀밭을 갈아업고 배추와 무씨를 뿌렸습니다. 그랬더니 파란 새싻이 돋아 나는것을 보고 딱딱한 마음밭을 기경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수 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기경한다는것이 무엇입니까 갈아업는다는 것인데 그러한 것들을 갈아엎는 유일한 방법은 마음을 찟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계시록2:4-5에서 예수님은 요한을 통하여 에베소 교회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 교회는 처음에 많은 일을 한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 인내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안 좋은 것들이 그들 가운데 들어 온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사랑보다 다른 것들이 더 중요시 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보다 자신들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더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빛과 소금으로서의 본질을 잃어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시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는 길은 단 한가지입니다.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된 우리는 여전히 사회의 변화를 외치고 있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고 교회사역에 열심 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부턴가 교회의 복음이 영향력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용납한 것들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무디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버리고 세상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고 다시 한번 세상 가운데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회개를 통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가 먼저 변화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관계 회복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마음을 찟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1. 기억하는 것입니다.
눅15장에보면 우리는 가장 위대한 회개의 이야기를 읽을수가 있습니다. 어느 부자집의 둘째 아들은 자기의 뜻을 따라서 자기의 욕망대로 재물을 가지고 멀리 집을 떠납니다. 그리고 자기의 마음을 따라 욕망대로 모든 일들을 하며 지냅니다. 그런데 흉년이 닥아왔습니다. 그가 가진 재물을 모두 탕진하자 그는 가장 비참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길이라고 그리고 자유라고 선택한 길이 죽음의 길이요 비참한 상태로 내려가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한 가닥 희망의 불빛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집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그는 가장 비참한 돼지우리에서 아버지의 집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적상태가 죽게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한 때의 잘못된 생각과 판단 때문에 아버지와의 관계가 떨어지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가 아직 신앙 가운데 서 아버지를 기억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기억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때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잠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이 있고 믿음이 있는 증거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희미한 불빛이 우리를 살리는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 능력을 회복하고 변화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마음가운데 기억하는 것입니다.
2. 결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한다는 것은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의 사랑을 다시 깨달았다는 것도 진정한 회개가 될 수 없습니다. 의지적인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눅15:20에 보면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그 자리에서 180도 돌이키는 결단입니다. 탕자는 그가 아버지의 집을 기억하였을 때 죄의 자리에 그대로 앉아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즉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의지적으로 그 죄의 자리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단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마음으로는 우리의 죄를 떠올리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생각하면서도 의지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결단이 없으면 진정한 회개가 될 수 없으며 변화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호세아 6:1에서 호세아는 이스라엘에게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그들로 알게 하고 기억하게 한 다음에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결단인 것입니다.
3. 고백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세번째 단계는 죄를 하나님 앞에 낱낱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다시는 죄 가운데 있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단계인 것입니다. 즉 회개의 기도를 구체적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에게로 돌아가 아버지를 만났을때 이렇게 고백하는 것을 봅니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이러한 아들의 진심어린 고백을 들은 아버지는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진심어린 아들의 고백을 들은 아버지는 그에게 다시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요일1:9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의지적으로 돌아서는 단계에 머무르면 않됩니다.
우리가 확신을 얻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단계에 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이 목사님은 나이 40에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이전에 교회에서 신실한 집사로서 봉사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았고 또한 의지적으로 선하게 사시려고 노력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마흔이 되었을 때 어릴 때의 서원을 따라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신학교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신학교에 입학원서를 낸 그날 밤 목사님의 마음에 이런 마음이 들더랍니다. “내가 신학교에 가는데 성경 한번 완독해야지!” 그리고 그날부터 책상에 앉아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을 읽고 신약 마태복음을 읽는중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읽는 동안 기도를 해야 한다는 성령의 강한 요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릴 때부터 자신이 지었던 죄가 생각나기 시작하더랍니다. 자기는 한 번도 죄를 짓지 않고 가장 선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일등 집사였다고 생각했는데 죄가 생각나자 하나님 앞에 모두 자백을 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그 분은 자신의 흉악한 죄가 생각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을 때에 그분에게 환상으로 십자가가 눈앞에 나타나더니 이러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너를 위해 십자가에 죽지 아니하였느냐!” 그 분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의 죄가 모두 용서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에 눈을 떴을 때, 자기가 열 시간을 무릎 끓고 기도를 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용서를 경험한 후에 그 분은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확신있는 전도자가 되었으며 후에는 교회를 개척하여 1000명이 되는 큰 교회의 목사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지금도 그 때의 용서의 경험이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는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것이 모든 사역의 힘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름진 번제물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살진 송아지를 원하십니까?
시편 51편 17절을보면 하나님의 구하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능력있는 성도가 되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가정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은 마음을 찟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딱딱한 마음밭을 기경하는 것입니다. 갈아 업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엘선지는 옷을 찟지말고 마음을 찟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며 마음을 찟고 회개하며 내게로 돌아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민족이 살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한국교회의 살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니느웨 성민같이 베옷을입고 왕으로부터 가축에 이르기까지 회개하는 길입니다.
미스바에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같이 금식하며 마음을 찟으며 회개하는 길입니다. 완악한 마음밭을 갈아업고 기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모든 죄의 요소와 장벽들을 갈아엎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먼저 내심령의 변화를 통해 내가정과 내교회를 새롭게 만들어갈 때 한국교회가 살게되고 이민족과 이교회가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가 있는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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