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5)
이 시간에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3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얼마나 좋으셨으면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을까요? 성경이 좋다고 하면 심히 좋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저는 창세기를 보면서 하나님의 또 다른 위대한 창조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하신 우리들의 새 모습입니다. 엡2:10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고후5:17에도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알기 쉽게 말하면 완전한 창조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그렇게 새롭게 변화되는 그런 변화라고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무엇보다 우리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아름답게 될까요?
우리는 그것을 천지창조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예수 잘 믿어야 합니다.
3-4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우리 마음도 그와 같습니다. 빛이 있어야 합니다. 빛이 무엇일까요? 고후4:6에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예수님을 아는 빛입니다.
제 말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기자인 바울이 창세기 1장을 인용하면서 예수를 아는 빛을 말합니다. 신령한 해석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는 것은 나도 모르게 예수를 아는 빛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빛이 뭘까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나이다”(시119:105). 성경입니다.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우려면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 창조의 제 1단계입니다.
전도하면 사람들이 그럽니다. “마음 고친 다음에 예수 믿겠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것이 고치는 길이지 고쳐가지고 믿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여 예수 믿는 사람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혹시 예수 안 믿는 분들, 예수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보혈로서 마음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6-7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궁창은 하늘입니다. 둘째 날은 하늘이 열린 날입니다. 솥단지 속처럼 온통 물로 들끓던 세상이 윗물과 아랫물로 갈라지면서 청명한 하늘이 열렸습니다. 우리 심령도 열려야 합니다.
마3:16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셨습니다. 행7:56에도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심령도 열려야 합니다. 심령이 막히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찬송할 수 없습니다. 설교할 수도 없습니다. 해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답답합니다. 그래서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어떻게 열릴까요? 6절에 물과 물로 나누셨습니다. 물이 갈라졌습니다.
홍해의 사건입니다. 고전10:1-2에서 바울은 홍해의 사건을 세례에 비유합니다.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세례는 내 죄의 죽음이요, 내 죄를 씻고 장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성전의 휘장도 갈라졌습니다.
이처럼 내가 죽고 내 죄과가 죽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의 보혈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함께 못 박으신 주님의 공로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죽었다. 죽을 것이다가 아니고 죽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기 전에도 보혈, 회개하면서도 보혈, 회개한 후에도 보혈, 그렇지 못하고 정죄감 속에 살면 심령이 열릴 날이 없습니다. 그리고 엎드려 나는 예수 안에서 죽은 자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걸 못 믿고 내가 나타나니까 문제입니다. 그 때는 엎드려야 합니다. 내가 사라져야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으십니다.
3. 세상 멀리하여 성결케 해야 합니다.
9-10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래서 그 땅에 온갖 아름다운 풀과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바닷물이 육지를 침범하면 살아날 식물이 있을까요? 함초 같은 염생식물도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곳에 살지 물속에서는 살지 못합니다. 바다가 뭘까요? 요한계시록에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바다의 상징이 여러 가지지만 그 중 한 가지는 바다는 세상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기쁘심이 되려면 마음에 세상이 물러가야 합니다. 롬8:8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골3:5-6에도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했습니다.
마음에 세속이 물러가야 그 마음에 온갖 아름다운 꽃과 열매들이 맺습니다. 이 세속의 물은 살리는 물이 아닙니다. 우리를 죽이는 물입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5:6) 하나님은 마음이 성결한 자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늘 말씀 보면서 세상을 철저히 떠나야 합니다.
4. 말씀에 굳게 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16-18절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참 신기하죠? 해와 달과 별들이 있기 전에 우주에는 낮과 밤이 있었다는 사실, 보이는 태양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낮은 해로 밤은 달과 별들로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도 낮과 밤이 있습니다. 전7:14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영적 세계에도 낮과 밤이 있습니다. 어둠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지금은 자다가 깰 때라. 이 밤과 낮을 잘 주관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영육 간에 어떤 상황이 와도 육신의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말고 말씀으로 판단하고 행해야 합니다. 아무 일 없다고 다 좋은 것 아니고 어렵다고 다 절망스러운 것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알아야 보입니다.
히10:38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5.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20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그래서 바다에 고기와 하늘의 새가 날고 번성합니다. 그런데 “큰 바다 짐승들”을 학자들은 공룡이라고 말합니다. 바다에 사니까 해룡이겠지요.
이처럼 우리에게도 두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에 속했고, 하나는 땅에 속했습니다. 영혼과 육체입니다. 육체는 어떤 면에서 짐승과 다를 바가 없어요. 이 세상에 살고 있고 본능적입니다. 성도의 육체일지라도 방치하면 큰일을 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과 육체는 하늘의 생명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행2:17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래서 우리 일생 실족하지 않도록 성령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 몸과 영혼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영육 간에 생명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그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성령 충만해야지 악령이 틈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6. 하나님을 닮아 가시기 바랍니다.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이 여섯 째날 만들어집니다. 바로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모습입니까? 엡4:23-24에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을 본 받아란 듯입니다. 의와 진리 거룩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온전히 함께 하셔서 다스려 주십니다. 우리 구원의 최고봉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얼마나 기뻐하셨습니까?
마12:18에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요8:29에도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 끝난 것 아닙니다.
7. 예비하신 복을 누리시고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창2:3에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히 4장을 보면 복음을 진실로 믿는 자는 예수 안의 안식에 들어간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을 믿는다면 왜 평안함이 없겠습니까? 하나님과 그 말씀을 못 믿으니까 불안하지요. 한 순간도 불안을 참지 못해 두리번거리는 참새를 보면서 혹시 내 모습이 믿음 없는 저 모습은 아닌가? 그래서 참새는 기르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마음 놓으시기 바랍니다. 다리 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예수님의 방법은 부담도 없고 쉽답니다. 그러므로 오셔서 배우랍니다.
그래서 한 달 후에 건강세미나를 합니다. 그 세미나에도 참석하시고 쉼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환난을 면케 해주심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더 중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와 이상의 말씀처럼 성령으로 변화될 때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참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처럼 예수 안에서 우리를 심히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믿음으로 그리고 성령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예수가 나의 구주임을 믿고, 십자가 보혈공로를 믿어 죄에서 해방 받고, 세속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육신의 관점이 아닌 말씀의 관점에서 세상을 살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 성령으로 충만하며, 온전히 하나님 닮은 사람 되고, 온전히 예수 안에서 참 안식을 얻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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