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 소망이 있는 선택 창13:1-9, 롬8:1-11
항상 심한 악취를 풍기는 곳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은 깨끗했고 냄새가 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얼마 후 그곳에 건물이 들어서게 되어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땅을 팠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열구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옛날에 시체를 매장하던 장소였던 것입니다. 시체가 묻힌 땅은 아무리 잘 덮어놓아도 썩는 냄새가 납니다. 우리는 사람의 속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을 통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합니다.
삭개오는 주님 만나 중생하기 전에 다른 사람이야 어찌되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물질 중심으로 살면서 형제와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고, 남들에게 비난을 받으며, 또 자신도 상처를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한 후에는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웃에게 물질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해 이웃과 하나님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면서 육의 욕심을 선택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여 살면 주변에 악취를 풍기며 살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고 아무 소망이 없는 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영이 잘 되는 일을 선택하여 살면 향기 나는 사람이 되고, 주님 앞에서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되며, 하늘 소망이 넘치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장래 소망이 있는 선택”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육신을 도모하는 선택은 장래에 소망이 없습니다.
1)육신을 도모하는 사람은 물욕에 집착하다 결국 망합니다.
물질은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큰 힘이 있고, 매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물질에 대한 욕심을 가지게 되고, 그로인해 죄를 짓게 되고, 불화를 일으키고,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됩니다.
구약 본문 6절 하반부 말씀을 보면 땅이 적고 가축이 많아지면서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물질이 없을 때는 잘 지내다가 물질이 많아지면 불화가 생길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물질이 복이 아니라 화가 됩니다.
한 도시에 소경 거지와 앉은뱅이 거지가 가난했으나 친구가 되어 사이가 좋았습니다. 앉은뱅이가 소경에게 제안하기를 ‘나는 눈이 보이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볼 수 있고, 자네는 걸을 수 있으니까 어디든 갈 수 있으므로 서로 협력을 하세’하였습니다.
소경은 앉은뱅이의 발이 되고 앉은뱅이는 소경의 눈이 되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니므로 수입이 많아졌습니다. 앉은뱅이가 욕심이 생겨 소경을 속이고 돈을 빼돌려서 혼자 잘 먹어서 비만이 되었고 소경은 못 먹어 날로 몸이 야위어졌습니다. 그 날도 소경거지는 허약한 몸으로 뚱뚱해진 앉은뱅이를 업고 외나무다리를 비틀거리며 건너가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물에 빠졌습니다. 앉은뱅이는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욕심이 나와 친구를 죽게 만들었구나!”
자기 욕심은 비만을 만들었고 남을 삐쩍 마르게 했으며 결국 자신이 죽게 된 것처럼, 자기만 알고 이웃과 함께 나누지 못하고 물욕에 빠지면 같이 공멸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롯은 세속적인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이나, 은혜나, 은총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고 물질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2)육신을 도모하는 사람은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 합니다.
우리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반드시 자신의 미래가 달려 있는 중대한 선택을 하여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선택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서로 떨어져 살 것을 제안하며 먼저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 롯이 선택한 곳이 어디입니까? 창13:10-11에 보면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라고 말합니다.
그는 눈에 보기에 가장 좋은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택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아브라함과 같은 거룩하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과의 교제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아니했습니다. 자기에게 먼저 선택권을 준 큰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감사합니다.”란 말 한마디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믿음의 사람을 떠났습니다. 윗사람인 아브라함이 양보할 때 롯도 따라서 양보하는 예의를 갖추어야 했지만 롯은 욕심에 이끌려 큰아버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좋아 보이는 요단 땅을 덥석 선택했습니다. 인간적으로도 아주 버릇이 없는 모습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축복을 받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은 대개 사람을 통해서 옵니다. 그러므로 복된 존재가 되려면 버릇과 예의도 갖춰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인들을 보면 그들도 약점은 많았지만 버릇없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의와 교양을 갖추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영혼이 잘 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세속적인 번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탐욕과 이기심에 이끌려 선택한 자였습니다. 마치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 권을 팔아버린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3)이처럼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사람에게는 장래가 소망이 없습니다.
롯의 그러한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롯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독립하여 마음껏 자립의 꿈을 키우고자 했으나 그 결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롯 역시 선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의 세속적인 선택으로 인하여 너무도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말았습니다. 순간적이고 감각적인 눈앞의 이득 때문에 롯은 땅 밑에 도사리고 있는 유혹과 위로부터 주어지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보지 못했습니다.
롯은 차츰차츰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창13:12) 점점 신앙과는 멀어지고 세상 깊숙이 빠져 들어 가는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솝의 우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떤 창고에 꿀이 흘려져 있었습니다. 이 꿀 냄새를 맡고 파리들이 몰려와 핥아 먹었습니다. 그 꿀맛이 얼마나 좋던지 파리들이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날개며 발에 꿀이 묻게 되어 영영 헤어나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본문에 롯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롯은 소돔에 살다가 포로로 잡혀가는 일도 당했고, 죄악으로 인해 소돔 고모라의 심판 때 세속에 깊이 빠져 살던 그의 아내도 잃게 되고, 그가 좋아하던 재물도 다 잃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롯처럼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일을 선택하여 살다가 뒤 늦게 탄식합니다. 그러한 선택은 넓은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을 활보하는 것처럼 쉽고, 편하고, 연락을 즐길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합니다. 큰 문은 무엇을 가지고도, 다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 우리들의 재물도, 학식도, 명예도 모두 가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크고, 쉽고, 편안한 것을 좋아합니다. 또한 눈에 보기 좋고, 감각적이며, 화려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세상의 넓고 큰 문은 멸망의 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넓은 문과 길은 우리 성도가 선택할 것이 아님을 명심합시다.
2.영이 잘되기를 도모하는 선택은 장래에 소망이 있습니다.
1)하나님 경외하는 신앙 중심으로 선택하여 살 때 영이 잘됩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는 달리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중심으로 선택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실 때 그의 나이 75세로 순종하기 쉽지 않은 여건이었지만 말씀대로 순종하는 선택을 하고 갈 바를 모르지만 약속의 땅을 향하여 과감히 떠났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라함의 그러한 모습은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죄와 악의 자리를 과감히 떠나는 모습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예배하는 일을 힘쓰는 모습이요, 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일을 선택하여 사는 경건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항상 그러한 선택을 하며 사는 아브라함에게 늘 함께 하시는 보호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있었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의 곁을 떠나고 난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15)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어 그로 인해 많은 민족이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영이 잘 되는 길을 선택하니 덤으로 많은 물질의 복도 주셨고, 영예스럽게 높여 주셨고, 창대한 후손의 복을 주셨고, 영원히 지속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2)그런 사람은 화평을 도모하며 삽니다.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다투는 모습을 누가 보고 있었습니까?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보고 있었습니다(7절).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세상에서 제일 부끄러운 일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는데서 믿는 사람들이 싸우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부끄러워하던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말합니다. 본문 8절에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찾아 “서로 다투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처럼 갈등이 생기면 항상 화해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이 되시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시고,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는 길, 화목 하는 길을 친히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을 믿고 영접한 성도 역시 화목케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자가 복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화평은 사람과의 수평적인 화평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그처럼 믿음이 화평을 추구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불신자들도 그 믿음을 인정합니다. 인생에서 재물이나 권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화평입니다. 화평을 깨며 얻는 것은 많이 얻어도 축복이 아닙니다. 그것을 알고 아브라함은 권리주장보다 화평을 얻는 길을 찾았습니다. 바로 그런 자세가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만들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불화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책임전가하고, 변명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유야 어떻든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화평을 도모하며 평화의 도구로 사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복을 내려주십니다.
3)그런 사람은 양보하며 삽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고 양보합니다. 그래서 “네가 좌편으로 가면 내가 우편으로 가겠고, 네가 우편으로 가면 내가 좌편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모습입니까? 그처럼 손해를 각오하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됩니다. 더 나아가서 자존심을 꺾기로 각오하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됩니다. 물론 그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쉽지 않은 일까지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줄 수 있었습니까? 그는 믿음으로 진정한 보화의 실체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진짜 하늘의 보화를 안다면 땅의 것을 내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생의 믿음을 가진 자에게 꼭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관용과 마음의 여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을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는 것도 믿음의 증표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6:7-9절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대한 미련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양보하지 못합니다. 물질에 대한 미련, 성공에 대한 미련, 삶에 대한 미련 등이 버려지지 않으면 양보하지 못합니다. 그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세상의 것들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하는 우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양보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았기 때문에 단호히 버리기도 하고, 거절도 하고, 양보도 하고, 십일조도 드리고, 순종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4개국 왕이 연합하여 소돔을 치고 재물과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조카인 롯을 구원하러 갔다가 모든 것을 다시 찾아왔을 때 소돔 왕은 너무 감사해서 찾아온 재물을 모두 가지라 할 때에도 사람들이 아브라함은 소돔 왕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는 말 듣기를 원치 않는다고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는 멜기세댁 제사장에게 십일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할 때에도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영이 잘되기를 도모하는 일을 위해 선택하여 화평을 도모하고 양보하는 미덕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아브라함 같은 신앙 가지려면 영이 잘되기를 항상 힘써야 합니다.
1)그런 사람은 항상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신약 본문 롬8:5-6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했습니다. 성도들이 살아갈 때 어떤 이들은 육신을 좇아서 살고 어떤 이들은 영을 좇아서 살아갑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 이것은 대표적으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마침내 사망입니다. 반대로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영의 일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같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이 둘은 너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별히 육신을 좇는 자들이 어떤 불행을 겪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롬8:7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 순종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 배후에 마귀가 역사하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또한 롬8:8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했습니다. 육신에 있다는 것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는 사람 즉 성령을 좇아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롬8:9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하고 있는데, 다른 단어로 하면 성령입니다. 성령을 표현할 때 이렇게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으로 번갈아 가며 표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 인격을 갖고 계시지만 그 본성은 같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똑 같이 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생각을 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2)그런 사람은 몸의 행실을 죽입니다.
롬8:12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하나님께 사랑의 빛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때가 있습니다. 성도는 육신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말합니다. 이 모습이 몸의 행실을 죽이는 일입니다.
우리도 이런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롬8:13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믿기 전처럼 육신에게 계속 끌려 다니면 우리의 믿음을 잃어버리고 반드시 죽고 말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라는 말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의지로 육체의 정욕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노력은 얼마가지 않아서 실패하고 맙니다.
구원 받은 성도일지라도 어떤 이는 육으로 살고 어떤 이는 영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2장에서는 육적인 그리스도인과 영적인 그리스도인을 구분합니다. 육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완전히 육신대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 영혼은 분명히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그는 실생활에서 자주자주 육신에 지고 맙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용서받고 회개하고 용서받는 일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살아도 물론 천국에 들어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운 구원, 불 가운데 받는 것과 같은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더 이상 매번 육신에게 지지 말고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일 수가 있을까요?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길을 14절에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3)내 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롬8:14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했습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범사에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기 위해서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롬8:15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했습니다. 범사에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게 종노릇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종의 영입니다. 믿는 자라도 유혹해서 다시 죄와 사망의 종이 되게 하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 자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양자의 영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녀답게 성장하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때로 우리가 성령을 거슬려 육신대로 살려고 할 때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십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두시고 육신의 소욕을 이기기가 쉽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할 수만 있으면 그 고난을 피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내가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리는 기도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예수님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침내 몸의 행실을 죽이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그러므로 우리도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아바 아버지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은 내 몸의 행실을 죽이고 나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영국에서 고아 3천명을 오직 기도로 응답받아 먹이고 돌보았던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는 기도할 때 화려한 기도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시간이면 기도실 바깥으로 “아버지여”라는 간절한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육신을 도모하는 선택은 장래에 소망이 없습니다. *육신을 도모하는 사람은 물욕에 집착하다 결국 망합니다. *그런 사람은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장래가 소망이 없습니다.
♣.영이 잘되기를 도모하는 선택은 장래에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경외하는 신앙 중심으로 선택하여 살 때 영이 잘됩니다. *그런 사람은 화평을 도모하며 삽니다. *그런 사람은 양보하며 삽니다.
♣.아브라함 같은 신앙 가지려면 영이 잘되기를 항상 힘써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몸의 행실을 죽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무장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이 잘되기를 도모하는 선택을 하여 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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