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를 품은 사람 사43:1-7, 고후4:7-10
노벨 문학상을 받은 “대지”의 작가 펄벅(Pearl S. Buck)의 어머니 캐롤라인은 청교도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중국의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으로 중국인들은 농사 때문에 큰 걱정을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남편은 다른 지방으로 전도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집안에는 세 자녀와 중국인 가정부만 있었습니다. 가뭄이 계속되던 어느 날 캐롤라인이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그 동네 중국인 남자 둘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계속되는 원인은 서양인사람들이 이 지 방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야. 그러니 오늘밤 우리들이 선교사 가족을 죽여 우리의 신에게 바치도록 하자." 이 말을 들은 캐롤라인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녀는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캐롤라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하며 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녁이 되었을 때 캐롤라인은 평소보다 일찍 아이들을 재우고 자신은 창가에 앉아 바느질을 계속하면서 바깥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자정쯤 되었을 때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캐롤라인은 가정부를 시켜 차와 케익을 준비하게 하고 무슨 큰 손님이 오는 것처럼 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좋은 옷을 입혀 노래하면서 놀게 했습니다. 마침내 몇 명의 중국인들이 마당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마음을 진정하고 목소리를 낮추어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들어오셔서 차와 다과를 나눕시다."
친절한 캐롤라인 때문에 그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다과를 함께 나누던 중국인들은 이것저것 물건을 만지작거렸습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캐롤라인은 피아노를 치면서 중국말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비할 데 없는 존귀한 이름의 우리 주여" 이 찬송이 끝날 때쯤 방안은 조용했습니다. 그들이 찬양 중에 하나, 둘 집에서 나갔기 때문입니다. 온 집안에는 긴장이 사라지고 주님의 평안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펄벅의 어머니 캐롤라인이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이 보배를 품은 자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구약 이사야 43:1-7의 말씀, 신약 고린도후서 4:7-10 두 본문을 중심으로 “보배를 품은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예수님을 주로 믿는 사람이 보배를 품은 사람입니다.
1)예수님은 가장 소중한 보배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모든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분이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받고 영생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골2:3에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따라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복권에 당첨된 것보다 더 귀한 보배를 소유한 사람이요, 더 큰 천국의 기쁨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주님 안에서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와 은총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 비유에서 그 기쁨을 밭에 감취인 보화의 비유로, 극히 값진 진주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찬송가 102장 가사와 같이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라고 고백합시다.
2)이 보배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은 보배로운 사람이 됩니다.
보배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새 성품을 주시고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아버지의 새 성품을 받게 되고, 지식에까지 새롭게 됩니다. 골3:10에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말합니다.
감리교 선교사로 유명한 스탠리 존스가 <승천한 자들의 노래>라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스탠리 존스가 아프리카 정글로 들어갔습니다. 오늘은 이 골짜기, 내일은 저 골짜기로 전도하러 다녔습니다. 어느 골짜기에 들어갔더니 큰 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부족 중에 유명한 망나니가 하나가 있었습니다. 보통 망나니가 아니었습니다.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거칠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을 사정없이 패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 하는 그야말로 개망나니였습니다.
스탠리 존스 선교사는 그에게 과감하게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망나니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말이 달라졌습니다.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봉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장서서 선한 일을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망나니에게 스탠리 존스가 별명 하나를 붙여 주었습니다. “after”라고 별명을 붙여 주었었습니다. “후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변화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도 변화시켜 주고 있습니다.
3)보배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지명하여 부른 자들입니다.
구약 본문 1절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선택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성막을 지을 때 이같이 브살렐을 지명하셨고(출 31:2), 모세를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출 33:12-17).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은 증거들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모든 자들의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보배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아무나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만이 믿는 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나를 만세 전부터 택하셨고 모태로부터 나를 택하셨다고 증거 합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이방을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지명하시어 부름을 받은 은혜 받은 존재들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벧전2:9에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택하여 빛 가운데 살게 하시고, 그 아름다움 것을 선전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어두운 죄와 사탄의 종 된 자리에서 구원하시고 불러내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죽음 상태에서 생명과 구원과 영광의 세계로 인도하셨으니 날마다 감사 찬송하며 살아야 합니다.
2.보배를 품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1)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여기십니다.
구약 본문 1절에 '너는 내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자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소유 삼으시기 위해서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구약 본문 3절에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 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했습니다. 심지어 다른 열방을 희생 시켜 가면서 까지 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신다고 하는 이 말씀은 택한 자를 위한 특별하신 사랑과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보여줍니다. 모든 전쟁과 평화, 정복과 패배, 열왕의 등극과 실각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속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희생의 대가를 치르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피로 값 주고 사셨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주님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요17장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서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17:9) 저희가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아버지께 속한 자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요, 주님 안에 거하여 사는 성령의 전이라는 것을 항상 의식하며 사는 성도가 됩시다.
2)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구약 본문 4절에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했습니다. 그냥 사랑하실 뿐 아니라 보배롭고 존귀하게까지 여겨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희생의 자리에는 다른 사람을 대신 쓰시겠다고 하십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 여러분을 뽑아주신 것은 이토록 특별한 대우를 해주시기 위함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그처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실까요? 미국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롱펠로우가 갑자기 떠오른 시상을 적을 곳이 없어서 옆에 있는 휴지에 그 시를 적었습니다. 이후에 아무 가치도 없었던 그 휴지는 6,000달러에 팔렸습니다. 피카소라는 위대한 화가가 평범한 종이 한 장에 데생을 한 것이 지금 유럽에서 대저택을 살 수 있을만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은혜로 새로워지면 얼마나 존귀한 자가 되겠습니까? 우리는 한낱 종이 조각과 같이 무가치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가 더해질 때,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가치가 생깁니다.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아버지의 새 성품을 받아 주님을 닮은 자녀가 되었기에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자들에게 사랑의 아버지는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3)그러므로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맙시다.
구약 본문 2절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것을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만나는 그 어떤 장애물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홍해와 같은 바다가 가로막아도, 태산 같은 장애물이 앞에 있어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심을 믿고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또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는 말씀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풀무 불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생각나게 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 당하는 그 어떤 시험과 재앙도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신약 본문 8절에 사도 바울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 그는 사방이 막혀도 낙심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도 여전히 하늘은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가 자녀의 길을 그냥 막겠습니까? 하나님이 한쪽 길을 막는 이유는 다른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을 만나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실패자 같습니다. 그는 가난했고, 결혼도 못했고, 복음을 전파하면서 거의 반생을 굶기도 하고, 헐벗기도 하고, 매도 여러 차래 맞고, 여러 해 감옥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믿음으로 항상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면서 고난을 통해 영광스런 삶을 만들어냈습니다.
시46:1∼3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그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아버지께서 “너는 내 것이라.” 하시며, 보배롭고 존귀히 여기시기에 눈동자처럼 사랑하시고 보호하심을 믿고 담대한 성도로 삽시다.
3.보배를 품은 사람은 보배만을 자랑하고 증거 합니다.
1)우리는 원래 질그릇과 같아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면 먼저 자신이 “질그릇”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무능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알아야 겸손한 자가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고, 그때 내 안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질그릇처럼 연약한 존재 안에 거룩한 보화를 담아주십니다.
신약 본문을 기록한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아주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질그릇이 아니라 “금 그릇”이나 된 것처럼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가끔 포장이 잘 된 물건의 포장지를 뜯었을 때 그 내용물이 나쁘면 얼마나 실망하게 되고, 마음이 상합니까?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포장하고 사는 교만한 사람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의와 신앙과 전통과 조상을 자랑하는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표현 하셨습니다. 포장과 속이 다른 모습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겉모습을 자랑하는 교만한 사람 안에는 주님은 안 보이고, 보기 흉하고 냄새나는 썩은 송장과 같은 것만 보입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은혜를 받고 나니 자신의 모습이 금 그릇이 아니라 질그릇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빛 가운데서 보니 자신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지식이나 능력이나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팔삭 동이와 같이 무능하고, 모자라고,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은혜 받고 질그릇이라고 고백하며 나를 내세우고 자랑하지 않는 겸손한 성도가 됩시다.
2)참 성도는 보배인신 예수님만 자랑 합니다.
내가 질그릇임을 알게 된 사람은 내 자랑 할 것이 없습니다. 질그릇은 흔하디흔한 흙으로 만든 것이요, 금가기 쉽고, 깨어지기 쉬운 가치가 없는 그릇을 자랑하는 사람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질그릇 같은 내 안에 보배이신 주님이 계시면 주님은 약할 때 강함 되시고 무능할 때 전능함이 되십니다. 아무리 연약한 사람도 그가 예수님 안에 있고 하나님 안에 있기만 하면 그의 무능함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기에 주님 안에 있는 사람은 실패해도 낙망하지 않습니다. 주 안에 있는 성도는 오늘은 실패했어도 내일은 승리할 것이고 지금은 어두운 길을 걸어도 내일은 찬란한 아침햇살을 받으며 길을 걸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 중에도 절망하지 맙시다. 고난과 어두움의 때에 믿음이 더욱 연단되고, 더욱 큰 믿음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실패를 두려워 맙시다.
전에 미국 방송광고에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나왔습니다. 그가 경기장을 걸을 때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자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9000번 이상의 슛에서 골을 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300게임을 졌습니다. 26번은 승패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지 못했습니다. 저도 많이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에 바로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실패가 제가 성공한 이유입니다.”
또한 주님 안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큰 공을 세워도 나를 자랑하지 않고 예수님만 자랑합니다. 바울은 후에 주와 복음을 위해 엄청난 일을 하고, 교회도 많이 세우고, 그 일로인해 많은 고난을 수없이 당했지만 그는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능력 주시는 예수님만 자랑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고백하며 삽시다.
3)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쓰임 받기를 소망하며 삽니다.
구약 본문 7절에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누가 제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입니까? 돈 많이 번 사람입니까? 성공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돈 많이 벌어 성공한 뒤에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영광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없어도 부족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소망하며 사명감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귀한 일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일입니다. 본문 6절에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복음을 전하다 당한 고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8절에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그의 사역을 도와주시고, 힘주시기 때문입니다. 9절에서는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당당한 모습입니까? 그리고 10절에서는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항상 자기는 죽고 주님이 나타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만 증거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 일을 감당하면서 매도 맞고, 옥에도 갇히고, 수많은 위험도 당했지만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보배를 품은 사람”은
♡.예수님을 주로 믿는 사람이 보배를 품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소중한 보배이십니다. *이 보배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은 보배로운 사람이 됩니다. *보배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지명하여 부른 자들입니다.
♡.보배를 품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여기십니다.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맙시다.
♡.보배를 품은 사람은 보배만을 자랑하고 증거 합니다. *우리는 원래 질그릇과 같아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참 성도는 보배인신 예수님만 자랑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쓰임 받기를 소망하며 삽니다. 우리 모두 보배이신 예수님을 품은 사람으로 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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