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신 하나님
본서의 목적이 성경의 가르치심을 명확히 하여, 조직적인 형태로 정리해 놓는 일이므로, 여기에 채용한 방법은, 제목에 대한 요의를 말하고, 그것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설명을 덧붙이기도 하면서, 요의에 대한 성경의 본문을 수록하는 것이었다.
주: 본 역서에 있어서는 이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먼저 본문, 다음에 요의의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
1. 하나님은 영이시다.
제1요의-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심을 가르쳐 주신다.
요 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질의-영이란 무엇인가?
해답-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것은, 하나님은 형체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눅 24:39-'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신4:15-18비교).
질의-창1: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어떠한 의미인가?
해답-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다음 성구에 의하여 명백해 진다.
골 3: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엡 4:23-24'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골 1:15-'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여기 있는 '형상'이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육체적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 도덕적인 유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지식'과 '의와 진리의 거룩함'이라는 의미의 형상이다.
2. 눈에 보일 수도 있는 형상의 영이시다.
제2요의-영은 눈에 보이게끔 자신을 형상으로써 나타내실 수도 있다.
요 1:32-'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히 1:7-'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3. 하나님은 보이는 형상으로 나타나셨다.
제3요의-하나님은 과거의 시대에 있어서, 자기를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써 나타내셨다.
출 24:9-10'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4. 하나님의 그 여러 가지 나타내심(현현)에 의해, 우리는 그를 볼 수가 있다.
제4요의-하나님의 여러 가지 나타내심에 의해 볼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하나님 그 자신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한 현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요 1: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출 33:18-23'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질의-출24:9-10'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및 사6:1-'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라는 성구와, 요1:18의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는 성구와의 사이에는, 모순이 있지 않는가?
해답-하등의 모순도 없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가령 어떤 사람이 거울에 자기의 얼굴을 비추어 보고, '내 얼굴이 보였다'고 말한 경우, 그것은 진실이다. 반대로 또 '자기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진실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현현을 보고, '나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도, 그것은 진실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가지로, 그 누구도 본질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오늘날까지 본 일이 없으므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하고 말하는 것도, 그것은 진리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구약 중에 '여호와의 사자' 즉 '주의 사자'로 기록되어 있는 말씀은, 하나님의 이러한 여러 가지 현현을 가리킨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성경 중에 같은 '여호와의 사자'라는 말씀 중에도 명백한 구별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여호와의 사자'라는 말씀인, 원어의 '사자'라는 글자에, 정관사(the)를 붙여, 하나님의 현현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즉 보통 사자를 나타내는 것이 있어, 그것에는 부정관사(an)가 덧붙여져 있어, 그 둘 사이에 명백한 구별이 명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개정 영역성경에도, 이 점은 명백하게 구별되어 있다.
창 16:7-10'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 가로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창 16:13-'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즉 10절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주의 사자)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분명히 13절에있는'하나님'(여호와)과 같은 분임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창 21:17-18'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창 22:11-12'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곳 11절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사자'라는 말씀도, 12절의 '하나님'이라는 말과 동일한 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삿 2:1-2'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여기서도 '여호와의 사자'를, 분명히 '내가' 즉 여호와임을 보여 주시고 있다. (또 삿6:11-14,삿19-24,특히14절을보기바란다).
다음의 성구는, 특히 현저한 것이다.
창 18:1-2'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본즉 사람 셋이 맞은 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창 18:9-10'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창 18:13-14'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 18:16-'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이상의 여러 성경절에 있어서,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은, 분명히 자기를 주, 즉 여호와와 동일한 분으로 말하고 있다.
제19장 1절에 가면, 소돔에는 다만 두 사람만이 간 것으로 되어 있다. 즉 한 사람은 뒤에 남고,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 한 사람이라는 이가 누구였던가는, 다음의 성구를 읽음으로써 분명히 되어지는 것이다.
창 18:17-20'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4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이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그런데 22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여 보면, 뒤에 남아 있던 세 사람 중 한 분은, 분명히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여호와이심이 틀림없다. 다시 그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는데, 3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창19:27-도 참조하라).
제5요의-여호와의 사자, 즉 '주의 사자'는, 분명히 눈에 보이는 여호와의 나타나심(현현)으로써, 여호와와 동일한 분이시다.
질의-이 '여호와의 사자', 즉 '주의 사자'는 누구였을까?
삿 13:18-'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
다음의 사9:6-에 비교하여 보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히브리 원어로는, 전자의 '여호와의 사자'가 자기의 이름에 쓴 '기묘'라는 말이나, 후자에 있어서, 장차 올 그리스도로써 인씌'영묘(한글역은 한가지로 기묘)'라는 말이나 다 한가지 말이다.
말 3: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해답-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즉 영원하신 수육 이전의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요8:56-'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는 말씀을 보라, '여호와의 사자'는, 그리스도의 강생 이후는 나타나 있지 않다(마 1:20;마28:2;눅2:9;행8:26;행12:7,23등은 여호와의 사자를 의미하는 말은 아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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