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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나님아들 2012. 8. 31. 19:26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잠언 22:6 /하원식 목사

 

한 선비가 한양을 다녀오다가 나루터에서 이웃 마을 친구의 외아들을 만났다. 선비는 배에서 내렸고 외아들은 그 배에 올랐다. 배에서 내려 얼마를 걷던 선비가 산언덕에서 잠시 쉬며 강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그 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순식간에 배가 뒤집어지며 이내 배도 사람도 모두 강물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선비는 너무 놀랐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크게 탄식하다가 이내 친구 집으로 달려갔다. 친구는 사실 조정에서의 꽤 높은 벼슬도 마다하고 고향에서 학문만 전념하여 살아가는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친한 친구가 갑자가 찾아오니 그는 기뻤다. 즐겁게 친구를 환영하며 술과 안주를 준비시켰다. 그럴수록 선비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그래도 도저히 숨길 수 없어 선비는 떨리는 목소리로 방금 목격한 사실을 얘기했다. "저...자네 아들이 강물에 빠져 죽었다네. 내가 워낙 멀리 있어서 도울 수도 없었고 그 못돼먹은 사공이 어찌 그리 많은 사람을 태우던지..." 선비는 그것이 마치 자신의 죄이기도 한 양 말을 맺지 못하여 사공을 원망했다. 외아들의 아버지는 선비의 얘기를 조용히 들었다. 지극히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던 아버지는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얘기에 눈가에 가벼운 경련을 보이다가 이내 원래의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들려주는 마지막 얘기에 귀를 세우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얘기를 빨리 들려주어서 고맙네. 그러나 너무 걱정 말게. 내 아들은 살아 돌아 올 걸세. 그러니 술이나 들며 오랜만에 얘기나 나누세” 선비는 친구의 태연한 이 모습에 크게 놀랐다.

 

그가 평소에도 인격 높은 사람인 줄 알고 있었지만 아들이 물에 빠져죽었다는데도 태연하기만 하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정신이 돌아버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조차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죽었던 외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두 사람에게 조용히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선비는 너무도 놀라 친구 아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예 어르신을 뵙고 저는 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사공이 정원 이상으로 손님을 태우기에 그만 내렸습니다. 평소 저의 아버님께서는 위험은 스스로 피해야 한다 라고 제게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을 좇아 따라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가정교육이 아니겠는가? 그 친구는 아버지와 그 아들의 행동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는 얘기다.

 

가정의 교육이 얼마나 귀중한지 가르쳐 준다 우리가 5월이 되면 으레 어린이주일과 어버이주일을 지키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에 꽃을 단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다. 어린이들은 미래의 꿈나무들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에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수가 점점 줄어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미래가 매우 어둡다는 징조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 때 주를 따르는 많은 여인들이 울었다. 예수님께서 눈물 흘리는 여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하셨다. 지금이야말로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다.

 

인간은 육신 적으로 태어나고 만들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적으로도 태어나고 만들어지는 존재다. 육신 적으로 볼 때는 잘 만들어지는 것과 잘못 만들어지는 것의 차이가 별로 없는 것 같다. 크게 만들어지고 작게 만들어지는 것의 차이, 잘생기고 못생기고의 차이일 뿐이지 그다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잘 만들어지는 것과 못 만들어지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정신적 사고들이 만들어져 가느냐는 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다. 한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인간을 만든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담과 하와를 직접 만드시고 그 이후의 인간들을 만드는 일은 인간들에게 위임하셨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의 기쁨과 보람에 동참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한 인간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떠한 성품으로 만들어지느냐"하는 것에 의해서 좌우된다. 인간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것은 아름다운 삶의 목표이고 기쁨과 보람을 가지고 수준 높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우리는 자기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란다. 특별한 기대를 갖고 잘 가르치려고 한다. 나의 아이들은 다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믿고 있다. 모든 부모는 나의 자식은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착각일 수 있다.

 

1.아이들에게 마땅히 가르칠 것이 무엇인가?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께서 인생의 주관자이기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사랑으로 표현되어질 때 가장 인생다운 인생을 사는 것을 가르치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가르쳐야 한다. 독생자도 아낌없이 주었음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의 첫 번째 대상임을 가르쳐야 하고, 그 사랑의 표현을 이웃에게 하는 것임을 가르쳐야 한다.

 

교회의 교육, 우리 가정의 중심, 가치관, 세계관 등의 당연한 논리가 무엇인가? 하나님이다. 그런데 이 세상이 하나님 없는 것으로 자꾸만 굴러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모습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 없는 모습은 부패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야말로 썩었다는 것이다. 소행이 가증하고, 위선과 더러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교육, 신앙의 교육, 가정의 교육의 가치는 바로 하나님이 없음을 배격하고, 하나님 계심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것을 깨우치고 증거하는 것이다. 교회는 학원이 아니다. 교회는 친교 장소가 아니다. 교회는 식사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계심을 선포하는 곳이다. 하나님 계심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곳이다. 그것을 증거하고 나타내는 곳이다. “교육은 인간을 지배하는 폭군이다. 교육은 더욱 똑똑한 악마를 만들뿐이다. 무식한 사람은 칼을 가지고 한 사람을 죽이지만, 유식한 사람은 펜을 가지고 수천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것은 교육의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를 말하는 것이다. 진정한 교육의 가치를 알고 우선순위를 정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다. 그 우선순위인 최고의 가치, 최고의 삶은 자기의 생명을 구원케 하는 구원의 교육,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계심의 교육인 것이다.

 

2.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첫째는 본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의 가장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이지요. 이론만 가르치는 것은 가르치지 않는 것보다야 낫지만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아버지, 어머니, 딸, 이렇게 세 식구가 여행 중에 교통사고가 났다. 자동차가 언덕 아래로 구르는 큰 사고였다. 어머니만 상처가 가벼울 뿐 아버지와 딸은 모두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야했다. 특히 딸의 상처가 깊어서 오랫동안 병원 치료를 받았음에도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했다. 당시 사춘기였던 딸은 무엇보다도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친구들이 체육을 할 때에도 딸은 조용히 그늘에서 그들을 구경만 했다. 친구들이 조잘거리며 몰려다닐 때에도 딸은 늘 목발을 짚고 집으로 와야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나마 같은 목발신세인 아버지가 딸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아버지도 지난 교통사고 이후 목발을 짚어야 하셨던 것이다.

 

 딸이 투정을 부려도 그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가 나서서 말없이 받아주었다. 딸에게는 아버지와 같이 공원 벤치에 나란히 목발을 기대놓고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다. 어려운 사춘기를 잘 넘기고 딸은 대학에 진학을 했다. 입학식 날, 아버지가 참석하여 딸을 껴안아 주었다. “네가 내 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구나.”그 해 어느 날이었다. 세 식구가 나란히 길을 가고 있었다. 마침 앞에서 작은 꼬마 녀석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이 큰길로 굴러가자 꼬마는 공을 주우려고 좌우도 살피지 않고 큰길로 뛰어들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목발을 내던지고 큰길로 뛰어들어 꼬마를 안고 길 건너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뛰는 모습은 너무나 날쌔고 자연스러웠다. 딸은 자기 눈을 믿을 수 가 없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다가와서 딸을 꼬옥 껴안아주며 이렇게 속삭였다. “얘야, 이제는 말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사실 너의 아버지는 다리가 전혀 아프지 않으시다. 퇴원 후에 다 나았거든. 그런데 네가 목발을 짚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신 후 아버지도 목발을 짚겠다고 자청하셨단다. 너와 아픔을 같이 해야된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이것은 아빠 회사 직원들은 물론 우리 친척들도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란다. 오직 나와 아버지만이 아는 비밀이야.󰡓딸은 길 건너에서 손을 흔드는 아버지를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자존심이며 사랑입니다!”

 

미국가정사역연구소에서 '자녀들이 부모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10가지 이유'를 조사했는데 ① 주일이나 교회행사를 무시하고 여행을 떠날 때 ② 예배시간에 시계를 몇 번씩 쳐다볼 때 ③ 자녀 앞에서 목회자의 허물을 이야기할 때 ④ 십일조와 헌금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⑤ 교회에 대해 애착심이 없을 때 ⑥ 예배시간에 지각할 때 ⑦ 문제가 생길 때만 불규칙하게 기도할 때 ⑧ 여러 가지 핑계로 교회봉사를 하지 않을 때 ⑨ 자녀들을 교회에 오래 있지 못하게 할 때 ⑩ 실천보다는 말만 앞세울 때다.

 

부모는 겉과 속이 같은 신앙으로 자녀들에게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의 교회 생활에, 신앙 생활에 거부감을 느끼고 대항한다면 그 이유는 부모 된 우리의 신앙이 믿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 있다. 우리의 믿음을 행위로 보여주며 너희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의 믿음을 보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의 행위를 보고 우리의 신앙을 판단한다. 올바른 부모의 신앙과 올바른 교육의 자세만이 성공적인 자녀를 길러내는 것이다. 이제 믿음의 본을 보이는 부모들이 되자.

 

둘째는 기도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 가르침이 조금 어설프더라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완벽하게 될 수 있다. 어린이들은 장래의 이 교회를 책임지고 가야 할 중요한 자들이다. 교회를 책임진다는 말은 이 세상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존재 가치를 아는 아이는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없는 교육은 약삭빠른 악마를 생산할 뿐”이라고 했다. 교육을 하되 요령만 가르치고, 기능만을 가르치면 고등 사기꾼이 된다는 것이다.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잔나는 자녀를 19명이나 둔 목사의 아내였다. 그녀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온 정성을 다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신앙교육을 시작했다. 특히 자녀들이 글자를 식별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성경을 교재로 삼아 창세기부터 체계 있게 가르쳤다. 그렇게 자란 자녀들이 영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공헌한 큰 인물들이 되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링컨 대통령도 그가 어떻게 미국의 그 유수한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요?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임종의 순간, 단 한 가지의 유산을 물려주면서 이렇게 유언하였다고 한다. “내가 너에게 물려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그러나 여기 너에게 가장 소중한 유산이 될 나의 성경책을 너에게 주마. 이 속에 네가 찾는 것이 다 들어 있고, 너의 삶의 모든 해답이 다 들어 있단다. 이 성경을 네가 가까이 하면 성경은 너를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이 성경을 멀리하면 너의 모든 노력과 수고는 물거품이 될 것이다”라고 유언하였다.

 

 링컨은 초등학교밖에 다니지를 못했다. 두 번이나 사업에 실패하였고, 주 의회의원, 주의회의장, 하원의원, 상원의원, 부통령 등 모두 8번의 선거에서 낙선하였으며,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서 한때는 정신분열증세까지 보이는 등 그의 삶은 글자 그대로 실패의 연속이었다. 보통사람 같으면 인생을 포기할 만도 한데 그는 불굴의 신앙으로 마침내 재기에 성공하여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대통령의 한 사람이 되었고 세계 역사 속에서도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인생 말년에 회고하기를,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어머니가 주시고 간 낡은 가죽 성경책이었다”고 고백하였다. 언뜻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낡은 가죽 성경책이었지만 그 성경은 그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다시금 일어서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생명을 걸어야 한다.

 

청교도들의 교육 방법

200년 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건너온 청교도들이 위대한 미국을 건설하였다. 이들이 위대한 인물을 길러냈기 때문에 오늘날의 미국이 있게 된 것이다. 초기에는 학교도 없었고, 커리큘럼도 없었다. 이런 역경 속에서 어떻게 교육을 잘 시킬 수 있었겠는가? 이들에게 대단한 학습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직 순수하게 성경 적으로 교육을 했을 뿐이다.

즉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이 있을 뿐이었다.

 

첫째, 아이는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원칙이다. 아이들은 나를 위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존재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인생을 계획하고 계시한다. 즉 나의 인생뿐만 아니라 나의 아이들의 인생도 계획하시고 계시하신다. 그럼으로 우리 아이들이 제일 먼저 만나야 할 대상은 하나님을 접하는 것이다.

 

둘째, 교사는 내가 아니고 성경뿐이라는 원칙이다. 사람들은 내가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 못된 생각이다. 우리가 완전하지 못한데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완전하지 못한 존재가 가르치는 것은 역시 완전하지 못한 것이 된다. 즉 우리 부모들의 교육은 한계가 있다. 이 땅에 온전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뿐이다. 그래서 성경대로 교육시켜야 올바른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 성경이 하라는 것을 하게 하고,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교육은 설득이 아니고 훈계요 훈련이라는 원칙이다. 어린 시절의 가르치는 말씀이 아이의 일생을 좌우한다. 가정은 최초의 학교이며 최고의 학교이다.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되, 가장 안전하고도 확실한 교재인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디모데후서 3:16 말씀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하였다. 광야생활을 했던 히브리인들 어느 길,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곳을 가든지 언약 궤를 앞세워서 그 뒤를 따라갔다. 이것은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을 보여 주며 우리 인생에 앞서 가시는 분으로서 주님이 내 인생에 앞장서 주셔야 승리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주님을 항상 앞장세우고, 즉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앞세우고, 마땅히 주님의 길을 가르칠 때 나가는 삶은 곧 승리의 길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아이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은 바로 성경이다. 성경만이 성공의 길로 가는 것이며 축복 받는 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란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뒷바라지를 하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바로 성경에 있다. 성경의 지혜란 곧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이를 무척 사랑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사랑하라는 말씀보다는 아이를 책망하고 훈계하라는 말씀이 더 많다. 성경은 어린아이의 특징을 자기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부모가 선택하여 주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도 완전한 존재가 못된다. 그래서 어릴 때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야단도 치고, 책망도 하고, 징계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부모에게 야단맞지 않고 자란 아이는 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

 

3. 자녀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인류 역사의 시작은 가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에는 인간이 요구하고 있는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불만이 있을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생활은 즐거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난 후에는 감시하는 대상으로 바뀌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현대의 가정을 한 시인은 이렇게 풍자하였다. [즐거운 나의 집이라고 옛 시인은 노래했으나 지금은 정류장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오. 먹기 위해서, 잠자기 위해서 그리고 달리기 위해서 정류장에 잠시 들르게 되었네. 사무실도 영화도 클럽도 데이트도 더 이상 가족과 즐길 수 없게 되었다오] 이린 詩는 오늘날 현대가정이 정거장 화, 하숙집 화 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가정을 지켜야 할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은 잃어버리고 한 나그네들이 잠시 머물러 가는 정류장으로 화하고 있는 그런 실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단란하게 살았던 풍요한 에덴의 생활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오늘과 같은 가정의 파괴를 가져왔다. 바벨탑을 쌓아 보았으나 거기엔 혼란만이 있었다. 인공위성을 만들고 전자회로를 사용해서 에너지를 공급하고 합성식품을 만들어서 식량문제를 해결해 보려하고 있지만 인류의 진정한 문제는 에너지나 식량, 인구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대개 경제문제가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 파산된 것처럼 마땅히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가정이 하나님을 내쫓고 살겠다고 하니까 가정의 붕괴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간개발이라고 하는 차원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먼저 서구의 문명이 몰락되어 가고 있다고 얘기한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두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이 이혼한다는 심각한 보도가 있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다. 나의 정신력이 약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으며 미래에 다가올 영광도 볼 수가 없으므로 인내력이 약해진다. 기쁜 일을 당하거나 슬픈 일을 당했을 때, 그 후에 올 여러 가지 영광스러운 일을 내 눈으로 볼 수 있을 때, 오랫동안 참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정신력을 통해서 당신께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그만큼 정신력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인격을 완전히 보여서 외모뿐만 아니라 부모의 성격과 인생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닮게 할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에게 보여주는 참된 인간성이며 올바른 교육이라고 보는 것이다. 아브라함 링컨의 어머니는 한 아들을 낳아 흑인노예 해방을 시켰으며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보잘 것 없는 유랑민족인 모세의 어머니는 아들을 잘 키워서 민족의 영도자가 되게 하였다. 우리의 품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세계의 평화와 인류를 위해 풍전등화 격인 국가를 위해, 혼란과 흑암 속에 있는 사회의 질서를 위해 그 세대가 부를 때 보내야 할 사람을 기르고 있다는 것을 부모는 새롭게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다.ⓗ

예수가좋다오/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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