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에덴성전을 세운 목적
1. 예배를 받기 위해서
천사들은, 결혼할 수 없다. 그래서 생육 하고 번식하는 일도 없다. 그래서 천사창조는, 말씀 한마디로 그 많은 천사들이 동시에 생기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에배를 받으시고자, 한 천사장을 세워 기름을 부어 예배 인도자로 삼으신 것이다(겔28:14). 비록 이 세상과 상관없는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끊어진다면 창조목적도 존재가치도 없기 때문이었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인간도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한다면 무가치한 인생인 것이다. 비록 죄를 짓지 않는 무죄상태라 할지라도 그렇다. 하나님과의 예배는 인간의 존재가치를 확인시켜주고,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기 때문에 인간에 있어서 예배란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요- 하나님께 있어서는 피조물들을 통해서 예배를 받으시므로 창조목적과 창조의 보람을 느끼시는 것이다.
2. 인간들의 왕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만물을 다스리도록, 통치권을 이양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왕이 되시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중앙인 그 성전에서 인간을 다스리고, 인간은 에덴에서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두 나무가 있는 한 중앙은 하나님의 통치중앙 본부였다.이곳에서 [ 하나님은 아담에게- 아담은 백성들에게 =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세는 백성들에게 ]와 같은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만물은 인간을 섬기고, 인간은 하나님을 섬긴 것이 창조 목적이다. 타락하기 전 아담은, 하나님이 왕이 되심에 대해서 기뻐 뛰었을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왕이 되심을 원치 아니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방과 같은 인간의 왕을 원함으로 원래의 창조 목적에 반기를 들었다(삼상8:7).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슬퍼하시며 통분히 여기시며 <그들이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고 슬퍼하셨던 것이다(삼상 8:4-9).
3. 만물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에덴성전을 창설하시고, 지으신 아담의 손을 잡고 에덴성전 안으로 이끌어 들이셨다(창2:8.15). 이것은, 바로 행복에로의 초대 - 즉 하나님 안으로의 초대였다. 하나님은 그 곳에서 아담에게 복을 주셨는데- 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에덴동산의 최상품의 과일들을 선물로 받았으며 둘째- 아내를 선물로 받았고 셋째-만물 통치권을 이양 받았으며 넷째- 생육하고 번식할 수 있는 많은 민족의 복을 받았다.
이러한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돼 있을 때, 얻어지는 복이었다. 만물들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돼 있을 때 복을 받도록 창조되었다. 그 이유는, 만물들은, 인간에게 속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담이 타락할 때, 만물도 함께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롬8:18-23. 창2:17).
4. 왕도(王都)로 삼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있어서 예루살렘 성(成)에는 거룩한 성전과, 왕들이 거하는 왕도(예루살렘 도성)가 있음 같이, 에덴 성(成)에도, 하나님의 성소와, 아담의 왕도(수도)가 있었다. 두 나무가 있는 중앙은, 인간의 왕인 하나님의 처소요, 그 외는 만물의 왕인 - 모든 인간의 왕인 아담의 왕도였으니 온 지구촌의 수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에서 아담에게 명하시고, 아담은 백성들에게 명하여, 영적. 도덕적인 위계질서를 지키게 하심이 마치 출애굽시대와 같은 것이었다.
출30:6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출25:22 =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 그러므로, 에덴 동산 창설 목적은, 인간의 왕이신 하나님과- 인간의 왕인 아담이 함께 통치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에덴 동산은 인간의 왕인 하나님이 계신 곳이요- 만물의 왕인 인간이 있는 왕도(王都) 인 것이다.
5. 행복과 만족을 주기 위해서
인간 세상에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5복이란 것이 있다. 첫째 복은 <수명장수>이다. 자고로 사람은 오래 살아야 한다. 둘째 복은 <부귀영화>이다. 살더라도 거지처럼 살면 불행하다는 것이다. 셋째 복은 <강녕>이라하여 사람은 병이 없이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치 못하면 그 또한 불행한 것이다. 넷째 복은 <유호덕>로 사람은 수명장수도 해야되고 - 부귀영화도 누려야 하고 - 건강도 해야 되지만 악덕을 남기고 죽는다면 그것은 불명예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덕이 많아야 한다. 덕이 많아야 많은 사람도 따르게 된다. 다섯째 복은 <고종명>이다. 수명장수하고 부귀영화 다 누리고 몸이 건강하고 덕이 많아도 죽을 때 잘 죽지 못하면 그 또한 복이 아니다. 죽을 때 평안히 죽어야 하지만 죽기 전에 자손들 다 불러놓고 유언할 것 유언하고 평안히 죽은 것 같이 큰 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복이라 말하지 않는다. 진정한 행복과 만족과 기쁨은 이런 것에서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에 있어서 하나님과 즐겁게 대화하며, 사는 것같이 큰 행복은 없다. 이러한 행복은, 이 세상 권력이나- 천문 학적인 재물로도 살 수 없고- 생명을 주고도 살 수 없다. 하나님 안에서만이 진정한 행복과 만족과 기쁨과 소망과 희열이 넘치며-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요8:31-36 참고).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 곧 행복의 근본이요, 기쁨의 원동력인 것이다.
I. 에덴동산의 회복 과정:
1. 가나안이라 부르게 된 동기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나무가 있는 동산 안에서 아담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에덴동산 밖에서 만드시고, 아담을 동산 안으로 인도하여 그곳에 두셨다.(창2:8. 15) 그러나, 아담이 창조된 곳에서부터 동산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없다. 아담은, 루시퍼처럼(겔28:13-15) 에덴에서 타락했고, 동산 밖으로 추방된 아담은 에덴동산과 그리 멀지 않는 곳에서 800년 동안 자녀를 낳은 후 930세에 죽었다. 아담의 그 후손들은, 홍수심판 전까지 1656년 동안 에덴지역에서 번식하며, 죄의 량을 채워 갔다(창4:16. 창15:16). 그러나, 홍수 심판이 시작되자, 아담의 10대 손자 노아와 7명의 식구를 제외하고는 아담과 가인의 후손 모두는 전멸 당했고, 그룹 천사들과 두루 도는 화염 검을 두어, 죄인들의 출입을 막았던 에덴 지역의 동산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홍수심판은 노아의 여덟 식구로 하여금 에덴 지역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지게 만들었다. 홍수 후 노아와 7 식구들은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 산맥(메소포타미아의 북부)에서 평지로 내려와 번제를 드린 후, 그 곳을 중심으로 농업을 시작하며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았다(창9:20-27. 창3:24. 창 8:4). 그후 노아의 4대손 니므롯은 그곳의 사람들을 이끌고 더 좋은 토지를 찾아나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그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다가- 바벨탑 사건으로 인하여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한 사람끼리 각기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다(창10:1-32).
그 중에, 함의 넷째 아들 가나안의 후손들은, 에덴동산이 있었던 팔레스탄으로 옮겨, 전역에 흩어져 살며 그 조상 아비의 이름을 따라 <가나안>땅이라- 혹은 가나안의 넷째 아들 이름을 따서 <아모리 땅>이라 불렀으며- 예루살렘은 가나안의 셋째 아들 이름을 따라 <여부스>라고도 불렀다(창15:16. 수18:28. 삿19:10 등). 그들의 지경은, 시돈에서 블레셋 땅과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다 전역과 사해 바다를 포함한 최남단 애굽 강까지로 지금의 팔레스탄 전역에 속했다(창10:15-20).
2. 가나안 전쟁: BC.1406-1401
노아 홍수 후,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함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의 침략을 받기까지 942년 동안 가나안 땅에서 죄의 량을 채우며 살다가, BC.1406년에 애굽에서 올라온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서 멸망당했다(출3:17. 신7:1. 수3:10. 느9:8). 가나안 전쟁 5년 후, 여호수아는 하나님 명령에 따라, 각 지파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었는데, 에덴동산(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에게 속했다(삿1:21. 수18:28). 그러나, 유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을 칼 날로 치고 불살라 파괴시켰다.
그것은 예루살렘이 유다 지파와 베냐민 두 지파의 경계선 상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수15:8). 유다지파 경계는, 예루살렘 성 남쪽을 관통했으나, 예루살렘 성 안 쪽은 두 지파 사이에 있었다(수15:8). 그래서, 유다 지파는, 예루살렘의 적을 섬멸할 때, 자기 경계 내에서만 싸울 수 없었으므로, 예루살렘 성 전체를 점령할 수밖에 없었다. 예루살렘 성이 위치한 특수성 때문에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 때와 사사시대 때는, 불안정한 지역으로 불려지기도 했다(삿19:10).
그러나, 그들은 예루살렘 성은 파괴시켰으나, 다윗 왕이 출현하기까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족들을 전멸시키지 못했고(수1:8. 수15:63. 삿1:21). 그 곳에 거한 가나안족들은, 예루살렘을 여부스땅으로 불렀고(삿1:21. 삿19:10)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쫓아내지 못한 원주민들과 공존하면서, 다윗 왕이 출현 하기까지 394년간 여러 사사들에 의해 다스렸다.
3. 다윗 왕의 여부스 침략: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 온지 394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이새의 아들 다윗이 30세의 나이로 왕 위에 올랐다(삼하5:4). 유다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예루살렘에서 33년을 다스렸다. 에덴동산의 제1차 회복은 다윗 왕을 통해서 회복되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 왕이 되자, 시온 산 고지에 위치한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쳐서 시온 산성을 취한 후, 다윗 성이라 명명했다 (삼하5:6-10)
다윗이 여부스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예루살렘은 [ 하나님의 성(시46:4) ] [ 시온 성 (시온산성:삼하5:7) ] 시온 산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 살렘(창14:18) ] [ 다윗 성(삼하 5:9) ] [ 거룩한 성(느11:1. 마 4:5) ] 등으로 명명되었다. 시온이란, 예루살렘의 동남쪽 언덕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예루살렘 도성 전체를 일컫는 말로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는 하나님의 도성을 의미했다. 시온은, 하나님의 법궤가 안치되어 있는 예루살렘을 말한다. 즉, 예루살렘 안에 성전이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팔레스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유대인들은 위대한 왕의 성읍, 거룩한 도시로 불리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라 !
4. 바벨론이 지배:
70년간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초기 B.C. 931년부터 남과 북으로 분열 되어 북쪽은 여로보암이 다스리게 되었다. 그러나, 북조는 계속적인 쿠데타와 더불어 아홉 왕조가 다스리다가 분열된 지 209년만에 (BC.722년) 앗수르 사르곤 2세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다. 남조 역시 북조 멸망 136년 뒤. 3번의 바벨론 침략을 받은 뒤, BC. 586년에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은 초토화되었다. 바벨론은, 유대와 예루살렘을 70년간통치하다가, 파사 왕 고레스에게 멸망당했다.(사44:28. 사45:1-7. 렘25:11-12. 단9:1-2).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지배한 년수는 BC.606년-BC. 538년까지였으며, 다윗 왕을 통해서 어렵게 찾은 에덴의 동산(예루살렘)은 바벨론 침략이후다시 잃어버리게 되었다.
5. 파사 제국이 지배:
216년간파사 왕 고레스는, BC. 539년에 메데와 연합하여 바벨론을 쳤다. 바벨론 백성들은 저항 없이 고레스를 환영하며 맞아 들렸다. 그리고, 그 다음해, BC. 538년에 칙령을 내려 유대인 귀환령을 내렸다. 70년 만에 고국을 찾는 유대인들은 3차에 거쳐 돌아오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제1차 귀환 : BC. 538년- 총독 스룹바벨 인솔하에 49,897 명이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여 20년(BC.516년)만에 완공시켰다.
제2차 귀환 : BC. 457년-율법학자요 제사장인 에스라가 파사 왕 아닥사스다의 명을 받아, 1754명과 함께 파사의 전권대사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파송되어 돌아 왔다. 목적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스7:25-25)
제3차 귀환: BC. 445년- 느혜미야는, 파사 왕 아닥사스다로부터 총독에 임명되어 42,360명을 인솔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목적은, 바벨론이 헐어버렸던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기 위함이었다(느2:5.17). 바벨론 유수(幽囚)를 마치고 돌아온 귀환 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무너진 성을 다시 증축했지만, 예루살렘은 여전히 파사제국이 통치하에 있었다. 파사가 예루살렘을 지배한 햇수는 BC.539-BC.323년까지였다.
6. 헬라의 영향:
159년간헬라의 왕 알렉산더 대왕 BC. 335년에 마케도니아에서 일어나, 파사제국을 치고 질풍노도로 인도에서 애굽까지 쳐서 오리엔트를 통일 시켰다. 알렉산더 대왕이 오리엔트를 통일시킨 데는 불과 12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BC.323년에 바벨론에서 의문의 죽음을 하자, 헬라제국은 네 장군에 의해서 4분활 통치가 시작되었다.
네 장군 중 프톨레미는 BC. 323년-198년까지 애굽과 팔레스탄 전역을 통치하게 되었고, 셀류크스 니카돌은, BC. 305년부터 바벨론과 시리아를 다스렸다. 그러나, 두 왕조는 팔레스탄 지배권을 놓고, 전쟁이 그치지 않은 결과, 유대와 예루살렘은 중간에 끼어,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소속이 달라졌다. BC.198년에 있었던 전쟁에서 시리아가 승리하여 팔레스탄 지배권을 빼앗아 BC.164년까지 유대와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되었다.
시리아의 7번째 왕 안티오크스 에피파네스(BC.175-164년)가 출현하여 BC.171년부터 헬라화 정책을 시행했고, 급기야는 BC.167년 9월 15일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웠다. 이때, 예루살렘 서쪽 욥바로 가는 산간 벽지 시골 동네 모데인 마을에 살고 있는 늙은 제사장 마타데아(하스몬家)가 신앙 고수 자들과 함께 저항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독립전쟁 중, 마타데아는 죽고, 셋째 아들 유다(마카비-망치)가 총지휘권을 가지고, 하시딤 파와 함께 저항 운동에 나섰다.
마카비는, BC.167년부터 4차례의 전쟁을 치렀는데, 그때마다 안티오크스 에피파네스의 군대를 물리쳤다. 드디어, BC.164년 12월 25일에 예루살렘 탈환에 성공했다. 에피파네스는 BC.163년 봄에 파사의 타베에서 정신 이상으로 죽었다. 예루살렘에서는 정상적인 제사가 회복되었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정결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수전절로 절기를 삼아 지키기 시작했다. 헬라가 예루살렘을 다스렸던 년수는 B.C.323년-B.C.164년까지다.
7. 유대의 반짝 독립 약 120년
그 후부터, 유대는 반짝 독립국이 되어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하스몬 왕가의 정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안티고노스 때, 정권에 대한 암투가 시작되자, 로마를 개입시키면서 유다의 독립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권력의 분쟁을 해결해 주기 위해 개입된 로마가 유대를 삼킨 것이다, 하스몬 王家의 왕들이 다스린 햇수는 BC.164년-37년까지 약 120년간이다.
8. 로마가 지배:
852년간로마는, BC. 754년에 건국되었으나, 품페이 이후, 삼두정치가 두 번이나 반복된 후, 옥타비안이 등장하여 재정로마시대의 막을 올렸다. 옥타비안은 BC.30년-AD.14년까지 로마 황제로 있었고, BC.4년에는 [ 천하로 호적하라 ]는 명명을 내려 마리아와 요셉도 호적 하려 베들레헴으로 갔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아 말 구유에 누인 것이다.
옥타비안 이후, 티벨리우스가 AD.14-37년까지 유대와 예루살렘을 다스렸고, 이 기간에 예수께서는 모든 과업을 마치시고, 아담부부의 옷을 위해 죽었던 - 그 양이 죽었던 에덴(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이러한 죽음은, 과거 에덴동산의 회복을 의미했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그러므로, 온 인류의 대표자인 아담이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온 인류의 대표자이신 어린양 예수께서 그 자리에서 죽으신 것이다(고전15:45)
그 후, 예루살렘은, 예수께서 승천하신지 37(AD. 70년)만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초토화 되었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버리고, 전 세계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팔레스탄을 지배했던 서 로마 황제 멕시미안(AD.286년) 때부터 동서로 분열되기 시작했는데, AD 313년에 콘스탄틴 대제가 천하 통일 시켰으나, 그후, AD. 364년에 또 분열된 후, AD. 378년에 데오도시우스 대제가 다시 통일시겼으나, AD. 395년에 또 분열 되었다가 결국, 서 로마는 AD. 476년에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했고,
동 로마는 아라비아인들(사라센 족)에 의해 약체화되다가. 결국 AD.1453년에 오스만 터어키에 의해 멸망했다. 사라센 족은, 함의 아들 구스족과, 셈족,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 자손들과, 아브라함의 후처의 아들들의 후손들과, 에서족들이다. 이스라엘 땅은, BC. 37년-AD. 476년까지 서로마가 다스렸고, AD.476년-AD.638년까지는 동 로마가 다스렸다.
9. 로마 이후의 지배국들:
모하멧은, AD. 570년에 아라비아 메카에서 출생했다. 25세 때 부자 과부와 결혼하여t고, 40세에 신의 계시 받았다하여 선지자가 되었다. 그 후, 622년 7월 15일 야드립이란 곳으로 가서 그곳을 메디나라 개칭한 후, 그 날을 [ 헤지라 ]라 하여 교력기원으로 정했다. 모하멧은, AD. 630년에 메디나인의 원조를 받아 자기의 고향 메카인과 싸워 메카를 취한 후, 새 종교의 중심지로 삼았다. 신의 이름은, 알라라 칭했고, 모하멧교를 모슬렘 [ 정복자 ] 이라 칭했다.
그후, 모하멧은, AD. 632년에 63세로 죽었고, 후계자 아들이 없는 까닭으로, 그의 장인 아부베커(AD. 632-634가 초대 칼리퍼(후계자)가 되었고, 제2대 칼리파(후계자)는 오말(AD.634-644)인데, 그는 무예의 사람이라 -병(兵)을 사용하여 AD. 634년에는 다메섹을 점령하고, AD. 638년에는,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3대는 오트만(AD. 644-655년). 제 4대는 모하멧 딸인 파티마의 남편 알리(AD. 655-661년).
제 5대는, 모아위야(오마야家)가 출현 (AD.661-750년)하여 칼타고를 함락시키고, 스페인을 삼키며 프랑스(서고트족)까지 침입했으나, AD. 732년에 프랑코 장군인 찰스마르텔이 평원에서 만나 격파시킴으로서 유럽을 구했다. 그러나, 동방의 모슬렘 전세는 유리하여, 페르샤(파사=이란) 전국이 모하멧 교도의 소유가 되었고, 인도 서부와 터어키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그후, 아바스(朝 =AD. 750년)에서 후계자들이 나와 다스리면서 AD. 762년에는, 수도를 이라크 바그 다드로 옮겨 모슬렘 전역을 다스리며 번영의 꽃을 피웠다. 모하멧 교가 팔레스탄을 다스린 햇 수는 AD.638-1075년까지 437년간이다. 그 후, 셀죽크 터어키가 모하멧을 치고,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AD.1075-1291년까지 216년간 지배하 면서 성지 순례자들에게 잔혹한 취급을 하였다.
제1차 십자군 30만명이 1099년 6월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터어키 군과 전쟁을 한 결과 7월 15일에 점령하여 기독교 왕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AD. 1187년 10월 3일에 예루살렘은 다시 모하멧교도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나, 또다시 오말 예배당을 제외한 예루살렘은 AD. 1229년 제6회 십자군 손에 들어 갔다가, AD. 1244년에 다시 모하멧 교도 손에 들어가, 1291년에는 성지 전부가 모하멧 교도의 것이 되었다.
애굽군 마메룩스라는 회교집단에 의해서 225년(AD.1291-1516년)간 예루살렘을 지배했고, 또, 오스만 터어키가 AD.1516-1918년까지 401년 동안 세계 제1차대전 종식까지 예루살렘을 지배했다. 그리고 제 1차 세계 대전이 종식된 4년 후, 영국의 윈조 왕조가 AD.1922-1948년까지 26년간 예루살렘을 위임통치 했다.
10. 제1차 대전 이후의 예루살렘
AD. 1914-1918년 = 세계 제1차 대전이 있었고, 영국은 1915년 10월 29일에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에게 [독립시켜주겠다]맥마흔 선언을 했고, 제1차 세계 대전 중 AD.1917년 11월에 영국 외상 발포어는 팔레스탄에 유대국가도 건설할 것을 승인했다. 이 두 선언이 모순되어 팔레스탄 원주민들과, 독립을 선언한 이스라엘과의 중동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발포어 선언 한 달 후, 12월 9일에 영국군 총사령관이었던 알렌비 장군은, 팔레스탄을 정복하고, 단 한발의 총격도 없이 도보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유다인 부대도 함께 들어 왔는데, 이때 들어온 사람이 육군 상등병 데이빗 벤구리온이었다.
11. 제2차 대전 이후의 예루살렘
AD.1939년-1945년 6년 8개월간의 제2차 세계 대전은, 45년 4월 25일에 독일이 항복. 미군과 소련군이 독일 엘베강 부근에서 감격적인 악수를 교환함으로서 2차 대전은 종식되었다. 그리고, 2년 후, 1947년 11월에 U.N에서 유대인 국가와 아람인 국가 건설에 대한 분할 안이 결정되었다. 그 이유는, 시오니즘 운동을 통하여 1881년부터 히틀러 박해 3년째(AD.1936년)까지 세계 각지에서 팔레스탄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의 수는 약 60만 명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AD. 1948년 3월에는 유대국가 건설을 위하여 유대 지도자들이 텔아비브에 모여 국민의회를 결성하여 [잠정국민의회=임시국회]를 열었는데, 이때 초대 수상(총리)으로 벤구리온이 선출되었다. 이로 인해, 13명의 초대 내각이 구성되고, 초대 대통령으로는 30년간 시온 주의 운동을 지도해 온 와이즈만 박사를 추대했다.
12. 1948년 이후의 예루살렘:
그리고, 이스라엘은, AD. 1948년 5월 10일-49년 2월까지 8개월에 걸친 제1차 독립전쟁에 들어갔다. 5월 14일에는 텔아비브 국회에서는 독립 선언을 했고, 5월 15일에는, 유엔의 결정으로, IS 공화국이 탄생했고, 영국의 팔레스탄 위임통치 (AD.1922-1948 년)는 막을 내렸다. 그리고, 7월에 이스라엘은, [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가 될 것이라]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전 세계는 IS을 공화국으로 인정한 반면, 애굽. 시리아, 요르단. 레바론 등 아람국가들은 강렬하게 반대하고 전쟁을 준비했다. 이때부터, IS의 300만 명과. 1억의 아람 공화국과의 전쟁을 4차례나 치르게 되었다. AD.1948년 5월 15일 유엔에서 이스라엘을 한 국가로 승인했으나, 예루살렘 탈환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이스라엘의 4번의 전쟁은 아래와 같다.
제2차 : 시나이 전쟁(AD.1956년 10월29일)제3차 : 6일 전쟁(AD.1967년 6월 5일) 제4차 : 속죄일 전쟁(AD.1973년 10월 6일)제 5차 : 레바론 전쟁(AD.1982년 7월 10일)
이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탈환은, 아랍 국가와의 치열한 전쟁을 통하지 않고서는 회복할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반드시 예루살렘을 탈환하고야 말 것이다(겔38장-39장 참고. 슥12;장-14장 참고). 언젠가 예루살렘이 안연히 서게될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을 것이다.(슥14:11참조). 성경의 모든 역사는 아담이 상실해 버린 에덴동산을 찾아가는 신앙역사이다. 이 역사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종지부를 찍을 것이며 - 예수님은 에덴동산을 다시 찾아 그곳에서 온 지구촌을 통치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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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1일 주일 <광야의 소리>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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