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법칙
말의 창조적인 능력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요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요1;14
모든 말에는 하나님의 권세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모든게 신비한 기적입니다. 그 모든 기적 중의 기적은 바로
요한복음 1장 14절에 기록된 '말씀이 육신이되어' 라고 하신대로 말씀이 육신이 된,
성육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말씀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씨앗과 같습니다.
씨앗은 심으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모든 말이, 다 씨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말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언어의 법칙대로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주를 지으셨고, 그분의 능력의 말씀으로 계속 붙들고 계십니다. (히1;3. 11.3)
만약 하나님께서 그분이 만드신 창조의 법칙을 어기신다면 우주는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우주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법칙에 의해 다스려집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 절대 순종입니다.
다만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말에는 하나님의 권세가 들어있기 때문에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그 말 한대로 이루어지는 창조력이 있습니다. 씨앗이 심겨져 풍성한 열매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씨앗과 같은 반드시 말한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말이 그렇습니다.
이 말의 권능과 권세는 종교를 초월해서 모든 영역에서 동일합니다.
좋은 말은 좋은 씨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말은 나쁜 씨앗이 되어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마치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과 같이, 이 또한 심고거두는 원리에 해당됩니다.
그런 면에서 불교에서도 말조심하라는 전례로 내려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경주 불국사에 국보로 있는 에밀레종의 유래가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에밀레종의 전설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만.........
어느 날, 스님이 큰 종을 만들려고 시주를 하러 다니던 중에,
어느 여인이 아기를 귀엽다고 안고 흔들면서, "우리 집에 시주할 것은 없으니
이 아기나 가져가시죠! "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이였지요.
얼마 후에 완성된 종을 쳐보니, 그 웅장한 종이 당연히 내야할 종소리를 내지 않았답니다.
이유인즉, 시주 하러 간 스님에게 “아들이나 가져가시죠!” 라고 한말이 부정 타서 그러니
다시 종을 제작하되, 이번에는 그 여인이 말한 대로 그녀의 아들을 데려다가 끓는 쇳물 속에
넣어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울며불며 아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여인의 품에서,
아이를 빼앗아 종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 쇠를 녹여 펄펄 끓는 쇳물 속에
아이를 던져 넣고 종을 다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소리가 에미 때문에 죽었다고 ‘에밀레 에밀레~’구슬픈 여운을 띄는,
에밀레종이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말에는 모든 영역에서 권세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언어의 법칙 때문입니다.
말은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 쓰는 것입니다. 어린아기들이 말을 배우기 전에는
울음과 미소로 자기 의사를 표현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말로서 의사 전달 잘 못하면 오해를 낳고, 그 것이 목숨도 위태롭게
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말을 잘 함으로서 감동을 주어서 목숨을 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법정에서 변호사를 사서 쓰는 이유가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조심하여 황금을 쓰듯 지혜롭게 써야 할 것입니다.
성경 잠언 말씀 18;21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기독교 방송에서 들은 예화가 생각납니다.
어느 시골 외딴 마을에 젊은 농부 부부가 어린 아들 둘을 낳아 기르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루는 부부가 함께 밭일을 하다가 저녁을 지으려고 아내가 먼저 집으로
가서 부엌에서 일을 하는데, 방안에서 어린 아들이 “엄마 아기가 오줌 쌌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부엌에서 대수롭지 않게 웃으면서 “그래 오줌을 쌌어?
고놈 고추를 잘라 버려라!”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기가 오줌을 싼 게 무슨 대수냐는
뜻으로 엄마는 아이들이 귀여워서 한 말이었지요. 그런데 한참 후에 아기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방으로 뛰어 들어가 보니, 갓난아기 고추가 잘려서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큰애의 손에는 가위가 들려 있었답니다.
아직 어린아이였던 큰 아이도 엄마의 말을 분별 할줄 모르니까,
엄마가 말 한대로 실천한 것뿐입니다.
갓난아기는 그 자리에서 죽고, 엄마는 너무 놀랍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어린 아들을 홧김에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큰애마저 쓰러져 죽었답니다.
이 여인은 삽시간에 자기의 말 때문에 어린 아들 둘을 죽게 했으니
남편이 들어오면 남편 볼 면목이 없어서인지 목을 매어 죽었답니다.
남편이 해가 질 무렵에 저녁밥 먹으러 밭에서 돌아 와서는 어처구니 없는 광경을 보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도 외양간에 가서 목을 매 자살을 했다는 것입니다.
말에는 이처럼 권세와 창조력이 있어서 나쁜 말에는 끔직한 파괴력도 있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말을 쓰는 지혜가 또한 필요합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그 인생의 행과 불행이 열매를 거두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은 옛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은
몰랐어도 삶에서 얻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특히 옛날 어른들이 입방아를 (말하는 것)조심하라, 는 말은
지금도 마음에 새겨두고 말조심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입으로 말하는 것을 절구에 방아 찧는 것으로 말한 것은 아주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절구에다 방아찧듯 함부로 말하다가 큰일 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말조심하라는 뜻으로 어른들은 입방아 잘 못 찌면 망한다고 흔히 말씀들 하셨지요.
문제는 이상하게도 우리나라는 부정적인 언어가 많습니다.
그래서 말 때문에 다투고, 싸우다가 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말은 무슨 말이든지 그 말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적인 언어의 법칙입니다.
모든 말이 창조적인 능력을 가졌다면 하물며 영적 세계에 속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법칙으로 말을 사용한다면 얼마나 더 위대한 창조력이 나타나겠습니까!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좋은 말 하기 운동을 세상 끝날까지 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말을 하고 행함으로 기적의 사람이 됩니다.
어린이 주일학교 시절에 교회에서 좋은 설교말씀을 듣고 자란 아이들 중에 미국 대통령이
된 사람이 여러 명 있는데, 이런 것이 바로 그 증거들 입니다.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말을 먼저 듣고, 그 말을 하고 훌륭한 일을 이루어 냅니다.
위대한 사람은 위대한 말을 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룬 역사적 인물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농담초차도 영양가 있는 농담을 하십시오.
농담도 하나님이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유명한 가수들 중에 그 노래 부른 가사 대로 젊은 나이에
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갑자기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람이 되고.....
'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산장에서 .......' 라는 노래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던
가수도 그 노랫말대로 외로이 병들고 죽는 신세가 되었으나 다행히 믿음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외로운 분들을 섬기는 봉사의 삶을 산다고 들었습니다.
말, 말........아주 중요합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말을 아낍니다.
성인들은 침묵으로 말을 정금같이 다듬어서 사용했습니다.
말은 침묵으로 익혀서 황금 알을 낳아서 주듯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물에는 맑은 옹달샘 물이 있고, 흙탕물 웅덩이가 있듯이
말에도 좋은 말과 나쁜 말이 있습니다. 깨끗한 말과 더러운 말이 있습니다.
선한 말과 악한 말이 있습니다. 말은 인격을 나타냅니다.
그 말하는 것에 따라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구별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말을 하고, 불신의 사람은 불신의 말을 함으로
신자와 불신자로 갈라집니다.
말에는 또 길이 있습니다. 말은 그 종류대로 그 길을 따라 흘러갑니다.
각각 그 말들이 모인 곳으로 모여드는 성질이 있습니다.
선한 말은 선한 사람의 마음으로, 악한 말은 악한 사람의 마음으로
마치 지남철에 쇠붙이가 붙는 것 같은 원리입니다.
말끼리 모여서 말 동아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말이 사는 곳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말을 따라 좋은 사람, 나쁜 사람끼리 동아리가 되는 겁니다.
이 언의 법칙을 귀중히 여겨 신중하게 입을 사용하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깊이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그 입술의 열매대로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도 입술의 고백으로 되는 것입니다.(롬10;10)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기뻐하시는 말만 하기로 결심합시다.
하나님께서는 네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민수기를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원망 불평했을 때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모세에게 한 말이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원망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지시한 대로만
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4;27-28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한 것을 들으신 대로 행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하나님의 자신의 삶을 가리켜 맹세까지 하셨습니다.
결국, 광야에서 죽겠다고 원망의 말을 한 사람들은 다 가난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시는지를 일고 묵상해 보십시오.
32절“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서 엎드러질 것이요”
33절“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34절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사십 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년 간
너희가 너희 죄악을 질찌니 너희가 나의 싫어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반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믿음의 말만 하면
하나님께서도 기쁘시게 역사하시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겐 한없는 기쁨과
기적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거룩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인 것입니다.
일반 적인 모든 말에도 창조의 능력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믿음의 말들은 얼마나 더 창조적인 능력이 크겠습니까?
마가복음 11;22-23은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을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예수님 말씀을 믿고 말로서 하나님의 기적을 낳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의 창조력에 대한 귀한 말씀, 조 용기 목사님의 글을 올려 드립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한국에서 권위 있는 어떤 신경외과 의사 한 사람과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뇌수술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의학적 사실에 관해서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조 목사님, 목사님은 뇌 속의 언어중추신경이 다른 모든 신경을 지배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 신경학계에서 최근 발견한 바에 의하면, 뇌 속의 언어 중추가 모든 신경계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벌써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걸 아셨습니까? 이것들은 세계 신경학계에서도 새로운 발견들인데요.”
“야고보 박사에게 배웠지요.”
“야고보 박사가 누구인가요?”
“그는 약 2천년 전 성경시대에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중 그의 책에는 (약3;1-5) 혀와 언어 중추의 중요성과 행위에 대해서
분명히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그 신경외과 의사는 놀라며 말했습니다.
“성경이 정말 그런 내용에 대해서 가르칩니까?”
“물론입니다.
‘혀는 신체의 가장 작은 부분이지만
온 몸을 굴레 씌울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약3;2)”
그러자 이 신경외과 의사는 그들이 발견한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언어 중추 신경이 신체에 대해 큰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말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 육체를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고 계속 말하면 당장 모든 신경들이
그 메시지를 받아서 말할 것입니다. ‘자, 약해지도록 준비를 하자.
우리의 중앙전달 센터에서 지시가 왔으니 우리는 약해져야 해.’ 그래서 그들의 신체적
상태를 약해지도록 조절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그래. 나는 능력이 없어. 나는 이 일을 할 수 없어.’ 라고 말하면
당장에 모든 신경들은 똑같이 그렇게 선언하고 반응합니다. ‘그래. 우리는 아무 능력이 없다고
중추 신경에서 지시를 받았다. 우리는 어떤 가능한 능력을 계발하는 것도 포기해야 돼.
우리는 이 사람이 무능한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 준비해야 돼.’ 라고”
“그리고 어떤 사람이 ‘나는 매우 늙었어. 정말 너무 늙고 피곤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군.’하고
계속 말하면 당장에 언어 중추는 영향력을 행사하며 반응을 조절합니다.
신경들은 네. 우리는 늙었습니다. 우리는 무덤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분해 될 준비를 합시다. 라고 반응을 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이 늙었다고
계속 말하면 그는 곧 죽게 될 것입니다.”
그 신경외과 의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결코 삶의 의욕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삶의 의욕을 잃게 되면 그는 자신에게 반복해서 ‘나는 끝장 난 사람이야.
더 이상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신경들이 그 말에 반응하여 비활동적으로 되어서 빠른 속도로
그 기능이 약화되어 빨리 죽게 되는 것입니다.”
조 용기 목사/ 4차원의 영적세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신 묘 막 측 하십니다.
과학자들은 이제야 발견했지만 하나님은 만세전부터 하나님의 창조법칙으로 측량 할 수 없는
신비한 방법으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그 분의 창조 원리대로 만물을 통치하십니다.
인간들이 과학과 문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하나님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태산에서 삽으로 과학 한 삽, 문명 한 삽씩, 뜬 것에 불과 합니다.
전자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벌레 같은 인생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수저로 뜨던 것을 삽으로 떴다고,
무엇인가 조금 더 연구 했다고 우쭐될 것,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오직 그분을 경외함으로 사랑과 순종하는 삶을 살때만이,
진장으로 거룩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예은목
'신앙의 생각! 말!! 행동!! 영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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