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사역의 단계와 방법들 외 치유기도 방언기도. 기도사역
치유사역의 단계와 방법들
1. 질문하라.
(막 10: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이 당신에게 무엇을 해 주시기를 원하시나요? 오늘 사역을 통하여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시나요?” 라는 질문을 하라. 치유받기 위해서는 정확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정확한 기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예로 몸의 질병을 가지고 있지만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 받기 원해서 나오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막 9: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 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가요?” 라는 질문을 하라. 어릴 때부터라면 가문에 흐르는 저주일 가능성이 많다. 가문에 흐르는 저주를 차단하는 기도를 드리라. 어떤 특정한 사건을 전후로 그 질병이 왔다면, 그 사건으로 인한 충격, 원한, 용서 못함, 두려움 등이 그 질병의 원인일 수 있다. 질문과 답변을 메모지에 구체적으로 메모하라. 그 메모지를 보면서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의 실제부분은 http://cafe.daum.net/gvlove0691/K3fi/2016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2. 말을 경청하라.
말은 곧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의 상태이며, 영적상태이다. 말을 통하여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악한 영의 실체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말을 통하여 드러난 악한 것들을 결박하며 제거해 나갈 수 있고, 잘못된 영적 상태와 생각들을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마 12:34-35) 『34]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렘 6: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3. 눈을 떠서 서로 바라보며 기도하라.
사역자인 당신도 눈을 뜨고, 사역대상자도 눈을 뜨고 당신을 바라보게 하라. 눈은 그 사람의 마음의 등불이기에 눈을 통하여 영적인 상태가 드러나고 전달되기 때문이다. 성령님의 기름부음이 임할 때에 기도 받는 사람은 치유사역자가 힘으로 누른다고 생각하고 버티는 경우가 생기는데 눈을 뜨고 있다면 그러한 착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기도자도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는 상태를 확인하며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 3:4-5) 『4]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마 6:22-23) 『22]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4. 치유되는 상태를 확인하며 포기하지 말고 전진하라.
예수님도 소경을 위하여 두 번 기도하셨다. 병자가 치유받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100% 치유된다. 당사자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중단하지 말고 더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도하라. 무엇인가 일어날 때까지, 고침을 받을 때까지 기도하라.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시도하라.
(막 8:22-25) 『22]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23]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자신감을 가지라. 모든 질병과 연약함을 치유하는 것은 100% 하나님의 뜻임을 알라. 병자가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물러서지 말라.
5. 감사하며 행동하게 하라.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3:3,5)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약 2:22,26) 『22]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6. 사람들에게 간증하게 하라.
(시 105:1)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시 107:21-22) 『21]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22]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막 5:19)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치유기도의 실제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응답의 목표수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 6:9-10)『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천국에는 가난, 질병, 저주, 악령의 지배,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 우리는 이 땅에 그 수준의 치유가 임할 것을 기대할 수 있고, 그 수준의 응답을 믿고 기도해야 한다.
1.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요 14:12-14) 『12]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원어에는 없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 모든 질병은 100% 치유될 수 있고 치유되어야 함을 믿고 기도하라.
(시 103:3-5) 『3]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마 8:16-17) 『16]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3. 안수하며 기도하라.
(막 16:17-18) 『17]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4. 구체적으로 기도하라.
비명을 지르며 큰 소리로 기도할 필요는 없다. 예수이름으로 구체적으로 치유를 위해 기도하며, 치유될 것을 명령하라. 예수이름의 권위 앞에 모든 것들이 굴복하게 되고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치유를 가로막고 있는 문제의 산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이 떠나갈 것을 명령하며 기도하라.
(막 11:20-24) 『20]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직역) 2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하나님의 믿음과 반대되는 상황)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방언기도는 마치 유정을 파는 것과 같습니다.
-케네스 해긴-
당신은 방언 기도에 대해 이 점을 반드시 이해해야만 합니다. 마귀가 당신에게 대적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방언으로 기도하는 그 영역으로 들어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그는 당신에게 대적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까요? 그는 수많은 다른 방법으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기도는 당신의 생각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마귀가 가장 자주 쓰는 전략 중의 하나는 당신이 잘못된 생각을 하도록 낙담시키는 의견들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무릎 꿇고 한 시간 동안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한 순간, 그것이 바로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어떤 생각이 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그리고 나는 그것이 마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군가 와서 너한테 뭐하고 있는 거냐고 물으면 어떻게 할래? 넌 '나도 몰라' 라고 말해야 할 걸."
내가 말했습니다. "잠깐만, 마귀야." 나는 성경을 집어 들고 고린도전서 14장을 폈습니다. "누군가 들어와서 내가 방언 기도하는 것을 듣고 '뭐 하시는 건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다. '나는 아버지께 말하고, 나 자신을 세우고 있습니다!, '"
그 즉시 적으로부터 다음 생각이 들어 왔습니다.
"넌 네가 하는 말도 못 알아듣잖아?"
"그래, 나는 신성한 비밀을 말하고 있으니까!"
"근데 너, 기도하기 전에 평소와 다른 어떤 느낌을 느끼긴 했니?"
"마귀야, 나는 느낌에 의해 행하지 않아. 나는 성경이 말하는 것에 의해 행한다! 그리고 이건 육체적인 세움이 아니라, 영적인 세움이야. 네가 못 읽는다면, 내가 이 성경말씀을 읽어 주지." 그리고서 나는 마귀의 모든 고소에 대한 대답으로 그에게 다양한 구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나는 다 읽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마귀야. 나는 한 시간 동안 방언으로 기도할 거니까, 너는 네 갈 길 가라!"
그런 후에 나는 눈을 감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기도에 대한 어떤 열정이나 기름부음은 없었지만, 나는 영으로 기도했습니다.
잠시 후에, 나는 한 시간 넘게 기도한 것 같았습니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눈을 뜨고 시계를 보았더니, 겨우 10분밖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어서 계속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잠시 후, 한 시간 정도 기도한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한 시간 반은 한 것 같았습니다! 시계를 보았습니다. 겨우 20분이 지났습니다. 오, 주여!
나는 계속했습니다. 절대 한 시간을 방언으로 기도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한 시간이 그렇게 긴지 몰랐습니다!
어쨌거나 나는 한 시간 동안 고군분투했습니다. 일어나서 의자에 앉자, 어떤 음성이 내 마음에 말했습니다. "봐, 넌 시간만 낭비했잖아! 넌 주일 설교 준비를 해야 했어. 그리고 나가서 심방도 해야 했지. 그런데 그 대신 여기서 한 시간을 완전히 낭비했어. 그게 네가 한 짓이야!"
내가 말했습니다. "마귀야, 난 한 시간을 낭비한 게 아니야. 다시 읽어 주마." 내 성경은 여전히 고린도전서 14장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께 비밀을 말한 거다. 넌 그 비밀에 끼어들 수 없으니까 화가 났겠지!"
"하지만 너는 네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잖아!"
"그래." 내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한테 기도하는 게 아니야. 나는 하나님께 말하는 거야! 중요한 건 그분은 내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하신다는 거지. 게다가 나는 나 자신을 세웠어.
마귀야, 그렇게 때문에 나는 다시 무릎을 꿇고 두 시간 더 방언으로 기도할 거다. 그리고 그 두 시간을 채울 때 네가 또 뭐라고 하면, 나는 두 배로 할 거다. 다음에는 네 시간을 해버릴 거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무릎을 꿇고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쉬웠고, 나는 영어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두 시간을 채웠습니다. 아무런 열정이나 기름부음이 없었지만, 나는 두 시간을 더 방언으로 기도했던 것입니다. 나는 방언으로 세 시간을 기도하고, 일어나서 다시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 전에는 그렇게 길게 영으로 기도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어떤 음성이 내 마음에 들려왔습니다. "그래, 두 시간을 더해서 총 세 시간을 낭비했구나. 그래서 뭐 좋은 게 있니? 기도하기 전보다 좀 기분이 나아졌니?
나는 말했습니다. "나는 느끼는 것이나 보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 나는 믿음으로 행한다."
"좋아, 하지만 네가 무슨 기도했는지 아니?"
"아니," 내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한테 기도한 게 아니야. 나는 하나님께 비밀들을 말한 거야."
"네가 알지도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게 너한테는 무슨 도움이 되지?"
"나는 나 자신을 세우는 거야.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나 자신을 건축하는 거다."
"그래, 하지만 너는 그 시간에 설교 준비를 끝낼 수 있었어. 이제 시간은 지나갔고, 넌 아무 것도 이룬 게 없어."
내가 말했습니다. "이 마귀야, 내가 경고했지? 네가 또 무슨 소리를 하면, 나는 두 배 더 방언으로 기도할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난 다시 무릎 꿇고 네 시간 동안 방언으로 기도할거야!"
그래서 나는 무릎을 꿇고 또 다시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1시간 45분을 더 기도하자. 나는 물줄기가 터져 나오는 분출구를 터트렸습니다! 이것이 내가 아는 한 최고의 묘사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기름부음 가운데 내 영과 이성 모두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내게 장래 일들을 보여주심으로 계시가 임했습니다(요 16:13).
그 때까지 나는 어떤 열정이나 기름부음 없이, 나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면서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분출구를 터트리자, 계시가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의 의지의 행동으로 방언 기도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 "분출구"는 결코 터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방언 기도는 마치 유정(油井)을 파는 것과 같습니다. 유전업자가 유정을 파는 데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면, 모든 기름은 땅속에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유정을 터트릴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유전업자가 기름을 파내지 않는 이상, 누구도 기름의 흔적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이렇게 물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4시간 45분 동안 어떤 열정이나 기름부음 없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당신에게 유익했습니까?"
확실히 그렇습니다. 나는 수년간 셀 수 없이 많이, 단지 내가 원해서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의지의 행동으로 방언 기도하는 것과 기름부음으로 기도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기름부음에 의해 기도하면서 더 깊은 기도의 영역으로 들어갈 때, 기적이 일어나고 계시가 임합니다! 영으로 하는 기도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날 나는 그러한 깊은 기도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데 거의 다섯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매일 지속적인 방언 기도를 통해서, 나는 성령 안에서 10분 안에 그 자리로 들어갈 수 있는 정도에 왔습니다.
만약 당신도 같은 일, 즉 매일 시간을 늘리면서 방언 기도하는 일을 시작한다면, 당신은 더 깊은 기도의 영역으로 빨리 들어가는 법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기도 시간에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 마십시오. 당신이 성령의 기름부음 아래 기도하기 시작할 때까지, 초자연적인 언어가 당신에게서 능력의 강과 같이 흘러나올 때까지 계속 기도하십시오!
[케네스 해긴. <방언 오순절 다락방 경험을 넘어>. 김진호옮김. 용인: 믿음의 말씀사. 2010). pp.260-266.]
기도사역의 우선순위와 기도내용의 우선순위
기도란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 되시는 여호와하나님과 자연스럽게 나누는 부자(父子)지간의 대화이며 응답이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정상적인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주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만 한다(참고로 막7:24-30에 등장하는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기도와 응답은 정상적인 기도의 응답이 아닌 특별한 예외의 은총임을 알아야 한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를 알고 순종하여 하나님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여야 하며, 둘째로 우리의 모든 필요들을 구체적으로 아뢰며 자녀로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의무와 특권을 갖게 된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의 특권이자 의무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기도가 없다면 아무 것도 하실 수 없기에, 하나님의 약속일지라도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무효로 돌아가는 것이다.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 36:36-37)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
그렇기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의 우선사역 1순위는 기도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사역 1순위인 기도사역에 있어서, 어떤 것부터 기도해 나가야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 기도내용의 우선순위 첫 번째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보통의 경우에 나라와 민족과 세계의 평화와 복음전파, 교회와 이웃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먼저 해야 하고, 그 후에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개인 기도를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어느 교회, 어느 설교자를 보아도 거의 모두가 다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가르치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진짜로 그 가르침이 성경적으로도 맞는 것일까?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관한 그러한 가르침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굳게 세우며, 그 일을 위하여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야 하며, 그러한 전제 위에서 중보기도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유1:20-23)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 안에서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며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 자신을 세워가야 한다. 자기 자신을 거룩한 믿음 위에 세웠다면 이제는 주변을 돌보며 가정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인류평화와 복음전파를 위하여 점차적으로 기도내용의 범위를 넓혀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의 모범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의 기도순서는 어떠했는가?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예수님께서도 먼저, 주님 자신을 위한 기도로 시작하여 제자들과 세상을 위한 기도로 점점 확장시켜 나간 것을 볼 수 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1-5)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인 우리들도, 주님의 모범을 따라,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로부터 시작하여 가족과 우리교회, 지역사회, 나라와 민족 그리고 전 지구촌을 위한 기도로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을 무척이나 존경하고 있다. 그분의 책이라면 거의 다 빠지지 않고 구입해서 꼼꼼히 신중하게 읽어보는 입장이며 그분을 통하여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배웠으며 또 계속해서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분만큼 성경에 정통하고 지혜와 계시의 영이 충만한 분도 그리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어제, 며칠 전 출간된 그분의 따끈따끈한 책, <중보기도 이렇게 하라>가 있기에 기쁨과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매우 당혹스러웠다. ‘아니? 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케네스 해긴도 이런 설교를 하였었네? 그분의 초창기 책을 이제 번역한 건가???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그분도 역시 이상에 언급된 잘못된 가르침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계시네!’ 라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라도 내가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성경을 잘못 이해했었나?’ 라는 생각으로 성경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는데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관한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주장은 명확히 틀린 부분이었음을 재차 확인하게 되었다(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리라). 그분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보고,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가를 진지하게 점검해 보기로 한다(그분의 명성까닭에 그분의 잘못된 가르침까지도 여과 없이 그대로 퍼져나가는 것은 주님께서도 원치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분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디모데전서 2:1-4).
중보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앞의 성경 구절에서의 “첫째로”라는 말씀입니다. 안내가 있을 때는 그 안내를 잘 따라야 일의 진행이 순조롭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보기도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안내서 역할을 하는 성경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종할 필요가 있습니다(중략).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라고 하며 말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먼저 해야 할 일을 우선순위 첫째 자리에 놓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덜 중요한 일을 먼저 하느라고 정말 중요한 일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삶에서 종종 있으니 말입니다(중략).
사람들은 보통 자기 자신을 모든 삶의 우선순위 앞에 놓기 쉬운데, 이것은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할 때는 자신의 문제점을 너무 앞세워서 기도했기 때문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농부처럼 기도하곤 하지요. “주님, 저와 우리 아내, 그리고 아들 존과 며느리 부부, 그렇게 저희 가족 네 사람을 축복해 주세요. 그 이상은 신경 안 쓰셔도 관계없습니다.”
똑같은 기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도 이 농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많은 기도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말씀 서두에 자신과 가족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먼저 기도해야 할 대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나라를 위해, 국가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부터 우리가 사는 지역의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중략).
그래서 기도 응답을 받고자 한다면, 선행되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먼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1,2절)라고 말하는 이 부분을 살펴봅시다.
바울이 이 서신을 쓰던 시절에는 각 나라마다 지도자로 왕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대통령쯤에 해당되는 직위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절) 여기의 ‘모든 사람’은 국회의원이 됐든, 도지사가 됐든, 시장이 됐든 간에 나라 안의 모든 지도자들을 지칭하는 말로, 경찰까지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중략).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다면, 우리는 어떤 기도 제목을 우선순위에 두고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 자신? 우리 자녀들? 우리 손자? 우리 교회? 물론 대답은 전부 ‘아니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이내 우리는 첫째로 국가의 모든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Kenneth Hagin. <중보기도 이렇게 하라>. 정승혜 옮김. (서울: 베다니출판사. 2011). pp.9-18.]
우리가 국가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해야 한다는 그것은 틀림없는 성경의 가르침이고 당연히 우리가 순종하여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 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2:30-31)
이상의 말씀과 같이 우리의 중보기도가 없다면 하나님의 뜻이라도 좌초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만 한다. 기도를 드리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드려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사역보다 더 중요하고 기도보다 더 급한 사역은 없다. 그렇기에 사도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사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부분이 디모데전서 2장 1-4절의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1-4)
그러나 이 말씀은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사역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역들 가운데 가장 첫 번째로 감당해야 할 중요한 사역이 기도의 사역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대상은 모든 사람들이고,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국가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를 빼먹지 말고 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이 등장하는 전, 후 문맥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므로”라는 말로 이 구절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의 앞부분과 연관되어 제시되는 구절이라는 말이다. 이 구절의 앞부분에 나오는 디모데전서 1장의 내용이 무엇이었는가?
디모데가 목회하는 에베소교회에 “바른 교훈”(10절)이 아닌 “다른 교훈”(3절)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바른 교훈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의 길”(5절)을 걸어가게 하였지만, “다른 교훈은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여 변론을 내게 하고, 믿음과 착한 양심을 버리고 사탄의 유희에 놀아나 음행하고 남색하며 인신매매를 하고 거짓말과 거짓맹세”(4,10,19,20절)를 하게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6장 3-21절에서는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딤전 6:3-21)라는 권면을 하였던 것이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디모데전서의 이 편지를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당시에 디모데가 목회하는 에베소교회에 자기 자신의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하고 “다른 교훈”을 따라 “바른 교훈”을 거스르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버리고 믿음에 파선하여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이 있었기에, 사도바울이 그러한 부분들에 대하여 디모데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교훈하기 위함이었던 것이고, 그러한 상황에 제일로 급하고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중보기도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점검하거니와 이 구절은 기도사역의 우선순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기도내용의 우선순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님의 모범을 따라, 우리들도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들을 위한 기도로 우리자신을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굳게 세워야 하고, 성령 안에서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함으로 우리 자신의 믿음을 굳게 세운 상태에서 가족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전 세계의 복음화를 위하여 점차로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며 기도해야하는 것이다(유1:20-23).
그렇지 않다면 자기 자신의 믿음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다른 교훈에 빠져 교만하며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다가 믿음에 파선하고 결국 사탄에게 돌아갔던 에베소교회의 교인들과 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1-4) 아멘.
이미 밝힌 대로 나는 개인적으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을 무척 존경하는 사람이다. 그분의 수많은 가르침들을 존중한다. 하지만 최근에 출간된, <중보기도 이렇게 하라>의 내용 중 이상과 같은 부분만큼은 성경적으로 다시 진지하게 재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혹시 이 글이 그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분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남기지 않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나는 케네스 해긴 목사님, 그분만큼 훌륭한 성경교사와 설교자 그리고 영성사역자는 그리 많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다. 가능하다면 그분의 모든 책들을 다 읽어보기를 권해본다. 다만 이 글은, 그분의 가르침 중에서 기도내용의 우선순위에 관한 이상과 같은 부분만큼은 재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의 내용은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주님 안에서 거듭난 우리가 주님의 약속의 말씀 안에서, 그것을 원하며 기도한다면 100%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다시 살아나시면 하늘로 승천하시고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주시고 장래 일을 우리에게 알리시리라고 하신 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3-34)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에는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시기에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말씀이다. 하나 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믿음과 반대되는 그 어떤 장애물일지라도 떠나가도록 명령할 권세가 있다는 것도 알고 누려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2-24) 아멘.
이것과 연관된 예화 두개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 해본다.
브라질 사오 파올로 주 내륙에 있는 깐탄두바라는 마을에 돼지와 닭을 기르며 살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가 기르고 있는 가축들이 전부 죽어가기 시작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한 마리씩 죽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R.R 쏘아래스 목사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특별한 안내를 받지도 않고, 사실 특별한 안내가 필요하지도 않기에, 그는 부엌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서 손을 들고 외쳤다. “예수 이름으로, 돼지 한 마리도 닭 한 마리도 죽지 않을 것이다.”
그 날 이후로 그의 농장의 가축은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이것은 쉽다. 이것은 당신도 할 수 있고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은 요한복음 14:13절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핵심이다.
[R.R. 쏘아래스. 복을 취하는 법. 김진호 옮김. (용인: 믿음의 말씀사.) p.28.]
마헤쉬 차브다의 사역 초창기에 있었던 일이다.
한 어린아이를 물어뜯고, 그것을 제재하는 아버지를 물어 죽이고 있는 독일산 미친 세퍼트견을 만났을 때, 성령께서 그에게 “묶어라!”는 음성을 주셨고, “묶으라고요? 밧줄이 없는데 어떻게...”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 개가 마헤쉬 차부다에게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마헤쉬 차브다가 “예수의 이름으로 내가 너를 묶노라!”고 큰 소리로 외치자 그 개는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친 것처럼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몸을 움츠리고 깨갱거리며 엎드린 채로 얌전히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과도한 출혈로 인해 호흡이 중지되고 사망한 상태였다. 마헤쉬 차브다는 ‘주님, 이 남자가 죽는 걸 보여주시려고 저더러 이곳까지 오게 하신 건가요? 이건 아니잖아요?’라는 생각을 하며 그 남자의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예수의 이름으로 호흡은 돌아올지어다.” 친구와 함께 앉아서 몇 분 동안 기도하자 갑자기 그 남자가 큰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났다.
[마헤쉬&보니 차브다. <폭풍의 전사>. 심현석 옮김. (서울:순전한 나드, 2009) pp.17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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