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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역사적 전천년주의 국제학술대회 " 정성욱박사

하나님아들 2014. 5. 3. 15:18

"역사적 전천년주의 국제학술대회 " 정성욱박사

아이디 : 3212355     이름 : 민병석 번호 : 103     조회 : 518
게시일 : 2012-03-27 08:17:47     수정일 : 2012-07-23 17:53:09



이번 6월11일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미국 덴버신학교와 흰돌선교센터 공동주최로 <역사적 전천년주의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게 됩니다. 세계적 종말론 신학자들이 모여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신학적 고찰과 현황에 대한 철저하고 예리한 연구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이같은 종말론에 관한 국제학술대회는 한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희귀한 행사로 종말론에 관심이 있는 많은 분들의 참석을 권고합니다.


                             2012년3월27일    민 병 석  목사

시 일 : 2012년 6월 11일  오후 1시 - 6시

장 소 :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 대강당

* 네 명의 강사 중, 한 분으로 "세계 복음주의 신학계에서의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현황"이란 주제로 발표하실 덴버신학교 조직신학 교수이신 정성욱 박사님의 논문을 입수하여 이곳에 게재합니다.
 세계 복음주의 신학계에서의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현황
(The Current State of Historic Premillennialism in Global Evangelical Theology)

정성욱 박사(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차례

1. 들어가는 말  5

  2. 교회사에서의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위치  9

  1)초대 교회 및 교부 시대 (1세기 – 4세기)  9
  2)교부시대 후기와 중세시대 (4세기 – 15세기)  21
  3) 종교개혁 시대 (16세기‐ 17세기)  24
  4) 근대교회시대 (18세기 – 19세기)   28

  3. 서구 복음주의 신학계에서의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현황  32

  1) 찰스 어드만과  역사적 전천년주의  32
  2) 조지 래드와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부흥  33
  3) 서구의 역사적 전천년주의 성경신학자들  34
  4) 역사적 전천년주의 조직신학자들  44

  4. 아시아 복음주의 신학계에서의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현황  47

  1) 한국  47
  2) 여타 국가  55

  5. 결론  56

1. 들어가는 말
교회 역사상 요한계시록과 종말론을 이해하는 네 가지 관점 또는 학파가 등장했다. 그것은 역사적 전천년주의 (Historic Premillennialism),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 (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무천년주의(Amillennialism), 후천년주의 (Postmillennialism)이다. 필자의 확신은 이 네 가지 학파 중에서도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가장 성경에 근접한 종말론적 관점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다른 세 가지 학파나 관점을 이단적으로 생각하거나, 다른 세 가지 관점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른 세 가지 학파나 관점도 성경적으로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세 학파를 정죄하지는 않으며, 이 세 가지 학파가 가지고 있는 성경적인 부분과 장점은 적극적으로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틀 안에서 수용하고 통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가장 성경에 근접한, 가장 성경적인 종말론적 관점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런 기본적인 통찰에 기초해서, 본 논문의 목적은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전세계적 현황과 위치를 고찰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신학계 특별히 복음주의권에 속한 대다수의 신학자들은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전문적인 신학 훈련을 받은 신학자들 대다수가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가장 성경에 근접한 종말론적 관점이라는 점에 대해서 동의하고 있다. 그 퍼센티지가 50퍼센트일지 60퍼센트일지 아니면 70퍼센트일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전문적인 신학 훈련을 받은 복음주의권의 신학자들 – 성경신학자와 조직신학자를 포함한 – 의 대다수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이다. 이 점에 대해서미국 베일러 대학교 역사 신학교수인 로저 올슨 (Roger Olson)은 크렉 블롬버그와 필자가 공동 편집 한 책 [역사적 전천년주의 변증](A Case for Historic Premillennialism: An Alternative to “Left Behind” Eschatology) 에 대한 자신의 추천평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바 있다.

지금은 역사적 전천년주의에 대한 학문적 개진과 변증이 이루어기에 아주 적합한 시기이다.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아마도 신학적으로 훈련된 복음주의자들 대다수가 견지하고 있는 종말론적 관점이다 …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주의깊게 읽게 된다면 점증하는 환난전 휴거주의 종말론의 흐름을 돌려 버리고, 성경과 교부들의 종말론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It’s about time we had a scholarly presentation and defense of historic premillennialism, which is probably the majority view of the ‘end times’ among theologically trained evangelicals … If read carefully by many, it will turn the growing tide of ‘pretrib rapturism’ and restore the eschatology of the Bible and the church fathers.”)

물론 지난 한 세기 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세대주의가 그 세력을 확대했다. 세대주의는 다양한 책의 출간, 적극적인 매스 미디어의 활용 등을 통해 미국 복음주의권의 주요한 종말론적 관점 중에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세대주의를 대표하는 대중적 서적 중에는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수천만권이 판매된바 있는,  제리 젠킨스 (Jerry B. Jenkins)와 팀 라헤이 (Tim LaHaye)의 소설  Left Behind Series (14권)가 있다. 이 소설은 영화와 DVD로도 제작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책은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간된 바 있으며, 최근 한국에서도 번역출간되고 있는데, 특기할 만한 점은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만큼 큰 흥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갈 것은 세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전문적인 신학적 훈련을 받은 학자들이라기 보다는, 세대주의적인 주장을 설파하는 매스 미디어와 서적들의 영향을 받은 일반 대중들이라는 사실이다.  지리적으로는 미국 동남부의 Bible Belt 지역이 세대주의가 심대한 영향을 미친 지역이 되었고, 세대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많은 학교들이 세워졌다.

비록 세대주의가 북미의 일반 대중들에게는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없지만, 전문적인 신학훈련을 받은 학자들의 대다수는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가장 성경에 근접한 종말론적 관점으로 지지하고 있다. 필자는 이 주장을 여러 가지 다양한 증거들을 제시함으로 입증하고자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선 본 논문의 첫 부분에서는 역사적 접근을 통해서 교회사 2000년 동안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었는지 분석해 볼 것이다. 이어서 두 번째 부분에서는 20세기와 21세기 현대의 서구 복음주의 신학계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 지를 고찰할 것이다. 이어서 세 번째 부분에서는 한국과 싱가포르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이어 결론부분에서 필자의 주장들을 요약하면서 앞으로 요한계시록 연구와 종말론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몇 가지 제언을 제시하려고 한다.

2. 교회사에서의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위치
1) 초대 교회 및 교부 시대 (1세기 – 4세기)
교회사를 조금이라도 자세하게 읽어보거나 연구한 사람이라면 사도 요한 사후 1세기 말에서 4세기 말까지 기독교회를 이끌었던 대부분의 교부들이 역사적 전천년주의라는 큰 틀에서 성경을 해석하고 종말론을 전개했음을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교회사를 연구하는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함께 동의하는 합의이다. 

⑴ 폴리캅 (Polycarp, 69‐155)
우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요한이 주후 1세기 말에 세상을 떠난 뒤,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캅 (Polycarp, 69‐155)은 서머나의 주교로서 사역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과 재림 직전에 있을 대환난 그리고 재림 이후에 있을 천년왕국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설교했다는 점이다. 물론 폴리캅이 남긴 글에서 이런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는 어렵지만, 폴리캅과 동시대 인물로서 동일하게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파피아스와 이레니우스가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종말론을 견지한 것으로 볼 때 폴리캅이 자신의 스승인 사도 요한과 제자인 이레니우스와 비슷한 종말론적 관점을 견지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한 바가 아닐 것이다. 

⑵ 파피아스 (Papias, 70 이전 출생 – 155)
사도요한의 다른 제자 파피아스 (Papias, 70이전 출생‐155)도 히에라폴리스 (Hierapolis)의 주교로 사역하면서 자신의 스승이었던  사도요한의 가르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대환난과 적그리스도의 출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이 땅에 세워질 천년왕국에 대해서 강조하여 가르쳤다. 파피아스는 “죽은 자들의 부활 이후 천년의 기간이 있을 것이며 이 기간 동안 이 땅 위에 물리적인 형태로 그리스도의 왕국이세워질 것이다” (that there will be a period of a thousand years after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when the kingdom of Christ will be set up in material form on this earth)라고 주장함으로써 사도 요한 이후 최초로 천년왕국을 신학적으로 언급한 교부가 되었다.

파피아스는 다음과 같이 천년왕국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묘사를 해주고 있다. “그 날이 오면 포도나무는 한 그루에 만개의 줄기가 있을 것이고, 각각의 줄기에 만개의 자기가 있고, 각각의 가지에 만개의 잔 가지가 있고, 각각의 잔 가지에 만개의 포도 송이가 있을 것이며, 각각의 포도 송이에 만개의 포도알갱이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포도알갱이를 즙틀에 짜면 25 항아리의 포도주가 나올 것이다 .” (The days will come when vines will grow, each having ten thousand shoots, and on each shoot ten thousand branches, and on each branch ten thousand twigs, and on each twig ten thousand clusters, and in each cluster ten thousand grapes, and each grape when crushed will yield twenty‐five measures of wine)  물론 파피아스의 이러한 묘사가 성경적으로 분명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파피아스가 천년왕국이 이 땅에 세워질 것이며, 이 천년왕국은 자연만물의 회복을 의미할 것이라고 믿었던 점은 분명하다.

⑶ 순교자 저스틴 (Justin Martyr, 103‐165)
2세기 초중반 폴리캅과 파피아스와 동시대 사람이면서, 기독교 변증가로서 지대한 활약을 했던 순교자 저스틴 (Justin Martyr, 103‐165)은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두 번 오심을 선포했다. 첫번째는 이미 지나간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수치와 고난을 당하는 사람으로 오신 것이고, 둘째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천사들과 함께 영광중에 하늘로 부터 강림하실 것이다 (The Prophets have proclaimed  two advents of [Christ]: the [first] one , that which is already past, when he came as a dishonored and suffering man; but the second, when, according to prophecy, he shall come from heaven with glory, accompanied by his angelic host)” 라고 말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 직전에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에 대한 엄청난 핍박을 감행할 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대항하여 해괴한 말을 쏟아놓을 배도의 사람이 지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반대하여 불법적인 일들을 시도하게 될 그 때에, 그리스도는 영광중에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이다” (He shall come from heaven with glory, when the man of apostasy, who speaks strange things against the Most High, shall venture to do unlawful deeds on the earth against us Christians) . 더 나아가서 저스틴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신 후 천년왕국이 지상에 세워질 것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나와 또한 모든 점에서 바른 생각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을 것이며, 예루살렘에서 천년을 보내게 될 것이고, 그 동안 예루살렘은 재건되고, 치장되고, 확장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I and others who are right‐minded Christians on all points, are assured that there will be a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a thousand years in Jerusalem, which will then be built, adorned  and enlarged).순교자 저스틴의 이런 주장은 오늘날 요한계시록과 종말론을 접근하는 네 가지 학파 중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관점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고든 루이스와 브루스 데머리스트에 의하면, 저스틴은 영지주의자를 제외한 2세기의 모든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은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지지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⑷ 이레니우스 (Irenaeus, 130‐202)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캅의 제자이자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부 중 한 사람으로 인정되는 이레니우스 (130‐202)는 그가 남긴 여러 저작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고, 대환난의 시기가 있을 것이며, 교회와 성도들은 이 환난을 통과하게 될 것이며, 환난 끝에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신 후 이 땅위에 천년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종말론을 주장하였다.
먼저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레니우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이 적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황폐케 할 것이고, 그는 3년 6개월을 통치하게 될 것이며,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앉게 될 것이다. 그 후 주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하늘로 부터 구름을 타고 강림하실 것이며, 오셔서 이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불못에 던지실 것이다.” (“When this Antichrist shall have devastated all things in this world, he will reign for three years and six months, and sit in the temple at Jerusalem; and then the Lord will come from heaven in the clouds, in the glory of the Father, sending this man and those who follow him into the lake of fire.”) 그리고 이레니우스는 교회가 대환난을 통과한 후에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늘로 들어올려져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마지막 때에 교회는 대환난 이후 갑자기 하늘로 들어 올려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환난은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태복음 24:21).’ 이 환난은 의인들에 대한 마지막 테스트가 될 것이며, 그들이환난을 이기면, 시들지 않는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다.” (When in the end the church will suddenly be caught up from this, it is said, ‘There shall be tribulation such as has not been since the beginning, neither shall be’ (Matt. 24:21).  For this is the last contest of the righteous, in which, when they overcome, they are crowned with incorruption)


교회사가 그렉 앨리슨 (Gregg R. Allison)에 따르면, 초대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이레니우스의 종말론을 지지하였다. 이레니우스의 종말론은 “ 그리스도가 오시고, 적그리스도가 패배할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이 몸으로 부활하고, 부활한 그리스도인들은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녀간 다스릴 것이며, 천년왕국이후 불신자들이 부활할 것이고,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영원한 천국과 지옥을 이루실 것이다” (Christ will return, Antichrist will be defeated, Christians will be resurrected bodily, these believers will reign with Christ on the earth for one thousand years, unbelievers will be resurrected after the millennium, the final judgment will occur and God will establish the eternal state of heaven and hell)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레니우스의 종말론이 가진 이런 구조는 오늘날 역사적 전천년주의 학파의 종말론적 구조와 큰 틀에서 일치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⑸ 히폴리투스 (Hippolytus, 170‐235)


2세기 말 3세기 초에 활동한 교부이자 이레니우스 (Irenaeus)의 제자였던 히폴리투스 (Hipploytus, 170‐235)는 다니엘서에 나타난 역사의 종말에 대한 환상을 해석하면서,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대환난의 시기가있을 것임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네 번째 짐승은 앞서 나타났던 다른 모든 짐승들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며, 500년을 통치하게될 것이다. 때가 차고, 마지막 때에 그 짐승으로부터 열개의 뿔이 나오면, 적그리스도가 그 들 가운데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대적하여 싸우고, 성도들을 핍박하게 되면, 그 후에 하늘로 부터 주님이 재림하게될 것이다” (The fourth beast, as being stronger and mightier than all that went before it, will reign five hundred years. When the times are fulfilled, and the ten horns spring from the beast in the last times, then the Antichrist will appear among them. When he makes war against the saints, and persecutes them, then we may expect the manifestation of the Lord from heaven.”


히폴리투스는 자신이 쓴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에 관하여” (Treatise on Christ and Antichrist)라는 글에서  대환난의 시기와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 그 다음에 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한 이레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질 것이고,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나타나고, 두 증인과 주의 길을 준비한는 자들의 사역이 끝나게 되고, 전 세계가 마침내 역사의 완성을 앞두게 되면, 우리가 소망가운데 기대해온 우리 주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로부터 강림하는 것 외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These things, then, being come to pass, beloved, and the one week being divided into two parts, and the abomination of desolation being manifested then, and the two prophets and forerunners of the Lord having finished their course, and the whole world finally approaching the consummation, what remains but the coming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from heaven, for whom we have looked in hope?)
이로 보건데 히폴리투스 또한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의 큰 틀을 옹호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⑹ 터틀리아누스 (Tertullian, 160‐225)


2세기 말 3세기 초에 활동했던 가장 위대한 라틴 교부들 중 한 사람인 터틀리아누스는 삼위일체론을 확립하는데 큰 공헌을 했던 인물이다. 터틀리아누스 역시도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종말론을 주창했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대환난을 통과할 것이며, 대환난 동안에 적그리스도의 핍박을 받게 될 것이고, 대환난의 마지막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신령한 몸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적그리스도의 박해에 직면했던 이사람들은 마지막 때의 위기 속에서 그리고 즉각적인 죽음을 피해서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상실하게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임하는 어떤 의복을 입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몸 위에 하늘에 속한 의 복을 입게 될 것이다.” (These people also shall, in the crisis of the last moment and from their instantaneous death, while encountering the oppression of antichrist, undergo a change. They will obtain by this not so much a divestiture of the body as a clothing superimposed upon it with the garment which is from heaven. They shall put on this heavenly garment over their bodies.) 그리고 이어서 터틀리아누스는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천년왕국에 대해서 그는 “우리는 지상에 한 왕국이 세워질 것이 약속되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천국이 임하기 전 또 다른 상태의 세계에 세워질 것이다. 그 왕국은 부활이 있은 후 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세우신 예루살렘 도시에 세워질 것이다” (We do confess that a kingdom is promised to us upon the earth, although before heaven, only in another state of existence; insomuch as it will be after the resurrection for a thousand years in the divinely‐built city of Jerusalem) 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들에 비추어 볼 때 터틀리아누스 역시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지지하고 옹호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⑺ 락탄티우스 (Lactantius, 240‐320)


락탄티우스는 최초의 기독교인 로마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의 신학 자문 역할과 콘스탄티누스의 아들의 가정교사 역할을 수행했던 교부였다. 락탄티우스 역시도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종말론을 주창했다. “그리스도가 마지막 큰 심판을 행하시고, 태초때로부더 존재했던 사람들을 영생으로 회복하신 다음에, 그는 천년동안 사람들 가운데 거하실 것이며, 그들을 가장 공의롭게 통치할 것이다.” (When Christ shall have … made the great judgment and restored to life those who were just from the beginning, he will stay among men for a thousand years and will rule them with a most just dominion). 이어서 그는 계속하여 천년왕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드라마틱한 묘사를 해 주고 있다.


이 천년왕국 기간 동안 들짐승들은 피를 먹지 않게 될 것이며, 새들은 그들의 먹이들을 먹지 않게 될 것이다. 모든 것들은 평화로울 것이며, 고요할 것이다. 사자들과 늑대들이 여물통 앞에서 함께 서서 건초를 먹을 것이다. 늑대는 양들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며, 사냥개는 먹이를 좇지 않을 것이다. 매와 독수리들은 다른 짐승들을 해하지 않을 것이며, 어린 아이들이 독사와 함께 뛰어 놀 것이다.  (Throughout this time beasts shall not be nourished by blood, nor birds by prey; but all things shall be peaceful and tranquil. Lions and calves shall stand together at the manger (hay trough). The wolf shall not carry off the sheep, nor the hound wolf (dog) hunt for prey; hawks and eagles shall not injure; the infant shall play with serpents)


천년왕국을 묘사하면서 여기에서 락탄티우스가 이사야 11장 6‐9절의 말씀을 천년왕국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2)교부시대 후기와 중세시대 (4세기 – 15세기)


  ⑴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쇠퇴: 세가지 요인


초대교회시대와 교부시대의 지배적인 흐름이었던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4세기 후반이후 그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교회사가 그렉 앨리슨에 의하면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그 세력을 잃게된 데는 크게 세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몇몇 교부들이 천년왕국에서 성도들이 누릴 축복을 너무 물질적으로 또 너무 사치스럽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괴상한 종말론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4세기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기독교와 국가의 관계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우호적인 관계가 되면서, 교회가 당할 환난과 핍박을 강조하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째, 일부 극단적인 집단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과 천년왕국의 시작 날을 미리 확정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몬타누스파는 당시 시한부 종말론을 주창하면서, 예수 재림의 임박성을 강조하였다. 몬타누스파의 광적인 시한부 종말론은 많은 사람들이 전천년설에 대한 무관심을 부채질 하였다는 것이다.


  ⑵ 알레고리 학파의 등장


이 세 가지 요인과 더불어 한 가지 다른 요인이 있다. 그것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중심한 알레고리 학파가 새로운 성경해석학과 종말론을 제창했다. 대표적인 주창자들은 클레멘트 (Clement of Alexandria, 150‐215)와 오리겐 (Origen, 185‐234)이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오리겐은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문자적, 역사적 계시록 해석을 거부하였다. 더 나아가서 오리겐은 우화적/알레고리적 해석을 통해서 성경의 영적, 상징적 의미를 추구하였고, 따라서 요한계시록을 해석함에 있어서 문자적인 해석을 거부한 채, 우화적/상징적 해석에 치중하였다.


 (3) 티코니우스와 어거스틴


오리겐의 영향을 받은 티코니우스 (Tyconius,  4세기 후반)는 Libur Regularum (The Book of Rules)이라는 책을 저술하고, 그 책에서 성경의 예언들 특별히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방법론 일곱 가지를 제시하였다. 그 일곱 가지 방법론은 요약하면 결국 성경의 예언 특히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이 믿고 있는대로 문자적으로 역사적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성취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티코니우스는 요한계시록을 무천년년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문제는 역사상 최대 교부라고 인정되는 어거스틴이 티코니우스의 성경해석학에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저서Christian Doctrine 에서 티코니우스의 The Book of Rules를 우호적으로 논하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그의 주저 [하나님의 도성] (The City of God)에서 무천년주의적 종말론을 확립하였다. 어거스틴이 죽은 후 약 천년 동안 중세기는 무천년주의가 지배적인 흐름이 되었다.


  3) 종교개혁 시대 (16세기‐ 17세기)


  ⑴ 루터와 칼빈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은 로마 가톨릭의 구원론과 교회론을 비판하고,원래의 사도적인 복음을 회복하여, 진정한 개혁교회를 이루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종말론의 영역에서 루터와 칼빈은 그 당시의 지배적인 흐름이었던 무천년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루터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수도 있다는 재림에 대한 확고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 소망을 강조하여 가르쳤다. 하지만 그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문자적, 역사적, 물리적 천년왕국론을 거부하고, 무천년주의자로 남았다. 루터는 당시 로마 가톨릭의 교황제도를 적그리스도로 보았고, 따라서 개혁교회가 적그리스도의 세력인 교황제도를 타파하고, 참된 교회를 세워야 함을 역설하였다.


 칼빈은 당시 재침례파에 속한 극단적인 그룹들이 폭력을 사용해서 지상에 천년왕국을 세우려고 시도하는 것을 보고, 전천년주의적 천년왕국론을 강력하게 거부하였다. 칼빈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당시 로마 가톨릭의 교황제도를 적그리스도와 동일시 했으나, 결국 무천년주의자로 남았다. 루터와 칼빈 사후 청교도와 후대의 개혁신학자들 역시 대부분 무천년주의적 종말론을 지지하였다.


  ⑵ 역사적 전천년주의자 알스테드와 미드


하지만 예외가 있었다. 종교개혁 시대에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회복하려고 애쓴 두 사람의 신학자를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한 사람은 요한 하인리히 알스테드 (Johann Heinrich Alsted, 1588 – 1638)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알스테드와 동시대인이었던 조셉 미드 (Joseph Mede, 1586 – 1638) 이다.


먼저 알스테드는 독일계 칼빈주의 신학자였고, 하이델베르크의 개혁주의 신학자 요하네스  피스카토르 (Johannes Piscator, 1546 – 1625)에게서 사사를 받았다.  알스테드는 논리학자로, 백과사전 편집자로 활동하였고, 그의 생애 후기에는 신학자로 활동하면서 반삼위일체론자와 유니테리언의 공격으로부터 정통 삼위일체론을 변호하기도 하였다. 알스테드는 그의 주저 [내 사랑하는 도성] (The Beloved City)에서 자신의 종말론을 피력하였다. 그는 요한계시록 20장을 아주 상세하게 주석하면서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알스테드는 천년왕국을 예언하는 구약의 이사야서 2:1‐4와 34:1‐17을 실례로 들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온 세계가 완전히 멸망한 이후 지상에 평화의 시대가 올텐데 바로 그 시대가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천년왕국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조셉  미드는 영국계의 영어학자였고, 캠브리지대학에서 수학했다. 그는 알스테드의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자신의 저서 [계시록의 열쇠] (The Key to the revelation)를 통해서 대중화시켰다. 미드는 요한계시록을 세 시대로 나누어서 해석하였다.  그 세 시대 중에서 마지막 세 번째 시대가 바로 교회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는 시대라고 보았다. 이 세 번째 시대에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 적그리스도인 교황제도가 파멸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것이며, 천년왕국이 지상에 세워질 것이라고 그는 믿었고, 선포했다. 그렉 앨리슨에 의하면 “알스테드와 미드의 저작들은 개신교 종말론을 초대교회의 전천년주의로 복귀시켰다.”


  ⑶ 역사적 전천년주의 청교도 신학자들


알스테드와 미드 외에 17세기 웨스트민스터의회에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을 작성하기 위하여 모였던 청교도 신학자들 중에서도 몇몇 사람들이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지지하였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토머스 굿윈 (Thomas Goodwin, 1600 – 1680)이었다. 토머스 굿윈은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대표적인 청교도 신학자로서 올리버 크롬웰의 왕정 목사로 사역하였고,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의 학장으로 사역했다. 그리고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역으로 넘어온 영국 출신의 청교도들과 그 자손들 중에서 상당수가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주창했다. 대표적인 인물들에는 존 데이븐포트 (John Davenport, 1597‐1670), 사무엘 메더(Samuel Mather, 1626‐1671), 인크리스 메더(Increase Mather, 1639‐1723), 코튼 메더(Cotton Mather, 1663‐1728), 사무엘 시월 (Samuel Sewall, 1652‐1730)), 티모시 드와이트 (Timothy Dwight, 1752‐1817)등이 있었다. 이 사실은 마치 모든 청교도 신학자들이 무천년주의를 지지했다고 믿고 있는 오늘날의 개혁신학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하나의 좋은 실례이다. 개혁주의 전통내에서 무천년주의가 지배적인 흐름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상당수의 영향력있는 개혁신학자들이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4) 근대교회시대 (18세기 – 19세기)


18세기와 19세기에 들어와서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지탱한 신학자들과 주석가들 중에는 조셉 프리스틀리 (Joseph Priestly, 1733‐1804), 영국의 개혁파 침례교 신학자 존 길 (John Gill, 1697‐1771), 영국의 주석가 헨리 알포드 (Henry Alford, 1810‐1871), 영국의 주석가 찰스 엘리컷 (Charles Ellicott, 1819‐1905), 영국 성공회 소속의 복음주의 감독이었던 라일 (J. C. Ryle, 1816‐1900), 영국 침례교 소속의 칼빈주의 설교자 찰스 스퍼전 (Charles H. Spurgeon, 1834‐1892), 영국의 복음전도자 벤자민 뉴튼 (Benjamin Willis Newton, 1807‐1899), 독일의 루터파 주석가  프란츠 델리취 (Franz Delitzsch, 1813‐1890), 독일의 루터파 주석가  테오도르 찬 (Theodor Zahn, 1838‐1933), 독일의 칼빈주의 주석가 피터 랑게 (Peter Lange, 1802‐1884) 등 다수가 있었다.


  ⑴ 헨리 드러몬드 (Henry Drummond)
17세기에 요한 알스테드와 조셉 미드 그리고 일단의 청교도 신학자들을 통해 회복된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19세기 초반 영국의 헨리 드러몬드 (Henry Drummond) 가 주도한 ‘알버리 컨퍼런스’ (The Albury Conferences, 1826‐30)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렉 앨리슨에 의하면 헨리 드러몬드는 자신만의 독특한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구축했다. 그의 종말론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교회에 대한 두렵고도 결정적인 심판이 있을 것이고 , 회복된 고토로 유대인들의 귀환이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천년왕국이 지상에 세워질 것이다. 헨리 드러몬드를 통해서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은 개신교의 모든 교파에 확산되어 갔다.


  ⑵ 세대주의의 등장
19세기 중반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영국의 존 넬슨 다아비 (John Nelson Darby, 1800 ‐ 1882)를 중심으로 확립된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의 등장때문이었다. 다아비의 세대주의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교회 각각을 향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역사를 진행하신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교회는 각기 다른 운명과 각기 다른 소망을 가진다. 그리고 교회는 대환난 직전에 예수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 휴거 (rapture)되어 공중에서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며, 지상에서 유대인들은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는 대환난의 기간을 통과하게 될 것이고, 이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지상으로 재림한다. 지상으로 재림한 후 그리스도는 천년왕국을 세우고 천년왕국에서 유대교의 성전과 제사제도를 회복하게 된다.


  ⑶ 세대주의의 확산
19세기에 확립된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나,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 들어와 미국에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무디 (Dwight L. Moody, 1837 ‐ 1899)는 세대주의를 받아들인 대표적인 교회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무디는 나이아가라 성경컨퍼런스를 통해서 세대주의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하였다. 무디를 이어서 세대주의를 주창한 사람은 윌리엄 블랙스톤 (William Blackstone,1841 ‐ 1935 )인데 그는 자신의 주저 [예수께서 오신다] (Jesus Is Coming)을 통해서 세대주의를 강력하게 변호하였다. 블랙스톤과 동시대인이었던 스코필드 (C. I. Scofield, 1843 ‐ 1921)는 자신의 주석성경 (Scofield Reference Bible, 1909)을 통해서 세대주의를 확산시켰고, 루이스 체이퍼 (Lewis Sperry Chafer,1871 – 1952)는 달라스신학교 (Dallas Theological Seminary) 설립하고, 초대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세대주의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체이퍼는 또한 자신이 저술한 [조직신학] (Systematic Theology)을 통해서도 세대주의를 강력하게 변호하였다. 그러나 세대주의 종말론은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데에는 핼 린드세이 (Hal Lindsey, )의 [대유성지구의 종말](The Late Great Planet Earth)와 팀 라헤이와 제리 젠킨스의 Left Behind Series같은 대중적 서적이 가장 큰 기여를 하였다. 

3. 서구 복음주의 신학계에서의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현황 (20세기 – 21세기)
1) 찰스 어드만 (Charles Erdman,1866‐1960)과  역사적 전천년주의       
미국에서 세대주의가 일반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동안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전문적으로 신학적 훈련을 받은 복음주의자들 가운에 그 세력을 확대해 갔다. 20세기에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부흥을 주도한 사람들 중 먼저 언급되어야 할 사람은 찰스 어드만이다.  어드만은 미국 장로교 목사이자, 실천신학자로서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의 실천신학교수 (1905‐36)를 역임하였다. 그는 자신의 주저 [요한계시록강해] (The Revelation of John: An Exposition, 1936)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종말론의 관점에서 계시록을 해석하였다. 

2) 조지 래드와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부흥
20세기 후반에 와서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부흥시키고 확산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은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 교수로 재직한 조지 래드 (George E. Ladd, 1911‐1982)였다. 래드는 그의 주저들인[하나님 나라의 복음] (The Gospel of the Kingdom, 1959), [마지막에 될 일들](The Last Things, 1978), [복된 소망](The Blessed Hope, 1980), [미래의 현존] (The Presence of the Future, 1996), [신약신학]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1993), [요한계시록주석]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John, 1972) 등을 통해서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주창하였다. 래드는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하여 이미 이 땅에 임한 하나님나라와 아직 완성되지 못한 하나님나라 사이의 긴장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종말론적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래드의 요한계시록 해석은 철저한 미래주의적 관점 (a thoroughly futurist perspective)이 아니라 온건한 미래주의적 관점 (a moderately futuristic perspective)에서 이루어졌다. 래드의영향을 받은 수많은 복음주의 성경신학자들과 조직신학자들은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가장 성경에 근접한 종말론적 관점임을 강조해 오고 있다.

3) 서구의 역사적 전천년주의 성경신학자들
⑴ 로버트 건드리 (Robert H. Gundry)
건드리는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캘리포니아의 웨스트몽 칼리지에서 수십년간 신학교수로 재직하였다. 건드리는 그의 주저인 [교회와 대환난] (The Church and the Tribulation: A Biblical Examination of Posttribulationism, 1973)에서 교회는 대환난 이전에 휴거되는 것이 아니라, 대환난을 통과한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휴거된다는 주장을 설득력있게 제시하였다. 또한 그의 다른 주저인 [먼저 오는 적그리스도] (First the Antichrist: Why Christ Won’t Come Before the Antichrist Does, 1977)에서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 적그리스도가 먼저 와서 교회를 핍박하고 세계를 폭력으로 통치하게 된다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입장을 주창하였다. 건드리는 또한 서구신학계에서 마태복음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⑵ 디 에이 카슨 (D. A. Carson, 1946 ‐ )
신약신학계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을 받고 있는 카슨은 캐나다 출신으로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시카고의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수십년간 신약학 교수 (1978 ‐ )로 재직하고 있다. 카슨이 역사적 전천년주의에 대해서 책을 쓰거나 논문을 쓴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자신이 역사적 전천년주의자임을 천명해 왔으며,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논의에 대해서 신학적 지원을 해왔다. 덴버신학대학원의 크렉 블롬버그에 의하면 카슨은 역사적 전천년주의자임이 확실하다.

 ⑶ 더글라스 무 (Douglas J. Moo, 1950 ‐ )
바울신학과 공동서신 (general epistles)의 권위자인 더글라스 무는 영국의 세인트 앤드류스대학 (St. Andrews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여년간 시카고의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지난 2000년부터 휘튼 대학으로 옮겨 신약학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로마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유다서 등에 대한 주석을 집필하였고, 최근 출간된 [휴거에 관한 세가지 관점] (Three Views on the Rapture, 2010) 이라는 책에 “환난 후 휴거론 변증” (A Case for the Posttribulation Rapture)라는 제목의 논문을 기고하였다. 이 논문에서 더글라스 무는 환난 전 휴거론과 진노전 휴거론을 성경적으로 반박한 후 환난 후 휴거론이 더 성경적인 관점임을 설득력있게 변증하였다. 그는 환난 후 휴거론을 주창하면서 동시에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종말론이 가장 성경적인 관점이라고 주장하였다.

⑷ 크렉 블롬버그 (Craig Blomberg, 1955 ‐ )
카슨과 더불어 신약신학계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을 받고 있는 블롬버그는 영국의 아버딘 대학 (Aberdeen University)에서 하워드 마샬 (Howard Marshall)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 1986년부터 덴버신학대학원의 석좌교수 (Distinguished Professor of New Testament)로 재직하고 있다. 블롬버그는 다양한 저술을 통해서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이 가장 성경적인 종말론임을 천명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오순절성령강림에서 밧모섬까지] (From Pentecost to Patmos: An Introduction to Acts through Revelation, 2006)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블롬버그는 천년왕국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함을 인식하면서, 자신이 취하는 관점은 역사적 전천년주의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블롬버그는 대환난과 휴거의 관계라는 문제에 대해서 논하면서 자신의 관점이 대환난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들어 올려져서 재림주를 공중에서 영접하고 다시 땅으로 내려와 천년왕국을 이룬다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종말론임을 천명하고 있다.

또한 블롬버그는 계시록을 해석함에 있어서 네 가지 접근이 있음을 인식한다. 그것은 계시록 6장부터 19장까지의 내용이 요한에게서도 미래에 이루어질  사건이었고,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크게 보아서 미래에 이루어질 사건으로 남아 있다고 보는 ‘미래주의’ (futurism), 계시록 6장부터 19장까지의 내용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혹은 그 어간 즉 요한의 생애 동안 성취되었다고 보는 ‘과거주의’ (preterism), 계시록 6장부터 9장까지의 내용은 교회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성취되었고, 우리가 볼 때 최악의 사건들만 미래에 남아 있다고 보는 ‘역사주의’ (historicism), 그리고 계시록 6장부터 19장까지의 내용은 교회시대 동안 벌어질 선과 악의 투쟁을 상징한다고 보는 ‘이상주의’ (idealism) 등이다. 블롬버그는 이 네 가지 접근 중에서 ‘미래주의’적접근이 성경에 가장 근접한 접근으로 지지한다고 천명한다.


지난 2007년 덴버신학대학원은 성경신학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덴버신학대학원의 여러 교수진들과 초청 연사들이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지지하는 다양한 논문을 발표 하였다. 블롬버그는 이 학술대회에서 “신약의 환난 후 휴거론” (The Posttribulationism of the New Testament: Leaving “Left Behind” Behind)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블롬버그는 이 논문을 통해서 세대주의적 대환난설과 휴거설을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관점에서 설득력있게 반박하였다. 블롬버그와 필자는 이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공동 편집하여 [역사적 전천년주의 변증 ]  (A Case for Historic Premillennialism: An Alternative to “Left Behind” Eschatology, 2009)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어서 2009년 덴버신학대학원은 역사적 전천년주의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그 학술 대회에서 블롬버그 교수는 세 차례 기조강연을 하였고, 그 기조 강연을 통해서 세대주의와 무천년주의를 반박하고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변증하였다. 세 가지 기조 강연의 제목은"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선교대위임이 성취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가? 후천년주의의 문제점” (Why We Don't Have to Wait for the Great Commission to Be Fulfilled Before Christ Returns: The Problems with Postmillennialism), "지금의 현시대를 넘어서는 천년왕국의 필요성: 무천년주의의 불충족성” (The Need for a Millennium Beyond This Present Age: The Anticlimax of Amillennialism),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부적절한 특권: 왜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세대주의를 능가하는가?” (Inappropriately Privileging Israel: Why Historic Premillinnialism Trumps Dispensationalism) 이었다.
       

  ⑸ 여타 성경신학자들
위에서 언급한 네 명의 대표적인 성경신학자 외에도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지지하는 다수의 탁월한 성경신학자들이 있다.

먼저 위트워스 대학 (Whitworth University)의 총장을 역임한 로버트 마운스 (Robert H. Mounce)는 그의 주저 [요한계시록 주석] (The Book of Revelation)에서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이 가장 성경적인 관점임을 주장하였다.

트리티니 복음주의 신학대학원의 신약학 교수인 그랜트 오스본 (Grant R. Osborne, 1942 ‐ )은 그의 주저 [요한계시록 주석] (Revelation)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에 기초한 미래주의적 관점을 채택하고, 그 관점에서 계시록을 해석했다.

현재 애즈베리 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 교수로 재직중인 크렉 키너(Craig S. Keener )는 듀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오랫동안 필라델피아의 팔머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한 뒤 지난 2011년에 애즈베리로 적을 옮겼다. 그는 그의 주저 [ 요한계시록 주석] (Revelation)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이 성경의 전체적인 가르침과 가장 일관성이 있는 종말론적 관점임을 주장하였다.

비슬리 머레이(George R. Beasley‐Murray)는 영국 출신의 신약학자로 영국 런던의 스퍼전대학 (Spurgeon’s College) 학장을 역임하고, 미국 남침례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그의 주저 [요한계시록 주석] (The Book of Revelation)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종말론을 채택하였다. 이어서 [예수와 마지막 날] (Jesus and the Last Days)에서 마가복음 13장의 감람산 강화 ( the Olivet Discourse)를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구약신학계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리처드 헤스 (Richard S. Hess)는 현재 덴버신학대학원의 구약신학 석좌교수 로 재직 중이며,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지지하고 있다. 지난 2007년 덴버신학대학원에서 열린 성경신학 학술대회에서그는 “과거에 기록된 미래: 구약성경과 천년왕국”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고, 구약성경에서도 이미 교회가 마지막 시대에 대환난을 통과할 것이며, 천년왕국이라는 이상적인 시대가 도래할 것에 대한 예언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어서 2009년 덴버신학대학원에서 열린 역사적 전천년주의 국제 학술대회에서 헤스 교수는"다니엘서 9장의 칠십이레: 미래를 위한 시간표인가?” (The Seventy Sevens of Daniel 9: A Timetable for the Future?) 라는논문을 발표하였고 그 논문을  통해서 세대주의와 무천년주의를 반박하고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변호하였다.

신약신학계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면서, 애즈베리 신학대학원의 신약신학 교수 (Amos Professor of New Testament)로 재직 중인 벤 휘더링튼 (Ben Witherington III, 1951 ‐ ) 교수 역시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주저[예수, 바울, 그리고 세계의 종말: 신약 종말론의 비교연구] (Jesus, Paul and the End of the World, A Comparative Study in New Testament Eschatology)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종말론을 옹호하고 주창하였다. 동시에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을 통해서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종말론을 옹호하였다.


구약윤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면서, 덴버신학대학원의 구약신학 특별석좌교수 (Distinguished Professor of Old Testament)로 재직하고 있는 대니 캐롤 (M. Daniel Carroll Rodas) 교수 역시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지지한다. 그는 특별히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이 사회윤리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과 매우 일관성이 있음을 반복적으로 피력한 바 있다.


  4) 역사적 전천년주의 조직신학자들
⑴ 밀러드 에릭슨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조직신학자 밀러드 에릭슨 (Millard Erickson, 1932 ‐  )은 침례교단에 소속된  개혁주의 신학자이다.  그는 자신의 대표적 저서인 [기독교신학] (Christian Theology)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관점이 성경의 가르침과 가장 일관성있는 관점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휴거에 관한 논쟁과 관련해서도 그는 환난후 휴거론이 성경의 전체적 가르침과 일치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로 남는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에릭슨은 그의 다른 저서[종말론의 기초](A Basic Guide to Eschatology: Making Sense of the Millennium)에서 천년왕국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논하고,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접근이 가장 성경적으로 일관성 있는 접근임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⑵ 웨인 그루뎀
웨인 그루뎀 (Wayne Grudem, 1948 ‐ )역시 침례교 전통에 속한 개혁주의 신학자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고, 영국의 캠브리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카고의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대학원에서 약 20년간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한 뒤, 지난 10여년간 Phoenix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주저 [조직신학] (systematic Theology)에서 그루뎀은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이 가장 성경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관점임을 피력하고 있다. 

⑶ 브루스 데머리스트
브루스 데머리스트 (Bruce Demarest)는 미국 복음주의 장로교단에 소속의 개혁주의 신학자이다. 그는 약 30여년 동안 덴버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과 영성학을 가르치다가 최근에 은퇴하였다. 덴버신학대학원의 동료 교수인 고드 루이스 (Gordon R. Lewis)와 함께 공저한 [통합신학](Integrative Theology)에서 데머리스트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관점이 성경에 가장 근접한 관점임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의 공저자 고든 루이스가 세대주의자였기 때문에,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특별하게 취급하지는 않았지만, 브루스 데머리스트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로 남는다. 그리고 지난 2009년 덴버신학대학원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 국제 학술대회가 열렸을 때에도 데머리스트는 “ 초대교회는 환난에 대해서 어떻게 믿었는가?”(What Did the Early Church Believe about the Tribulation?)라는 논문을 발교하고, 초대교부들 대부분이 교회가 대환난을 통과하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 휴거될 것이고, 지상으로 내려와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왕국에서 다스릴 것이라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관점을 지지하였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4. 아시아 복음주의 신학계에서의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현황

 1) 한국
한국에 복음을 전해준 초기 선교사들 중에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과 세대주의자들이 섞여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초기 선교사들 중에 무천년주의자들은 소수였다는 것이다. 초기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한국교회의 태동기와 성장기 동안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지배적인 흐름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과한 것이 아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자들 중 다수가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 이었다. 하지만 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한 오순절 운동이 한국교회에서 부흥하면서 1960‐80년대 동안에는 세대주의가 한국에서 큰 세력을 떨치게 되었고, 그 중심에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있다. 그리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구에서 신학을 연구하고 귀국한 학자들 중에 무천년주의자들이 다수 생기게 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 한국교회의 신학교내에서의 주된 종말론적 흐름은 무천년주의가 되어버렸다. 무천년주의를 한국 신학교 내에서 강조하여 가르친 학자들 중에는 권성수, 이필찬, 최갑종 등이 있다. 그러나 일반 대중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여전히 세대주의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최근 들어서김형태, 민병석, 이광복 목사 등의 사역을 통해서 목회자들과 일반 평신도들에게 역사적전천년주의가 새롭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⑴ 박형룡 (1897 ‐ 1978)
한국  개혁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박형룡은 1921년 미국으로 건너와 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여 신학 석사 (Th. M)학위를 받고, 1926년 남침례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 박사학위 (Ph.D)를 받았다. 박형룡은 청교도적 개혁신학을 자신의 신학으로 수용하였고, 자신의 주저 [교의신학] (Dogmatics) 제 7권에서 종말론을 다루면서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관점을 주창하였다. 그가 언제부터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수용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1921‐23년 동안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할 당시 찰스 어드만이 실천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고, 어드만이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강하게 옹호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박형룡이 어드만의 영향으로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수용하게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박형룡이 수십년 동안 한국의 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옹호하였고, 그의 수많은 제자들이 그의 주저 [교의신학]을 읽으면서 목회를 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한국 교회 내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확산시키는데 있어서 그의 공헌은 엄청났다고 평가될 수 있다.


  (2) 박윤선(1905 – 1988)
초기 한국 장로교의 조직신학 또는 교의신학을 태동시킨 이가 박형룡이었다면, 개혁주의적 주경신학 (exegetical theology)을 태동시킨 이는 박윤선이었다. 박윤선은 이상근과 더불어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주경신학자로 우뚝서 있다. 박윤선은 1934‐6년 기간동안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면서 메이천 (J. Gresham Machen)의 영향을 받고 신약신학을 연구했으며, 1938‐9년 기간에는 동대학원에서 반틸 (Cornelius Van Til)의 영향을 받고 변증학을 연구하였다. 그 후1953‐4년 기간 동안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수학하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웨스트민스터와 화란 자유대학에서 수학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천년주의를 거부하고,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수용했다는 점이다. 그는 1979년 신구약 성경 전체에 대한 주석을 완성하였다. 박윤선이 수십년 동안 한국의 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옹호하였고, 그의 수많은 제자들이 그의 주석을 읽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 교회내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확산시키는데 있어서 그의공헌 역시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박수암
박수암은 계명대학교와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Presbyterian College and Theological Seminary)에서 MDiv학위를 받은 뒤 미국의 웨스턴 신학대학원 (Wester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수학한 후 신학석사 (ThM)학위를 받고, 이어서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녹스 칼리지 (Knox College)에서 신약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그는 모교인 장신대로 돌아와 수십년간 신약학 교수로 재직한 바 있으며, 은퇴 후 모스크바 장로회신학교 총장으로 재직하였다. 그는 종말론에 있어서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관점을 지지하였다. 그는 그의 주저 [요한계시록:신약주석]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관점을 채택하고, 그 관점에서 계시록을 해석했다. 

(4) 한정건
한정건은 중앙대학교와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의 비블리컬 신학대학원 (Biblical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구약학을 전공한 후 신학 석사 학위 (S.T. M.)를 취득하였고, 이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포체스트롬 대학 (Potchefstroom University)에서 구약학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귀국한 후 모교인 고신대학교 구약학 교수를 역임한뒤, 고려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지난 2009년부터 고려신학대학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평소 종말론에 대한 큰 관심을 기울였고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강력하게 주창하였다. 그는 자신의 주저인 [현대 종말론의 성경적 조명], [종말론 강해], [종말론 입문] 등을 통해서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옹호하였다. 그 외에 다양한 논문을 통해서 역사적 전천년주의 적 종말론을 지지하였다.


  (5) 김형태(1930‐2006)
김형태는 18세때 평양에서 서울로 월남하여 중앙신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 신학대학원 (Presbyterian College & Theological Seminary)에서 수학하였다. 이어 미국 LA 유니버시티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DD), 대한 예수교 장로회 통합측 용천노회 노회장을 역임하였다. 뉴욕 시온세계선교회 전임강사로 26년간 뉴욕 사명자 성회를 51 차례인도하였고, 성산 수도원 원장으로 2006년까지 사명자 성회를101차례 인도한 바 있다. 50여년간 부흥강사로 활동하면서, 1988년부터 소련, 파키스탄, 태국 등지에서 사명자 성회를 인도하였고, 시온 교회 담임목사로 22년간 (1978‐2000) 시무하였다. 그는 약 삼십년간 국내와 국외에서 목회자를 대상으로 ‘사명자 성회’를 개최하여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하였으며, 특별히 재림의 징조를 강조하는 해석 방법을 채택했다.저서에[ 너는 곡을 쳐서 예언하라], [말씀을 쫓아 가는 사람들], [나를 회복하심이 이때 니이까], [하나님의 복음], [이후에 될 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 [빛나는 순금 등대] 등이 있다. 그는 신학을 전문적으로연구한 학자는 아니었지만, 목회자로서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옹호하면서, 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확산되도록 큰 역할을 감당하였다. 김형태는 징조를 강조하고,  교회가 대환난을 통과할 것을 가르쳤고, 환난 후 성도들의 휴거가 있고, 이어서 주님과 함께 지상의 천년왕국에서 다스릴것을 가르쳤다. 따라서 그가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라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6) 민병석
민병석은 총회신학대학원 (Chongshin University)을 졸업하고, 신생교회에서 수십년간 목회하였다.  그 역시 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는 아니지만, 목회자로서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옹호하며, 1987년부터 시작된 계시록 세미나를 통하여 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확산 되도록 큰 공헌을 하였다. 그는 최근 목회에서 은퇴한후 ‘밤중소리사역회’ (www.bamjoongsori.org)를 설립하여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 확산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종말론에 관한 수십권의 저서를 출간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저서에는 [첫째부활과 천년왕국], [다니엘서 종말계시], [요한계시록 공부], [종말의 계시]등이있다. 민병석의 종말론을 검토한 결과 대체로 전통적인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의 틀을 따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수 재림시 모든 믿는 성도가 부활하고 변화한다는 전통적인 관점을 부인한다. 민병석에 의하면 대환난 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순교했던 사람들만 부활하며, 이 부활한 순교자들과 현재의 육신을 그대로 입은 성도들이 함께 천년왕국에서 살게 된다고 주장한다.


  ⑺ 이광복 (1946 ‐ )
이광복은 숭실대학교(B.A)와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미국 Faith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Th. M)와 종교교육학 박사(D.R.E)를 취득하였다. 서울 성내동에 소재한 목양교회의 담임목사로, 광신대학교의 실천신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지금은 은퇴 후 겸임교수로, 그리고 흰돌 선교센터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지난 30여년간 74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하였고 그 저서들 중 요한계시록과 종말론에 관련된 저서만 100권 이상 출간한 바 있다. 그리고 목회자를 대상으로 ‘계시록 종말론 세미나’를 27년 넘게 100여 차례에 걸쳐 인도해오고 있다. 그는 그의 주저이며 10,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전 10권의 [계시록 종말론 통합전집]을 통해 자신의 계시록 해석과 종말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종말론적 관점은 기본적으로 역사적 전천년주의이다. 또한 그는 철저한 미래주의(futurism)의 관점에서 계시록을 해석하고 종말론을 피력해 왔다.


하지만 이광복은 서구를 중심으로 전개된 전통적인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약점을 보완하고, 난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이광복에 의하면 전통적인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일곱가지 영역에서 보완되어야 한다. 그것은 “천년왕국에 불신자가 들어가는 가의 문제,” “곡과 마곡의 문제,” “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과 21장의 새 하늘과 새땅의 관계 문제,” “징조문제,” “계시록 2장과 3장의 일곱 교회 문제,” “무천년주의와  비슷한 여러 해석의 문제,” “각 학파에 대하 이해 문제” 등이다. 동시에 세대주의와 무천년주의  등 타 학파의 주장들중에서도 성경적으로 지지되는 부분들은 과감하게 수용하고, 자신의 역사적 전천년주의 틀에 통합시키는 노력을 해왔다. 예를 들면 세대주의의 징조해석을 적극 수용하고, 무천년주의의 상징적 해석을 신앙생활의 적용차원에서 수용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관점을 ‘수정된 역사적 전천년주의’ (revised historic premillennialism) 또는 ‘통합적 역사적 전천년주의’(integrative historic premillennialism)로 부르고 있다.


이광복은 박형룡을 통하여 한국에 뿌리 내린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큰 틀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에게 확산시키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리고 그의 통합적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한국적, 아시아적인 토양에서 창조적으로 제기된  일관성 있는 대안으로 평가할 수 있다.


  2) 여타 국가
싱가포르
아시아권의 다른 나라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어떻게 수용되고, 발전되고 있는가를 살핀다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중국계 싱가포르 학자로서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옹호하고 확산시키고 있는 학자가 있다. 그는 현재 싱가포르의 트리니티신학대학교 (Trinity Theological College)의 신약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토니 시우 (Tony Siew)이다. 그는 그의 주저[두 짐승과 두 증인의 전쟁: 계시록 11:1‐14:5의 전천년주의적 독해] (The War between the Two Beasts and the Two Witnesses: A Chiastic Reading Revelation 11:1‐14:5) 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종말론을 주창하였다.


  5. 결론
오늘날 전세계 복음주의  신학계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매우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서구권에서 현재 생존해서 학문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탁월한 성경 신학자들과 조직신학자 들 중 대다수가 역사적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옹호하고 견지하고 있다. 한국과 싱가포르를 포함한 아시아권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영향력은 점점 더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기존의 종말론과 관련된 네 학파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천년설은 이미 그 세력이 심각하게 약화되었고, 세대주의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아직 영향력이 남아 있지만,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신학자들에게는 더 이상 매력이 없는 선택안이 되어 가고 있다. 그 결과 세대주의권 내에서도 자체분열이 일어나 역사적 전천년주의에 근접한 ‘진보적 세대주의’ (progressive dispensationalism)가 등장했다.따라서 필자가 보기에  학문적인 논의의 대상으로 남을 만한 대안은  결국 역사적 전천년주의와 무천년주의로 압축된다.


무천년주의와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한 두 가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무천년주의자는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배도의 기간이 있고, 동시에 대환난이 있을 것이라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다. 한편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는 재림의 징조가  교회시대 이후로 계속되어 왔다는 무천년주의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 생존성도들이 변화되고, 이미 죽은 성도들은 부활하여 휴거될 것이라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자의 주장에 무천년주의자는 동의할 수있다. 하지만 무천년주의와 역사적 전천년주의 사이에는 수많은 화해 불가능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은  크게 보아서 1.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한 후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인가의 문제 2.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부활이 동시에 일어날 것인가 아니면 시차를 두고 일어날 것인가로 압축된다.


필자가 보기에 1번의 문제는 창세기 1장 28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었던 생육번성, 땅정복, 만물 통치의 복과 위임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지 못하게 된 것을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상의 천년왕국에서 성취되게 하신다는 주장으로 충분히 논증이 가능하다. 동시에 2번은 1번의 문제가 성경적으로 확증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예수님의 재림과 최후 심판 사이에 천년왕국이라는 갭이 있다는 것이 성경적으로 분명하게 논증되면, 예수 재림시의 의인의 부활과 천년왕국 후 악인의 부활은 시차를 두고 일어날 것임이 분명해 지기 때문이다. 


이상 논의를 통해서 필자가 결론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앞으로 종말론과 관련된 신학적 논의는 더 이상 네 학파 간의 힘겨루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소모적이다. 오히려 앞으로의 방향은 하루 속히 역사적 전천년주의라는 큰 틀에서 모든 학자들이 합의하는 날이 오기 바란다. 나는 그 날이 속히 도래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특히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시대에 종말론의 논의는 더 이상 학파간의 소모적 논쟁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과거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성과 삼위일체에 관련된 논쟁이 니케아공회(Council of Nicaea, 325)에서 니케아 신조를 통하여 큰 틀에서의 합의에 이르렀던 것처럼, 그리고 종교개혁기에 복음주의적인 종교개혁자들이 칭의론 (doctrine of justification)의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룬 것처럼, 오늘날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종말론의 큰 틀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매개로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삼위일체론의 큰 틀과합의가 확립되었을 때 수 많은 이단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었고, 칭의론의 큰 틀과 합의가 확립되었을 때 참 복음과 기독교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가톨릭을 포함한 다양한 신학적 오류들을 논박할 수 있었다. 마찬 가지로 종말론의 큰 틀에서 합의가  이루어 져야만 교회는 종말론과 관계된 온갖 오류와 이단들을 논박하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게 될 것이 아닌가?
그 다음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성경의 가르침과 부합되는 틀이라는 점에서 합의한 학자들 간에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어떻게 하면 더 성경적으로 세련되고, 난제가 줄어든, 견고한 체계로 다듬어 갈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누구의 체계와 해석도 완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점진적으로 더 성경에 근접하도록 세련되게 다듬는 일은 가능하고 또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이 작업이 앞으로 종말론과 계시록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출처 : 서초 베데스다 치유센타
글쓴이 : 현주아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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