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스크랩] 안식일과 하나님 나라

하나님아들 2014. 4. 7.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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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과 하나님 나라[1]

 

- 안식은 복음이고 복음은 안식이다. 안식은 오직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에서만 가능하다 -

 

 

송다니엘: 유럽개혁신학원/ 프랑크푸르트 개혁교회 목사.

 

 

소개:

테오도르 짠의 훌륭한 저서가 있다. 외에도 독일에 많은 좋은 논문이 있다.

Theodor Zahn „Geschichte des Sonntags“, Skizzen aus dem Leben der alten Kirche, S 160-238. Deichert’sche Verlagsbuchhaltung: Leibzig.

D.A. Carson. „From Sabbath to Lord’s day: Historisal and Theological Investigation“ 1999. 카슨이 저자로 여러 학자들의 글을 편집한 것으로 보이는데, 책은 필자가 읽지 않았다.

한국에도 많은 좋은 논문이 나왔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 있다.

 

필자가 주로 참고한 주요 도서:

Ethik: Thomas Schirrmacher. Das 4. Buch. Das Gesetz der Freiheit. 148-200.

Das große Bibellexikon. Band 5. Sabbat.

Klaus Bockmühl. Christliche Lebensführung, Eine Ethik der Zehn Gebote.

Edition – C. Gerhard Maier. Johannes Evangelium.

Wuppertaler Studienbibel. Das zweite Buch Mose. Hansjörg Bräumer. Das vierite Buch Mose. Gerhard Maier.

청교도 열전, 김홍만. 솔로몬.

그외 여러 독일, 한국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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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면서

 

I. 창조의 안식 안식의 본질

1.1. 안식일 계명의 중요성

1) 십계명에서의 위치

2) 안식일은 종말적 백성(신약의 교회)에게도 중요하다.

1.2. 안식의 의미의 중요성

1.3. 안식일의 신학적 근거로서의 창조의 안식

1.4. 창조 안식일의 특징 (안식일의 특별한 의미)

1) 축복하심

2) 거룩하게 하심

1.5. 하나님의 안식과 인간의 안식

1.6. 안식의 상실

1) 인간의 안식 상실

2) 하나님의 안식 상실

1.7. 창조질서와 안식의 회복

1)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 3:15)

2) 예수님 사역의 특징: 파괴된 창조질서와 안식의 회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심.

3) 안식의 완전한 회복.

 

II. 출애굽의 안식

2.1. 출애굽 이후 제정된 안식일의 목적

1) 출애굽기의 안식일 계명: 창조 안식의 회복을 상징함

2) 신명기의 안식일 계명: 구속을 기억함

2.2. 언약의 표징으로서의 안식일 계명

1) 언약의 표징으로서의 안식일 계명

2) 언약신학

 

III. 안식년과 희년

3.1. 안식년의 성경신학적 의미

3.2. 희년의 성경신학적 의미

 

IV. 희년 신학의 점진적 확장

4.1. 희년과 이스라엘의 바빌론 포로와 귀환

4.2. 희년의 “고엘”로서의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

4.3. 이사야서의 2 출애굽

4.4. 포로귀환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V. 안식/희년의 성취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5.1. 예수님이 희년을 성취하심

5.2.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1) 안식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

2) 사람을 위해 있는 안식일

 

VI. 주일과 하나님 나라

6.1. 안식과 하나님 나라

1) 메시아 왕국(하나님 나라) 예언하는 구절

2) 그리스도의 대속죽음과 우리의 화평

3) 새로운 피조물

6.2. 안식의 완성

            * 하나님 나라의 이중적 성취방식(이미와 아직)

1) 안식의 완성이 남아 있다

2) 안식의 완성

6.3. 안식일과 주일

 

VII. 주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7.1. 안식의 완성이 남아 있다

7.2. 안식일 계명의 본질과 실천

1) 언약의 우월성.

2) 기억하고 기념한다. 무엇을 기억하고 기념하는가?

3) 소망하며 기다린다

4) 주일에는 공예배를 드린다.

5) 경건의 훈련으로서 필수적이다.

6) 육체적, 정신적으로 휴식한다.

7) 안식일의 사회적인 요소 고려.

 

부록

루터와 주일

칼빈과 주일

청교도와 주일 성수(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들어가면서

 

1. 한국의 교회는 유럽과 달라서[2] 대부분 신자들이 주일에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주일에 교회에서 제공하는 행사에 참여하며, 주중에도 각종 예배나 행사에도 참여한다.

그러나 사회가 5 근무제로 바뀌면서, 주일을 토요일과 함께 여행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추세가 생겼다. 이들은 휴가 가서 간단히 스마트폰으로 예배를 수도 있다. 또한 교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많은 교인들이 집에서 화상을 통해 예배를 본다. 가정 예배도 생각해 있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기독교가 지켜온 주일 성수가 과연 성경적인지, 또한 얼마 만큼만 성경적이고, 나머지는 단순한 교회 전통인지를 묻지 않을 없다. 우리는 주일 성수 문제에 대해 새롭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안식일 성수 개념은 구약 율법이므로 우리는 먼저 구약 율법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입장을 먼저 밝혀야 한다. , 그리스도인은 구약 율법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전적으로 무시할 것인가? 아니면 유용한 것만 받아들일 것인가? 문제 해결을 위해 대부분 신학자들은, 율법에서 의식법(제사법, 정결법)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보고, 도덕법(살인, 간음) 항상 유효한 하나님의 법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안식일 법은 폐지된 의식법에 속하는가, 아니면 아직도 유효한 도덕법에 속하므로, 우리가 주일로 승계해서 지켜야 하는가? 문제는 십계명이 신약에서 반복되어 강조되지만, 그중에서 안식일 계명만 거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 계명은 폐지되었다고 보아야 하는가?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신약에서 주일 성수 계명은 없지만, 주일에 모여서 예배를 보았다는 기록은 여러 군데에 있다. 또한 주일이라는 용어도 발견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것을 계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만약 우리가 주일 성수를 계명으로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그러면 어떻게 주일 성수를 행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이것을 규정하기는 더욱 어렵다. 성경이 분명한 대답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안식일의 유래를 찾기 위해 창조의 안식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안식일이 무엇이라고 가르치시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타락 후에 언약백성에게 주어진 모세오경의 안식일 계명의 근본 취지는 무엇인지, 안식일 가르침은 후에 어떻게 발전되어갔는지도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개념이 발전되며, 마치 계시와 같이 성취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성취된 하나님 나라와도 깊은 관련이 있으며,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살펴보고, 끝으로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안식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해왔는지도 개관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있기 때문이다.

 

 

2. 구약과 신약은 연속성을 가진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어떠한 주제를 놓고 연구하든지 성경 전체가 통일되어 있음을 있다. 또한 성경의 많은 내용이 중요한 주제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있다. 따라서 핵심적인 주제 개를 연구하면 성경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것을 알아야 성경 전체가 영감되었다는 것을 확신할 있다. 성경신학은 이렇게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주제를 연구함으로써 성경 전체의 맥을 잡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할 것은, 신약과 구약의 연속성은 문자적 연속성이 아니라 신학적 연속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보되 문자주의에 빠지면 된다. 성경의 문자는 매우 중요하고 전부 영감된 말씀이지만, 문자주의는 성경의 본질적인 메시지를 놓치게 한다. 성경은 신학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구약의 할례는 신약에서 세례로 바뀌면서 연속성을 가지며, 구약의 희생제물은 예수님의 희생으로 바뀌고, 안식일은 주일로 바뀌어서 모두 연속성을 가진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방법도 신약에 와서 달라졌다. 이유는 계시가 성경 내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되면서 용어와 표현 방식도 변하고, 내용은 구체적이 되면서 깊어지기 때문이다. 문자주의는 계시의 점진성, 구속사의 관점에서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에 실패하기 쉽다. 비근한 예가 성경을 세대주의적으로 봄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종말론에 빠지거나(전천년주의),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폐기론이나 율법주의로 빠지는 것이다. 이에 따른 교회의 피해는 말로 다할 없이 크다고 하겠다. 이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에 별로 관심이 없다거나 혹은 구원과 관계없는 것을 구원의 핵심으로 삼는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복음의 신비한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우리는 구약 율법을 신약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우선 율법의 삶의 자리 알아야 한다. , 율법이 어떤 사회적 배경에서 나왔는지(농경사회, 가부장적 대가족사회, 부족사회, 왕정…), 어떠한 상황에서 나왔는지를 알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 의미하신 바가 배경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연구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사회가 변할지라도 본질적 의미를 찾아서 지킬 있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을 폐기할 수도 없으며, 또한 문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다[3].

 

또한 우리는 율법에는 자유와 구속이라는 가지 측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종말적 백성은 근본적으로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다. 율법의 의를 통하여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구원을 잃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율법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열심으로 지키게 된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성취하셨고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이므로 율법을 성취해야 하며, 우리가 다시 죄를 지음으로써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된다. 율법에 관심이 없다거나 율법을 자의로 어기는 자는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안식일을 연구하면서 안식일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우리가 주일을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또한 중요한 것은, 안식일의 의미가 조금씩 발전되고 확장되는 것을 보면서, 계시가 어떻게 진전되는지도 살펴본다. 이것을 통해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읽는 방법 배운다. 그리고 성경의 중요한 개념인 구원, 자유(해방), 그리스도, 율법, 복음, 하나님 나라, 천국 등의 개념이 서로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를 배운다.

 

 


 

I. 창조의 안식 안식의 본질

 

1.1. 안식일 계명의 중요성

 

1) 십계명에서의 위치

유대인에게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것은 안식일 계명이 십계명에 있으며, 3개의 하나님에 대한 계명 바로 다음인 4번째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식일 계명은 살인, 간음, 부모 공경 등의 도덕적 계명보다 중요하다고 있다. 또한 안식일 계명은 분량으로 보아서 십계명의 분의 일을 차지한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 일곱째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아들이나 딸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가축이나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여호와가 하늘 바다와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가 안식일 복되게 하여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20:8-11)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계명을 어기는 자를 사형에 처하게 하심으로써( 31:14-15; 15:32; 35-36), 이것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셨다.

 

2) 안식일은 종말적 백성(신약의 교회)에게도 중요하다.

열국(이방인) 참여하는 종말적 예배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언급된다( 56:1-8; 참조: 66:20-21).

 

56: 2-7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것임이라.

 

열국이 드리는 예배는 성령강림 이후 복음이 만민에게 열려서 이방인이 제사장이 되어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66:21 „나는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한 31:12 이하에서 안식일 계명이 강조되면서,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영원한 언약이며 영원한 표징이라고 하시면서, 안식일 성수의 근거로서 하나님이 6 일하시고 7일에 쉬셨다는 것을 들고 있다 à 안식일은 영원하다!

이것을 , 새언약 백성이 안식일 계명을 함부로 폐지할 없음을 나타낸다.

 

요약: 안식일 성수 계명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영원한 언약과 영원한 표징이므로 이것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 백성의 표지에 대한 문제이며,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1.2. 안식의 의미 중요성

 

안식일 성수는 이렇게 매우 중요하지만, 안식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안식일을 지킨다는 계명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계명을 의의를 모르고 외형적으로 지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더욱이 언약 백성은 율법의 본질적인 의미 찾아서 지켜야 한다. 우선, 안식일 이해를 둘러싸고 예수님과 유대인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살펴본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서른여덟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누운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사람이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 5:1-10)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5:16-17)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충돌은 서로 다른 안식 이해에서 왔다

 

유대인들의 주장

  • 안식일에 긴급한 환자를 제외한 치료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 그러므로 예수님의 안식일 치료사역은 안식일을 범하는 행위이다.

예수님의 주장

  • 예수님에게는 안식일은 쉬는 날이 아니라 일하는 날이다.
  •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계속 일하시고 계신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 시므로(예수님은 하나님과 동격: 5:18) 예수님도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계속 일하시고 계신다는 구절:

때가 아직 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때는 아무도 일할 없느니라( 9: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121:4)

 

유대인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치료하시는 것을 보고 도전을 느끼고 예수님을 공격했다. 이들은 예수님이 다음 날에 고치셔도 되는데, 기다리지 않고 안식일에 고친 것을 문제 삼았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대응하셨다. 하나님이 안식일에 일하신다는 생각은 유대인에게는 생소하다. 하나님은 7일에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말씀이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유대인과 예수님 사이에 안식일 이해가 다르다는 것이다[4]. 그렇다면 안식의 개념은 무엇인가? 우선 안식일의 근원을 더듬어가자. 모세의 안식일 계명은 창조의 안식에 근원을 둔다.

 

요약: 안식일의 의미를 아는 것이 관건이다[5].

 

 

1.3. 안식일의 신학적 근거로서의 창조의 안식[6]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안식일 계명을 주셨는가? 안식일 계명을 주신 취지는 무엇인가? 나아가서는 안식이란 무엇인가? 이것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창조기사로 가야 한다. 구약의 안식일 계명은 창조기사( 2:1-3)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안식일 계명과 주일 성수 이해의 관건이다.

 

천지와 만물이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1-3)

 

창조 안식의 근거는 천지와 만물이 이루어진 것이다. 창조는 하나님 뜻대로 이루어졌다.

안식의 의미: “안식하다”(, tb;v')) à (솨밧) 중단하다, 끝내다, 쉬다.

하나님의 안식: 하나님의 안식은 6일간 일하시고 힘드셔서 쉬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창조를 끝내시고 본연의 안식으로 돌아가셨다 의미이다[7]. 하나님은 본래 안식의 하나님이시다.

안식일은 영원하다: “창조의 안식일 천지 창조가 마감된 피조물의 안식일 되어서 영원히 지속된다[8]”. 안식일 다음은 없다. 하나님께서 1-6일간 일하시고 7일에 쉬시고 다음날에 일하시는 것이 아니다. 7 다음에는 다른 날이 없다. 낙원에는 달력도, 7 주기도 없다. 안식일 다음에는 안식일이 온다. 창조 이후의 안식일은 영원하다[9].

완벽한 피조물: 하나님의 창조는 이상 손을 필요없이 완벽하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이루어졌다. 인간도 완벽한 존재로 지어졌고 하나님이 인간을 보고 기뻐하셨다: “하나님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0]”( 1:31). 하나님께서 인간을 매우 사랑하셨다!

하나님의 창조질서: 하나님은 인간과 피조물을 창조하신 후에 질서를 세우셨다:

  1. 인간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순종한다.
  2. 인간이 서로 사랑한다.
  3. 인간이 피조물을 다스린다.

따라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앞으로 유지될 것이다[11]. 질서가 유지될 때에 인간은 비로소 안식을 가지며 행복해진다.

 

요약: 창조의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서고, 하나님의 통치 시작되어 계속되는 것이다.

 

참고: 하나님의 통치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와 같은 말이다(바실레이아 테우).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다시 인간을 통치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이루셨다 à 구약과 신약과 연결된다! 안식이 하나님 나라,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과 연관됨.

 

 

1.4. 창조 안식일의 특징 (안식일의 특별한 의미)

 

하나님 그 일곱째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음이니라 2:3.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피조물을 보고 기뻐하셨다. 그다음에 가지 중요한 일을 하심으로써 안식일에 의미를 두셨다:

 

1) 축복하심: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특별하게 하셔서 피조물 모두가 날의 축복에 참여하게 하셨다. 구약에서 축복의 의미는 능력과 번식력이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왕성한 번식력을 가진다. 인간은 특별히 힘과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서 존재의미를 가지고 기뻐하고 그들의 생명에 감사하며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나님 통치의 결과로부터 오는 축복은 영원히 지속한다.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12]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것은 우리 믿음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2) 거룩하게 하심:

거룩(카도쉬) 기본 의미는 구별되다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것은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후에 등장하게 안식일 계명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 속하므로, 안식일 계명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낙원에서는 모든 날이 안식일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하고 거룩하므로, 특별히 안식일과 거룩에 관한 계명이 필요 없다.

 

 

* 낙원의 삶의 특징은, 인간이 하나님의 축복과 안식 속에서 거룩하게 사는 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불변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1.5. 하나님의 안식과 인간의 안식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음이니라 2:3). 안식은 하나님께서 피조물계가 자동으로 돌아가게 해놓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시는 (이신론)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안식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인간에게 안식이 깨어지면 하나님의 안식도 깨어진다. 인간의 안식은 다음의 가지 의미가 있다:

1) 안식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친밀한 교제(화평 관계) 의미한다. 창조 사역의 꽃은 인간의 창조이며, 하나님은 인간이 낙원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다[13] .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낙원을 지어주시고 그곳에 있는 아담을 찾아오셔서 교제를 나누셨다. à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안식이 깨어지면 교제도 깨어지고 하나님의 안식도 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2) 안식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허물없는 교제를 의미한다(“아담과 그의 아내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2:25). à 이웃 사랑.

3) 안식은 인간의 대행 통치를 의미한다[14].

 

à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물 사이에 샬롬이 실현되는 것이 안식을 누리는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 나라(통치) 실현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으므로 피조물에게도 안식이 시작되었다. 아담의 , 대행통치도 안식이다. 아담의 일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탐욕)과는 다르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일을 함으로써 마음이 평안하고 기쁘다. 인간은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 가운데서 산다. 이것이 인간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이며, 이것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인간이 행복을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이 문제이다.

 

 



[1] 논문은 장세훈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강의 내용을 많이 참조했다. 안식일에 관해서 필자가 들은 강의나 논문 중에서는 교수가 정리한 것이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본고는 외에 많은 논문과 여러 서적들을 참고했다. 따라서 본고에는 필자의 독특한 생각이 개입되지 않았으며, 단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필자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신구약의 여러 중요한 주제들을 안식일을 중심으로 엮은 것이다.

[2] 독일의 경우 인구의 30% 신교로 등록되어 있다. , 그들은 국가교회에 소속된 경우에는 종교 세를 납부하거나 독립교회에 소속된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십일조, 혹은 그에 상당하는 헌금을 낸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3-5%밖에는 되며, 나머지 사람들은 대체로 정통적인 믿음이 아닌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

[3] 성경은 혹자가 생각하듯이 앞뒤가 막힌 책이 아니다. 단순한 도덕 교과서도 아니다.

[4] 예수님 당시 랍비들은 매우 강화된 안식일 계명을 지켰다. 바빌론 유수 이후에 율법을 지키기 위해 특히 안식일 법을 강화시켰다. 바빌론 탈무드에 따르면, 할례와 함께 안식일 성수도 유대인의 표지로 삼았다. 이것은 하나님 율법을 아무리 철저히 지키고, 이상을 지킨다고 할지라도 율법의 정신을 모르고 한다면 하나님의 적이 있다는 아이러니요, 비극이며, 우리에게는 경고이다.

[5] 이것은 구약의 모든 율법에도 해당한다. 율법의 근본 의미를 모르면 지킬 없다.

[6] 창조의 안식이라는 말은 신학적 용어로 굳어진 표현이다: Schoepfungssabbat.

[7] 창조의 안식은 하나님을 위한 안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은 하나님도 안식이 필요한 분이라는 뉘앙스를 주므로, 하나님이 본연의 안식으로 돌아가셨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8] Delitzsch, Genesis 72.

[9] 안식과 휴식한다는 말은 원래 관계가 없다. 쉬어야만 안식이 되는 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모세오경은 타락한 인간에게 주시는 계명이므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쉬는 것이 중요하게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의 본질적인 의미를 말할 때에는 쉬는 것과 연결하면 된다.

[10] 안식의 회복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죄인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11] 그러면 언제 안식이 깨어지는가? 인간이 범죄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를 깨뜨렸을 때이다.

[12] 일반적으로 교인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무지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받으시려는 분이 아니라 주시는 분이며, 주시되 무한하게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신화의 신들처럼 인간의 섬김에 의존하는 분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방 신을 섬기는 것이다. : 10:10 „나는 그들이 생명과 넘침을 갖게 하려고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물질이나 명예로 바꾸어버린 것은 비극 중의 비극이다.

[13] 믿음이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권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다.

[14] 인간은 원래 통치자로 지음 받았다. 통치자의 임무는 피조물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것이다. 아담이 동물에게 이름을 주는 것은 통치권의 실현이다. 타락한 인간은 피조물을 억누르고 착취한다. 그리고 환경과 물질의 지배를 받는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한다. 제일 나쁜 것이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다. 타락한 자의 특성의 한가지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회복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존재이므로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 없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통치 대행자로서 자격을 상실했다.

출처 : 한국교회개혁포럼
글쓴이 : 송다니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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