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계시록 해석 원리 ( 권성수 요한 계시록과 , vern.s.포츠레이스 요한 계시록 맥잡기에서 정리한 것)
요한 계시록의 주석 책을 보면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일한 책을 놓고 한 것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할 정도로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따라서 책을 읽고서 독자들은 책을 읽기 전보다 오히려 더 오리무중에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당혹하게 되는 것이다. 계시록을 당혹하게 만드는 것은 해석의 다양성과 심지어 이단적인 것들도 있다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계시록을 혼자 읽고 풀이하려고 할때 계시록 자체의 성격 때문에 마치 미로에 들어 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계시록의 내용이 요한이 계시록을 집필할 초대 교회 당시에 성취된 내용인가, 혹은 예수님 재림 직전과 직후에 성취될 내용인가? 아니면 교회 역사 전체에 걸쳐서 구체적으로 성취될 내용이 아니라 그저 선과 악의 충돌과 선의 긍극적 승리에 대한 상징적 교훈인가?
계시록의 언어를 문자적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상징적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어디까지만 문자적으로 보아야 하는가? 상징적으로 본다면 전체를 상징적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어디까지만 상징적으로 보아야 하는가?
또한 이 땅 위에 천년왕국이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천년 왕국이 있다면 예수님 재림 전에 있을 것인가, 예수님 재림 후에 있을 것인가, 혹은 교회시대 전체에 있을 것인가? 천년왕국의 성격은 어떤 것인가. 특별이 민족적 이스라엘과의 관련성 속에서 천년왕국은 민족적 이스라엘이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는 그런 왕국인가, 아니면 민족적 이스라엘의 정체/경제적 특수 위상과 무관한 보편적 지상왕국인가?
계시록은 놓고 깊이 이해하려고 할 때 위와 같은 세 가지의 질문에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된다. 1) 계시록의 성취 시기는 언제 인가 2) 계시록을 문자적으로 읽을 것인가 상징적
으로 읽을 것인가 3) 천년왕국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올 것인가
Ⅰ“ 해석해 보라”는 도전과 응전
1. 읽고 듣고 지킬 말씀
계1:3. 계22:6.7.10.17
2. 해석하라는 도전
계1:1
“계시”- “묵시”(아포칼리쉬스), “지시하신 것”--사인을 통해서 보여 주신 것
성경에서 특수한 장르의 문헌인것을 암시하면서 특수한 해석을 요청한다
계2:7.11.17.19.3:6.13.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계시록을 끼닫는데는 신체적인 귀가 아니라 영적인 귀가 필요함을 암시한다
계5:1~5.
계시록은 어린양만이 집행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것, 어린양과 관계있는 사람들만이 깨달을 수 있는 책
계7:9 13~14
요한은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장로 중 한사람이 해석해 줌으로 알게 되었음.
계12:9
용에 대한 계시록 자체의 해석
계13:17~18
그것을 해석할 총명과 지혜가 있는 자는 그것을 해석해보라는 도전장이다.
계17:1~6, 7~18
요한은 큰 음녀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7절) 여겼으나 천사가 요한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 전까지는 그것이 무슨 장면이지 해석할 수 없었다.
3. 해석의 응전( 해석의 역사)
티코니우스의 영적 해석(-400)- 선과 악의 오랜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계시록을 해석해야 된다고 보았음. (어거스틴과 대부분의 카톨릭 신학자들이 따라간 해석 노선)
조아킴의 해석- 계시록과 12세기 사건들과 상응 관계를 찾아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이슬람, 거짓 선지자는 당시 이단분파들, 바벨론은 로마, 짐승의 7머리 중 제5머리는 프레드릭 6세 ,제6머리는 살라딘, 제7머리는 적그리스도등으로 해석하고 적그리스도의 멸망 후에 천년왕국이 온다고 해석했다.
종교개혁의 해석: 조아킴과 프란체스코 수도단의 해석 원리를 기초로 해서 계시록을 해석하되 교황 혹은 교황청을 적그리스도 해석했다.(역사주의 해석)
미래주의 해석의 등장: 교황청측의(예수회 ) 리베이라(Ribeira -1601) 는 계시록의 내용이 근접미래와 말세에 해당될 뿐이고 중간시대를 예견한 것이 아니 라고 보고 바벨론은 미래의 타락한 로마 , 적그리스도는 말세의 인물로 해석했다.
과거주의 해석의 등장: 리베이라의 형제 알카사(ALcasar)는 철저한 과거주의 해석에 따라 계시록 4-11장은 교회의 유대주의와의 투쟁 , 12-19장은 교회의 이교사상과의 투쟁, 20-22장은 현재의 승리와 지배등으로 해석했다.
17세기 이후 현재까지의 계시록 해석 동향은 과거주의(preterist), 미래주의(futurist), 역사주의(historicist), 상징주의(idealist) 해석법으로 대분된다. 과거주의 해석법은 계시록이 초대교회와 유대주의 및 이교주의의 충돌을 묘사하는 것이며 20~22장은 당시 교회의 승리를 묘사한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미래주의 해석법은 계시록 4장 이후의 내용을 예수님 재림 직전과 직후 미래의 사건들로 보는 해석법이다. 미래주의 해석법 중에 세대주의적 미래주의는 4-19장의 내용을 7년 대환란 특히 후 3년 반의 대 환란으로 본다. 온건한 미래주의는 재림 전 환란과 지상의 천년왕국을 인정하지만 교회와 이스라엘을 예리하게 구분하지는 않고 이스라엘 중심의 천년 왕국을 주장하지 않는다.
역사주의 해석법은 계시록의 내용이 재림을 절정으로 하여 교회 역사 전체의 주요사건들에 대한 청사진으로 보는 해석법이다.
상징주의 해석법은 계시록의 내용을 하나의 거대한 풍유로 보고 기독교와 악,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 사이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는 해석법이다.
계시록을 해석해 보라는 도전에 대한 응전의 역사를 개관해 볼 때 학자들이 계시록을 다양하게 해석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시록의 성취시기도 과거, 미래, 역사, 상징등으로 각기 달리 보았고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하고 상징적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계시록 해석에 있어서 자기의 해석만이 옳고 다른 사람들의 해석은 그르다는 식의 독단성은 버려야 할 것과 자기도 잘못 해석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도 바로 해석 할 수 있다는 겸손을 배워야 할 것과 해석상의 난제에 대해서는 결론을 유보하는 것이 지혜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Ⅱ. 계시록의 성취시기
계시록 해석의 한 관건은 계시록의 성취시기와 관련이 있다.
과거주의, 미래주의, 역사주의, 상징주의는 각기 계시록의 성취시기를 과거와 미래와 역사에 두거나 모든 시대에 대한 상징적 교훈 면에서 보는 입장이다. 계시록을 강해하다보면 각 입장의 장단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해석학파들에 따른 성취의 시기 (그림을 내려서 보아야 합니다)
• 과거주의자 로마제국의 멸망까지
• 미래주의자 마지막 위기 중에
• 역사주의자 교회역사 전기간 동안
• 상징주의자 반복된 모형속에
각 입장의 장․단점
* 과거주의적 해석1) (과거주의로부터 얻는 통찰: 로마제국에서 성취): 과거주의는 계시록 내용이 주로 요한 당시 초대교회의 상황 즉 유대주의나 이교주의와의 투쟁에 해당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과거주의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첫 번째 형태는 계시록을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으로 보는 입장. 두 번째 형태는 계시록이 ‘큰 성 바벨론’으로 기독교인들을 박해는 로마의 멸망(5C)를 예언하는 책이라고 보는 입장. 성경의 모든 부분은 당시 역사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과거주의는 계시록의 뒷부분 사탄왕국의 완전정복과 악의 최종척결, 하나님나라의 완성 등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고 계시록 성격자체가 미래에 대한 예언 등에 대한 약점들을 지닌다.
* 미래주의적 해석 (미래주의로부터 얻는 통찰: 마지막 위기 때의 성취) : 미래주의는 계시록의 내용이 주로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직전과 그 후에 관련된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미래주의는 계시록 2~3장을 제외하고 주로 미래에 해당된다는 것을 밝히므로 신자들에게 미래의 궁극적 승리를 통한 위로를 준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미래주의는 역사적 해석을 약화시키고 요한 당시에 신자들에게 당장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교훈을 주지 못한다.
* 역사주의적 해석2) (역사로부터 얻는 통찰: 성취는 교회역사 전반에 나란히 펼쳐있다): 역사주의는 계시록의 내용이 요한 당시로부터 그 이후에 전개되는 역사의 청사진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역사주의는 계시록의 말씀을 각 시대에 주요한 역사와 적용시켜 적실화 하며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님주권적 사관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역사주의는 초대교회 당시의 신자들에게 적실성이 없고 주로 서양의 역사에 초점을 두어 억지로 맞추는 것들이 있다.
* 상징주의적 해석3) (이상주의로부터 얻는 통찰: 성취의 반복된 유형): 상징주의는 계시록이 모든 시대에 모든 신자들에게 상징적인 교훈을 담고 있다는 입장이다. 상징주의는 하나님 나라와 사단의 나라, 신부, 교회와 창녀, 세상, 선과 악 사이에 충돌이 어느 시대나 계속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주로 무천년설과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상징주의는 계시록의 구체적인 예언을 약화시키고 재림의 징조에 대한 감각을 둔화시키며, 교훈에서 자극과 경성을 제거할 가능성이 있다는 약점이 있다.
* 원근통시와 혼합적 해석 : 원근통시란 조지레드가 말한대로 예언자의 현재 및 근접 미래와 궁극적 종말 사건이라는 두 개의 초점을 동시에 언급하는 것을 말한다. 예언의 목적인 미래의 프로그램이나 챠트를 만드는 것은 두 완성을 통해서 현재를 조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언당시와 궁극적 미래가 연대기적인 구분이 없이 역동적인 긴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날이 앗수르에 의한 이스라엘의 심판과 동시에 종말적 구원의 날을 의미하고(암5:18,27) 있다. 가령 예를 들어 13장과 17장에 묘사되어 있는 일곱머리 열뿔 짐승은 로마 혹은 로마의 황제들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종말적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사적인 사건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종말적 사건을 언급하는 이 원리는 묵시적 상징주의 본질에 속한다.
계시록은 당시에 역사적 상황에 적절한 방식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동시에 재림직전과 직후의 미래가 묘사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주의와 미래주의가 혼합된 원근통시의 원리로 해석되어야 한다. 또한 계시록은 역사의 청사진은 아니지만 결국 역사속에서 이루어질 일부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으며 어느 시대에 어느장소에나 적용될 수 있는 하나님나라와 사탄의 나라 거룩한 삼위일체와 사단 삼두체제 어린양의 신부와 마귀의 창녀사이의 충돌과 하나님나라의 궁극적인 승리와 사단나라의 궁극적인 파멸에 대한 상징적인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주의와 상징주의의 장점들도 계시록 해석에 고려되어야 할 점이다.
*해석학파의 통찰들을 통합하기4)
역사주의 학파를 제외하고 모든 학파들은 상당한 장점을 가진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가 이것들을 통할 할 수 있는가?
과거주의를 지지하는 논쟁들은 계시록이 일곱 교회와 그들의 역사적인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그러므로 상징들은 1세기 때 구제적인 구현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이 사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미래주의를 지지하는 논쟁들은 계시록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직전에 있는 마지막 위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참고 살후2:1~2) 그러나 마지막 위기 때의 성취는 일반적인 유형의 이전 사례들을 제거하지 못한다. 우리는 일반적인 유형과(and) 마지막 위기 때의 그 유형의 구체적인 구현을 모두(and) 가진다.
우리는 교회역사 속 어딘가에 ,다시 말해서 게시록이 적용되는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 어딘가에 있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오늘 우리들의 상황에 적용해야 한다. 이것은 역사주의의 접근 속에 약간의 진리가 있음을 보여 준다.
만일 우리가 상징주의적 접근법으로 출발한다면 , 이것들이 어떻게 통합되는지 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계시록에 있는 이미지들은 다중적인(multiple) 성취를 즐긴다. 이것들은 일반적인 유형을 구현하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이러한 통찰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그림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계시록의 주요 상징들은 하나의 반복된 유형들을 제시한다. 이 유형은 일곱 교회들의 1세기 상황 속에 실현을 가진다. 이것은 또한 마지막 위기에 구현되며, 오늘날에도 구현된다. 우리는 계시록의 교훈들을 우리가 처해 있는 곳에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적인 구현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Ⅲ 문자적 해석과 상징적 해석(계시록을 표면적으로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계시록이 성취시기면에서 과거,미래,역사, 혹은 상징주의면에서 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소개했지만 사실 계시록의 성취시기 문제는 계시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느냐, 아니면 상징적으로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있다. 계시록의 해석은 표면상의 내용을 어느 정도로 문자적으로 보고, 어느 정도로 상징적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에 달려 있다. 세대주의적 해석은 문자에 치중하는 해석이고 묵시적 해석은 상징에 치중하는 해석이며 문자적 해석과 상징적 해석의 정도는 문자적인 해석으로부터 상징적인 해석으로 가는 과정에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이 하나의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이 가장 문자적인 해석이고, 무천년설이 가장 상징적인 해석이며, 역사적 전천년설은 문적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진 핵석이고, 후천년설은 상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진 해석이다.
*묵시
최근에는 학자들 사이에 계시록이 일종의 묵시문헌이라는 시각이 본편적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문자적 해석에 비해 상징적인 해석이 강조되는 실정이다.
묵시 문헌은 의로운 소수의 공동체를 이룬 신자들의 삶을 임박한 종말, 그의 현재의 상태를 뒤집어 놓을 종말에 연결시킴으로써 삶의 의미에 부여한 유대 기독교 세계관이다. 묵시문헌은 역사적/신학적 위기에 처한 신자들의 저항문학으로 악의 현존앞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변호하는 변신론(theodicy)을 그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묵시문헌의 종말론적인 특징으로 볼 때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의 세계와 역사/자연세계간의 첨예한 대립을 말하면서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역사의 종말의 긴장을 유지하며, 역사속에서도 하나님이 승리의 통치를 하신다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현세에 관한 비관주의에 빠져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미래적 계획에 대한 예언이 나오면서도 숙명론이나 피동윤리에 빠지지 않다는 점에서 묵시보다는 예언에 가깝다고 하겠다.
계시록 자체가 그 성격을 예언이라고 하였고(1:3, 22:7,10.18.19) 어린양이 사자인 것을 드러냄으로써 십자가로 승리하신 주님이 인간 역사의 통치자라는 것을 주제로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계시록은 묵시라기보다는 예언이라는 주장이 더 타당하다.
요한 계시록은 형태상 묵시이면서 기능상 예언인 혼합형(hybrid) 문헌이라고 할 수 있
다.
*문맥의 단서
요한 계시록을 묵시로 볼 경우 묵시의 특징인 상징법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계시록의 해석이 상징주의적인 방향이 될 수밖에 없다. 요한 계시록을 예언으로 볼 경우 구약 예언 문헌을 해석할 때처럼 계시록을 대체적으로 문자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요한 계시록은 형태상 묵시에 가깝고 기능상 예언에 가까운 혼합형 문헌이기 때문에 묵시문헌처럼 상징주으로 해석하는 것과 예언문헌처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혼합된 채 해석될 수 밖에 없다.
계시록의 내용을 어느정도 상징적으로 보고 , 어느 정도 문자적으로 볼것이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문맥의 규제를 깊이 고려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요한 계시록!!! 마라나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요한계시록 요약 (0) | 2014.04.06 |
---|---|
[스크랩] 요한 계시록의 해석원리 (0) | 2014.04.05 |
[스크랩] 계시록설교노트(계시록해석의 7대 원리) (0) | 2014.04.05 |
[스크랩] 계시록의 일곱 교회 (0) | 2014.04.04 |
[스크랩] 계시록 해석도표 (0) | 2014.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