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시42:1-11, 절망 중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하나님아들 2014. 4. 1. 22:56

 

42:1-11, “절망 중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42: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성도 여러분, 혹시 시를 좋아하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 시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래서 20대 청년 시절에는 시인 목사가 되려고 신춘문예에도 응모를 해보고 시도 써보고 했는데,

재능이 모자라서 아직까지 꿈을 못 이루었습니다.

 

어떤 분은 제가 시를 좋아한다니까, 시시한 사람이나 시를 좋아한다고 농담을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구약성경을 보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시로 써있다는 거 아십니까?

아마도 제 생각에 우리 하나님께서도 저처럼 시를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시편 150편 중에서 어떤 시를 좋아하십니까?

아마도 대부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편 1편이나 23, 51, 119편 또는 121, 150편을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시편 42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시편 42편도 우리에게 전혀 낯선 시는 아닙니다. 목마른 사슴이라는 찬양이 이 시의 가사로 된 찬양인 것은 다 아실 겁니다.

 

먼저 잠시 이 시편에 대해 몇 가지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시편 42편은 내용상 탄원시에 속한다.

탄원시, 인생의 절망과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시들입니다.

 

탄원시들은 대부분 자신이 처해있는 절망적인 상황을 비통하게 서술하면서, 하나님의 긴급한 도움을 호소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약속하는 내용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구성은 이 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42편에는 1절에 앞서 고라 자손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는 표제(타이틀)가 붙어 있습니다.

 

표제는 시를 지은 사람이나, 시의 성격, 노래나 연주를 위한 특별한 지시등을 담고 있습니다.

 

일단 이 표제를 볼 때, 이 시는 다윗이 지은 시가 아니라, 고라 자손 중에 누군가가 지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고라가 누구입니까?

고라는 레위의 증손으로서 민수기 16을 보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갈라진 땅 속에 파묻혀 죽은 불행한 인물입니다.

비록 고라는 죽었지만, 그의 세 아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보면 고라의 자손들 중에는 성전 문지기도 되고, 요리사도 되고, 찬양하는 자들도 되었습니다.

 

바로 그 고라 자손들 중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익명의 사람이 이 시를 지었습니다.

 

표제에 마스길이라는 말은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가 교훈을 목적으로 지어진 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는 표제를 보아서, 이 시가 노래로 불려진 시란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편 42편을 1절부터 11절까지 전체를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1절만을 암송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시편 42편이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작 우리가 암송하는 1절만의 내용을 보면, 이 시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사랑을 고백하는 매우 아름다운 서정시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로맨틱한 사랑의 분위기와는 아주 거리가 먼 시입니다.

이 시에서 두 번씩이나 사용된 낙심불안이라는 낱말만 보아도, 이 시의 분위기가 매우 비참하고 처절하며 우울하고 절망적인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는 절망으로 시작하여 절망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비록 시작은 절망으로 했지만, 다행히 끝은 희망으로 끝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설교제목을 절망 중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라고 붙여보았습니다.

 

혹시, 성도님들 중에서 요즘 삶이 고달프고 지치고 힘겨우신 분이 계십니까?

그래서 언제부턴가 웃음을 잃어버리고, 밥맛도 잃어버리고, 살맛도 안나는 그런 분이 계십니까?

만일 그런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 시편 42편이 바로 그런 분들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모든 것이 형통하여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시는 분이 있다하더라도 이 시는 역시 그런 분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의 여정 가운데 절망의 늪에 빠져 허덕일 때가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이 시가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시편 42편을 크게 두 가지 질문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우리는 언제 절망하게 되는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어떻게 절망을 딛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가?” 그러니까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방법에 관하여 살펴볼 것입니다.

우선 첫 번째 질문을 먼저 다뤄보기로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저와 여러분을 절망하게 만듭니까?

우리가 언제 쉽게 절망하고 낙심하게 되지요?

 

이 질문에 대한 시인의 첫 번째 답변은 이것입니다.

 

(1)우리의 환경이 악화될 때 절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환경이 좋을 때,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가령, 남편이 직장에서 승진하고, 자녀가 입시에서 좋은 점수로 찰떡같이 합격하고, 내가 투자한 주식이 몇 배로 뛰어 오르고, 사는 아파트 평수는 점점 커진다면, 이럴 때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이런 환경이 하루아침에 반전이 되어서, 남편이 직장에서 퇴출을 당하고, 자녀가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다니기 싫다고 자퇴를 하고, 갑자기 주가는 밑바닥으로 폭락하고, 어렵게 마련한 내 집을 내어주고는 남의 집살이를 하게 된다면, 그래서 늘 입가에 웃음을 주었던 그 환경이 더이상 현재의 일이 아니라, 지나간 과거의 일로 기억된다면, 그때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바로 그때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42편의 저자는 지금 바로 그런 환경의 악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시인은 과거에 거룩한 날을 지키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며 기쁜 찬송을 불렀던 행복한 기억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지난 과거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지금 시인은 더 이상 이 행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어떤 이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대적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더 이상 하나님의 성전에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행복한 시절을 회상하며 내 마음이 상한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이 시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 중에 씌어진 시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남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여 성전은 파괴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붙들려가게 되었을 때,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던 때를 추억하며 지은 시라고 말합니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우리는 쉽게 절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또 언제 우리는 절망하게 됩니까?

(2)시인의 두 번째 답변은 원수들의 비방과 조소가 쏟아질 때라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서인지 우리 사회엔, 유독 기독교인들에 대한 적대감정이 팽배해졌습니다.

 

그리스도인 축구 선수들이 골인을 넣고 운동장에서 기도 세레머니를 하면 기독교인들은 긍지를 가지며 할렐루야를 부르지만, 불신자들은 굉장히 싫어합니다.

 

과거에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차범근씨가 우리 선수들이 골을 넣을 때마다 기도하는 모습을 TV로 보여주자, 이것을 두고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대통령이건 연예인이건 누구건 간에 불명예스런 이슈의 주인공이 되었을 경우,

만일 그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되는 분위기입니다.

 

좀 한참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유승준이라는 가수를 여러분 모두 알 것입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항상 방송이나 공연을 하기 전에 백댄서들과 대기실에서 기도를 하고 무대에 선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크리스챤임을 공공연히 밝혔습니다. 유승준 때문에 방황하던 많은 청소년들이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미국시민권을 이용해서 병역을 기피하게 되자, 그는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되었고 결국 우리나라에서 추방을 당해 아직까지 입국이 불허되었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유승준이라는 한 개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믿는 하나님과 기독교인 전부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이 불신자들로부터 비웃음꺼리가 될 때, 아니 그 비웃음꺼리의 대상이 바로 내 자신이 될 경우, 쉽게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3절과 10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2: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우리는 시인의 대적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인은 지금 대적자들에게 비방과 조소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인을 향해서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큰 소리를 치며 비웃고 있습니다.

시인은 비참한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기력할 뿐입니다. 그의 대적들의 비웃음은 계속됩니다.

 

니가 믿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너를 이 지경이 되게 하느냐? 과연 그 하나님이 너를 알기는 하냐?

 

이런 비방과 조소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는 시인의 고백처럼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고,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심각한 고통을 맛보며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또 언제 우리는 절망을 경험하게 됩니까?

(3)시인의 세 번째 답변은 하나님이 나에게 돌아서서 침묵하고 계실 때입니다.

 

사실, 이 세 번째 사실이 성도를 가장 절망케 하는 이유입니다.

환경의 악화보다, 원수들의 비방과 조소보다 더 우리를 절망케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고통에 침묵하고 계시고, 나의 고통의 원인이 하나님의 징계라고 판단될 때입니다.

 

7절과 9절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42: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42: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시인은 주께서 일으키신 폭포 소리와 깊은 바다 소리에, 그리고 주의 파도와 물결이 자신을 고통의 심연 속으로 침몰시켜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기에게 닥친 재난이 주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 처한 자신을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외면하시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계신지는 아닌지, 그리고 원수들의 압제로 인해 내가 이렇게 슬퍼하는 것을 알고는 계시는지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저와 여러분은 어떨 것 같습니까?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성경 속에서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 두 명의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한 명은 요셉이고 또 한 명은 욥이었습니다.

 

가족들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아 노예로 팔려간 요셉!

갑자기 하루 아침에 재산과 사랑하는 열 명의 자녀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몸에 병까지 얻은 욥!

만일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아마도 우리는 절망 정도가 아니라, 심한 우울증을 겪거나 삶을 비관하여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이런 극심한 절망과 불안을 시인은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시인은 그 깊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 번째로 던지는 질문은 그럼 과연 어떻게 절망을 딛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이 두 번째 질문에 대하여 시인이 제시하는 첫 번 째 방법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갈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절과 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보통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힘든 시련이 찾아와서 큰 절망에 빠지게 되면,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자리를 자꾸 등한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망의 순간일수록 예배의 자리를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설령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더라도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위기와 절망의 순간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메마른 종교생활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이 예배의 자리에 오셔서 앉아계십니까?

 

우리에게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우리의 영혼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자 하는 갈망이 있습니까?

 

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만나는 예배에 대한 갈망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망 가운데 희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절망 가운데 희망을 노래하는 두 번째 방법은, “지난 과거에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절망하게 되면, 자꾸 생각이 부정적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때일수록 자신이 현재 처해있는 안 좋은 상황에 몰입되기 보다는, 오히려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야 합니다.

 

4절과 6절 말씀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42: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4절과 6절 말씀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 단어는 기억하다는 단어입니다.

시인은 그가 처한 절망 속에서, 과거에 은혜 받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겨봅니다.

 

물론, 절망적인 상황에서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 4절 하반절에서와 같이 마음이 아프기도 할 것입니다. 예전에는 행복했는데, 지금은 안그러니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자꾸 현재의 절망적인 상황만을 생각하면 더 나아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6절에서 하나님께 은혜 받았던 장소로 추정되는, 요단 땅과 헤르몬 산과 미살 산을 떠올리며 그곳에서 주님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시인이 언급하는 그 장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 시인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게 체험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시인처럼 남이 알지 못하는 나와 하나님만이 아는 소중한 은혜의 추억이 있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 때 바로 그 추억을 떠올리며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런 추억을 떠올리면 힘과 용기가 생기며 희망이 보일 것입니다.

 

저도 이제껏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가끔은 목회자의 길이 정말 힘들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중학교 3학년 초, 겨울방학 때를 떠올립니다. 왜냐하면 그때 주님께서 저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오셔서 목회자가 되는 소명을 주셨거든요. 그리고 그때를 기억하면 저도 모르게 새 힘이 솟습니다.

 

그리고 그때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어떤 어려움이라도 이겨낼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이라는 희망이 샘솟는 것을 경험합니다.

 

여러분도 오늘 집에 가시면서 우리의 기억 속에 묻혀버린 지난 날 은혜받았던 추억들을 하나둘씩 회상해보시면서 집에 가셔서 노트에 기록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그 때를 기억하시면서 희망을 노래하는 연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절망 가운데 희망을 노래하는 세 번째 방법은, “자기 영혼을 향해 명령하며 스스로 다짐하며 격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에 절망하는 사람들을 보면, 왜 저럴까? 답답해합니다.

그리고 제발 용기를 잃지 마라. 왜 냐약해지냐? 힘을 내라고 하면서 쉽게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절망에 빠지게 되면,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절망 가운데 있을 때, 간혹 이런 생각할 한 경험이 없습니까?

 

누가 나 좀 위로해주었으면 좋겠네...”

 

물론 주위에 가까운 친구나 가족의 위로와 격려가 있다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위로할 사람이 주위에 없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시인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위로자가 자기 자신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5절과 11절은 같은 후렴구니까, 11절만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인은 지금 누구를 향해서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남을 향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기의 영혼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편을 보면, 이와 비슷한 표현이 종종 등장합니다.

 

103: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146: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이렇게 자기 자신을 향하여 명령하는 것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시편에서 이것을 배우고 실제 생활에서 많이 적용해봅니다.

 

제가 자꾸 근심하고 염려하면 성경말씀을 가지고 제 스스로에게 명령을 합니다.

내 영혼아, 너 왜 근심하고 염려하냐. 하나님께 네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주님께서 내 마음과 생각을 평강으로 지켜주실 것이다

 

오늘 시인은 낙심하고 불안해하는 자기의 영혼을 향하여 낙심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라고 타이르며 격려하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성경이 가르쳐 주는 이 방법으로 삶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새 근심과 염려가 사라지고 절망의 한숨이 가시고 희망의 콧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요즘 삶이 많이 힘겹고 버겁지 않으십니까?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둘러봐도 희망이 되는 뉴스보다는 낙심이 되는 뉴스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상 것에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을 안겨줄 게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참 희망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와 같은 절망적인 삶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였던 한 시인의 교훈이 담긴 시입니다.

우리도 이 시인의 교훈을 따라서 인생의 힘든 순간에 하나님을 갈망하며 우리의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내 영혼을 스스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보듬게 되길 원합니다.

그러면 소망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참된 희망을 노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주인공입니다.

이런 희망의 노래가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항상 넘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 : JUAE ABBA
글쓴이 : 주애 아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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