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시100:1-5, “찬송과 감사의 예배”
100: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100: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성도 여러분,
혹시 신구약 전체 66권 중에서 한 장이 가장 긴 것과 가장 짧은 것을 포함하고 있는 성경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정답은 시편입니다.
성경에서 한 장이 가장 긴 것은 시편 119편입니다. 시편 119편은 총 176절로 되어 있습니다. 이게 176절인 이유가 있습니다. 시편 119편은 각 연의 첫 글자가 히브리어 알파벳 22글자 순서대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모두 22연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의 연마다 똑같이 8행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22연 곱하기 8행 그러니까 176절이 된 것입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한 장이 가장 짧은 것은, 시편 117편입니다.
117편은 겨우 두절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불과 17개의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말씀이 바로 “시편”입니다.
성도 여러분, 시편만큼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한
성경책도 없을 겁니다.
시편에는 기쁨과 분노와 슬픔과 즐거움과 같은 인생의 희로애락의 정서가 때로는 노래와 찬양으로, 감사와 기도로, 때로는 탄식과 회개로, 원망과 저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대표적인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은 이렇게 시편을 예찬했습니다.
먼저 루터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시편에서 우리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온갖 은혜에 대한, 거룩하고 행복한 생각들로 이루어진, 향기 나고, 상쾌하고, 활기 띤 꽃들이 만발한 아주 즐거운 정원, 곧 천국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다음은 칼빈의 말입니다.
“이 보물창고에 얼마나 다양하고 휘황찬란한 부가 담겨 있는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나는 이 책을 영혼의 모든 부분을, 분석한 책이라고 불러도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의식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다 거울처럼 여기에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오늘의 시편인 100편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시편 100편에 대한 몇 가지 기본 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시편 100편은, 누가 썼는지 모르는 ‘저자 미상의 시’입니다.
저는 중학생 때 시편은 모두 다윗이 지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다윗은 전체 150편 중에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일흔세(73)편을 썼습니다. 다윗 다음으로 아삽이 열두(12)편을 썼고, 고라 자손이 열(10)편, 그리고 솔로몬이 두(2)편, 모세와 헤만과 에단이 각각 한편(1)씩 썼습니다. 그리고 시편 100편처럼 누가 썼는지 모르는 저자 미상의 시가 모두 50편이나 됩니다.
두 번째, 이 시는 맨 앞에 “감사의 시”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습니다.
시편 전체 150편 중에서 “감사”를 강조하는 시들은 여러 편 있습니다. 가령 시편 136편 같은 시는, 매 절마다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문장이 후렴처럼 26번 반복되면서 감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100편처럼 이렇게 맨 앞에 “감사의 시”라는 제목을 단 시는, 150편 전체 중에서 유일하게 100편 하나 뿐입니다.
세 번째, 이 시는 전체가 ‘다섯(5)절’로 되어 있는 비교적 짧은 시입니다.
이 시는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1절부터 3절까지인데, ‘하나님께 찬송하도록 요청하는 내용과 찬송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4절부터 5절까지인데,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요청하는 내용과 감사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00편의 주제는 “찬송과 감사”,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 “찬송과 감사”가 어느 때 요청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입니다.
2절에 보면,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그의 문에 들어가며”,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라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은 다 예배를 묘사하는 표현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 찬송하며 감사할 것을 명령하면서 요청하는 내용의 시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찬송과 감사의 예배”라고 정해보았습니다.
저는 이 시간, 시편 100편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할 때,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예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럼,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까요?
첫 번째,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의 찬송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1절과 2절의 말씀을 함께 합독하겠습니다.
시100: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시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시인은 온 땅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예배할 때, 즐거운 찬송을 부르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고 명령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나아갈 때, 얼마나 즐겁고 기쁘게 찬송하십니까?
제가 아는 한, 성경에서 찬송과 관련하여 슬프게, 우울하게 찬송하라는 말을 본 적이 없습니다.
스바냐 3장 14절을 보니까,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이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찬송할 때, 점잖게, 얌전히, 조용히 부르라는 성경구절도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1절 말씀에서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이 말은 매우 점잖은 번역입니다. 좀더 원어에 가깝게 우리말로 옮겨보면, “즐겁게 외치라”입니다.
1절 말씀에서 “부를지어다”는 단어는, 본래 “너무 즐거워서 귀가 먹도록(고막이 터지도록) 크게 소리지르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환호성을 울릴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새번역성경은 1절을 원래의미에 가깝게 “온 땅아, 주님께 환호성을 올려라”로 번역했습니다. 시편에 이 말의 뉘앙스를 제대로 살려 표현한 곳이 몇 군데 더 있습니다.
시 81:1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시 95: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만약 우리가 이 시의 원뜻대로 순종해서 찬송을 부른다면, 아마도 교회 주변에 사는 이웃들이 시끄럽다고 민원신고를 할지도 모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얼마나 기쁘고 즐겁게 큰 소리로 외치며 찬송하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1절에서 “외치라”는 말이 그냥 단순히 목이 터질 정도로 고함을 지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것은 찬송이 아니라 오히려 소음이겠지요.
여기에서 시인이 말하는 찬송은, 즐거움과 기쁨이 충만하여 밖으로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찬송의 외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예배할 때, 이런 즐거움과 기쁨이 충만한 찬송의 외침을 주님께 올려드릴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런 찬송의 비결을 3절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절은 우리가 왜 즐겁고 기쁘게 소리치며 찬송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3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시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그렇습니다. 즐겁게 외치며 기쁘게 노래하는 찬송은 결코 억지로 강압적으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찬송하는 하나님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우리가 그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바로 알 때에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시인은 우리에게,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의 소유된 백성이며 그의 기르시는 양인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의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저를 따라서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해봅시다.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확실히 믿으십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아갈 때마다,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앞에 나오실 때, 그냥 습관적이고 형식적이며 무의식적으로 예배드리러 나오지 마십시오. 그것은 예배를 모독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찬송과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산 예배가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움과 기쁨이 충만한 찬송으로 드려지는 감격스러운 예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저에게는 이제 생후 27개월이 된 딸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퇴근을 해서 저희 집 아파트 계단을 올라 대문 앞에 서면 벌써 제 딸이 아빠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제가 오는 줄 알고 막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문을 활짝 열면, 저를 보고 “아빠!” “다녀오셨어요” 인사를 하면서 막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제 딸의 얼굴을 보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자기를 사랑해주는 아빠를 만나는 게, 이 아이는 너무나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우리의 아빠 되신 하나님을 만나러 나오실 때 어떤 마음이셨습니까? 우리가 기쁨과 즐거움으로 소리 높여 찬송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실 때 얼마나 흐뭇해하시겠습니까?
지난 해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말을 막 시작할 때였습니다. 제가 새벽기도회 담당이라서 한 밤 중에 일찍 일어나 서재에서 말씀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방에서 갑자기 제 딸이 큰 소리로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제 딸이 자다가 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조용합니다. 알고 보니 잠꼬대를 한 거였습니다. 아빠를 얼마나 좋아하면 꿈에서까지 아빠를 찾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문득, 제 마음 속에 이런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영훈아, 너는 아빠인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나를 얼마나 간절히 생각하며 살고 있느냐?“
그 순간 저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하니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합니까? 얼마나 주님을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까?
사실 예배의 자리는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시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만나 교제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예배 가운데 불리는 찬송은 바로 사랑하는 주님을 위하여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표현되는 기쁨과 즐거움은, 하나님과 예배하는 자가 얼마나 서로 친밀한 관계에 있는가에 깊은 영향을 받게 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더욱 간절히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자나 깨나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예배는 기쁨의 예배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찬송은 즐거움과 기쁨이 충만한 외침의 찬송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예배 가운데 시편 100편의 말씀처럼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와의 친밀한 관계로 인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한 찬송이 크고도 우렁차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까요?
둘째로, 우리는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4절 말씀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인은 하나님 성전 문에 들어갈 때 감사함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전 문을 지나, 찬송하면서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이제 성전 뜰인 궁정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다시 감사하며 그 거룩하신 이름을 송축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머릿속에 이 장면들이 그려지십니까?
저와 여러분은 오늘 집에서 교회까지 올 때, 어떤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교회에 도착하셔서 이 예배당 안으로 올라와서 문을 통과하고 지금 이 자리에 앉기까지 어떤 마음이셨습니까?
저는 지금 신약시대의 예배당이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전과 똑같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구약시대의 방식대로 오늘날도 그런 의식상의 절차대로 예배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구약시대든, 신약시대든, 시대를 초월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는 예배자들의 마음가짐은, 결코 다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가 감사의 예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가 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시100: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인은 첫째로 우리가 예배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찌, 감사해야 할 이유가 이 세 가지뿐이겠습니까? 분명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매일, 매주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감사해야 할 분명한 이유를 알아야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할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감사하는 감사는 진정한 감사가 아닙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감사할 게 없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감사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유대인의 지혜문서인 탈무드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바꾸어 말하면 불평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감사가 행복해지는 연습이라면, 불평은 불행해지는 연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불평하며 사는 사람입니까?
설교자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가진 찰스 스펄젼 목사님은, “받은 축복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 축복이 연장되고, 당한 불행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 불행이 끝난다.”
우리 꽃동산교회 성도님들은 모두가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설령 불행이 찾아와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불행이 끝나고, 받은 축복에 감사하여 축복이 연장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는 삶, 감사의 예배를 드리시는 예배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즘 저와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감격스런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졸리고 지루하고 따분하게 시간을 때우는 무미건조한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시편 100편은 오늘 우리에게 혹시 우리가 잃었을지 모르는 예배의 감격을 되찾는 비결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소유된 백성이고 그의 기르시는 양임을 상기시켜줍니다. 또 여호와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는 사실도
가르쳐줍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예배 가운데, 기쁨의 찬송과 진정한 감사를 회복시켜주셔서 드려지는 예배마다 예배의 영광과 감격을 경험하며, 예배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게 되길, 그래서 산 예배를 주님 앞에 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