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민12:1-3, 온유한 자

하나님아들 2014. 4. 1. 22:55

 

12:1-3, 온유한 자

 

12: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12: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성도 여러분, “로데오경기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나라에선 로데오 경기를 볼 수가 없지만, 아직도 미국인들은 서부 개척 시대에서 시작된 이 로데오에 미치도록 열광합니다.

 

로데오 경기를 보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선, 첫째로 너무나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위험할수록 포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스릴을 즐기면서 도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제멋대로 날뛰는 야생마를 길들이기가 정말 쉽지 않구나하는 것입니다.

 

야생마는 힘이 넘치지만 아무도 올라타지 못할 정도로 날뛰기 때문에, 그 상태로는 인간에게 전혀 쓸모가 없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유능한 조련사의 손을 거쳐, 얌전히 길들여져야 비로소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쓸모 있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야생마와 같이 제 멋대로 날 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길들여진 말처럼, 우리의 마음이 온유해질 때 우리를 마음껏 사용하십니다.

 

온유함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마태복음 1129절에서 예수님은, 스스로 마음이 온유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저와 여러분은 온유한 사람입니까?

우리 모두는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럼 도대체 온유함이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마음이 온유하다고 하시는데, 그 온유한 마음이란 어떤 마음일까요?

 

우리말 사전을 찾아보니까, “온유란,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씨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첫째로, 온유한 마음은 따뜻한 마음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마음에는 온도가 있다는 거, 아십니까?

저는 지금 몸의 온도, 체온을 말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온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온도에 따라, 어떤 사람의 마음은 얼음처럼 차갑기만 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의 마음은 봄기운처럼 따뜻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의 온도는 과연 몇 도나 됩니까?

영하의 추운 겨울 날씨처럼 꽁꽁 얼어 있습니까?

아니면 봄의 따사로운 햇살처럼 따뜻합니까?

 

사람들은 차가운 마음을 가진 사람을 좋아할까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좋아할까요?

우리는 모두,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널리 잘 알려진 이솝 우화를 소개합니다.

 

어느 날, 바람과 햇님이 내기를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의 외투를 누가 벗기느냐하는 것입니다.

바람은 햇님에게 이건 자신이 이긴 게임이라며 큰소리를 칩니다.

 

바람은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거센 바람을 날려보냅니다.

겉옷이 벗겨져 날려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람이 세차게 불면 불수록 사람은 추워서 겉옷을 더욱 꼭 부여잡고 놓치를 않습니다.

결국 바람은 겉옷을 벗기는데 실패를 합니다.

 

다음은 햇님의 차례입니다.

햇님은 사람을 향해서 따뜻한 햇살을 내리쬐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열기를 높여갑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입던 겉옷을 당장 벗어던졌습니다.

햇님의 승리입니다.

 

이 우화가 던져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바람처럼 차가운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 햇님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영하의 날씨처럼 너무나 차갑습니다.

현대인들은 얼음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너무나 쌀쌀맞고 냉정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의 온도를 조금만 더 높이기 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마음의 온도를 높일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마음에 장작이 되고, 그 위에 성령의 기름이 부어진 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불씨가 떨어지면 우리의 마음은 따뜻해질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얼음을 녹이려면 열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의 마음이, 사랑의 열기로 따뜻해져야, 얼음 같은 이 세상을 녹일 수가 있습니다.

 

온유한 마음은 따뜻한 마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상을 녹여줄 수 있는 따듯한 마음을 갖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온유한 마음은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촉감이 있습니다.

그 촉감의 차이에 따라, 딱딱하고 터프한 거친 마음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의 마음은, 마음이 양털처럼 포근하고 부드러움이 느껴집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만질 수만 있다면, 그 감촉이 어떨 것 같습니까?

딱딱하고 거칩니까? 아니면 부드럽고 포근합니까?

 

사람들은 딱딱하고 거친 마음을 가진 사람과 부드럽고 포근한 마음을 가진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을 좋아할까요?

 

교육학에는 하아로우의 실험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심리학자인 하아로우 교수가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젖을 먹는 아기 원숭이들 앞에 엄마 원숭이 대신, 두 개의 인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는 철사로 엄마 원숭이처럼 만들어 그 가슴에 우유병을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부드럽고 포근한 천으로 만들어 역시 가슴에 우유병을 넣어 두었습니다.

 

첫날에 아기 원숭이들은 두 인형 속에 있는 우유를 모두 빨아 먹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날부터는 아기 원숭이들이 철사로 만든 인형에게는 가지 않고,

천으로 만든 인형에게만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부드럽고 포근한 천으로 만든 엄마 원숭이 인형의 우유를 먹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동물들도, 부드럽고 포근한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떨까요? 사람도 똑같습니다.

날카롭고 딱딱하고 거친 사람보다 부드럽고 포근한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성도 여러분!

알부남이라는 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유부남은 알겠는데 알부남은 모르시겠지요?

알부남이란,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는 말의 줄임말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마다 왜 이구동성으로 자신을 알부남으로 소개하면서 이미지 메이킹을 합니까?

그건 사람들이 부드러운 사람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가 가시같이 뾰족하고 거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와 아픔을 줍니다.

 

반면에 부드럽고 포근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 마음은 마치 침대와 같아서, 거친 세상에 지친 영혼을 품고 안아주어 편안함과 안식을 줄 것입니다.

 

이 부드럽고 포근한 마음이 바로 누구의 마음입니까?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입니다.

 

마태복음 1128절부터 29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시밭과 돌짝밭과 같은 우리 마음을 부드러운 옥토로 바꾸길 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밭을 갈고 닦고 거름을 주면 가능합니다.

그러면 부드러운 옥토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부드러운 침대와 옥토와 같은 마음을 가져서, 세상을 품고 세상을 치유하며

세상에 진정한 안식을 제공해줄 수 있는, 온유하신 예수님을 닮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온유한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높이가 있습니다.

이 높이의 정도에 따라 마음이 하늘만큼 높아져있는 교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높은 곳에서 자꾸 낮은 곳을 향해서 흐르는 물처럼, 마음이 낮은 겸손한 사람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의 높이는 얼마나 됩니까?

하늘이 닿을 정도로 높아진 바벨탑처럼 교만해져 있습니까?

아니면, 어린 아이처럼 스스로를 낮출 수 있는 겸손함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을 좋아할까요?

그럼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을 좋아하실까요?

 

오늘 읽은 민수기 12장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한 사람을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바로 모세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이유를, 우리는 123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123절을 함게 읽겠습니다.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세상에서 모세보다 더 온유한 사람은 없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123절에 이 온유함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는 아나브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나브라는 말에는, “겸손한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이 아나브라는 단어가 쓰여진 다른 곳을 찾아보면, 우리말로 겸손한으로 옮긴 곳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성경 가운데 현대인의 성경은 민수기 123절을 아예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모세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온유함과 겸손함은 거의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보면, 이 온유라는 말과 겸손이라는 말이 함께 같이 쓰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조금 전에 보았던 마11:29에도,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4:2에도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12에도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결국 온유한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겸손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모세를 특별하게 사랑하셨습니까?

그것은 모세가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모세를 그렇게 높이 들어서 사용하셨습니까?

그것은 모세가 세상에서 스스로를 가장 낮출 수 있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바벨탑을 쌓는 세상입니다.

누구나가 다 남보다 높아지려 하고 있습니다.

내가 높아지기 위해 나보다 높은 위치의 사람을 어떻게든 아래로 끌어 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민수기 121절을 보면,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모세는 첫 번째 아내였던 십보라와 사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구스 여인과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구스는 오늘날 이디오피아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국제결혼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1절을 보면, 모세의 재혼 사실을 놓고, 모세의 누나와 형인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방여인이라 그랬을까요?

그 이유에 대해선 성경이 침묵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면서 뭐라고 말을 합니까?

2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12: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우리는 2절을 통해서 미리암과 아론의 비방이 단순히 자기 동생에 대한 책망의 차원을 넘어서, 모세의 리더십에 대한 강한 불만과 도전에서 비롯된 것임을 엿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마음의 저변에는 교만한 마음이 싹트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2절 끝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이 말을 들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다른 말로 겸손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하나님의 이 말씀은 그 이면에 미리암과 아론의 교만한 마음을 꾸짖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교만함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마음을 하나님만이 싫어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인 우리도 교만한 마음을,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이 사실을 망각하고 교만해지려합니다.

 

어쩌면 이 교만한 마음은 사탄의 타락과,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가져왔던 죄의 뿌리였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할 적일지도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교만함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딱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위대하시며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 날마다 엎드리는 것입니다.

 

모세가 왜 세상에서 가장 온유하고 겸손해질 수 있었습니까?

그가 본래 태어날 때부터 좋은 품성을 갖고 태어나서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로 자랐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제2인자였습니다. 그는 겸손할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겸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모세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다음 구절인 4절부터 8절 말씀을 교독하겠습니다.

12:4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12: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12:6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12: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12: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모세는 가장 높으신 지존자이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였습니다.

그 하나님의 위엄과 존엄하심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는 감히 교만한 마음을 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분야에서 좀 재능과 능력이 있다고 우쭐대며 교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 분야에서 최정상에 있는 대가나 1인자를 만나게 하면 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노래를 좀 잘한다고 우쭐댑니까?

그럼 그 사람을 소프라노 조수미 앞에 가서 노래를 시켜보게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돈 좀 있다고 자랑합니까?

그럼 그 사람을 빌 게이츠한테 데려가서 돈 좀 써보라고 해보십시오.

 

그럼 아마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모세가 온유하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던 비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의 높이를 낮출 수 있는 비결은, 순간순간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교만한 마음이 고개를 들 때면, 지존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만해졌다가도 즉시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교만을 가르치고 사단은 교만을 부추깁니다.

세상은 온통 교만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신을 낮출 수 있는 모세와 같은 겸손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높이 들어 사용하시며, 그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온유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온유한 사람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마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마음이면서, 또한 성령의 열매들 중에 하나인 온유의 열매를 맺어서,

2011년 한 해 동안, 모세처럼 하나님 앞에서 오래도록 귀하게 쓰임 받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JUAE ABBA
글쓴이 : 주애 아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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