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정체성 (히 13:12-16)
이 시간에 “성도의 정체성”이라는 제목입니다. 성도의 정체성이란 성도는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이 시간에 반대로 여러분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이름이 수십 수백이듯이 우리 성도 역시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예를 들면 성도 자녀 신부 성전 제사장 왕 지체 소금과 빛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은혜로운 이름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만큼 성도의 정체성은 아름답고 다양합니다. 다 말씀할 수는 없고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는 성도의 정체성을 몇 가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성도는 주님의 피로서 구속 받은 자들입니다.
구속이란 사셔서 구원하셨다는 듯입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사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본문 12절의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한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영 죽을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의 피로서 죄 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이 보혈 공로를 믿는 것입니다.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과의 결과란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의 좌우편에 두 강도가 있었는데 두 사람 다 흉악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믿었고 한 사람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란 하나는 천국 낙원에, 하나는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이처럼 나는 아무 공로 없으나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주님의 용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리고 양심의 평안과 하나님의 보좌 앞의 생활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피 흘리신 은총을 받은 구속 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13절에 “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했습니다. 여기 그 능욕은 바로 예수님의 고난을 가리킵니다. 당시 십자가형은 자기가 달릴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는 형이며 극도의 고난과 수치가 따르는 극형이었습니다. 그런 고난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하셨습니다. 이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세상과 벗하는 나의 죄를 회개하고 내 뜻과 욕망대로 살려는 옛 사람을 죽이고 섬김의 주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 신령한 학자를 찾아가서 예수 안에서 죽는다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신학자는 미웠던 사람이 있느냐? 그의 무덤에 가서 종일 그 사람을 욕하고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이 있느냐? 그 사람의 무덤에 가서 역시 종일 사랑한다는 애정 어린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이 뭐라고 하더냐? 가서 발길질을 하며 미워한다고 말하니 그 사람이 뭐라고 하더냐? 또 무덤을 쓰다듬으며 사랑한다고 말하니 뭐라고 하더냐?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요. 바로 그것이다. 그와 같이 예수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우리가 미움을 당해도 사랑을 받아도 높임을 받아도 반응하지 않고 주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십자가 지고 온전히 죽은 사람이 성도입니다.
3. 성도는 지상에 사나 소망 가운데 사는 사람입니다.
14절에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여기 영구한 도성은 우리가 영원히 거하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킵니다. 지상의 소망이 아니라 천국의 소망 갖고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 것에 취해 살지 말고 하나님이 언제 나를 부르실까 천사의 나팔소리를 날마다 고대하며 사는 것이 성도입니다.
이런 유머스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동갑내기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남편을 위해 현미밥과 생식을 대접하고 운동하게 하여 85세가 되어도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고로 부부가 동시에 돌아가셨습니다. 천국에 가니 베드로가 으리으리한 저택으로 인도했습니다. "이 집에서 사세요." "아, 이 집은 너무 비싸겠네요." "아니요. 여기는 천국입니다. 공짜예요." "그래요? 감사합니다."다음에는 뷔페식당으로 갔습니다. 얼마나 좋은 음식들이 있는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마음껏 드세요." "이 음식은 아주 비싸겠네요." "아니요, 여기는 천국이에요. 공짜입니다." 너무나 좋은 음식을 먹고 살이 찔까봐 할아버지가 다시 물었습니다. "혹시 저 칼로리 식당은 없습니까?" 그러자 베드로는 "염려 마세요. 여기 천국은 아무리 많이 마셔도 아무리 먹어도 아프지도 않고 살도 찌지 않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팔딱팔딱 뛰면서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 좋은 곳에 와서 왜 그러세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노려보더니 "이 할망구야, 이 할망구가 아니었으면 벌써 10년 전에 여기에 왔을 텐데 이 할망구가 나를 오래 살라고 현미밥 먹이고 생식시키고 운동시키는 바람에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이 좋은 곳에 이제 왔잖아."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가 지어낸 말이긴 하지만 천국이 그만큼 좋다는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성도는 바울처럼 지상과 천상의 사이에 끼어 행복한 고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3-24)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는 속히 천국에 가고 싶지만 성도들을 위해서 더 살아야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곧 영광스런 새 예루살렘 성에 입주할 사람들이니 세상에 너무 미련 갖지 마십시다.
4. 성도는 예수 때문에 항상 즐겁게 사는 사람입니다.
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했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란 예수 때문에 찬미하며 살아가자는 말씀입니다. 누가 앞도 못 보는 소록도 한센씨 환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재미로 사십니까?” 그러자 “예수 믿는 재미로 삽니다.”고 곧바로 대답하더랍니다. 얼마나 감동스런 말씀입니까? 이것이 우리 성도의 참 모습입니다.
세상적으로는 재미가 없어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복 주신 예수님 때문에 노래해야 합니다. 올해 농사 풍년은 아니지만 예수님 때문에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하박국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찬송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중에 하나가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시22:3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그랬습니다. 찬송하며 살아야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행복한 임재의 비결이요, 능력의 비결이며, 성도의 생활인 것입니다.
5. 성도는 사랑하며 좋은 일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16절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성도는 세상에 보내진 하나님의 천사입니다. 천사는 선하고 사랑이 많습니다. 우리들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사람들이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할 뿐 아니라 주님의 말씀대로 선행과 사랑으로만 무장하면 이 세상 복음화는 시간문제가 될 것입니다. 식물이 뿌리를 뻗는 것을 보면 그냥 뻗지 않습니다. 유기농의 대가인 로데일씨의 책을 보면 식물은 먼저 뿌리를 뻗을 곳에 자기 효소를 보내서 흙을 뿌옇게 변화시킨 다음에 뿌리를 뻗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무를 옮길 때는 꼭 그 자리의 흙을 가져다가 심어야 성공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처럼 예수 복음도 선행과 사랑으로 전파됩니다. 복음부터 앞세우면 실패합니다. 오늘 전도할 단거리 전략도 필요하지만 장거리 전략이어야 합니다. 말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고 마음을 차지하고 천국을 차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삽시다. 성도는 주님의 피로서 구속 받은 자들입니다. 성도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지상에 사나 소망 가운데 사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예수 때문에 항상 즐겁게 사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사랑하며 좋은 일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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