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지키는 성도
본문 : 요한계시록 16 : 15 “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서론
우리 주님은 도적같이 오십니다. 보통 도선생들이 예고하고 옵니까? 예고 없이 몰래 오는 것이 도둑의 특성 입니다. 만약 예고하고 온다면 오자마자 경찰에게 붙잡혀서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사람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오신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3장 3절에도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고 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24장 42-44절에도 보면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자기 옷을 지키라고 나와 있는데 예수님 당시에는 도둑놈들이 옷을 많이 훔쳐갔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옷은 겉옷을 말하는 것으로 그 당시 겉옷은 사람들이 항상 입고 다니는 옷으로 외출복이자 활동복이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이불대신 덮고 자는 이불 대용품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출애굽기 22장 26-27절에 보면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중략) 고 했습니다. 아무튼 예수님 당시에는 옷을 훔쳐가는 도둑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는 옷 걱정 안하고 살지요. 몇 년 전에는 저도 옷이 별로 없어서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려면 양복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옷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본론
우리 주님께서는 깨어 있어서 자기 옷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깨어있지 못하고 자고 있으면 자신의 옷은 도둑맞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서 옷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나 심령상태를 나타내기도 하며 그밖에 믿음, 찬송, 구원, 의, 정결, 칭의 등을 뜻하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여러 곳에서 사람이 슬플 때나 마음이 상했을 때 그리고 회개할 때에 옷을 찢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요엘서 2장13절에 보면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라고 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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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우리 주님이 깨어 있어서 자기 옷을 지키라는 것은 항상 깨어 있는 가운데 자신의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8절에 보면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믿음의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의(義)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이것은 칭의(稱義)의 옷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의롭다. 하는 칭의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우리에게 칭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과 같습니다. 가죽옷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예표인 것입니다. 짐승의 희생으로 가죽옷이 만들어져 부끄러움을 가리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온 인류의 죄가 가려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있지 않고 계속 잠만 자게 되면 도둑이 와서 우리의 옷을 훔쳐갑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 사탄이 와서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의를 뺏어 간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신학교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잘 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불치병에 걸려서 남들이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지만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급기야는 굿을 하면 병이 낫는다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병 고칠 욕심에 굿을 했지만 병이 완치되기는커녕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은 오랫동안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했지만 믿음을 지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음악에 재능이 뛰어난 어떤 성도가 있었습니다.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가운데 교회 음악(찬송가, 복음성가)도 여러 곡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불교 종단에서 그 분을 찾아와서는 그 당시 집 한 채 값에 해당되는 돈을 선불로 주면서 찬불가를 작곡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분은 많은 돈에 욕심이 생겨서 그 돈을 받고 찬불가를 작곡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깨어있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마귀 사탄에게 믿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믿음을 빼앗기고 그 때 가서 후회하지 마시고 항상 믿음을 지켜야 될 것입니다. 이사야 61장 10절에 보면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옷, 의의 옷을 입혀 주셨는데 우리가 어찌 잠만 자는 가운데 마귀 사탄에게 우리의 믿음, 우리의 의를 빼앗길 수가 있겠습니까?
출애굽기 29장 21절, 레위기 8장 30절에 보면 제사장의 옷은 제단의 피를 뿌려 거룩하게
하였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십자가의 보혈로 피 뿌림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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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피 뿌린 옷을 입은 제사장들입니다. 계시록 7장 14절에도 보면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고 기록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잠을 자면 피 뿌린 옷도 마귀 사탄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우리가 게으르고 나태한 가운데 있으면 믿음을 빼앗기고 의도 빼앗깁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뱀의 꼬임에 속아서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는 실과를 먹고 난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벌거벗은 수치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양심 때문에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바로 영적으로 벌거벗은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성도는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입니다.
욥기 29장 14절에 보면 “내가 의로 옷을 삼아 입었으며.....” 했으며 시편 29편 3절에 보면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 찌어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사야 52장 1절에 보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 찌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을 다시 보면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세례는 원래 침례로서 머리에 물을 약간 뿌리는 약식 세례도 있지만 온 몸을 물에 잠그는 침례가 원래 성경적입니다. 세례(침례)를 간단한 입교 의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세례(침례)의 참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6장 3-4절을 보겠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세례의 참 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의 거듭남입니다. 이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면 바로 이 말씀과 같이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이 말씀을 선포하는 본인 자신도 이 말씀을 대하면서 주님 앞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아직도 내 자아, 내 혈기가 완전히 죽지 못한 가운데, 내 자신 온전히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지 못했습니다. 내 안에 온전히 그리스도께서 살아 역사하시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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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곧 바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믿음이 자라서 믿음에 장성한 어른이 될 것입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기독교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회의 직분자로서 집사, 권사, 장로뿐만 아니라 심지어 목회자로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지탄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는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믿음의 옷, 의(義)의 옷을 마귀 사탄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에 1000만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1000만이면 대한민국 총인구의 약 4분의 1인데, 기독교인 한 명이 세 명을 휘어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멸시 당하고 짓밟히기도 합니다.
결론
이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신앙의 잠을 자고 있다면 깨어나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나태하고 게으른 가운데 잠을 자게 되면 우리는 마귀 사탄에게 믿음의 옷을, 의(義)의 옷을 도둑맞게 되고 우리는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는 믿음의 옷을, 의(義)의 옷을 지켜야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으면 그 옷을 끝까지 지켜야 될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 : 8).” 이 말씀처럼 우리가 믿음과 의(義)를 지켜서 거룩한, 정결한 성도로 살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날마다 말씀 안에서 기도하고 찬송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그리고 내세에는 하나님의 왕국을 소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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