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계시록 강의안 강사: 신 은철
1. 서론
계시록은 매우 어려운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록 역시 성경의 다른 책과 같이 해석 되어져야 한다. 이 말은 계시록은 성경 66권 중에서 특이한 기형적 형태를 지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이 구절은 감춰지도록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에게 드러나도록 주어진 말씀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차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1세기 독자들에게 주는 예언적 메시지임을 -물론 성경의 예언적 말씀은 21세기 오늘날에도 해석학적 적실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리챠드 버캄 (1993:19) 이 계시록은 무시간적 상징으로써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서론적 질문으로서 그럼 저자는 누구이며, 누구에게 이 책을 보내었으며, 언제 이 책이 씌어졌으며 어떤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썼는가 하는 질문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요한계시록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가진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 비록 그것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시도함은 쉽지 않은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내용은 하나님에 의해 우리에게 이해되도록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하나님이 그의 종 요한에게 밝히 보여 지도록 주신 계시이다 (계 1:1).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계시록 해석 방법등과 같은 서론적 고찰과 함께, 계시록이 언제 쓰여 졌고1), 계시록의 문학 장르, 그 당시의 사회적-정치적 정황은 어떠하였는지, 그리고 7교회의 삶의 정황을 다루어 볼 것이다.
1.1. 계시록의 대표적 해석 방법
1) 미래적 해석법 - * 거의 종말론적 입장을 취함. 특히 계시록 4장부터를 미래 마 지막 시기에 이루어질 사건으로 간주한다.
==>> 4장-19장 : 7년 기간에 이루어짐 ( 단 9:24-27의 70 이레에 해당-세대주의적 해석)
* 계시록의 문자적 해석
* 예수잇 학자인 Ribeira 에 의해 16세기에 활성화 ( 종교개혁 자들에 대한 반발로 )
문제점 : 1C 기독교인과의 상관성을 상실
2) 역사적 해석법 - * 예수 시대로부터 재림 때까지의 세계 역사를 묘사.
* 세계사를 계산자로 재어서 계시록을 해석한다.
즉 계시록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역사적 청사진을 제시.
* 12C 요아킴에 의해서 주창
문제점 : 서구 역사에 치중하고 거의 지지자가 없다.
3) 이상주의적 해석법 - 계시록은 예수의 초림부터 재림에 까지 이르는 어떤 특정 한 역사적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무시간 적” 이라고 주장, 즉 하나님과 사단, 선과 악, 진리와 거짓 의 싸움에서 하나님과 선과 진리의 승리와 같은 일반적 원 리를 강조, 즉 무시간적 영적인 진리를 강조하는 해석법.
문제점 : 1C 구체적 역사적 상황을 배제함.
4) 과거적 해석법 - 계시록은 그 책을 처음 읽고 받은 그 사람들을 위해 씌여졌다 는 해석.
문제점 : 묵시적 절정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해석학적 적실성의 취약점을 갖는다.
위 4가지 해석법은 각각 진리의 일면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서로를 인정하는/ 대화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학자들은 역사주의적 해석법을 제외한 나머지 속에서 진리의 요소를 발견하면서 소위 ‘절충주의적 해석법’을 지지한다.
1.2. 저자
몇 몇 후보자들이 있다.
❶. 사도요한 ❷. 장로요한 ❸.마가요한 ❹.세례요한 ❺. 알려지지 않은 요한
자유주의적 학자들은 대부분 사도 요한의 계시록 저작 설에 의구심을 가지지만 (그것들의 대부분은 요한복음과 요한서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다른 형태의 장르, 스타일, 어법 등에 근거) 성경자체내의 내적 증거와 성경 밖에서의 외적 증거는 계시록의 사도 요한 저작 설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사도요한은 소아시아 7교회의 상황을 매우 잘 아는 순회하는 묵시적 예언자/ 목회자였다.
1.3. 기록연대
계시록 이해를 위한 배경으로써 기록연대를 잠간 살펴보는 것은 본문 이해를 위해 유용 할 것이다. Du Rand (1997:228) 는 계시록의 기록연대를 살펴봄은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상황적으로 매우 유용하다고 옳게 지적 한다. 특히 기록연대는 크게 2명의 후보자 (네로 와 도미티안 황제) 시대로 압축되어질 수 있다. 이것을 위해 계시록 기록연대의 외적 그리고 내적 증거를 살펴보도록 한다.
1.3.1. 네로
19C 이래로 계시록의 날짜는 네로 황제 (AD.54-68) 시기로 잡는다. 왜냐하면 그때에 대대적인 기독교 박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로 황제 통치 시기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논지가 약하다.
첫째는, 계시록에서 바벨론이란 명칭 사용은 옛 바벨론이 BC 6세기에 유다 백성과 성전을 멸망시켰던 것처럼, AD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 멸망은, 문자적 바벨론이 아닌 70년 이후의 로마를 가리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둘째로, 계시록 11:1-2에 나오는 성전 측량은 실제적인/ 문자적인 성전을 가리키므로 계시록은 AD 70년 이전에 즉 네로 황제 시대 때에 씌어 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시록 11:1-2 의 성전은 문자적인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상징적인 의미에 강조점을 둔다.
1.3.2. 도미티안
소아시아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중요한 문제들 중의 하나는 황제숭배이다 (e.g. 13:4, 14:7, 14:9, 15:2, 16:2, 19:20, 20:4 ).
황제숭배 즉 신성화는 쥴리어스 시어저 이래로 시작 (그의 생존시가 아니라 사후에), 그리고 후에 칼리굴라는 그의 생존 시 신으로써 그의 숭배를 요구했으나 원로원이 거부, 실제적으로 이 황제숭배는 도미티안 때 시작한다. 그는“dominus et deus" (주 그리고 하나님) 로 불려지고 그리고 도미티안 때는 또한 제국제의의 성장과 번영의 시기(제우스, 아데미 ....) 이다.
1.3.2.1. 외적증거
초대교부인 이레니우스의 증언2) 은 계시록이 도미티안 통치 말기에 씌어진 것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A.D. 150-215)는 도미티안의 죽음을 밧모섬의 요한과 관련시킨다.
1.3.2.2 내적증거
네로 황제 기록연대를 주창하는 중요한 본문 중의 하나는 성전측량 (11:1-12) 에 대한 말씀이다. 이것은 2가지로 해석-문자적 또는 상징적- 된다. 네로 시대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이 본문을 문자적3)으로 해석하여 성전이 멸망하기 이전 아직 건재하던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4) 이 본문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 또는 교회의 보존 (Witherington III, 2003:157) 이란 관점에서 성전측량을 해석한다.
기록연대를 밝히는 궁극적 의미는 계시록의 씌어진 삶의 정황이 단순히 네로 ‘박해’란 상황에서 태동된 게 아니라, 도미티안 시대의 다양한 사회-정치적, 문화적 정황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음을 인식케 함에 있다. 즉 요한이 계시록을 쓸 때 기독교인들은 박해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정황 속에 그들이 있었음을 암시 한다.
⇨ 네로 날짜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계시록을 “박해” 란 단지 하나의 상황으로 그 배경을 단정하지만, 실질적으로 계시록에서 기독교인이란 이름으로 순교를 당한 예는 2:13절에 나오는 안디바란 단 한 사람으로 제한된다. 실제적으로 계시록에서 우리는 공적인 박해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고, 기독교인 이란 이름 때문에 황제숭배, 제국제의에 참여하기를 거절하므로 야기되는 매일 매일의 억압, 차별, 사회적 추방의 실제적인 문제를 직면케 된다 -->도미티안시대 날짜: 계시록의 상황을 살펴보는데 중요하다.
1.4. 시간개념
-->> 3가지 시제
과거-현재-미래
21c의 현대인들의 시간 개념은 우선적으로 미래 중심 그러나 고대인들의 시간 개념은 다르다. 그들은 현재 중심적 사고를 한다.
그들의 삶의 정황이 잘 보여준다.
신약성경에 봐도 (ex. 주기도문) 시간에 대한 성경의 관점은 주로 “오늘과 현재”에 대한 관점을 지지한다.
그리고 2차적으로는 과거에로의 회상을 강조한다.
이 과거에로의 조명은 현재를 조명하기 위한 것 사실 그것의 강조점은 현재에 있다.
즉 현재에 대한 확고한 신앙, 신념에 대한 강조를 위해 과거를 소급
그래서 그런 것을 통한 현재적 상황을 설명한다.
따라서 요한 계시록의 주요 시제는 현재->과거->미래의 순으로 이루어짐을 우리는 알 수 있다.
1.5. 요한 계시록이 사용된 정황
이것에 대한 본문의 내적 증거는 1:3에 근거한다.
이것을 통해 요한 계시록의 삶의 정황이 “공적 예배”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예배의 정황에 대한 이해는 아주 중요한 계시록 해석위한 해석학적 틀을 제공한다.
고로 우리는 본문의 정황을 통해 요한 계시록이
* 종말론적 권고, 위로위해 소아시아의 7교회에 보내짐.
* 이것은 교회의 공적 예배 시에 읽혀졌고 ( e.g. 1:1, 3-4; 22:6-7, 10, 18 )
그래서 기억을 위한 기법으로 장소, 이미지 (바벨론, 새 예루살렘 )가 현저하게 사용됨을 알 수 있다.
1.6. 묵시 기법
묵시 문학은 B.C. 200-A.D.100년경에 널리 사용되던 문학 형태로서 구약성경에서는 다니엘과 같은 책이 이 장르의 형태에 속한다.
=>>묵시문학
계시록은 1세기 소아시아의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역사적 상황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은 7교회의 상황가운데 보내졌다. 요한이 그의 서신을 그의 독자들에게 묵시 형태로써 보낼 때, 독자들의 복합적인 상황의 필요와 요청에 대한 대안으로써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Brown (1997:774-780) 같은 학자는 묵시문학이 고통과 박해의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을 위해 씌어졌다고 옳게 지적한다. 다시 말하면 묵시문학은 현재적 상황을 해석하기 위해 사용되는 문학형태인데, 그것은 갈등과 박해의 한가운데서 희망과 위로를 주기위해 사용된 문학형태이다. 따라서 묵시문학 작품과 묵시적 세계관의 사상을 통해 요한과 당대의 크리스챤은 그들이 직면했던 구체적 역사적 상황을 하늘과 천상의 관점에서 적대자들을 비판한다. 즉 1세기 크리스챤이 직면한 그들의 독특한 상황은 로마당국의 실제적 박해에 대한 위협 (DeSilva, 1992:227-278) 이었고, 이것은 실제적으로 1세기 크리스챤들에게 삶과 생존의 위협을 가져왔고 그리고 어떻게 이런 박해와 위기의 이질적 상황에서 크리스챤으로써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윤리적 모델을 제시한다.
이런 형태의 책들은 몇 가지 독특한 특징들이 있는데
1. 하늘 또는 미래에 관한 일 (마지막 일들) 들을 취급-->> 이것의 궁극적인 의도는 선/하나님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며, 하나님이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실 것이 다 란 메시지를 통해 이 글을 읽고 들었던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제시함에 그 목적이 있다.
2. 상징주의적 언어
-->> 이것의 원천은 * 구약의 언어를 빌려온다.
1) 숫적 상징-> 2, 3, 4, 7, 10, 12... 등등의 숫적 상징 통해 메시지 전달
2) 동물/짐승-> 사람과 국가를 동물로 표현한다.
3) 꿈, 환상 등등의 비전적 그림을 제시-> 천상 목적을 제시한다.
4) 일정한 형태 갗춘 외적 구조-> 인, 나팔, 대접의 일정한 구조 통해 신적 메 시지를 전달한다.
5) 요점의 반복-> 똑 같은 것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6) 암호적 언어-> 이런 언어적 전달을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준다.
고로 우리는 이런 종류의 상징은 1C 기독교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한 “대체적 이상” or "초월적 관점“을 제공, 즉 상징은 1C 기독교인과 의사소통하기 위한 의미를 산출한다. 이 상징의 원천은 구약, 유대문학 등의 이미지로부터 기독교적 재해석의 과정을 거쳐 산출된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다. 이런 상징적 이미지 통해 보다 강력하고, 호소력 있는 효과를 전달한다.
* 숫적 상징에 대한 참고 사항
⇨ 수 ( number ): 계시록에서 숫자는 문자적으로 보다는 대부분 상징적으로 해석.
2 : 타당한 증언의 수
3 : 삼위 하나님의 수
4 : 전체 피조계 세계, 전 창조계
6 : 사람의 수 or 불완전한 수
7 : 완전수
10 : 완성의 수
12 : 하나님의 도의 충만성 or 완전/ 충만함.
24 : 12 × 12 ( 12족장과 12 사도 )
1000 : 무한하고 크고 끝없는 수
1.7. 계시록의 문학 장르
계시록이 성경의 다른 말씀과 달리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장르에 대한 미흡한 이해에 근거한다. 일반적으로 성경의 말씀들은 단 하나의 장르로 -예를 들면 역사서, 복음서, 서신서 등으로 구성되어진- 이루어진 반면에, 계시록은 3개의 형태로 이루어진 문학 장르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는데 많은 혼란을 야기 시킨다. 즉 계시록은 묵시, 예언, 그리고 서신으로 구성된 다양한 문학 장르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말씀임을 기억해야한다.
1) 묵시
먼저 계시록 1: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로 시작한다. 묵시 용어인 ‘아포칼립시스’ 는 고대 유대 사회에 널리 알려진 묵시문학 형태를 가진다. Collins (1979:9) 라는 학자는 묵시문학을 정의하기를 “묵시문학은 서사적 골격을 가진 계시적 문서의 장르에 속한다. 그러한 서사적 골격에서 계시는 외부세계에 속하는 존재를 통해 인간에게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종말론적 구원을 조망할 때는 시간적인 초월적 실재를 드러내고, 또 다른 초자연적 세계를 포함할 때는 공간적인 초월적 실재를 드러낸다”.
Collins가 제안 했던 것처럼 묵시로써 계시록은 환상과 상징을 통한 초월과 종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징적 이상을 통한 교회에 주는 메시지는 초월적 또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바라봄으로 하나님의 백성 또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Bauckham, 1993:9-12)를 제시해 주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것의 의도는 시간적, 공간적 초월성 통해서 7교회의 현재를 해석하기 위한 것이다.
2) 예언
1:3절은 “이 예언의 말씀” 이라고 부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예언이라고 얘기 할 때 그것은 거의 항상 ‘앞일을 미리 말함’과 동의어가 되다시피 한다. 그러나 예언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이해는 계시록의 해석에도 적용된다. 즉 예언의 말씀으로써 계시록은 단순히 앞일을 미리 말하는 책이 아니다. 그들의 주어진 상황에 대한 선지적 선포의 의미-구원과 심판- 를 가진다. Bauckham (1993:148-149) 은 예언을 동시대 상황에 대한 선포와 그리고 그런 1세기 크리스챤들의 상황을 하나님의 천상관점에서 해석하는 선포라고 논의 한다. 즉 그것은 앞일에 대한 예견 보다는, 예언적 선포로써 1세기 크리스챤에게 주어진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Kistemaker, 2001:63) 이다.
3) 서신
계시록의 3번째 장르는 그것이 서신의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서신의 형태처럼 발신인인 요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과 수신인은 소아시아의 7교회 그리고 메시지의 형태를 가진다. 바로 그 메시지가 7교회가 돌려보도록 의도한 내용인 것이다.
바로 그 7교회에 문제가 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계시록이 기록 되었는데 그것은 단지 7교회에 주어진 박해 상황을 해결 하려는 목적으로 보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현재적 문제(Gilbertson, 2003:57) 에 직면해 있었던 1세기 크리스챤들에게, 묵시적 관점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예언적 말씀들을 수용하므로 이 땅에서 승리자의 삶을 살도록 격려 받는다. 그럼 과연 직접적으로 7교회의 삶의 정황 즉 그들이 당면한 7교회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피도록 하겠다.
1.8. 7교회들의 사회적 상황
1.8.1. 에베소 교회의 사회적 상황
우리는 주로 지금까지 박해의 관점에서 1세기 크리스챤들의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상황을 논의 했다. 그러나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계시록의 의미를 단순히 박해의 관점 (Friesen, 2005:351-356) 에서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이 문제를 간략하게 취급할 것이다.
에베소 교회에서 우리는 박해에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은 서로 서로 첫사랑을 버린 것 때문에 비난 받는다. 그리고 이교적인 문화적 사회적 상황에서 그들은 악한 자들과 거짓 사도들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리고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했다. 그들의 문제는 외부적이지 않고 교회 내부의 문제였다.
1.8.2. 서머나 교회의 사회적 상황
서머나 교회의 크리스챤들은 박해에 증면했다. 이 도시는 황제숭배의 수도였고 (Beale, 1999:239-245; Kistemaker, 2001:122-126) 특히 이 도시에서의 갈등은 유대인과의 충돌이었다. 따라서 서머나 교회가 직면했던 문제는 유대인들과, 가난과, 그리고 중상에 대한 갈등이었다.
1.8.3. 버가모 교회의 사회적 상황
버가모는 유명한 황제숭배의 공적인 제의의 중심지였다 (Mounce,1977:96). 이것은 이 도시가 사탄이 특별한 권세와 권위를 행사했던 장소임을 암시한다. 여기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의 증인이었던 안디바가 순교를 당한다 (2:13). 또한 다른 문제는 우상 제물에 관한 문제다. Collins (1984:88) 에 따르면 우상제물을 먹음은 주변 그레코-로마 세계와의 타협을 의미한다고 바르게 지적한다. 따라서 우리는 버가모 교회의 문제는 박해 뿐 아니라 이방 사회적 종교적 환경과의 타협에 문제임을 알 수 있다.
1.8.4. 두아디라 교회의 사회적 상황
우리는 이 교회에서 종교적 정치적 박해에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2:20을 살펴 볼 때 그들은 이사벨이라 불리는 여선지자를 용납한다. 그녀는 교회를 성적 부도덕과 타협 그리고 우상제물 먹음에로 유혹한다. 그녀는 교회 내에서 탁월한 위치에 있으면서 교회에 내적인 문제를 야기 시킨다. 따라서 두아디라 교회의 문제는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박해가 로마로부터 오지 않고 황제숭배도 행해지지 않는다. 이들이 당면한 문제는 신실함이냐 타협이냐 또는 삶과 죽음 (Rudolph, 2005:314) 이냐의 문제였다. 교회 내에서 성도들의 투쟁은 우상숭배와 부도덕의 문제였다.
1.8.5. 사데 교회의 사회적 상황
사데는 유명한 상업적 중심지였다. 그리고 지리적인 상황에서 그 도시는 난공불락의 이상적인 요새였다. 그 도시는 과거의 이상적인 역사와 대조적으로 영적으로 죽은 것으로 (Michael, 1997:81) 비난 받는다. 우리는 이 교회에서 박해나 황제숭배나 유대인과의 갈등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의 문제는 영적인 나태였다. 그것 때문에 그들은 “죽은 자들 또는 죽은 교회를 위한 평화스러운 교회” (Barclay, 1957:85) 였다.
1.8.6. 필라델피아 교회의 사회적 상황
이 교회에서 우리는 황제숭배 제국제의 또는 교회의 나태 같은 요소들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유대인과의 갈등, 박해, 차별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챤들은 그리스도의 증거와 이름을 부인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거짓말 장이이다. 필라델피아 교회 크리스챤들은 세상적 관점에서 보면 패배자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유대인들과의 갈등을 극복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복자들이다 (Rudolph, 2005:321).
1.8.7.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회적 상황
A.D.60년에 엄청난 지진에 의해서 도시가 파괴된 후에 그들은 스스로의 재정으로 그 도시를 회복할 정도로 경제력이 막강하였다. Tacitus (Annals, xiv:27) 같은 역사가는 “아시아의 가장 유명한 도시들 중 하나인 라오디게아는 지진으로 전복되었고 그리고 우리로부터 어떤 도움 없이 스스로 그 자신의 자원으로 회복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교회의 문제는 어떤 황제숭배, 박해, 유대인들과 로마인들과의 갈등을 발견할 수 없다. 여기에서의 문제는 교회의 자기만족 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계시록이 단지 로마의 박해아래 씌여졌고 소외된 소수의 그룹을 위한 격려의 관점에서 씌여졌다는 것을 거절하였다. 7교회의 상황은 다양 하였고 그들이 직면한 문제가 매우 달랐음을 살펴보았다. 즉 이 말은 실질적으로 계시록 본문 해석을 할 때 우리가 7교회가 처한 삶의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주어진 본문의 메시지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1.9. 계시록의 문화적-정치적 상황
계시록은 적대자들로부터 억압적 상황에서 씌어진 위기문학이다. 그 적대자가 로마제국이던 또는 유대인5)이든 간에, 계시록은 묵시와, 예언과, 그리고 서신 형태 가진 ‘위기와 억압문학’ (Slater, 1999:16, 35) 임에 틀림없다.
1.9.1. 위기문학
Mounce (1977:24) 는 계시록이 엄격한 박해의 상황 가운데 씌어진 것으로 이해한다. 이런 위기문학으로써 계시록은 구약의 대표적인 묵시서인 다니엘과 유사성을 가진다. 계시록처럼 다니엘 역시 억압의 시대에 씌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다니엘서와 같은 문학형태의 성경을 너무 환상적으로 해석해 왔다. 사실 다니엘서와 같은 묵시서의 문학적 기능은 억압적 상황에서 무언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계시록이나 다니엘서와 같은 묵시문학은 위기문학으로써 그 당시의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상황의 산물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 문학 중에 가장 탁월한 승리, 순교, 그리고 위기의 주제를 가진 책은 마카비서이다. 마카비서에 있어 순교는 계시록에서처럼 의롭고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행동 규범이었다. 이때는 위기와 죽음의 시기 (Van Henten, 1997:132) 였고, 이때에 그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와 격려였다.
1.9.2. 황제숭배 또는 제국제의
Tigghelaar (1996:263-265) 는 계시록을 단지 위기 상황으로만 간주함은 단지 제한적 의미만 갖고 기껏해야 다양한 요소들 중 하나의 측면만을 밝혀 준다고 주장한다. 네로 시대에 중요한 교회 지도자들이 죽임 (베드로와 바울의 죽음) 을 당했던 사실과 대조적으로, 요한이 7교회에 쓴 크리스찬에 대한 박해는 조직적이지 않고 제한된 박해를 가진 산발적 현상이었다. 비록 도미티안은 “제 2의 네로” (Beale, 1999:18) 라고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한 황제로써 장점을 가진 황제였다. 그는 많은 건축물을 지었고 쇼, 게임, 경주 등 백성들의 칭송을 받는다 (Suetonius, Domitian IV-V).
로마제국에 있어서 황제숭배와 제국제의는 “제국의 문화적 질서를 구성했던 복잡한 상징의 그물망” (Howard-Brook & Gwyther, 1999:102) 이었다. 그 당시에 황제숭배와 제국제의는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상황이었다. 이 2가지 제도는 제국의 광대한 상황에 처해 있는 도시의 백성들을 결합시키는 정신적 가치체계였다. 이런 가치체계가 그러한 도시 가운데 살아갔던 크리스챤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Bauckham (1993:17) 은 소아시아에 살았던 1세기 크리스챤들은 황제숭배와 제국제의에서 로마세계의 강력한 이미지와 끊임없이 직면하게 되었다라고 올바르게 지적한다.
* 황제숭배
쥴리어 시저 이래로 황제숭배는 로마에 등장하게 되고 시저 자신은 예배의 주요대상이 된다. 원로원은 시저를 그들 신들의 계보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한다. 그의 사후에 시저의 신성화는 따라야 할 모델로써 자리 잡히게 된다. 따라서 로마에서 황제숭배는 도미티안 시대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쥴리어 시저로 시작한 오랫동안 되어진 과정” (Reddish, 1982:90) 이었다.
도미티안은 그의 백성에게 신으로써 그의 요구를 이행했다. 그는 스스로를 “Our lord and our god" (Dominus et deus noster) -우리의 주 우리의 하나님- 으로 불렀다 (Suetonius, Domitian, XIII). 그는 생애동안 신으로써 자신을 드러내었고 그런 부적절한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드러내었다.
계시록에서 크리스챤들이 로마황제로 대표되는 세상 적 왕을 숭배하지 않고 거부 했다는 이유로 박해와 갈등이 발생한다. 만약 크리스챤들이 황제숭배에 참여 하지 않는 다면 그들은 사회로부터 냉대와 불이익을 경험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황제들의 숭배는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점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 (Kistemaker, 2001:37) 이다. 따라서 계시록의 2-3장에서 수신자 역할을 하고 있는 7교회 중 일부 (예를 들면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 는 황제숭배에 참여함에 의해 갈등과 박해를 피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계시록 13장은 짐승으로써 의인화된 황제숭배의 실례를 제공하고 있다. 13장에서의 짐승의 특성은 제국 이미지로써 구체화된 악으로써 그들의 권력을 설명하고, 13:10은 크리스챤들이 황제숭배 가운데서 신실하게 인내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 제국제의
로마에서 권력은 “관계들의 그물망” (Pippin, 1987:58) 이었다. 이것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 분야를 포함한 삶의 전 영역을 포함한다. 특히 도미티안 같은 독재자에게 있어서 제국제의는 'Pax Romana' 같은 제국 정책들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이었다. 즉 제국제의는 사회의 조직적 유기체를 탄탄히 묶어주는 권력의 그물망 이었다. Biguzzi (1998:280-290) 는 소아시아가 -7교회가 위치해 있는 - 제국제의의 중심지였다고 제안한다. 이런 종교적 이질 상황 하에서 7교회의 크리스챤들이 겪었던 당면 문제는 바로 이런 이방제의에 - 의인화된 권력들에, 생생한 종교적 현상들에- 어떻게 반응해야 되는가에 그들이 직면 한다. 이것이 바로 소아시아에 있었던 1세기 크리스챤이 직면했던 사회적-정치적 상황 이었다.
DeSilva (1992:273-281) 는 소아시아에 광범위한 박해의 증거는 없지만 그러나 국가와 로마의 종교적 삶의 관계는 모든 시민들에게 엄청난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제국제의는 시민들을 제국의 가치체계로 통제하기 위한 주요한 전략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요한의 서신을 받았던 1세기의 소아시아의 크리스챤은 교회와 로마국가와의 삶과 죽음의 갈등에 직면 하게 된다. 즉 크리스챤은 그리스도냐 또는 시이저냐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 (Lord)로 고백 한다면 그들은 로마당국의 손에 억압을 받게 될 것이고, 만약 그들이 부인 한다면 로마 당국은 그들을 로마 가치체계의 추종자로 간주하고 그들을 구원할 것이다.
제국제의가 어디에서나 시행 되었던 그 당시에 (Friesen, 2005:363) 그리고 모든 시민은 반드시 공적인 종교적 행사에 참여해야 했던 그 상황에서 계시록은 황제숭배 또는 제국제의를 통한 세상 권력을 향해 ‘새로운 관점’ 과 ‘대체적 이상’ 을 제시한다. 즉 요한은 도시들에서 로마제국의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 상황들을 비판하고 그것을 “격렬한 억압의 체계” (Bauckham, 1993:35) 로써 비판한다. 따라서 1세기 소아시아에 살았던 크리스챤은 종말론적 축복을 얻기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증거에 굳게 서도록 격려 받는다.
1.10. 계시록의 기록 목적
1.10.1. 사회적 상황
1) 위기문학 : 경제적, 사회적 압력
2) 유대인들과 갈등
3)이방문화에 동화를 견제하기 위한 의도
4)로마와의 갈등
즉, 이 글을 받는 1C 계시록의 역사적 독자들은 그들의 상황을 단지 박해 상황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복합적인 상황에 직면한 위기의 때로 경험함.
1.10.2. 중심 메시지
* 독자들의 관점을 변형 ( 용의 패배와 그리스도의 승리) 을 통해 초월적 이상 을 제시한다.
*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한다. (희생자는 정복자 : D.L. Barr)
* 상징적 우주를 창출한다. (S. Fioreuza)
* 기독교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쓰여졌다. ( S.J Kistemaker )
* 누가 진정한 예배의 대상인가 ? 하나님 VS 사탄 ( 로마 )
1.11.계시록은 연대기적인가 ? 반복적인가 ?
* 계시록의 특징 중 하나는 요점의 반복, 즉 계시록은 반복의 원리에 따라 구성 되었다는 이론이다.
* 빅토리누스 ( AD 270 ) 에 의해 주창
* 계시록은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주제적 전개 ( 변화를 주어 반복 )
매번 다른 관점과 높은 각도와 보다 강화된 강도에서 바라본다.
문자적, 시간적 정확성과 순서를 기대하지 않고 종말론적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강조 ≫≫ 이런 것들에 대한 이해는 계시록의 의미를 더욱 풍성케 한다.
따라서 계시록의 구조적 특성을 잘 이해하면 전체적 그림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 정리하면
계시록은 잘 구성되고 짜여 진 정교한 문학 작품과 같다.
이 책은 미래 사건을 위한 청사진이나 타임 테이블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 글은 소아시아 7교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의 종인 요한을 통해서 보내신 예언적 메시지이다. 궁극적으로 이 책의 원 수신자는 요한의 글을 받았던 1세기 크리스챤 독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글을 받고 믿음에로 결단하도록 요청받고 계시록 안에서 사용된 다양한 구약인용과 상징적 이미지들을 통해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를 받고 그 안에서 종말론적 하나님의 통치를 기대하면서 그들이 처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2. 본문 주석
≫≫ 계시록 구조
프롤로그 (서언): 1:1-8
서론 : 1:9-3:22장
본론 : 4-16장
↳ 4-5장 : 창조주 하나님, 구속 주 예수그리스도 소개
↳ 6-16장 :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말미암은 종말론적 현상-구속과 심판
결론 : 17:1-22:5
↳ 17:1-20:15 : 바벨론(로마)과 두 짐승, 추종자들에 대한 최종심판
↳ 21:1-22:5 :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를 향한 구속의 완성
에필로그(결언) - 22:6-21
⁋ 1장 서론적 진술- 하나님의 계시
≫≫ 프롤로그 (서언): 1-8절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 계시의 경로를 설명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 천사 - 요한 : 궁극적으로 이 계시의 원천이 하나님,
고로 요한의 이 말씀은 반드시 그렇게 됨 또는 확실하게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예수그리스도의 계시 - * 주격적 소유격 : 예수그리스도가 주신 계시
* 목적격 소유격 :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계시
“속히 될 일” : “확실하게/반드시” 그렇게 된다.
“데이 (dei/)"란 단어 : 당위성, 종말론적 사건의 필연성 표현한다.
↳ 미래사건이 하나님에 의해 작정되었기 때문에 반드시/확실 하게 그러한 방향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표현함.
⇨ 신적 필연성의 사상
그 “반드시/ 확실하게” 되어지는 것의 내용 ⇨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성취된 사건들과/그것의 결과로 인한 완성을 기다려야하는 재림/최후의 심판/새 창조와 같은 최종적 구속의 사건들이 반드시/확실하게 일어나야 함을 암시.
↳ 이것은 복음서의 표현대로 하면 - “이미와 아직”의 긴장을 반영한다.
↳ 지금은 너희가 고난가운데 있지만 곧 끝남을 암시
즉 이미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성취가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지금 계속되어지고 있고 곧 완성 될 것임을 보여준다.
▶ 1:3: 계시록이 예전적 상황에서 쓰여졌다는 암시가 여기에 있다.
듣는자들 (oi` avkou,ontej) • 지키는 자들 (throu/ntej) ⇨ 복수형태
읽는자 (o` avnaginw,skwn) ⇨ 단수형태
이것은 한명의 낭독자와 여러 명의 회중과 또한 그 말씀을 지켜야 하는 공동체의 상황을 보여준다.
22: 7,9 :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되다” (다시 원서신의 상황에 되돌아온다)
⇨ 이것은 1:3절의 서신의 형태와 연결되고, 메시지의 암시를 주는데 즉 이것은 7교회에게 보냈고, 1:3절과 22:7, 9절을 포함하는 그 가운데 있는 메시지는 이 예언의 말씀이 어떤 것이고/ 무엇을 지켜야 되는지를 설명하고, 그 말씀을 지킴의 복됨을 설명한다.
▶ 1:4: 아시아에 7 교회
↳ 실제적인 7교회 - 행정 도로상의 요충지/ 통신의 중심지
↳ 7교회의 문제점이 전체교회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 황제 숭배의식에 연류
↳ 상징 7이 가리키듯이, 이 7 교회는 우주적 교회를 가리킨다.
※삼위일체 (교의학과는 다른)
≫ 하나님 - 이제도 계시고 (o` w'n), 전에도 계시고 (o` h=n),
장차 오실이 (o` evrco,menoj)
⇨ 사실 마지막 문구는 “영원히 계실이” 라는 것이 문맥상 더 자연스럽다.
그러나 요한은 이 구절을 “장차 오실이”로 표현하므로 ‘하나님의 영존성 을 넘어’ “하나님의 역동성” 즉 아직도 당신의 구속 사역을 역동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가리키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한다.
≫ 성령 - 일곱영: 숫자 7
편재성과 온 세상을 아시는 성령의 능력을 표현한다.
▶ 1:5:
≫ 예수 - ① 충성된 증인 (순교자) : 그의 증거의 핵심은 ? 죽으심과 고난 - 부활을 통해 하나님이 그를 옳다고 인정함
② 죽은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분 (o` prwto,tokoj)
↳ 부활의 첫 열매 - 구원의 보증금 이 것은 마지막 수확을 보장해 준다.
③ 땅의 임금들의 머리 : “땅”은 보통 하나님과 적대적인 세력을 의미, 즉 세상의 세력을 암시한다.
이것은 “그의 피로 가능함” - 기독론이 핵심을 이룬다.
▶ 1:7: “구름을 타고... 각인의 눈... 찌른자들...” ⇨ 구약 두 본문의 인용이다.
⇨ 단 7:13
* 구름 : 신적 임재
* 왕권이 인자 같은 이 인 예수에게 위임됨
* 종말론적 구원자인 예수의 오심은 구원과 심판을 가져온다.
⇨ 스가랴 12:10
* 종말에 하나님께서 열국들을 물리치심 (12:9)
*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에 대한 배신을 표현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에게서 예수에게로 전환되었다. 그럼 누가 예수를 찔렀나? 온 우주/세상에 적용된다. 이 문구는 단순히 문자적 로마병정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과 예수에 대적하는 땅의 모든족속 (예수 당시 + 하나님의 적대세력) 을 암시한다.
↳ 초림부터 - 재림에 이르기까지
▶ 1:8: “알파와 오메가” -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
22:13 “알파와 오메가” - 역사의 주관자 예수그리스도
이 두 구절은 역사의 주관자로써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는데, 하나 님의 신적 칭호가 예수그리스도의 자기 칭호에 적용됨으로써 하나님과 예수의 동등성을 보여준다.
즉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의 동등시를 통해, 이 두 부분 안에 포함된 계시의 말씀들이 확실히 성취되며 이루어 질 것을 암시한다.
≫≫ 서론부: 1:9-3:22
1:9-20과 2:1-3:22절로 나뉜다.
1:9-20은 2:1-3:22의 기독론적 연결 - 예수그리스도가 어떻게 교회와 연결되고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는 가를 보여준다.
1:9-20절은 다시 9-11절과 - 저자에 대한 소개와
12-20절은 승귀하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환상으로 나뉘어 진다.
1:9 요한의 상태 - 밧모섬에 있었다. 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증거 때문에 유배됨
환상을 보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기록
② 복음 증거 위해 밧모섬에 감
“예수안에 있는 환난과 나라와 인내” 에 동참하는 자였던 요한의 삶은 예수안에 있는 자들의 삶의 중요한 특징을 제시한다. 즉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환난과 인내가 필연적으로 수반됨을 암시한다.
1:10 “주의날” - 부활사건ㅇ 근거한 예배의 날
“성령에 감동하여” - 요한의 메시지가 신적 권위와 성령의 통제하에서 요한에게 알려 졌다는 것 (1:10,4:2,17:3,21:10) 이 네가지 성령에 감동하여 구절은 각각의 위치나 상황이 다르게 씌여졌다.
1:10 - 밧모섬
4:2 - 하늘보좌 밧모섬과 하늘이 대조 ( 공간적 초월성을 통해 고난의 장소와 영 광의 장소를 보여준다)
17:3 -광야
21:10 - 높은산 광야와 높은산이 대조, 음녀/부정/심판과 신부/정결/구원이 대조
이것은은 “약속과 성취의 구조적 형태”를 제공한다 - 이것들은 계시록의 연대기적 구조를 배제하고 반복적이고 주제적 문학적 형태를 가진 책임을 암시한다.
1:10 : 성령안에서는 1-3장의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약속 진술
4:2 : 성령안에서 4-16은 바벨론과 그의 동맹 국가들의 심판에 대한 약속 진술들
17:3 : 성령안에서 17-20에서 바벨론 심판에 대한 성취
21:10 성령안에서 21-22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성취 진술들
“나팔소리” - 주의날에 대한 전조, 경고의 의미를 가진다.
전쟁시 / 왕의 나타나심
너보는것 - 계시록의 전체 책 내용인데, - 이 기록론이 2-3장의 교회에 걸쳐 나타 난다.
1:13 “ 촛대(교회) 사이에 인자같은 이.... 발에 끌리는 옷.. 가슴에 금띠를 띠고 ” 출28:4에 근거해 제사장들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키며 이것은 예수의 제사장적 역할을 나타낸다.
1:14절의 묘사는 - “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 - 거룩하고 순결함 상징
“ 그의 눈은 불꽃같고 ” -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예수의 특성
1:15 “ 그의 발 ... 빛난 주석같고 ” - 대적을 물리치시고 승리하는 모습
“ 그의 음성 ... 많은 물소리 ” - 웅장한 말씀의 권위
이것을 통해서 드러내고 싶은 예수의 정체성은 예수는 하나님이시고 왕이시고 제사장이시고 메시야적 전사다 라는 특징들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1:19 네 본것 - 1:12-18의 내용
이제 있는일 - 2-3장
장차 될 일 - 4장 이후의 일들 - 계시록 전체에 대한 이러한 구분은 계시록의 내용을 지나치게 단순화 시키는 오류를 범한다. 사실 이 세가지 시제는 계시록 안에서 혼합된 형태로 반복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본문을 이해하는데 좋은 방법이다.
1:20 일곱별 - 일곱교회 사자
일곱촛대 - 일곱교회
⁋ 2장-3장 7교회에 보내는 편지
계시록은 일차적 독자로 그 당시의 7교회의 회중을 염두에 두고 쓰였다. 그들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때론 위로와 격려 위해 때로는 경고와 회개 위해 이 편지가 쓰여 졌다. 21C의 독자들인 우리들은 먼저 어떤 의도로 이 글이 쓰여 졌고 또 보내졌고 읽혀졌는가를 밝혀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따라서 본문을 통해 이런 정황을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이 편지 형태의 예언적 말씀들은 일정한 형태를 가진다.
1. 인사말
2. 기독론적 형식 (Tade legei formula)
3. 예수의 칭찬/책망/경고-oida formula-->>body
4. 성령의 말씀
5. 정복자에게 주어진 약속 말씀
1:9-20절에 나타난 기독론적 호칭들이 2-3장을 통해,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서론적 진술을 제시한다.
1. 에베소 교회 (2:1-7)
에베소 교회는 예수에 의해 책망 받는다 -->이유는 첫사랑을 버림-> 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
에베소 교회는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않음 --> 니골라당
상업,정치, 종교의 중심지 --> 아데미 신전이 유명
지형적변화 그리고 변화의 도시 --> “회개치 아니하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2:5)”는 그들에게 익숙한 용어
▶ 2:1: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이 (1:16)
엡 교회내에 그리스도의 현존을 암시,
“사이에” --> 교회가운데 있다.
▶ 2:2: 오이다 (oida) --> 기노스코 (ginosko) 를 쓰지 않고, 이 단어를 씀은 주님이 아신다고 얘기함은 교육과 체험을 통한 앎이 아니라, 완전하고 완벽하게, 삶의 모든 사실들을 사진 찍듯이 아는 것을 말함 (권성수)
▶ 2:4: 첫사랑을 버림
↳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을 버림 왜? 진리고수에의 집착은 다른 한쪽을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음-->> 진리에로의 균형이 필요
⊙ 종교적 중심지 --> 아데미 신전 (7대 불기사 중 하나)-->다이아나(로마식)
특히 에베소 도시의 삶을 지배함, 아데미의 예배자들은 그들의 여신을 최고의 신으로 찬양했고, 다른 어떤 신보다 더 우월한 것으로 고려함
특히 사람들은 아데미 여신을 “구세주, 우주의 여왕”으로 칭송함, 그들에 의해
아데미 신전은 “나무신전”으로 거룩한 장소로 간주됨 -->이 나무신전은 아데미 의 청원자들에게 있어 “구원의 장소”였다. 고로 여신 아데미는 최고의 신 으로 사람들에 의해 칭송받음
아데미의 특징중 하나는, 그녀가 가지는 전 우주적 세계에 대한 권위와 통제를 가진다. 그녀는 악마적 영역, 자연의 영들, 사람들의 운명 즉 죽음, 질병, 고통, 출생, 건강에 관여한다.
이방 종교나 아데미 제의에 있어서 구원은 질병, 재앙, 이생에서의 죽음으로부터 의 구원을 의미한다.
이런 다신적 제국 종교적 상황 속에서 나무신전으로써 세워진 아데미 신전은 정 복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와 대조적 이미지 제공-> 아데 미의 나무 신전은 백성들의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그것은 죽은 나무이다.
이런 에베소 교회의 “생명의 나무와 아데미 나무”의 대조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들의 역사적, 문화적 상황 속에서 강력한 메시지를 형성한다.
≫≫ 성경에서 나무는 “하나님의 생명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된다.
↳ 삶을 주는 신적 권능의 상징
or 십자가의 구속적 효과
↳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현존의 회복
▶ 2:7: 하나님의 낙원 --> 첫 창조때 잃어버린 낙원이 축복의 미래의 때를 가진 종말론적 낙원을 통해 회복될 것임.
신약에 예수는 정복자들에게 낙원의 문을 열 메시야로써 나타나고 유대사상에 따 르면 낙원과 생명의 나무가 메시야 시대에 다시 나타날 것에 대한 기대
-->> 다시 설명해보면≫ 위의 두가지 그림은 대조를 형성
나무신전으로 만들어진 아데미신전 --> 생명을 제공할 수 없다.
↳ 그것은 죽은 나무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종말론적 구원을 제시 (종말은 태초의 회복)
↳ 십자가의 구원을 암시
누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이 생명나무를 소유하나? --->>>정복자들이
↳ 첫 사랑을 회복한 자들에게: 21-22장에 성취 로 나온다.
⎆⎆ 요약하면
에베소 교회는 변화와 종교의 중심지로써 다양한 문제를 이방 환경 속에서 겪게 됨 이런 다신교적/이방적 환경 속에서 기독교는 미신으로써 취급됨 그러나 아데미는 진정한 구원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구원자임을 천명한다.
2. 서머나 교회 (2:8-11)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과 나중이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나신이” (2:8)로 소개
이것은 1:17과 18절의 반영
↳ 그리스도의 영생과 신적신분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한 차원에 서 소개된다.
이 기독론적 타이틀은 교회의 상황을 잘 반영하고 교회의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제공한다. 이 교회는 유대인들로부터 내적/외적 억압을 그리고 박해와 가난의 위기에 직면 한다.
◉ 도시 서머나-->> 1) 여신 로마에게 성전을 건립한 소아시아에 있는 최초의 도 시면서 황제 티베리우스에게 봉헌할 성전 건립에 대한 허 가를 받음
2) 자랑거리: 호머의 출생지 이면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3) 제국제의와 종교적 중심지로써 후견 신으로써 시벨레 숭 배 고시-->> 그들의 신학은 가을에 매년 죽고 봄에 다시 삶의 신학을 가지고 있다.
이런 문화적 종교적 상황은 그들이 익숙한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배경 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론적 타이틀에 적용 된다-->> 이런 배경과 상황의 영향은 이 도시의 삶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끼친다.
특히 서머나 도시에서의 제국 제의나 로마에 대한 열렬한 헌신은 로마로부터 특별한 호의를 얻음-->> 이러한 동화나 타협에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특권을 얻음
유대인들과의 갈등과 차별을 크리스챤들이 경험함
▶ 2:9: “환란과 궁핍”-->> 서머나 교회의 크리스챤이 직면했던 삶의 정황에 대한 바른 서술, 경제적 어려움을 겪음≫ 경제적 구조가 황 제 숭배들과 같은 제국의 이데올로기와 연결 되어 있 기 때문에 여기에 연류됨을 거부함은 사회, 정치, 경제 적 차별을 받는다.
이들에게 크리스챤으로 남아있음은 당연히 “고난”을 감당해야 하는 숙제 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난과 투옥이 크리스챤의 최종적 운명이 아님을 인식해야 함
▶ 2:10: “10일”-->> 강렬한 박해의 제한된 시기, 이것은 단 1:12-15의 암시로 그들의 신앙을 10일 간에 거쳐 시험 그러나 승리할 것임≫ 문자적 보다는 상징적 의미로 고난의 시기가 짧을 것임과 하나님의 백성의 승리가 1000년에 걸쳐 일어날 것임을 보여준다.
⇨ “생명의 면류관” (stefanos)-->> 서머나는 게임으로 유명한 도시로 면류관의 이미지는 서머나 교회에 익숙한 이미지이다. 면류관은 승리/영예/왕권의 암시로 2가지 배경에서 쓰인다.--->>>
1. 운동 경기 시 or 음악 경연 시 승자에게 주어진 상으로써 제공된다.
↳ 이것은 최고의 지상적 명예에 해당
2. 군사적 승리의 상징-> 승리한 장군은 승리의 면류관으로 명예롭게 된다. 고로 면류관은 이 같은 사람들-황제, 개선장군, 승리한 운동선수들-에게 주어진 명예의 이미지
--->>> 신약에서 이 단어는 “신실한 자들에 대한 종말론적 관점”에서 쓰여 진다. 이것이 죽음까지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거를 지키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즉 생명의 면류관이 고통과 시련과 환란 속에서 끝까지 이기는 크리스챤들에게 승리와 생명의 삶을 보장 해줌≫ 영생에 대한 보장으로써 정복자들에게 격려와 희망을 제공한다.
고로 생명의 면류관은 죽기까지 충성하라와 대조적 이미지를 제시
⇩ ⇩ ⇩
영생 ⇔ 죽음 / 2:8의 기독론적 타이틀인 “죽었다가 다시 사신이”의 반영
≫≫ 정복자들에게 주어진 약속 말씀
▶ 2:11: “둘째 사망” ⇨ 다음 세계에서 ‘불신자들의 죽음’을 가리키는 전문 랍비 언어 (Mounce)
필로 역시 죽음을 2종류로 나눈다.
↳ 1. 선한자의 죽음
2. 악한자의 죽음
계시록은 첫째 사망을 -->> 서머나 교인이 견뎌야 했던 “물리적 죽음”
둘째 사망을 -->> 서머나 교인이 피해야 했던 “영원한 죽음”을 가리킴.
“둘째 사망의해를 받지 않음” (hume)-->> 강조적 미래 부인을 암시하는 단어로 하나님께 신실한 백성들은 (1차적으로는 서머나 교인들) 결코 미래에 둘째 사망을 받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초월적/공간적 이상을 제시-->> 만약 천상 관점에서 그들이 (서머나 교인들) 정복자가 아니면 그들은 미래에 반드시 있을 “둘째 사망”을 받을 것이지만 만약 지상적 관점에서 그들이 고난과 죽음을 받는다면 그들은 미래에 반드시 있을 “둘째 사망에 참여치 않을 것”임을 말한다.
⎆⎆ 요약하면
서머나 교회는 다양한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로마와 유대인들로부터 겪음 특히 종교적 중심지로써 죽음과 박해에 직면 그래서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산자”로 소개 되고 있다.
정복자 (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은 2가지 형태를 띈다.
1. 긍정적: 시련과 박해와 죽음가운데 행했던 그들의 행위 때문에 그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임
2. 부정적: 영원한 죽음을 가리키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
3. 버가모 교회 (2:12-17)
기독론-->>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 (2:12)
↳ 1:16의 반영으로 이것은 구약 이사야 11:4과 49:2의 인용
구약의 물리적 칼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에서의 두 날가진 칼은 “그리스도의 정의”의 이미지
어떻게? 그의 말씀으로
↳ 발람과 니골라 당의 가르침에 반하여 하나님/예수 말씀의 탁월성 을 강조한다.
◉ 도시 버가모-->> 주요 군사/정치/종교적 중심지
4명의 도시 후견신
↳ 1. 제우스- 구세주, 신들의 왕
2. 아데나- 처녀 신, 승리 여신
3. 디오니수스- 술의 신
4. 아스클레피오스- 치료의 신
이들은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사람들을 지켜주는 도시의 후견 신들로써 시민들은 이런 종교적 삶에 매일 직면 하게 된다-->> 경제/종교 활동에
그리고 위의 신들은 다양한 일상에서 시민들의 삶을 통제했다.
↳ * 곡물과 가축의 번식
* 적들에 대한 승리
* 질병으로부터 회복
* 삶의 문제들에 대한 현명한 충고 등
▶ 2:13: “사단의 보좌”-->> 주격적 소유격으로 하나님에 대한 모방으로 사단이 왕적 주권을 행사 하는 곳으로써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내 충성된 증인”-->> 1:5절에서 예수에게 사용 된 묘사와 동일한 것으로써,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 부활로써 하나님에 의해 옳다고 확증 되었듯이, 충성된 증인으로써 안디바의 죽음과 그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가 옳다고 확증함을 설명
▶ 2:14: “책망”-->> 우상 제물 먹음과 행음
↳ 영적인 행음: 하나님께 범죄하고 우 상을 섬김
◉ 우상제물의 문제: 발람-> 구약 민수기 25:1-3; 31:16-->> 모압 여인과 성적 부도덕에로 발람이 이끔, 그래서 그는 부패로 이끄는 거짓 선생 or 거짓 선지자의 원형이 된다. 즉 불신앙을 통한 타협에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끔
우상제물을 먹음은 이방 사회와 종교와의 타협의 문제로 인식
↳ 하나님에 대한 배교/영적 간음으로 회개를 촉구함 -->>그래서 이러한 것들에 대한 이김/정복을 요청한다.
≫≫ 정복자들에게 주어진 약속 말씀
▶ 2:17: “감추었던 만나”-->> 광야 여행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기적적인 음식 (출. 16:31-35; 민. 11:6-9)
↳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적인 필요를 위해서 주심
◉ 유대 전승: 예루살렘 성전 멸망 후 예레미야가 시내 산에 언약궤와 만나 항아리를 숨겼다는 전승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메시야가 올 때 까지 or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 될 때 까지 보존 되었다가 종말론적 구원의 시대에 백성들이 다시 그들에게 주어질 이 기적적인 음식을 즐길 것 이라는 전승이 있다.
계시록에서 만나는 발람과 니골라 당의 상황과 관련-->> 주변 이방 문화에 동화, 발람이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우상 숭배에로 이끌었던 것처럼 버가모 교회 안에서 발람과 니골라 당의 가르침을 따랐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황제와 이방 신들에게 바쳐진 음식 먹음을 어떤 문제없이 받아 들였다. ⇔ 이것은 그들에게 영생 (만나의 상징)을 제공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황제와 이방 신들이 제공한 음식이 그것에 동화한 자들에게 매일 매일의 음식을 제공했다면 숨겨진 만나 (천상 음식)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생을 제공 한다는 것이다.
“흰 돌”-->> 대중 축제나 or 향연의 입장을 가능케 하기 위한 상징으로써 사용 된다. 즉 정복자들의 메시야적 향연에의 입장을 허용 하는 상징적 이미지로써 사용됨
↳ “천상 축제”
⇳
발람과 니골라 당의 “우상 축제”와 대조를 이룬다.
우상 제물의 “일시적이고 영구적이지 않은 것”과 대조적으로 천상 음식으로써 만나와 그리고 메시야적 축제에로의 허용 티켓으로써의 흰 돌은 서로 대조적 이미지를 제공하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준다.
“새 이름”-->> 이름은 한 사람의 인격/사역과 관련
↳ * 축복의 새로운 삶을 표현하는 이미지
* 종말론적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신분의 변화: 그리스도 안에서 변형된 정체성과 새로운 신분을 소유한 자들 <<-- 그들의 거친 매일 매일의 실 제와 대조적으로
4. 두아디라 교회 (2:18-29)
기독론적 암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 (2:18)-->> 1:13-15의 반영으로 이세벨과 그의 자녀들을 심판하는 심판주로, 정복하는 그의 자녀들에게 구원을 제시하는 구속주로 소개 ⊳ 교회의 상황에 기인 한다: 이세벨이란 거짓 여선지자에 의한 내적인 거짓 가르침에 위협
⊙ 도시 두아디라-->> 무역 길드의 중심지 (예. 도기공, 재단사, 염료업, 수선공), 상업과 제조업의 무역의 통로로써 이런 무역 길드는 이방 종교와 상당한 연관, 길드를 중심으로 한 축제나 예배 형태는 “우상 숭배” 행위로 이곳에의 불참은 사업과 그들과의 연합에 치명적 타격
그들은 자신의 후견 신들을 소유-> 기독교인들은 이곳에 참여 하도록 강요받음
이런 후견 신들의 숭배에 참여 ⇔ 진실한 하나님 예배와 대조
▶ 2:18: “눈이 불꽃 같고...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우주적 심판자로 묘사
▶ 2:19: “내가 안다” (oida formula)-->> 두아디라 교회의 기독교적 4가지 덕목 ⇨ 사랑/믿음/섬김/인내를 소유함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회개를 요구함
▶ 2:20: “이세벨”-->> 구약에서 아합 왕의 부인으로 남편을 꾀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알을 숭배하도록 유혹한 여인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성적 부 도덕과 이방사회와의 타협에로 이끈 거짓 선지자 or 거짓 선생의 원형으로 나타난다.
비록 그녀의 정체성은 부 정확하나 그녀가 교회 내에서 상당한 위치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추종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거짓 선지자/선생으로
↳ 그녀의 가르침은 교회 내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하여 그들로 구원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행위, 어떤 행위?-->>
↳ 거짓 가르침 즉 이방 신들을 예배하게 만드는 타협 과 우상 숭배의 문제
⇩
경제적 이득과 관련
“용납함”-->> 그녀의 잘못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즉 사단적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그것을 허락하고 관용 하였다는 것
▶ 2:21: “음행”-->> 우상 숭배에 대한 묘사 즉 하나님에 대한 영적 간음을 의미 그리고 그런 영적 간음에 대한 결과가 22절에 묘사
▶ 2:22-23: 그 결과의 심판이 3가지 대상에게 적용 된다.
1. 이세벨 자신⇨ “침상에 던질 터”-->> 질병에 걸려 아프게 한다의 뜻으로 곧 질병 통해 이사벨을 심판하시겠다는 의미
2.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 그녀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
3. “그의 자녀”-->> 사망
⇔ 하나님의 자녀들의 운명-->> 영생
-->> 23절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의 구절은 구원의 긴장성을 잘 보여준다. 이미 하나님의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사랑/믿음/섬김/인내의 덕목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이 그들의 구원을 자동적으로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 -> “이미와 아직”의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
▶ 2:26: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가 받나?
↳ * 정복자들
* 나의 일을 끝까지 지키는 자들-->> 이세벨과 타협하지 않고 우상숭배에 (영적 간음) 참여하지 않고 말씀을 끝까지 지키 는 자
▶ 2:27: “철장...다스림”-->> 2가지 의미로 쓰인다.
↳ 1. 부수다: 하나님의 적대 세력들을
2. 다스리다/통치하다/(양을)치다-> 하나님의 백성 을, 즉 목자가 양을 치듯이 그의 백성을 통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이것은 그 당시의 사회/정치의 반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 (교회)은 로마의 권세에 직면하고 철장으로 통치 받고 도자기처럼 으깨어 졌다. 이처럼 소외되고 억압받는 소수의 그룹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한 희망과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필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종말론적 삶의 보장으로 종말론적인 주의 날에 주님이 그의 적대 세력들을 파괴시키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며 땅에 그의 의로운 왕국을 세우실 것이 다란 기대로 본문의 메시지가 재해석됨
≫ 메시야적 왕국의 시대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들의 파멸로 시작될 것임을 말해준다. -->> 새 질서가 옛 질서를 대체한다는 것
↳* 이것 통해 교인들의 세계관을 수정하기 원함 * 천상의 관점을 제시
▶ 2:28: “새벽별”-->> 몇가지 학자들에 의한 제안들이 있다.
1. 혹성 Venus: 점성술이 12궁도에 의거, 권위와 통치의 상징
2. 승리와 주권의 상징 (비슬리-머리)
3. 새 시대의 전령 (오운)
그러나 계시록 본문 자체인 22:16에서는 예수 자신을 “광명한 새벽별”로 묘사 또한 이것은 민수기 24:17절의 암시로 이것은 메시야적 통치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따라서 이 표현은 보다 더 포괄적인 해석인 정복자들 (이기는 자들)에게 예수는 자기 자신 뿐 아니라 그 자신의 통치권과 권위를 줄 것이라고 약속한다.
-> 이런 약속 말씀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제공한다. 5. 사데 교회 (3:1-6)
삶과 죽음의 대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교회 즉 만약 서머나 교회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살아있는 교회라면 사데 교회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죽은 교회의 전형을 보여준다.-->> 바로 그와 같은 그 교회의 상황을 “7영과 7별을 잡고 계시는” (3:1) 예수가 잘 알고 계시다는 뜻
⊙ 도시 사데-->> 1. 지형적으로 ‘완벽한 이상적 요새’로 불려진다. 고대에 이 도시는 난공불락의 도시로 알려졌다. 그러나 역사 통해서 2번 침공을 당했다.
↳ B.C. 549년에 고레스에게
B.C. 214년에 안티오쿠스에 의해
-->> 이런 침략의 원인은 그들의 부주의함 or 태만에 의해
2. B.C. 560-546때 크뢰수스왕 시대에 사데는 부와 번영의 도시로써 명성을 날림
3. 로마시대에 직물 산업의 중심지였다. 특히 염색업이 고대에 유명한 도시
4. 사데의 후견 신은 ‘시벨레와 아데미 신’-> 그들은 그 도시의 후견 신들로써 백성들의 삶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췄다.
⇨ 램세이 같은 학자는 아시아 지역 중 사데는 과거의 가장 찬란한 역사를 가진 도시였다고 주장한다. 이 도시 과거의 가장 찬란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현재의 처절함을 드러내므로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 3:1: 곧 바로 칭찬이 아니라 책망으로 시작-->> “네가 살았다 ... 죽은 자” ⊳ 이 교회의 영적인 상황을 잘 보여 준다-삶과 죽음의 상태: 이것은 이 교회의 영적인 무감각/나태에 대해 경고한다.
▶ 3:3: 앞의 3:2절 구절인 “죽게 된 것”의 반전을 보여준다. ⇔ 즉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온전함을 찾고 회복해야함을 말한다. 어떻게?---->>>
1. “생각하고”-> “기억하라”가 더 올바른 번역으로 그들이 처음 받은 복음의 순수성을 기억하라는 의미
2. “지키라”-> 무엇? 받고 들었던 것
↳ 계속적으로 지킴과 거함의 태도를 유지하라는 것: 하나님 의 백성의 올 바른 삶의 자세
3. “회개하라”-> 삶의 태도와 방향의 재정립
▶ 3:4: “흰옷”-->> 의류 생산의 중심지로써 옷에 대한 이미지는 그들에게 익숙한 이미지로 “영생 또는 순수한 영적인 삶과 승리”의 이미지로 사용 된다. 즉 이교적 상황과 문화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써 영적인 삶과 승리를 암시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 동화/타협에 그들의 옷을 더럽혀 진 것과 대조를 이루는데 이 교회의 문제는 영적인 방탕과 우상 숭배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이런 외적인 조건들에 승리하고 정복자들이 된다면 그들은 흰옷으로 상징화 되는 영생과 영적인 승리를 얻게 될 것 이 다란 것이 주님의 약속이다.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 3:5: “생명 책”-->> 구약 출. 32:32-33의 반영
↳ 모세가 그의 백성위해 하나님에게 간구 그의 백 성의 죄를 용서 하지 않으신다면 그의 이름을 하나님이 쓴 책으로부터 지우시도록 기도한 내 용 ≫ 하나님의 관점에서 책에서 이름을 지움은 영생 or 구원을 제공하지 않음을 의미
생명책은 유비적 성격이 있는데 고대에 범죄자의 이름이 도시의 시민 기록부에서 제거되면 그는 더 이상 그 도시의 시민이 아니었던 것처럼, 생명책에서 이름이 제거됨은 천상 백성의 시민권을 상실함을 의미한다. 고로 이것은 로마 시민권 기록부와 대조되는 하나님 나라 시민 기록부의 상징이다.
시 69:28과 단 12:1에서, 이름이 책에 씌여진 사람은 구원 받게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름이 지워질 것임을 증거 한다.
고로 생명책에 기록됨과 지워짐의 그림 언어는 정복자 (이기는 자)와 패배자 (영적 나태와 방종에 빠진 자들) 사이에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임을 알 수 있다.
⇩
1. 하나님의 백성 (정복자)-> 영생과 구원을 보증
2. 하나님의 적대세력 (패배자)-> 영원한 형벌과 죽음
-->>사데 교회에게 주는 메시지는 바로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켜서 영원이 구원 받은 자가 누릴 영생과 승리의 삶을 누릴 것 을 촉구한다.
6. 필라델피아 교회 (3:7-13)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로 소개된 기독론적 칭호는 1:5과 1:18의 반영으로 ‘하나님과 그의 왕국에 들어가도록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절대적 통제나 권위를 가지고 계신 그리스도를 묘사한다. -->> 이 교회에 완전한 통제나 권위를 소유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특징을 소개
⊙ 도시 필라델피아-->> 1. 지리적으로 제국의 통신망의 중심 그리고 또 다른 특성은 A.D. 17년에 발생한 “지진”의 사건이다. 타키투스 같은 로마 역사가는 이때 지진의 엄청난 아시아 지역에 대한 재난을 기록한다. 이 지진은 필라델피아 도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뒤흔들었고 새로운 지진에 대한 위협의 가운데 살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지진의 영향으로 인해 이웃도시로 탈출했다. ⇨ 이런 지리적인 이미지는 3장12절의 기둥 이미지에 대한 배경을 제공한다.
2. 지진의 영향으로 황제 티베리우스는 많은 혜택을 이 도시에 주었고 그래서 이것에 대한 감사로 새로운 이름인 Neocaesarea (가이사의 새로운 성읍)을 취했다. 그리고 베스파시안 통치 동안에도 필라델피아는 그의 성 (surname)인 플라비아라 불리워졌다.
↳ 이런 배경 하에서 새 이름에 대한 이미지는 익숙한 용어였다.
▶ 3:7: “거룩하고 진실..”-->> 구약의 하나님에게 적용되었던 용어로 예수가 하나님의 생명과 존재를 소유하신 분으로 그분만이 거룩하시고 요동치 않고 진실하시다는 사실
“다윗의 열쇠”-->> 이사야 22:22의 인용으로 히스기야의 왕궁 책임자인 ‘엘리아김’에 대한 이야기로써 그는 왕을 방문하러 오는 방문자를 들여보내는 책임을 맡고 있던 자로써, 이제 그에 대한 것이 예수에게 적용 되어서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신적 권세와 권위와 통제를 가지고 계신 분임을 설명한다.
▶ 3:8: “열린 문”-->> 혹자는 선교적 맥락에서 이 본문을 이해, 선교적 사역의 기회로 본다. 그러나 이것은 본문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 유대인들과의 갈등의 맥락에서 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열려진 문을 통해 들어감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 됨을 말해준다. 복음서에 보면 하나님 나라를 ‘집으로 들어감’의 용어로 표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볼 때도 문, 열쇠 등의 이미지가 여기에 잘 어울린다. 고로 “열림 문”의 이미지는 교회 공동체에게 구원의 문이란 이미지를 제공함으로써 위로와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를 제공한다.
▶ 3:10: “시험의 때”-->>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
↳ 하나님의 적대 세력들 (사단에게 속한 자들)
이것은 2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긍정과 부정
↳ 1. 사단에게 속한 하나님의 적대 세력을 심판할 때-> 언제? 종말에
2.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때
↳ 영적인 보호와 승리
▶ 3:11: “굳게 잡아”-->>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말을 지키고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는 삶의 양태를 유지 시켜 나가라는 것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정복자들에게 주어진 약속 말씀이 3:12에 소개되고 있다.
▶ 3:12: “하나님 성전에 기둥”-->>
1. 필라델피아도시는 이방제의의 중요도시--> 특히 술의 신인 “디오니수스”가 이 도시의 후견신, 그리고 성전의 이미지는 많은 이방 신전을 매일매일 접한 그들 에게는 익숙한 이미지, 그리고 이런 종교적 삶을 그들의 일상의 삶에 영향을 끼 침. 고로 그들의 익숙한 성전 이미지 속에서, 성전 기둥이라는 것은 몇몇 후견 신의 인도아래 제공된 안정성과 보호를 의미했다.
2. 그리고 다른 이미지는 그들의 지진에 대한 불안한 삶을 반영시킨다.
지진을 겪은 그들에게 삶의 터전이 흔들리고 있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성전 의 기둥 됨은 안정과 보호의 이미지를 제공한다.
즉 지진 때문에 삶의 터전이 흔들리고, 쫓겨나가고, 탈출하는 상황에서 하나님 의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될 것이라는 확고함과 보호의 기능은 필라 델피아 교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를 주었을 것임
-->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
↳ 이것은 주격적 소유격으로, 하나님 자신이 성전이심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 자신이 성전이 되신 곳에서, 그의 백성들 - 정복자들은 - 은 기둥이 될 것이다. --> 하나님의 백성들의 확실하고, 확고한 그 림을 제공한다.
--> 그들이 결코 나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그 도시의 지진 상황을 잘 반영 해 주고, 부정의 ‘hume’ 는 미래에 관 한 부정의 가장 정확한 형태
↳ 반드시 하나님의 성전 기둥이 됨에 있어서 확고할 것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왕국에 확실하게 있을 것임)
“새 이름”-->>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을 표시
↳ “신적 소유권”
↠ 하나님의 이름 소유-> 천상 시민권자임을 보여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소유-> 예수에게 속한 자임을 보여줌
↳ 이 둘은 동일한 의미의 다른 표현
-->> 필라델피아 교회에게 주는 메시지는 그들의 적은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예수님의 말씀을 굳게 지키는 정복자가 되면 그들에게 영원히 안정된 구원의 삶이 허락될 것임을 위로와 격려와 희망의 관점에서 제시한다.
7. 라오디게아 교회 (3:14-22)
기독론적 호칭 ⇨ “아멘, 충성, 참된 증인, 창조의 근본” (3:14)-->> 축어적은 아니나 1:5절과 유사성을 띄고 이런 호칭은 그의 사역, 죽음, 부활통한 그의 새 창조 즉 종말론적인 창조 사건과 연결된다.
⊙ 도시 라오디게아-->> 1. 라오디게아 도시의 문제: 물 공급의 문제로 물 공급원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2개의 도시에서 물 부족 현상을 해결해야 했다.
↳ 1. 골로새: 신선하고 정결한 물을 제공
2. 히에라폴리스: 뜨거운 온천물을 공급해줌
⇩
약 9-10km 거리의 물을 도수관을 통해 물을 공급 그러나 그것이 라오디게아에 도착할 때쯤 되면 물 은 미즈근 하게 되어서 거의 구토날 지경까지 되었 다 (3:16절의 반영).
2. 이 도시는 3가지로 유명
↳ 1) 의학- 안과가 유명, 유명한 의학 학교가 있었다.
2) 의료업- 흑색 양모 생산으로 유명
3) 금융업- 재정의 중심지
▶ 3:16: “네가 미지근... 너를... 내치리라” -->> 이것은 도시의 물 공급과 연관되어 있고 바로 이 교회가 이런 미즈근한 상태에 있어서 구토할 것 같은 영적 몰락의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 3:17: “나는 부자라”-->> 이 교회 안에는 박해나 핍박의 흔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영적 자기만족이나 방종을 우리는 찾아 볼 수 있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과 타협“ 하지 않으면 불가능 ≫ 하나님 없이 살고, 만족 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려고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본문은 역설의 관점을 제시해 준다.
그들은 물질적으로는 모든 것이 부유하고 만족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을 아래와 같이 책망 하신다.
↳ 영적으로 그들은 1) 가난함- 부유한 금융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2) 눈먼 것- 의학으로 유명한 도시임에도 불구 하고 영적으로 그들은 눈 멈
3) 벗은 것- 유명한 의류의 중심지임에도 불구 하고 영적으로 그들은 벗음
≫≫ 역설적으로 그들이 가장 자랑하는 것들이 실상은 그들에게 가장 영적으로 취약한 부분임을 알 수 있다.
▶ 3:20: ‘종말론적 잔치’-->> 3가지 견해로 압축되어진다.
↳ 1. 주와의 현재적 교제위한 개인의 마음에로 부르심
2. 성만찬 그림
3. 종말론적 견해- 주와의 종말론적 식탁교제를 기대함
본문은 1과 2번 보다는 3번의 의미에 더 가까운 관점을 제시한다.
▶ 3:21: 이기는 자에게 주어진 약속 말씀으로 정복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보좌에 앉게 하실 것임을 약속하신다. “보좌”의 이미지는 ⇨ 왕이나 신들의 권능을 상징 하는 것으로 그의 백성들 위에 통치나 권위를 행사 한다.
-> 지상적 보좌의 이런 이미지가 하나님과 예수에게 적용 ≫ 온 세상과 이 땅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으로 소개
↳ *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언약적 관계 형성
* 하나님의 적대 세력들에게- 사법적 권위와 권세를 행사
고로 보좌 이미지는 정복자들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어떻게 이 땅에/용에/짐승에게 행해지는가를 보여 주므로 그들로 하여금 끝까지 믿음 안에 거하기를 촉구하고 이 땅 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승리 하도록 위로/격려/희망을 주는 승리의 상징적 표현으로 제시된다.
⁋ 4-5장->> 6-16장까지의 서론적 진술
⇨ 하늘 --> 궁극적인 실재의 영역
↳ 하늘의 사건은 땅의 사건을 결정짓는다.
⇨ 보좌는 계시록의 중점적 상징중 하나 --> “하나님의 주권의 상징”-->하나님이
전세계를 통치함
↳ 2-3장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직면했던 현재적 위기와 대조적으로 보좌 이상은 하나님이 4생물과 24장로들에 의한 예배를 소개함으로 천상예 배 장면을 보여준다.
⇨ 누가 진정한 예배의 대상인가?
누가 전 세계의 통치자 인가?
누가 모든 피조물의 주권자? ≫≫ 하나님 or 사단?
≫≫ 본론부 (4-16장) : 심판과 구속
주요주제는 심판 --> 악의 세력에 대한
구속 -->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 4-5장 --> 하늘 성전 환상
⊙ 6-16장 -->하늘 성전 환상에 근거하여 심판과 구속의 이야기를 전재한다.
↳ 1. 6-8:5- 7인 --> 삽입 : 7장
2. 8:6-14:20- 7나팔 --> 삽입 : 10-11:13
3. 15-16:21- 7대접
↱ 1. 황제숭배 2. 통치자,통치권
↱ 예배와 통치의 이미지 -->하늘보좌환상 ↔ 땅의보좌 이미지와 대조
4장 창조주 하나님에 촛첨 --> 상징적으로 풀어서 말씀
↳ 1. 4:1-2a --> 환상의 도입부분
2. 4:2b-3 -->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비젼
3. 4:4-8b --> 보좌의 주변 내용에 대한 소개
4. 4:8c-11 --> 천상 존재들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
▶ 4:1: “이일후에” (meta tauta) --> 시간적 순서가 아님, 환상의 논리적 순서
( 4번: 4:1, 7:1, 9;15;5; 18:1 ) ↳ 환상을 체험한 정확한 순서가 아님
1-3장에서 주어진 환상과의 관계에서 좀 더 발전된 내용을 제공하려는 목적
특히 3:21에서 “보좌”에 대한 좀 더 발전되고/ 확대되고/ 연장된 논리의 결과
↳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문학적 이고 수사학적 기법을 사용
"하늘에 열린문” --> “영원한 축복에 접근”함에 대한 상징적 접근
↳ 궁극적인 실재의 영역
계시의 통로 (요1:51) -> 하나님과 교제를 가능케 함
↳ 종말론적 사건의 성취의 관점제공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같은 음성”-->> 1:10의 말씀과 연속성을 갖는다. 이것은 1:10과 4:1과의 연결과 연속성을 들어낸다.
“마땅히 될 일”-->> 말세에 예수 통해 이미 이루어지고 또 미래에 이루어질 구속 사적 사건들의 초점
↳이것들은 하늘에서 결정되었고 땅에서 이 같은 방식으로 시행 될 것을 암시 한다. 하나님의 구속계시를 7교회의 회중과 성경 독자들에게 드러내기 위한 특별한 목적을 가진다.
▶ 4:2: “보좌”-->> 실제적 보좌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왕적 통치권 또는 권위를 설명한다. 계시록에서 보좌는 중요한 주제중 하나로서 짐승의 보좌와 대조되는 (13:2; 16:10) 하나님의 통치와 사단의 통치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제시함
이것은 앞선 구절 3:21의 보좌이미지와 연관되어서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의 의미”로써 이것에 대한 공간적 초월성을 제시하며 하나님에 대한 전 우주적 통치권을 제시한다.
▶ 4:3: “무지개”-->> 노아 언약의 반영으로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을 창조하는 새 창조의 표현으로서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 심판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의 관점을 제시해준다.
≫≫ 4:4-8-->>보좌주변에 대한 묘사
▶ 4:4: 24장로 --> 흰옷 --> 승리/순결 -->> 세상과 타협하지 않음
↳ 금면류관 --> 누가쓰냐? 승리자/정복자
↳ 영생/승리
24장로의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제안이 있어왔다.
↳ 1. 천상존재 (krodel)
2. 이스라엘의 지도자 (Ford)
3. 성전 제사장 --> 역상11:26 (Davis)
4. 교회 --> 천상교회 (Swete)
24장로들
↳12x12에 대한 상징적 숫자로 구약의 12지파 그리고 신약의 12사도를 총칭하는 천상의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교회)를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에 동참함을 암시하는 면류관을 쓰고 그리고 승리와 순결에 대한 의미로 흰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것은 천상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가 이미 획득한 생명과 승리를 암시한다. 따라서 이것은 지상에서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준다.
▶ 4:5: “번개, 음성, 뇌성”-->>이것들이 보좌로부터 발원 한다 (8:5;11:19;16:18). 이것은 구약 출19:16, 겔1:13의 인용으로서 종말론적 신현 현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2가지 메시지를 갖는데
↳1.하나님의 백성에게 ->신적구원
2.하나님의 적대세력에게 ->신적심판
하늘의 이러한 현상이 땅의 일을 결정함을 제시하는데 이것의 출처가 보좌임은 이런 구원과 심판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위에 언급된 4번의 종말론적 신현 현상은 (4:5;8:5;11:19;16:18) 이글을 받고 읽었던 1C독자들에게 새로운 상징적/문학적 변형을 제시해준다.
↳1. 관점의 변형
2. 새로운 신적이해->이 세상을 천상 실제의 관점에서 보도록 함
3. 갈수록 표현이 강하게 보여짐
4. 각각의 위치가 심판이 끝난 7번째에 놓인다는 것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이 천상 성전에서 시행됨으로 이런 일들이 확실히 반드시 그렇게 발생할 것임을 강한 의지적 표현으로 제시한다.
▶ 4:6: “수정같은 유리바다”-->>겔 1:22의 반영으로 하늘 성전의 거룩성을 상징한다.
“네 생물”-->>숫자 4는 역시 상징적 의미로 전 세계 피조계를 나타난다.
↳ 전세계의 창조주면서 통치자이신 분을 예배한다.
▶ 4:11:9-10절에서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11절에서 그것에 대한 이유가 설명된다. 왜냐하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결정되는 하나님의 주권의 시행의 장소가 천상보좌이기 때문이다.
⁋ 5장 구속주 어린양
4장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했다면 5장은 구속주 어린양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는 그 누구도 뗄 수 없는 7인으로 봉인된 책을 떼는 죽임당한 어린양으로 묘사된다. 바로 그의 이런 정체성을 통해 온 피조계가 그를 찬양한다.
▶ 5:1 “오른손에 책”-->>오른손은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하고 그의 손에 들린 책은 많은 논쟁이 있지만 오늘 본문은 그 책이 인류의 운명을 다룬다는 면에서 하나님의 구속과 심판에 대한 선포의 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을 열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요한은 크게 우는 장면이 5:2-4절에 나타난다. 그러나 5절에 그 책을 열수 있는 자가 등장한다.
▶ 5:5: 그는 바로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이것은 창 49:9와 사11:1, 10의 인용으로 이 두 본문은 구약에서 메시아적 본문으로 사용된다.
↳ 군사적/전사 메시아의 이미지로 사용
여기에서 우리는 소위 “들음의 공식(hearing formula)"을 발견한다. 요한은 위의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인 그가 이 책을 열 것이다라는 것을 듣는다.
▶ 5:6: “어린양”-->>그러나 6절을 통해서 소위 “봄 공식(seeing formula)”을 발견한다. 5절의 책을 열 그가 바로 6절에서 나타나는 죽음을 통한 구속의 일을 담당할 어린양이라는 것을 요한이 보게 된다. 즉 양의 구속사역의 근거는 5절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군사적/정치적이지 않고 어린양의 죽음을 통한 구속에 근거함을 본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5절은 6절에 의해서 그 정체성이 확고하게 드러나고 재해석된다.
“7뿔과 7눈”-->>7뿔은 어린양의 권세와 능력의 충만함을 보여주며
7눈은 온 세상을 보시는 완벽한 어린양의 전지성을 상징한다. 그 어떤 것도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음을 묘사한다.
▶ 5:7: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책을 취함의 조건은 바로 어린양의 구속과 죽으심의 근거한다. 그래서 5:9절에 보면 그의 구속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들이 “새 노래”를 부른다. 이 새 노래를 부름은 구속과 새 창조로 말미암은 메시아 시대의 도래가 왔음을 알린다.
▶ 5:9: “사서”-->>값을 지불하고 어떤 사람에 대한 권리를 확보함을 암시한다. 이것은 전쟁 포로를 해방하는 언어를 의미->예수의 피를 통한 구속의 사건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단의 속박에서부터 해방되었음을 암시하는 언어형태로 소아시아 7교회의 회중들에게 구속주 어린양의 구원의 은총을 느끼게 하는 언어이다.
≫≫ 6-16장:구원과 심판의 사건
⊙ 구조(인, 나팔, 대접)
↳ 4+1+1+막간+1(4+3구조)-->> * 마지막 대접 심판에는 막간이 없다.
⇩
심판의 임박성 강조
1.숫자 4는 우주적 성격을 가지므로 자연계/인간계에 대한 우주적 심판의 성격을 시사한다.
2. 두 개의 막간을 통한 수사학적/사회학적 메시지를 제공한다.
↳ *인 심판- 6인과 7번째인 사이에 삽입 되므로 세상에 대한 무시무시 한 심판에도 불구하고 교회 공동체는 이런 심판에서 보호 받게 될 것 임을 보여준다.
*나팔 심판- 6나팔과 7번째 나팔 사이에 삽입되므로 6번째 나팔 심판 까지의 무시무시한 심판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하나님의 적대 세력들에게 끝까지 자비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하나 님의 예언적/선지적 사역을 증인으로써 교회가 감당해야 함을 보여줌
3. 시간적 구조? 또는 반복적 구조?
↳ 각 시리즈가 동일한 종말론적 현상인 “번개, 음성, 뇌성”과 그것의 확 장으로 끝나고 있음은 이 구조가 시간적 순서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다 고 보기 보다는 반복을 통한 메시지의 강조점에 그 주안점을 주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즉 각 시리즈는 동일한 종말론적 현상인 초림에서 재림까지 시기를 가리키며 이 사이에 있어서는 철저한 시간적 개념을 배제한다.
4.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강도의 강화와 범위의 확장을 나타낸다.
↳ 인->인간계에 1/4의 심판
나팔->자연계에 1/3의 심판
대접->인간+자연계+사단의 최후심판에 초점
※정리하면
1. 인, 나팔, 대접심판은 초림에서부터 재림까지 기간을 가리킨다.
2. 심판의 강도와 범위가 확장-->>문학적/신학적 의도
3. 시간적 순서배제-->>역사적 1:1대응으로 미래의 시간표를 발견하는 것이 아님 계시록 본문을 통해서 역사적 1:1의 대응공식을 찾으려고 함은 저자나 책의 의 도를 벗어남
4. 인의 반복으로 나팔/대접이 등장-->>여기에서 구약의 출애굽10가지 재앙 사건 은 “심판의 형식을 제공”한다. 누구에게? 하나님의 백성의 적대세력들에게
5. 구체적으로 일어날 미래사건을 예견하지 않고 단지 예수그리스도의 도래로 인한 종말적 심판에 대한 현상을 기술한다.
따라서 계시록은 크게 2가지 측면을 드러낸다.
↳1) 하나님의 백성에게-구원의 메시지
2) 하나님의 백성의 적대 세력들에게-심판의 메시지가 선포된다.
⁋ 6장-인심판
▶ 6:1-8->이 심판의 성격은 억압받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시고 그들을 억압하는 세력에 대한 심판을 보여준다.
⊳첫째 인(6:1-2)->인 뗌은 상징적 행위로 흰 말과 그 탄자에게 활이 주어진다. 이 주어짐을 신적 수동태라 불려 지는데 이것은 심판이 하나님에 의해서 일어남을 암시한다(슥 1, 6장의 배경).이 흰말 탄자는 당시 파르티안 제국 병사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들은 B.C.55-A.D.62년에 로마제국의 위협적인 존재였다. 이들 통해 심판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둘째 인(6:3-4)->“붉은 색”-->>피흘림과 살상을 통해 전쟁을 암시, 역시 신적수동태를(허락을 받아)통해 이 심판이 하나님의 섭리의 의해 일어남을 보여줌 이것은 전쟁을 통해 이 땅 위에 임할 심판의 장면을 소개한다.
⊳셋째 인(6:5-6)->“검은 말”-->>밀 한 되는 한사람의 하루 식량
보리 석 되는 한사람의 삼일 식량
이것은 앞의 전쟁의 결과를 통한 피폐나 후유증 또는 기근과 인플레이션을 통한 식량 부족현상을 보여준다. 구약(겔 14:21)에서는 하나님의 4가지 심판도구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칼, 기근, 야수, 전염병으로서 이 본문은 그 중 하나인 기근을 통한 심판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넷째 인(6:7-8)->“사망과 음부”-->>한 쌍으로 이해되어진다. 여기에서 사망은 온역으로 번역 되어질 수 있고 문맥상으로 매끈하게 살펴보면 온역으로 인한 죽음의 현상을 볼 수 있다.
⊳다섯 번째 인(6:9-11)->제단 아래에서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주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림을 요청한다. 문자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수가 차야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지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숫자를 더 늘리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볼 수 있다. 특히 이 본문은 뒤에 우리가 볼 막간(10-11장)을 통해서 잘 들어난다.
⊳여섯 번째 인(6:12-17)->종말론적 심판현상이 하나님의 적대 세력인 땅의 임금들과 땅에 속한 자들에게 임한다. 그 큰 진노의 최후심판을 누가 피하겠느냐란 질문으로 6:17이 끝이 난다.
위의 6가지 인 심판은
1. 서로간의 시간적 순서를 배제->문학적/신학적 효과나 의도를 가져온다. 고로 역사적으로 언제/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짐은 본문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다.
2. 1/4의 세상에 대한 심판을 보여준다-->> 제한적 심판
⁋ 7장(1-17절)
↳ 1. 144,000 (1-8절)
2. 셀 수 없는 무리 (9-17절)
6:17절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주어지는 막간으로 과연 6번째 인 심판의 무시무시한 그 심판에서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해법을 제시하기 위한 문학적/수사학적 저자의 의도를 볼 수 있다.
▶ 7:3: “인침”-->>고대에 있어서 이마나 손목에 인침은 가축의 소유 또는 노예의 신분표시를 할 때 사용되던 방법이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의 인침의 사건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마나 손목에 바코드(Bar code)를 맞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소유나 그의 보호 아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겔 9:4-6).
▶ 7:4: “144,000”-->> 6:17절의 무시무시한 그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자들이 바로 144,000으로 소개되고 있다.
↳12x12x1000으로서 문자적인 144,000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것은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에다가 1000이라는 많은 숫자를 합한 수로서 온 땅에 충만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를 가리킨다. 고로 절대적으로 이 숫자에다가 문자적인 의미를 부여함은 본문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것이다. 특히 144,000은 뒤에 나올 셀 수 없는 무리와 동일한 의미인데 이것은 땅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를 바라보는 것이다.
▶ 7:9-17: “셀수 없는 큰 무리”-->>앞의144.000에 대한 해석으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즉 이것은 천상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가 하나님의 보호와 승리를 얻을 것임을 보여준다. 비록 땅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큰 환란을 겪을 것임을 암시하지만 그러나 하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미 하늘의 승리와 축복과 보호를 받을 것이란 관점을 제시한다. 이런 공간적 초월을 통한 관점의 변형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자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제공한다.
▶ 7:14: “큰 환란”-->>초림과 재림사이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겪게 될 환란의 상황을 암시해준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고난을 이기는 정복자들이 되어야 되고 그리고 그것의 결과로 그들에게 놀라운 하늘의 축복과 위로와 격려가 있을 것임을 보여준다. 이런 축복은 7:16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 본문은 사 49:10의 반영으로 출애굽 모티브에서 기원한 것으로 출애굽 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과 같은 억압의 세력으로부터 구출되었던 것처럼 종말에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에게 주어질 새로운 출애굽 즉 종말론적인 출애굽의 축복을 제시한다.
≫≫ 나팔 심판 (8:6-11:19)
↳ 나팔은 전쟁이나 심판 이미지 가져온다.
⊙ 구조-->> 4+1+1+막간+1의 구조
↳ 1. 연대기적 아니다.
2. 하나님의 적대 세력에게 내린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와 희망
3. 변화를 준 반복- 6인이 이미 최종 심판을 말하므로 시기적으로 6인과 동 일한 시기의 다른 각도에서 본 심판 장면
4.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신적 수동태
⁋ 8-9장 나팔 심판
⊳첫째 나팔 (8:7)-> “피 섞인 우박과 불”-->> 심판이 자연계에 1/3로 제한
⊳둘째 나팔 (8:8)-> “불 붙는 큰산”-->> 화산폭발의 이미지를 사용해서 자연계에 임한 심판의 장면을 묘사한다.
⊳셋째 나팔 (8:10-11)-> “횃불 같이 타는 큰 별”-->> 종말적 심판의 한 현상으로 타락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이 땅에서 쑥과 같은 역할을 하므로 심판을 수행함 여기에서 쑥은 구약 렘 23:15의 인용으로 심판위해 사용된 이미지이다.
⊳넷째 나팔 (8:12) “어두움”-> 출애굽 재앙 시 9번째 재앙으로 하나님의 적대 세력들에게 엄청난 공포심을 가져왔다. 이런 현상이 나팔재앙을 통해 종말론 적 심판현상으로 하나님의 적대 세력들에게 공포를 가져온다.
⊳다섯 번째 나팔 (9:1-11)->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악한 천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가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신적 수동태) 심판을 수행한다. 여기에서 무저갱은 (9:1) 물리적 공간이 아니고 타락한 천사들이 갇혀있는 감옥으로 상징적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가 무저갱 문을 열고 황충을 그의 신적 심판을 수행하는 대행자로 사용한다. 요엘1:4에 따르면 황충은 악마적 속성을 갖춘 심판의 도구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먹잇감은 풀이나 나무 같은 자연계에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사람에게로 향한다. 9:4의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사람은 7:3절의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맞음과 대조를 형성한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엄청난 심판에도 불구하고 보호와 안전이 보장될 것이 다란 메시지를 전해준다.
황충의 심판의 시기는 9:5에 다섯 달로 소개된다.
↳황충의 전 생애를 나타난다. 즉 그의 전 생애를 걸쳐서 가혹한 심판을 수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섯 번째 나팔(9:12-21)-> 큰강 유브라데에 결박해 있던 네 천사를 놓아주므로 심판을 시행한다. ↳ 사탄적 세력인 타락한 천사
▶ 9:14: “유브라데 강”-> 로마제국과 파르티안 제국의 경계를 나누는 강으로 파르티안에 의한 로마제국에로의 침략 이미지 통해 하나님의 적대 세력에 대한 심판 이미지를 그려낸다.
▶ 9:15: “년, 월, 일시”->정확한 어떤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된 시간에 심판이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다. 즉 시간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된다. 누구도 이 시간을 계산해서 알 수 없다. 그러나 계시록은 그 시간에 대해서 단지 언급할 뿐이다. 언제 이러한 일이? -->>종말에 이루어질 것을 말한다.
▶ 9:16: “마병대”-->>2억의 군대- 물론 문자적인 2억의 군대를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셀 수 없는 수많은 군대의 이미지 통해 하나님의 적대 세력에 대한 진노와 심판의 가혹성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정확한 문자적 역사적 숫자나 이미지 대응은 본문이나 저자의 의도에서 벗어난다.
▶ 9:20-21: 앞의 무시무시한 재앙과 심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강팍하게 하므로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사랑과 은혜를 보여주시는데 그것이 10-11:13에 등장하는 막간의 역할이다.
≫≫ 10-11:13 에서의 막간의 역할
나팔 심판을 통해 시행되는 무시무시한 심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사랑과 은혜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이 땅위에서 감당해야하는 예언적 사역이다. 물론 그 일을 수행함은 많은 고난을 감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짐을 볼 수 있다 (11:15).
▶ 10:9-->>10:2에서 등장하는 작은 책을 천사의 손을 통해 요한이 받아먹는 장면이 소개된다. 그의 입에는 달지만 꿀같이 쓴 경험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을 주고 영혼을 소생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고난과 핍박의 정황을 소개한다. 이것을 누가 감당하는가? 바로 두 증인으로 의인화된 교회가 감당해야 될 사역임을 11장에 소개하고 있다. 11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 1. 성전 측량(11:1-2)
2. 두 증인(11:3-13)
⇨ 1. 성전 척량(11:1-2) ->성전 척량은 겔 40-48장의 인용으로 그 의미는 보호/보존의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2가지 교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1절에서의 척량은 하나님의 백성의 내적인 보호나 보전의 의미로 2절에서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의 외적인 박해나 고난 받음을 암시한다. 즉 교회 안에는 2가지 모습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내적인 보호와 보존에도 불구하고 외적인 박해나 고난을 견뎌야 됨을 암시-> 언제까지? 주님의 재림 때까지
계시록에서 숫자 1260=42달=한때 두 때 반 때=3년 반은 모두 동일한 초림에서 재림 때까지의 시기를 가리키는 숫자로서 문자적인 시기를 가리키지 않고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 2. 두 증인(11:3-13) ->두 증인이 회개 할 시에 입는 옷인 굵은 베 옷(11:3)을 입었다는 것은 교회로서 그들의 사명이 회개에 있음을 암시한다. 위에 언급했듯이 그들의 예언적 사역의 시기는 1260일(11:3)로 상징화되는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 11:4: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슥 4:3, 14의 인용으로 두 감람나무는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와 총독인 스룹바벨을 가리킴 이 둘은 왕적 제사장적 역할을 감당하는 자들의 모형으로 인용, 즉 재해석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위의 두 명이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인 왕적/제사장적 역할을 세상에 대한 증인으로서 이 사명을 감당해야 됨을 보여준다.
▶ 11:6:-> 모세와 엘리아의 역할이 또한 소개되는데 이것 역시 문자적인 모세와 엘리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했던 역할이나 기능과 같은 사역을 세상에 행해야 되는 교회로서의 사명에 초점을 맞춘다.
▶ 11:13:-> 교회로서 두 증인의 역할을 통해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장면이 나오고 여기에서 역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관점을 볼 수 있다(왕상19:14-18과 비교하라).
※정리하면
10-11:13의 막간을 통해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패역한 세상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볼 수 있고 바로 그 은혜를 두 증인으로 의인화된 교회를 통해서 어떻게 세상에 이 예언적 말씀을 교회가 선포해야 되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 운명이 두 개의 관점에서 소개된다. 하나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성전 측량- 또 다른 하나는 교회 공동체의 고난이라는 관점에서 소개된다. 이런 교회의 고난의 현장에도 불구하고 담대한 예언적 말씀의 선포를 통해 세상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짐을 7번째 나팔을 통해 볼 수 있다.
⊳일곱 번째 나팔(11:15-19) -> 교회로서 두 증인의 예언적 말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짐이 선포된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것통한 18절에 구원과 심판이 어떻게 시행되는가를 다음에 나오는 본문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 12-14장-> 용/바다/땅 짐승
⁋ 12장 용의패배
하늘에서 용의 패배를 보여주므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난이 그들의 최종 운명이 아니라 이미 하늘에서 승리한 정복자의 삶을 누릴 것이라는 것을 천상의 관점을 제시하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격려/소망을 주고 있다.
▶ 12:1: “해를 입은 한 여자”->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가리킨다. 그리고 여자가 해산하려고 하는 아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을 보여준다.
▶ 12:3: “붉은 용”->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인 옛 뱀, 마귀, 사탄
“머리가 일곱”-> 완전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모방으로 사탄의 절대적인 권능을 보여줌- 상징을 이용해 하나님과 상응 할만한 사단의 거짓 완전성을 보여 줌
“뿔이 열”-> 능력의 상징
▶ 12:5: 여자가 낳은 아이인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암시한다. 즉 예수의 승천 통한 악의 세력들에 대한 예수와 교회의 승리를 보여준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의 승리를 예시한다.
▶ 12:7-12 -> 12:5의 예수의 승천에 따른 승리의 결과가 12:7-12에서 미가엘과 용과의 하늘에서의 전쟁으로 전개되고 용의 패배로 그 전쟁이 끝이 난다. 이것의 의미는 이미 사탄(용)은 하늘에서 패배한 패배자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미가엘이란 하나님의 대행자를 통해 하늘에서 이미 승리를 획득한 신분의 소유자란 것을 보여주므로 이 땅에서의 고난 중에도 불구하고 승리자의 삶을 살아갈 것을 촉구한다. 이런 변형된 상징적 관점의 제시는 고난 받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로/격려/소망의 메시지를 제공하므로 그들에게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하는 결단을 요청한다.
▶ 12:13-17 -> 하늘에서 용의 패배는 땅으로 여인의 후손인 교회를 박해하기 위해 그를 내몰았고 용은 그의 악마적 일을 수행하기 위해 두명의 졸개를 사용한다.
↳1.바다짐승(13:1-10)
2.땅짐승(13:11-18)
⁋ 13장 두 짐승
바다짐승은 용의 대행자로서 땅에서 악마적 사역을 수행한다. 그는 권세를 용에게 받음으로 그와 용과의 악마적 일체감을 드러낸다.
▶ 13:1: “바다짐승” -> 로마의 제국권세/황제숭배를 가리킴
“뿔이 열”-> 열 왕을 가리키며 문자적인 의미보다는 로마통치하에 있는 세상 왕들을 상징적으로 총칭한다.
“머리가 일곱” -> 바다짐승의 권세의 완전성/주권을 완전수인 7을 통해서 보여줌
▶ 13:3: “그의 머리.. 상하여 죽게..”->기독론적 양의 모방의 표현으로 구속주 어린양이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세상 앞에 그의 능력을 보여준 것처럼 바다짐승은 어린양과 같이 유사한 그의 능력을 세상 앞에 보여준다. 이것은 네로 귀환 전설에 근거한 이야기로서 네로가 자살했으나 죽지 않고 파르티아로 도망하여 그 후 다시 돌아와서 로마제국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전설이 그 당시에 떠돌아 다녔다. 이런 이미지를 통해 그 당시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시무시한 바다짐승의 권능과 능력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즉 바다짐승의 권능과 능력을 보여줌
▶ 13:4: 바다짐승의 권세는 용에 의해 주어졌고 그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에 대한 핍박은 42달 동안 계속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숫자는 문자적이지 않고 상징적인 의미로 초림에서 재림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 13:11-18 -> 땅짐승
▶ 13:12 -> 땅 짐승의 사역은 바다짐승을 경배하도록 돕는 일인데 이들은 로마 제국권력 또는 황제숭배를 조장하는 이교적 선지자/제사장들을 가리킨다.
▶ 13:16-17 -> 그들은 모든 자 작은 자 큰 자 누구든지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못하게 한다. 위에 설명했듯이 여기에서의 표는 소유나 보호의 의미로 만약에 짐승의 표를 받는 다는 것은 그가 짐승에게 속해 있고 짐승의 보호를 받으며 짐승의 소유된 자임을 확증하는 표시를 말한다.
“매매 못함”-> 로마정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댓가로 경제적 제재나 압박을 가함을 암시
↳교회 공동체에 대한 경제적 제약->가난과 빈곤의 처지에 놓이게 됨 (비교. 두아디라 교회)
▶ 3:18: “666”-> 크게 2가지 해석으로 나뉜다.
1. 게마트리아란 방법으로 알파벳의 숫자 개념을 계산하면 666은 네로황제의 이름과 일치- 물론 약간의 논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 완전수인 7에서 모자라는 6의 수로 간주해서 완전한 숫자인 3개의 777에 완전하게 모자라는 숫자인 666으로 생각 할 수 있다. 즉 이것은 악 또는 인간적 삼위일체를 가리키는 악의 총체로 해석될 수 있다. 본문과의 관련성을 살펴보면 666은 용/바다/땅 짐승으로 또 해석 될 수 있다. -->> 666이 히틀러니 후세인이니 하는 자의적 해석은 본문의 의도를 왜곡 시킨다.
⁋ 14장 144,000과 천상 추수
↳ 1. 14:1-5- 13장과 밀접한 대조적 그림 제시하며, 하나님의 백성의 공 동체의 정체(특징)성을 그린다.
2. 14:6-20- 최후 구원과 심판 장면묘사, (13장에서 짐승을 추종하는 자들의 궁극적 종말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즉13장↔14:1-5
▶ 14:1: “시온산”-->천상의 시온산 (13:6과 연결) 고로144,000은 7:9-17과 중복
144,000의 정체성은
↳ 1. 여자로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로마제국의 우상숭배로 더럽히지 아 니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
2. 어린양에게 속한 자-> 짐승에게 속한 자와 대조적 그림을 제공
3. 첫 열매-> 종말론적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 추수 이미지
천상의 관점을 보여줌으로써 이 땅에서 짐승으로 인해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진정한 그들의 운명을 보여줌-->> 구원
↳ 이것은 14:14-16절에 자세히 소개
심판
↳ 14:17-20절에서는 악이 세력들에 대 한 심판이 그려짐
▶ 14:4: “자신을 더럽히지..” --> 하나님의 거룩한 존재, 우상숭배로 자신을 더럽 히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
↳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정결한 “처녀”로 비유 (사37:22, 암5:2)
144,000 --> 19:7; 21:2, 9에서 신부인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를 가리킨다.
▶ 14:6-12--> 구원과 심판 메시지 선포
14:8 바벨론 멸망예고 --> 16:17-21에서 주어지고, 17-18장에서 좀 더 자세하게 소개된다.
↳ 로마의 멸망 --> 하나님에게 적대하는 세력으로써
음행의 포도주 = 진노의 포도주 = 포도주 마시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초점
≫≫14:14-20절은 14:6-12절에서 선포되는 구원과 심판의 메시지를 좀 더 발전된 내용으로 반복하여 소개 -> 구원과 심판의 메시지가 실행되는 모습
▶ 14:14-16--> 곡식, 추수--> 구원
하나님의 구속 사역 실행, 추수개념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구속의 의미를 전해준다. 즉 곡식 추수단계는 하나님의 백성의 1단계에 걸친 구속을 소개
▶ 17-20 --> 포도수확과 포도주 틀에서 짜냄
↳ 심판
이 구절들에서는 거두고 포도주틀 짜는 2단계에 걸친 심판의 이미지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대적들에 대한 심판을 소개한다.
⊙ 정리하면
13장의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14장에서 천상의 144,000으로 또한 짐승 경배자들과 그의 이마나 오른손에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을 144,000과 대조시키므로 이 땅에서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144,000명의 운명이 하나님을 통해 구원받을 것임을 보여주므로 그들에게 천상의 위로/격려를 제시한다. 즉 13장에서 두 짐승의 등장과 활동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협적이고 때론 절망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14장에서의 반전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받을 것임과 악의 추종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할 것임을 보여주므로 그들에게 상징적 변형을 제시한다.
⁋ 15-16장 7대접 심판
↳ 1. 7인과 7나팔 심판과 병행관계를 형성하고 마지막 심판임을 알린다.
2. 예수 초림~재림사이의 기관을 암시한다.
3. 다른 두 개의 심판 시리즈와는 달리 막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7 시리즈의 마지막을 형성한다. 큰 성 바벨론의 심판에서 절정을 이루고 그것의 자세한 설명은 17-18장에서 자세히 부연/확대 설명된다.
이 심판의 의미는 나팔 심판과 반복적이며 보다 강화된 성격을 드러낸다.
그리고 15장은 16장의 대접심판의 서론적 진술을 형성하고 바로 이 심판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발원됨을 보여줌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확실함과 철저함을 보여준다.
▶ 15:2: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모세의노래 즉 어린양의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2절을 벗어난 자들로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를 암시하고 출애굽 motif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종말에 겪을 제2의 출애굽의 축복을 소개한다.
⁋ 16장 -> 7대접심판
↳ 1-9절: 4개 심판
10-21절: 3개의 마지막 심판
▶ 16:1-> 성전에서 심판이 시행되는 것으로 소개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절대성을 보여준다. 바로 그 심판은 땅에서 시행되는데 땅은 하나님께 적대하는 세력을 의미
▶ 16:2-8: 4개의 대접심판-> 땅/바다/강,물근원/해
↳심판의 우주적 의미-사람+자연계에 가해짐 이 심 판들은 더 이상 제한성을 갖지 않고 전 우주계/ 피조계에 임함
▶ 16:10-11-> 짐승의 보좌에 다섯 번째 대접심판 즉 사탄의 대행자인 악의 세력에게 심판이 가해짐 이 고통은 신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영적이고 정신적 고통
▶ 16:12-16-> 아마겟돈전쟁
↳ 이 전쟁은 물리적 전쟁이 아니라 영적 전쟁으로 사단과 예수 재 림시 벌어질 최후의 전쟁 장면 묘사-->> 이것은 므깃도의 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지명은 구약에서 전쟁/심판과 관련하여 사용 됨 (삿. 5:19-21; 슥12:11-14), 이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 적 대하는 세력들의 심판을 암시 즉 심판의 장소로 므깃도가 사용된 다. 고로 이 아마겟돈 전쟁은 이 땅의 어떤 지형에서 벌어질 물 리적 전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종말에 있을 하나님과 악의 최종 전투지로서 결국 악이 패배하고 심판을 받을 것임을 상징적 으로 보여준다. 아마겟돈 전쟁은 19:17-21과 20:7-10과 동일한 전쟁으로 볼수 있다.
▶ 16:17-21-> 심판의 완성과 함께 바벨론의 심판이 소개된다. 그리고 바벨론 심판의 소개가 17-18장에 걸쳐 더 자세히 부연 설명된다.
⁋ 17:1-22:5- 악한 세력의 멸망과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의 승리
⇨ 이중적 결론 제시한다.
↳1. 17-20장은 악의 세력의 멸망
2. 21:1-22:5은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에 대한 소개
⇨ 17-20장은 하나의 큰 문맥을 형성
↳ 1. 17장: 바벨론에 대한 소개
2. 18:1-19:10 : 바벨론 심판과 멸망
3. 19:11-20:15 : 두 짐승과 용과 그 추종자들의 멸망
▶ 17:1->“7대접을 가진 천사”-->>이것은 17장이 7대접 심판과 관련됨을 암시 고로 대접심판의 연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큰 음녀”-->> 전세계를 지배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바벨론 즉 로마를 상징한다. 이것의 명칭은 21:9-22:5에서의 새 예루살렘을 신부라 부른 것과 대조적인 그림을 제공한다. 즉 이 땅위에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고 막강한 악의 총체로서의 도시 및 여인 로마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종말론적인 축복을 누릴 도시 및 여인 새 예루살렘을 대조시키고 있다. 이 대조의 근본적인 메시지는 하나님의 적대 세력인 로마에 대한 심판과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에 대한 구원을 제시하매 그 강조점을 준다.
▶ 17:2-> 로마로서 바벨론 심판의 원인은 그들이 음행과 음행의 포도주에 취함 즉 그들이 우상 숭배와 성도들과/ 예수의 증인들의 피를 흘림에 있다(17:6).
▶ 17:3-> 여인이 탄 짐승은 로마제국의 정치권력/황제를 암시한다. 즉 로마제국의 정치적 측면을 암시한다.
▶ 17:4-> 음녀가 입은 옷은 고대 로마의 부와 사치를 상징
↳ 세마포 옷을 입은 성도들의 거룩한 행실과 대조(19:8)
▶ 17:9: “짐승의 7머리”->여자가 앉은 일곱 산을 가리키는데 1세기에 고대세계에서 일곱 산은 로마를 가리킬 때 사용되던 말이다. 실질적으로 로마는 일곱 산위에 세워진 나라이다.
▶ 17:12: “10뿔” --> 10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문자적인 10왕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있는 세상 왕들을 암시한다.
▶ 17:16-18-> 악의 자기 파괴적 본질을 드러낸다. 즉 악한 세력들의 상호멸망의 결과를 가지고 온다. --> 악의 속성
⁋ 18장 바벨론 멸망과 어린양의 혼인 찬치 (18-19:10)
17장이 주로 음녀 바벨론에 대한 소개와 진술로 끝났다면 18장은 구체적인 바벨론 멸망을 소개하고 있다. 그 멸망의 이유가 18:3에서 3가지로 소개되는데
↳1)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
2) 음행-> 1)과 병행관계로 우상숭배에 참여함을 암시
3) 사치-> 경제적 착취로 인한 치부
⇨ 바벨론 멸망이 3가지 부류에 애통을 갖고 온다.
↳ 1) 땅의 왕들 (9-10절)
2) 땅의 상인들 (11-17a절)
3) 바다 사람들의 애통 (17b-19)
이 세 부류의 계층들은 바벨론의 권력과 부와 경제적 이익에 참여했던 부류로써 바벨론인 로마가 멸망하자 그 멸망으로 인한 탄식의 참상을 보여주고 있다.
로마제국의 멸망은 위의 세 부류에게는 경제적인 손실로 인한 고통과 슬픔을 갖고 왔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찬양하는 장면이 19장 1-10절에 소개되고 있다. 이런 바벨론 멸망은 악의 세력이 영원치 못할 것임과 그들의 결국이 심판임을 보여주므로 로마로 인한 정치적/경제적 억압과 압제 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도록 상징적 우주를 제시한다.
⊙ 정리하면
17장은 음녀 바벨론의 멸망을 소개하고 그들의 멸망을 선언하는 반면에
18장은 로마제국의 경제적인 관점을 소개하면서 그가 세상에 각종 사치와 불의와 착취를 통한 치부가 그것들로 통해 그들에게 심판과 멸망을 갖고 왔고, 또한 그와 더불어 위와 같은 악을 행했던 세 부류의 계층들에게 고통/심판을 가져옴을 설명한다. 그리고 심판의 결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는 장면이 19장 1-10절에 나온다.
⁋ 19:11-20:15 -->두 짐승/용/용의 추종자들의 멸망
↳ 1. 19:11-21 --> 두 짐승에 대한 심판장면
2. 20:1-10 --> 용에 대한 심판장면
3. 20-11-15 --> 그 둘의 추종자들의 대한 심판
이것들은 16:12-21 의 7 대접 심판의 내용과 동일한 것을 진술한다. 그러나 이 심판은 앞의 아마겟돈 전쟁과 동일한 종말론적 전쟁을 다른 각도에서 표현 고로 이 전쟁은 물리적이지 않고 영적 전쟁을 가리킨다.
이 전쟁을 수행하시는 분은 19:11-16 에 소개되는 백마타고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서 예수 재림 시에 있게 될 최후 심판 장면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 19:11-16 : 백마 타고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 -최후 심판을 시행하신다. 이일을 시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의 4가지 이름 소개하므로 그의 정체성을 밝힌다.
↳ 1. 충신과 진실 (19:11) - 이일을 시행하시는 분의 신실성을 묘사하며 이 용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 그리고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를 묘사할 때 사용
2. 예수밖에는 알 수 없는 이름 (19:12) - 세상 누구에 의해도 통제 받지 않는 예수의 초월성을 암시
3. 피 뿌린 옷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 (19:13) -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서 흘린 피를 상징하는 피를 의미-> 그의 전쟁의 무기는 입에서 나오 는 말씀
4. 만왕의왕, 만주의주 (19:16) - 모든 악의 세력을 꺾으시고 그들 위에 절대적 주권을 행사 하시는 분
이 본문에서는 기독론적 칭호인 어린양의 칭호와는 달리 하나님의 적들에게 신적 심판을 시행하는 신적 전사-메시아로써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설명이 돋보인다. 여기에서는 악한 자들에 대한 완전한 심판을 보여준다. -->> 큰 음녀, 짐승들, 왕들
▶ 19:17-21: 큰 향연과 최후 심판
하나님의 최후의 향연은 19:7-9의 양의 혼인 잔치와 대조적 이미지를 제공한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양의 추종자들과 대조적으로 신적 심판이 모든 악한 자들 위에 가해진다. 이 익숙한 군사적 이미지는 신적 전사로써 그의 재림시 그리스도의 승리를 표현한다. Summers 가 제안 했듯이 이것은 요한의 시대뿐만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걸쳐 일어나는 악의 완전한 제거를 암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요 강조점은 1C 소아시아에서 로마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억압과 제재 가운데 살고 있었던 크리스챤들에게 그들의 진정한 정체성과 어떻게 악의 세력들이 완전히 멸망할 것 인가를 보여 주므로 그들에게 다른 상징적 관점을 제공함을 그 주요 목적으로 한다.
20장 천년왕국 --> 용의 심판과 멸망
↳ 1. 20:1-3 --> 용이 천년동안 무저갱에 감금
2. 20:4-6 --> 하나님의 백성이 천년동안 왕 노릇함.
3. 20:7-10 --> 용이 전쟁에서 폐한 후 불 못에 던져짐.
4. 20:11-15 --> 사단의 추종자들에 대한 심판
중요 요점은 위의 본문들이 문자적이지 않고 상징적 이미지를 써서 어떻게 하나님의 적대 세력들이 멸망을 당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년동안 왕 노릇 할 것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천년의 시간은 초림과 재림까지의 시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순교자들을 포함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바벨론 즉 로마의 핍박과 억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받게 될 승리와 축복과 보상에 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 이런 궁극적인 축복은 고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천상의 관점을 제시함으로 그들에게 위로와 소망과 격려의 메시지를 주었을 것이다.
▶ 20:2-> 용의 결박은 (예수 사역-눅 10:18, 죽음, 부활로 구체화 됨) 그의 완전한 패배나 무기력을 의미하지 않고 재림에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이것은 already, but not yet 의 구조와 잘 맞아 떨어진다.
이미 그들이 결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전한 패배가 선포되지 않는다.
그들의 마지막 결국은 20:15에 나타난 영원한 형벌장소로써 불 못에 떨어짐으로 그의 완전한 패배와 심판이 시행된다.
▶ 20:4-6-> 사단은 이중적 성격이 있는데 이미 결박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000년 동안) 그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허락 하에 여전히 활동을 하고 있고 그의 최종적 운명은 심판과 불 못에 떨어짐으로 완전히 소멸케 된다 (20:7-15). 그리고 1000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의 왕 노릇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21-22:5에 가서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이 부분은 사실 두 가지 대조적인 그림 이미지를 제공한다.
↳ 1. 사단의 운명과-무저갱에 갇혀 있음
2. 하나님의 백성의 운명-그리스도와 왕적 통치
하나님의 백성들의 왕 노릇함의 근거는 세상에 대한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이다. 이것은 요한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잘 반영, 특히 4절의 언어는 우리가 로마제국 권세 즉 정치적/경제적/종교적 권세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강요했던 언어의 형태를 많이 반영하고 있다.
▶ 20:4->천년동안 그리스도와 왕 노릇: 첫째 부활
▶ 20:5: “그 나머지.. 살지 못하더라”-->> 불신자들을 암시
▶ 20:7-10-->> 겔 38-39장의 인용으로 마곡 땅에 있는 곡왕의 이미지를 빌려와서 그들이 이스라엘과 전쟁 그리고 패배, 하나님의 주권을 온 천하에 선언 했던 것처럼 이 본문에서 역시 사단에 대한 하나님의 종말론적 전쟁 통해 악의 패배와 소멸을 그려내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온 천하에 선포할 것임을 보여준다.
위에 소개되었듯이 20:7-10절의 전쟁은 19:17-21 절의 전쟁과 동일한 것으로 다른 각도에서 두 악마적 세력을 소개한 문학적 수사학적 이미지이다.
물론 예수 재림 시 벌어지는 이 전쟁은 물리적 전쟁이 아니라 영적 전쟁을 암시한다. 고로 19:17-21 전쟁과 20:7-10 의 전쟁은 물리적-시간적 순서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날 사건을 논리적 순서에 따라 기록하고 있다.
▶ 20:11-15-> 사탄의 추종자들에 대한 심판을 묘사
모든 악의 세력들이 마지막 최후 심판을 받는다.
⁋ 21:1-22:5 -->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의 영광
↳ 1. 21:1-8 -->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
2. 21:9-22:5 --> 새 예루살렘에 대한 구체적 묘사
▶ 21:2 ->새 예루살렘 = 그리스도의 신부 =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 = 교회
이 새 예루살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21:9-22:5에 자세히 확대 부연되어 소개되고 있다. 21:9절의 7대접 가진 천사의 소개는 이 본문이 대접 심판과 연속성을 가짐을 암시한다. 즉 앞에서 모든 악의 심판 후에 새 예루살렘 등장은 자연스런 연속성을 갖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종말에 어떤 축복을 경험할 것인가를 묘사하는데 이 부분 역시 상징으로 이해해야 한다.
▶ 21:5 -> 새 창조 --> 갱신 - 만물을 새롭게 한다.
↳ 모든 악의 세력을 제거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과 철저한 회복과 갱신
▶ 21:6->“되었다”의 선언은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에 대한 종말론적 성취 선언과 관련된다. 이것은 21:9-22:5에서 구체화 완성된다.
≫≫ 21:9-22:5 -->>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 21:1-8절의 종말론적 구원 장면을 확대/부연/설명한다
▶ 21:9: “7대접가진 천사”-> 대접 심판과의 연속성을 암시 이것은 앞에서 소개된 음녀 바벨론의 심판과도 역시 연속성을 가진다 (17:1).
▶ 21:17 :성곽 --> 높이 144 규빗 (약 70m)
↳ 12 x 12 --> 새 예루살렘이 완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성됨
▶ 21:18-21 --> 새 예루살렘에 대한 보석 이미지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과 순결등을 상징한다.
⊙ 정리하면
위의 단락들은 17:1-19:10에 언급된 음녀. 바벨론과 대조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즉 하나는 하나님의 적대세력으로써의 심판과 멸망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로써의 교회의 종말론적 축복과 완전함, 영광과 구원의 모습을 제시한다.
그리고 21-22장의 메시지는 2-3장에 나타난 약속 말씀의 성취 구조를 이루는 부분으로써 2-3장의 7교회의 정복자들에게 주어진 약속 말씀들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보여준다. 이런 약속과 성취의 말씀들은 다양한 사회적 정황 속에 있던 1C 청중들에게 호소력 있는 power와 상징적 우주를 제공했을 것이다.
⁋ 22:5-21: 결어
1. 지금까지 주어졌던 말씀의 권위를 확증한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긴박성을 제시한다.
지금까지의 긴 논쟁을 통해 계시록의 대략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 본문의 내용은 우리를 어떤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거나 어떤 억측의 세계 속으로 인도 하는 공상과 억측이 난무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철저하게 1C 소아시아의 7교회의 상황에 근거한 말씀으로써 그 당시의 렌즈를 통해서 볼 때야 만이 이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정경으로써 또한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말씀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 말씀은 독자들에게 공간적 초월과 시간적 초월을 통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사역을 올바르게 볼 수 있도록 관점의 변형과 상징적 우주를 제공하므로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과 위로와 격려와 소망을 제시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면 하나님의 적대 세력들에게는 회개와 돌이킴을 궁극적으로는 심판과 멸망의 메시지를 제공함을 그 주요 내용으로 한다.
▶ 22:21-->>“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 지어다. 아멘”
1) 19세기 동안 네로 황제가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의 황제로써 간주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계시록이 도미티안 통치 (A.D. 95-96)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본다.
2) In his treatise "Against Heresies" (5:30.3)
3) 이 본문의 문자적 해석을 주장하는 학자로는 Gentry (1989:174-176).
4) Beasley- Murray (1992:182); Aune (1998:598).
5) Beagley (1987) 같은 학자는 계시록에 있어 교회의 적대자를 단지 유대인들로만 제한한다. 이런 그의 제한은 부분적으로는 사실이지만, 사실 계시록의 다양한 메세지에 암시되어있는 적대자를 다 설명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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