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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삶의 각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개혁해야 할까?

하나님아들 2014. 3. 9. 21:50

삶의 각 상황에서 갈등에 처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직장과 학교, 사회에서 어떻게 각 삶의 상황에서 곤란한 경우를 대할 때가 많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에 입각한 기독교인의 세계관과 문화관에 근거하여 세상을 살아야 한다.


1. 분리모델(opposition type) - 세상은 악하므로 영적인 그리스도인은 도피와 은둔이 최고라고 한다.


이것은 재세례파들과 여호와증인들과 신비주의자들이 취하는 것으로, 세상과 영적세계는 완전히 대립된다고 한다. 그래서 병역을 거부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죄악으로 여기면서 영적 세계만을 추구한다. 이들은 예술이든 무엇이든지 오직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만이 참된 세계라고 한다. 여기서는 세상에서의 도피와 은둔을 추구한다.


2. 동일시 모델(dualist type) - 인간의 구원이 전부이며 사회는 상관없이 개인만의 구원이면 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루터파에서 취하는 것이다. 세상과 영적 세계는 별개의 존재로서,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영적 세계에서 동시에 사는 존재라고 한다. 루터파의 신학의 핵심은 인간의 구원이다. 곧 이신칭의로 대표되는 인간론과 구원론에 신학이 집중된다. 


그래서 루터파에서는 정치적인 면에서 타협적이다. 국가의 잘못한 것에 대해서 과감하게 지적하지 않는다. 이것이 분리모델보다는 좀 나으나, 실제적으로 동일시 모델(dualist type)에서는 세상의 잘못된 문화에 대해서도 타협적이다. 그래서 독일에서 나찌즘이 성행할 때도 과감하게 비판하지 못한 것이다. 나찌스트들은 불의의 전쟁을 하면서도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이것은 불신자들은 거의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짐승 같은 것으로 본다. 그래서 나찌가 유태인들을 무자비하게 보고 죽일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이것이 동일시 모델(dualist type)의 한계이다. 이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관으로서 국가든, 사회든, 문화든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 방관하고, 타협하고, 교회에서만 신앙생활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러한 사상을 취하는 자들은 개인주의적이며 이기적인 삶을 사는 위험이 있다.



3. 변혁모델(conversionist type) - 하나님은 창조주와 구속자로서 불신자와 신자모두에게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영광을 받기를 원하신다.


3-1. 하나님은 선택자들의 구원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로 작정하셨다.


이것은 어거스틴과 칼빈이 취한 세계관과 문화관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이며 칼빈주의자들이 취하는 것이다. 칼빈주의의 신학은 인간의 구원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에 집중한다. 예정론을 신론에서 다루는 헤르만 바빙크가 분명히 말하듯이 루터파가 이신칭의를 중심으로 한다면,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론이 강조된다. 그래서 단순히 구원받고 조용히 은둔해서 도사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에서 동시에 살고 있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세상의 문화의 잘못된 것들을 고치는 것을 추구한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단순히 설교만한 것이 아니다. 그는 제네바의 사회의 여러가지 것들을 변혁시켰다. 그리하여 존 낙스가 그렇게 제네바를 칭찬한 것이다. 그런데 변혁을 추구하는데 있어서는 각 나라의 상황과 여러가지 상황에 따라, 다른 방법과 절차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세상의 완전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3-2.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은 불신자들을 포함한 모든 창조물로부터의 찬양을 받으심을 포함한다.  


그러면 이것은 단순히 기독교인들만이 하는 운동인가? 그렇지 않다. 불신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에게도 마음의 율법인 양심과 일반은총을 주셔서 올바른 삶을 살도록 원하시기 때문이다. 루터파가 불신자들을 거의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짐승이라고 본 반면에 개혁주의(칼빈주의)는 불신자들도 역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을 함부로 죽이거나 해칠 수가 없고, 불신자 왕이나 지도자들에게 기꺼이 복종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불신자들이라도 충분히 구제의 대상이며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비록 일반은총만으로 불신자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여도 이 땅에서 어느 정도의 윤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은 선택자들의 구원과 또한 일반은총을 작정하셨음을 말해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로부터 찬양을 받으시기를 작정하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과 불신자들도 국가와 사회와, 학교, 정치, 문화 모든 방면에서 완전히는 아니라 할지라도, 힘닿는 데로 성경적인 원리를 이루려고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일부일처제도, 주일을 휴일로 하는 것, 동성간의 결혼금지, 신사참배와 야스꾸니참배거부운동, 그외 법으로는 할 수 없겠지만, 그리스도인은 자기 집의 제사를 거부하고 또한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 외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분야에서 성경적인 원리를 따라 세상의 문화를 변혁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지나치게 완전주의를 추구하거나 구약의 모든 율법자체를 그대로 이루려고 하는 율법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퍼옴

 

 

출처 : 숭사리 개혁포럼 Soongsari
글쓴이 : 빛나는 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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