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주는 그리스도, 실재하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다!(마 16:13-20)

하나님아들 2013. 9. 20. 19:52

1. 말씀 : 마 16:13-20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2. 묵상

“아버지, 내 영혼은 음부의 권세 앞에 무력합니다. 내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만을 앙망합니다. 하나님 외에 어디에도 소망이 없나이다. 그 자리가 은혜의 자리요, 승리의 자리입니다. 오늘도 주는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 되는 명제이다.

그런데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고백되는 명제는 무의미하다.

이는 공허하며 실체 없는 미신적 종교를 조장한다.

그래서 ‘덮어놓고 믿으라’는 것처럼 허황된 말은 없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다

이는 히브리어 ‘메시아’(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그리스어(헬라어)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바벨론 포로기 이전(전기 유대교)의 메시아는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메시아는 적을 정복하여 평화와 정의를 수립하는 ‘왕’이다.

이에 따르면 메시아는 다분히 현세적 통치를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과 같은 왕이다.

 

그런데 포로기 이후(후기 유대교) 메시아의 개념은 우주적인 의미로 고양되었다.

다니엘서 7장 13-14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자로 언표되는 메시아는 초월적 근원과 역사적 기능을 결합하고 있다.

즉, 메시아는 영원(옛적)부터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부여받는 초월적 근원의 존재이다.

동시에 영원에서 세상이라는 역사적 현실에 참여하여 사람들을 초월(영원)로 인도하는 존재이다.

 

이 점에서 메시아(그리스도)는 중보자의 의미를 가진다.

‘중보’는 무한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 사이의 무한한 간격을 이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중보의 기능은 단순히 무한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 이상이며, 하나님과 인간의 재결합(연합)을 실현한다.

중보자는 인간에게 인간을 대표하고 인간에게 하나님을 대표하는 ‘본질적 인간’(essential man)이다.

 

그는 아담이 잃어버린 인간 속에 구현한 하나님의 형상을 대표한다.

이는 세상의 조건에서 분리된 채 그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의 실존 아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대표한다.

즉,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에서 역사하는 영의 실재, 곧 비존재의 위협이 실재하는 ‘실존의 조건’ 아래에서 하나님께 복종하는 아들로서 완전한 인간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연합된 자를 자신과 동일한 완전한 인간으로 변형시킨다(고후 5:17).

곧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중보자와 연합된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능력)를 부여받는다(요 1:12).

그리하여 그 역시 비존재의 세력이 실재하는 실존의 조건 아래에서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로, 하나님의 본래적 형상의 존재로 살아간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갈릴리 북쪽 헬몬산 동편에 위치한다.

이곳은 헬몬산에서 내려오는 풍부한 물로 인해 기름진 땅이었다.

한편 BC 20년 헤롯왕이 이 곳에 흰 대리석으로 신전을 세우고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쳤다.

그리고 온 유대지역이 로마 황제를 ‘주’로 고백하였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세상 권세와 음부의 세력이 가득한 곳이며 풍요로운 삶으로 인해 우상숭배와 향락이 왕성한 곳이었다.

 

바로 그 곳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묻는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5절).

이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다(16절).

이는 베드로의 본성이 알게 한 것이 아니라, 초월적 근원인 영원으로부터의 앎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대(영원)의 표적을 분별하는(아는) 은혜를 입고 있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순간 기독교가 탄생한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절).

여기서 교회는 건물의 형태로서 교회가 아니라 ‘에클레시아’(공적 모임)이다.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어디에서부터 불러내어 어디로 데려오다’의 뜻을 가진다.

교회는 세상에서 영원으로,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불러 나온 이들의 모임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들, 여전히 세상 가운데에 머물고, 흑암의 권세 아래 사는 이들은 그 고백까지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은 매우 역동적이다.

제자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순간은 세상의 세력에 배척당하는 순간이다.

그리하여 예수는 베드로의 그리스도의 고백직후 수난 받으실 것을 말씀하신다(21절).

그러나 음부의 권세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고백 공동체를 결코 이기지 못한다.

교회를 위협하는 ‘음부의 권세’는 문자적으로 ‘지옥의 문지방’이다.

이는 세상 가운데 실재하는 비존재의 세력이며, 육신 안에 실재하는 마성적인 세력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진정한 신앙은 불안과 두려움을 야기하는 비존재의 위협과 옛 사람의 본성에서 나오는 본래적이고 구조적인 충동과 에너지인 마성적인 세력을 넉넉히 감당한다.

그는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교황이 들고 있는 상징적 권력이 아니라, 영원을 아는 지혜이다.

즉 영원의 교제에 참여하는 자는 지옥의 문지방, 음부의 권세를 넉넉히 이기는 것이다.

 

천국의 열쇠는 그리스도께서 장차 죽으시고 장사지내시고 부활하심으로 비로소 제자들에게 실제가 된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까지 지옥의 문지방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여 그들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지냄, 부활에 연합되자 음부의 권세를 넉넉히 이기었다.

그렇게 교회는 세상 끝날까지 존재한다.

 

*******

아, 이 아침,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내 영혼을 뒤흔든다.

우상과 향락이 가득찬 세상 한 가운데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

그것은 슬픔이나 환희이다. 세상을 등지는 서글픔이나 영원에 참여하는 기쁨이다.

기쁨은 서글픔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나는 단 하루도 비존재의 위협을 피할 수 없다.

공허와 무의미, 죄책감과 정죄의식, 운명과 죽음이 가져오는 염려, 불안, 낙심, 두려움이 절친이다.

내 속의 마성적인 것들은 수시로 나를 삼키려 든다.

 

누가 무엇으로, 음부의 권세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인가?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나의 주님은 오늘도 나를 어둠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다.

세상에서 영원으로 이끄신다. 하나님과 나를 연합시키시는 중보자이시다.

무한한 영원과 유한한 세상 사이의 무한한 간격을 이어주시는 분이시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고백이 내게 실제가 된다.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실제, 거기 세상에서 영원으로 나온 교회가 서 있다.

여전히 하나님과 분리된 세상 속에 살지만,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로 살아간다.

오, 주님은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3. 기도

아버지...

저는 오랫동안 주를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실체가 없는 무의미한 고백이 지속되었습니다.

음부의 권세, 그 실체로 깨닫지 못한 채 어둠 속에 갇힌 자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정치적인 의미로만 알던 자였습니다.

어찌하든지 세상에서 승부를 보려는 야망에 집착했습니다.

 

오, 아버지...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은 영원에서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나를 영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참된 교회, 곧 세상에서 영원으로 불러낸 자, 에클레시아입니다.

영원의 실제만이 음부의 권세를 이기나이다.

영원의 교제만이 비존재의 위협과 마성적인 세력을 감당합니다.

 

오늘도 나의 주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여전히 분리된 실존으로써 세상이지만, 주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하나님 안에서 살게 하소서.

실존의 조건에서 하나님께 복종하며 사셨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말씀묵상선교회
글쓴이 : 굿뉴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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