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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1-2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일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마가복음 15: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누가복음 23:1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요한복음 18:28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앞장 22장에는 무슨 일이 일었습니까. 1.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2.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3.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이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4. 22:57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5. 22:63 '붙잡힌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과 장로들에게 회롱당하시고 욕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6.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네가 그리스도냐' 물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한 말도 대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두번째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물었을 때 즉시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자 그러면 본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3:1) 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마태복음 27:1-2) 절 말씀에는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일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그들이 예수를 결박하여 빌라도에게 끌고 간 것은 아마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죽일려는 의도로 빌라도를 찾아 간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죽일려고 함께 의논'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23:2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모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세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누가복음에는 무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로 나오고 있습니다.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끌고 간 것은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왜 빌라도에게 찾아 갔습니까. 먼저 종교 지도자들은 종교법으로 예수님을 죽일려고 했지만 종교적으로 죽일만한 죄목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의논한 끝에 예수님을 로마에 반역하는 반역자로 로마 당국자에게 고발을 하게 되면 얼마든지 예수님을 죽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빌라도에게 끌고 간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치인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죽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 지도자들이 빌라도에게 찾아가서 고소하는 내용들이 무엇입니까. 무슨 죄목으로 고발합니까. 1. 백성들을 미혹했다는 것입니다. 2. 가이사에게 세를 받치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3. 자칭 왕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을 죽일만한 죄목이 없었습니다. 이 죄목을 가지고 에수님을 죽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백성들을 미혹했습니까. 예수님이 언제 가이사에게 세 받치는 것을 금했습니까. 예수님이 인류의 왕 그리스도인신대 예수님이 거짓말 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을 고발하는 자들이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종교 지도자들은 종교인으로서 할 수 없는 불의한 일을 서슴 없이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왜곡시켜도 이런 식으로 왜곡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진리를 이렇게 왜곡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가 타락하면 이렇게 무서운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종교의 타락 때문에 사회가 타락하고 나라 전체가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치의 타락보다 종교의 타락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누가복음 23: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고소하는 내용을 듣고 있던 빌라도는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그러자 예수님은 즉시로 네 말이 옳도다며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확실히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자신의 판단으로 볼 때 이것은 정치적으로 아무 잘못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로마를 반역하는 행위도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고소한 것처럼 백성을 미혹한 것도 없었고 로마를 반역한 일도 없었습니다. 아무 하자가 없었습니다.
23: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없음을 알고 종교 지도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이 사람에게 죄가 없다는데 더 할 말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은 여기에서 끝내야 옳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흘러가고 있습니까.
23:5 '무리가 더욱 굳세게 말하되 저가 온 유대에서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백성을 소동케 했다는 문제로 억지를 부리며 끈질기게 고발을 하고 있습니다. 지배국인 로마로서는 가장 두려운 것은 백성을 소동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백성을 소동케 했다는 것은 민란을 꾸미고 반란을 도모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어찌 하든지 빌라도를 자극하고자 했습니다.
23:6 '빌라도가 듣고 묻되 저가 갈릴리 사람이냐 하여' 23:7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처음에는 빌라도도 종교적인 문제에 더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임을 알고 갈릴리는 헤롯의 관할 지역이었기에 헤롯에게 보내었습니다. 빌라도는 이 일에 손을 떼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23:8-12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소하더라' 예수님은 왜 헤롯에게 아무 대답도 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말을 해 줄만한 가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헤롯은 마음에 회인 맞아서 마비 되었고 그의 영혼이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롯에게 한 말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여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평상시는 서로 원수처럼 지내다가 악을 행하기 위해서 친구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불의한 일입니까. 헤롯이 하는 행동을 보세요. 미친 놈이나 하는 짖 아닙니까. 인간으로서 할 일입니까. 짐승 보다도 못한 놈입니다.
23:13-15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어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빌라도는 종교 지도자들을 다시 불러 모아 놓고 그들이 고소한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한 자라 고소했지만 너희 앞에서 사실해 보았지만 그에게서 아무 죄도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헤롯도 역시 그에게서 죄를 발견하지 못하고 도로 나에게 보내 었노라고 말하고서 저의 행한 일은 죽일 일이 하나도 없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빌라도가 생각하기를 로마 법에 저촉될 만한 사건도 없었고 민란을 일으켜 반역을 꾀한 것도 없었기에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예수님을 신원해 주고자 했습니다. 여기 까지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같는 양심입니다. 빌라도는 이러한 양심이 있었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법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하고자 했습니다. 죄가 없는데 어떻게 죽일 수 있느냐고 양심에 호소 하기도 했습니다.
(마태복음 27:14)절 말씀에는 '빌라도가 예수님에 대해서 심히 기이히 여길 정도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사람이 남으로 부터 얼울한 일을 당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참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변명하고 변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더군다나 자기는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고 뒤집어 쓴다고 생각이 들 때 사람은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증오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불리한 입장에 놓였지만 자신을 변명하거나 구차하게 피해 가지 아니 했습니다. 억울 했지만 모든 것을 감수 하셨습니다. 명세기 종교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비애감을 느끼셨지만 그렇찌라도 하나님의 뜻에 다 맡기셨습니다.
(누가복음 23: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빌라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습니다. 그냥 놓아 줄 수는 없으니까 때려서 놓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빌라도는 양심적으로 예수님을 석방해 줄려고 최대한의 노력은 한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빌라도에게 어느 정도 동정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빌라도도 예수님을 석방할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느냐고...보라 그도 처음부터 악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지 최소한의 양심은 있지 않느냐...나쁜 종교 지도자들의 계략에 넘어가 정치인으로서 그렇게 한 것 뿐이지 때려서라도 놓아 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역사는 빌라도를 그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어떠한 동정심도 주지 않습니다. 냉정한 심판을 내리고 있습니다. 역사와 기독교는 그에게 엄중한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그래요 예수님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판한 것으로 착각 했지만 과연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발라도를 심판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를 심판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 앞에 내린 판결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변경시키거나 왜곡시킬 수 없습니다.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린 판결은 영원한 심판이요. 영원한 판결입니다. 영원히 존재하는 역사서입니다.
23:18 '무리가 일제히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빌라도의 탸협안은 수포로 돌아 갈 공산이 컸습니다.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해서 위기를 면해 보려고 했지만 뜻밖의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동정심은 커녕 오히려 반발심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내 놓으라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도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을 없이하고 악질범인 바라바를 내 놓으라고 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23: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더라'
모든 사람들이 바라바가 누구인지 알 정도로 유명한 죄수 였습니다. 그는 민란과 살인을 저지른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자를 놓아 주고 예수님을 없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23:20 '빌라도가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 23:21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예수님을 없이 하라고 무리들이 요구했지만 빌라도는 그래도 예수님을 놓아 주고자 다시 저희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빌라도의 말은 듣지도 않고 이제는 아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치는 것이었습니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십자가에 못 박게 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입성할 때 호산나 하면서 환영하던 무리들은 이제는 돌변하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23: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성경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석방할려고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제안이 무리들에게 하나도 먹혀 들지 않자 하는 수 없이 빌라도는 때려서 놓겠노라고 다시 제안을 했습니다.
23:23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23:24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이 말씀을 봐야 빌라도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분명 지금까지 빌라도는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석방할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도 옳고 그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을 햇던 사람이었습니다. 옳은 것에 대해서 바른 결정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의 문제는 옳은 것을 알았지만 그것을 바르게 실천할 수 있는 의지는 없었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했으면 누가 뭐래도 어떠한 외부의 압력이 있어도 굴복하지 않고 그것을 지키고 따를 수 있어야 했는데 빌라도는 그럴 만한 용기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이익과 기득권 때문에 진리를 다르지 못하고 무기력한 결정을 내리고 만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과 손해가 오더라도 진리를 사수했어야 했는데 그런 결단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역사적인 결정 앞에 역사에 칭송 받을 만한 결정을 내렸어야 옳았는데 반대로 역사 앞에 가장 비겁한 결정을 내리고 만 것입니다. 빌라도는 백성들의 요구 사항을 단호하게 거절했어야 옳았습니다. 단호하게 결단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자신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무리들이 요청한대로 들어 주고 말았습니다. 이 결정 하나로 그는 역사 앞에 가장 잔인한 자가 되었고 악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 가면서 옳고 그름에 대해서 수 많은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진리 앞에서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비겁한 사람이 되지 말고 진리를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백성들의 소리에 자신이 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빌라도는 백성들의 요구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언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빌라도의 이중성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안 그런 쩍 했지만 그의 속셈은 달랐습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기 싫었고 자신의 귄리를 잃을 까바 이런 결정을 내리고 만 것입니다. 최악의 결정을 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빌라도의 비겁함을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한번 결정으로 끝나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잘 결정해야 합니다.
23:25 '저희가 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
예수님은 빌라도에 의해서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사형 판결을 받을 만한 죄가 없었습니다.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직접 심문해 보아도 아무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권한으로 얼마든지 예수님을 석방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비겁하게 예수님을 석방시키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 주고 말았습니다. |
고난 당하신 예수님
출처 : 알곡모으기
글쓴이 : 묘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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