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한 가지 부족한 것

하나님아들 2013. 8. 23. 11:09

 

 

한 가지 부족한 것

 

 

(눅 18:18-30) “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부자 관리]

 

 

TV를 통해서 깊은 산중에 외딴집에 외롭게 사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산중에 무슨 재미로 삽니까?’라고 물었을 때 ‘여기가 지상 낙원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오염되지 않은 물을 마시고 맑은 공기로 숨 쉬며 산나물을 뜯어 먹으며, 손수 지은 농사로 배고픔을 모르고 사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도시의 시끄러운 소음도 없고요,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일도 없고요, 시간에 쫓기거나 바쁜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에피 큐리우스는 ‘빵과 물만 있으면 신도 부럽지 않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쾌락을 세 가지로 나눕니다. 행복 추구를 말 할 때 첫째로 필수적인 쾌락(행복)입니다. 배고픔, 추위,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졸음이 올 때 잘 수 있는 쾌락. 어디든지 등만 붙이면 곧 바로 잠이 들고, 자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입니다. 행복을 노래하는 시편에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시 127:2).

 

두 번째로 필수적이 아닌 쾌락이 있습니다. 좋은 음식, 호화스러운 잠자리, 화려한 거처 등입니다. 이런 것이 없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느끼는 행복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고 즐기기 위해 더 맛있고, 더 좋은 것을 먹을 때 느끼는 쾌락입니다.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몇 시간을 차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화려한 잠자리에 하룻밤을 잤다고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급 호텔, 하룻밤 숙박비가 몇 십 만원씩 하는 방에 잠이 잘 올까요?

 

세 번째로 공허한 쾌락입니다. 명성, 인기, 칭찬, 사람들로부터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 등입니다. 아무도 자기를 보아주지 않으니까 사람들의 눈에 티나도록 노력을 많이 합니다. 화장을 화려하게 한다든지, 머리 색깔을 빨갛게, 하얗게 물들인다든지, 사자머리, 폭탄머리를 하고 다닌다든지, 짧은 치마에 허벅지를 내 놓고 다니므로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도록 해서 느끼는 쾌락(행복)입니다. 이러한 쾌락은 공허합니다. 행복을 느끼기보다 허무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허함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집착하여 공허한데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성공의 기본적인 원리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공부를 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돈을 벌어서 어떻게 살 것인가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적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목적을 바르게 세우고 열정을 쏟을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중요한 것을 먼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고아로 미국에 건너가서 장사를 해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공한 비결은 손님이 한꺼번에 여러 명이 들어 왔을 때 어느 손님이 알짜배기 손님인가를 알고 다른 사람들은 다 놓쳐도 그 사람만 붙잡고 흥정을 했다고 합니다. 물건 값만 물어보는 사람을 붙들고 있다가는 진짜 손님을 놓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우선순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것은 가질 수 있을 만큼 다 가졌습니다. 관리요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영생 문제로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께 정중하게 자신의 영생문제를 내어놓고 답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부자는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은 이 부자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예수님이 죄 없는 분이심을 알고 불렀던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야비한 말재주였습니다. 부자가 될 정도의 말재주가 대단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벌써 이 부자의 말재주를 알고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불렀다면 ‘네가 나를 바로 알았구나’.라고 하시며 고맙다고 하시지 않으시고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부자가 되기까지 겉으로 상대방을 높이는 체 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신 것입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질문은 이방종교가 가르치는 행함으로 구원을 얻겠다는 것입니다. 적선을 쌓아야 하고, 보시를 해야 하고, 공양을 해야 하고, 하물며 고행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합니다. 성지 메카를 순례를 하고, 갠지스 강에 목욕을 하고 죽은 시체를 강가에서 화장해서 강에 뿌려야 영생을 얻는다고 합니다.

 

구원은 무엇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잘못된 신앙을 아셨지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19:17)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는 ‘어느 계명이오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마19:18,19; 눅 18:20)고 하시니까 부자가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21)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이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말한 것을 보면 자기 나름대로는 영생을 얻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부자가 하는 말이 얼마나 거짓인가를 다 아셨습니다. 그래도 부자의 잘못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다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자에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셨습니다(22).

 

부자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한 가지 부족한 것은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어려서부터 이런 것들을 다 지켰다고 자랑을 했지만 사실 하나도 지키지를 않았다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자의 거짓된 허상이 들어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지켰다’고 말한 부자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한 것은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부자는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스스로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부자들의 착각입니다. 예배를 빼 먹고 큰 것을 한 건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면 주일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큰 소득을 얻었다는 것으로 자신이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손해를 보았다든지 아니면 어떤 화를 입었다면 예배를 드리지 않은데 대한 죄책감을 느낍니다.

 

실패 한 사람이 잘못해서 실패했다고 하기 전에 죄가 있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공을 하면 잘못한 것은 면죄된 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자는 어지간한 잘못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면죄해 주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감히 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부자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다 지킬 수 있나이까’라고 대답을 했더라면 문제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무리 선하게 살았다고 할지라도 계명을 다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 지켰다고 한 것은 부자의 망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는 것입니다. 부자는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심히 근심하였습니다. ‘심히 근심하였다’는 것은 ‘이것은 내가 어려부터 다 지켰다’는 말이 거짓말이였다는 것을 그의 양심이 증거 해 주는 것입니다.

 

이 부자는 기로에 섰습니다. 재산을 가지고 부자로 살 것인가?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귀주고 영생을 얻을 것인가? 여기서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를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이 고민은 부자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하는 고민입니다. 암으로 죽어가는 환자가 수술비가 비싸서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수술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정도는 충분히 있으면서도 돈이 아까워서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미련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영생의 문제로 고민을 합니다. 특별히 부자와 같이 재산이 많고 명예, 권세가 높은 사람일수록 죽지 않고 오래 살기를 소원합니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하고 만리장성을 쌓고 불로초를 구할 정도로 죽기를 싫어했지만 50살도 덜되어 죽었습니다. 산을 깎아 거대한 무덤을 만들고 죽어서도 산자와 같이 군마와 궁녀들이 수백명이 있고 보석과 화려한 왕궁을 그대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가 만든 웅장한 무덤이 발견되었습니다.

 

애굽의 피랏밑도 역시 왕들이 살았을 때 누렸던 그 화려함을 그대로 만든 무덤입니다. 하물며 궁녀와 신하들을 산채로 무덤에 묻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세상에서 명예와 권세, 부귀를 누리던 자들의 욕망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것을 의미해줍니다.

 

예수님 앞에 선 부자는 관리였습니다. 공회원 중에 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세상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은 다 가졌습니다. 그래서 더욱 영생에 대한 욕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가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를 때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부자는 세상의 것을 다 가지고 영생을 얻기를 원했지만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팔아 나눠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부자는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 부자에게만 근심하게 만드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재물이냐? 영생이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자와 같이 재물을 택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며,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가를 알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재물 때문에 영생을 놓치는 것입니다.

 

부자가 근심하여 떠난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물이 있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잘못이해하면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처럼 여겨집니다. ‘바늘귀’는 당시 예루살렘 성문들이 여러 개가 있는 데 그 중에 주로 밤에만 사용하는 허리를 숙이고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이라고 합니다. 낙타가 그 문에는 들어가기가 어렵듯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말씀을 듣고 ‘그럼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26)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는 사람의 어떤 노력이나 무엇을 하는 것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자의 신학적인 잘못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한 것입니다. 무엇을 하여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에 의해서만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물질을 우선으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물에 마음을 쏟으면 믿음 생활을 올바르게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눔’의 진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나눠주는 것’으로 여러 배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현세에서도 여러 배를 받을 뿐 아니라 내세에 영생을 받게 된다는 진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자가 이 말씀을 들었더라면 여러 배를 받기 위해 자신의 것을 다 팔아 나눠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자에게 이 말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첫 번째 계명인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두 번째 계명인 이웃 사랑에 대한 것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웃 사랑을 하는 것이 곧 하나님 사랑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웃 사랑도 하지 못하면서 하나님 사랑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눠주는 것’입니다. 베푸는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 줍니다. 베푸는 것은 마치 씨를 뿌리는 것처럼 여러 배를 거둬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잘 모릅니다. 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베풀지 않았습니다. 베푸는 것은 곧 이웃 사랑입니다. 이웃 사랑은 곧 하나님 사랑입니다. 나눔이 없을 때 이웃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이고 나아가 하나님 사랑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눔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눔은 곧 영생을 얻게 되는 진리가 되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부자는 자신의 가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가 없어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많은 성도들이 이웃 사랑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가증스러운가를 알아야 합니다. 나눔의 진리를 깨닫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라며 나눔으로 주시는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우림과둠밈
글쓴이 : 우림과둠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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