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설날 주일설교/ 3가지 고향(히브리서 11:13-16)

하나님아들 2013. 8. 22. 15:26

3가지 고향

히브리서 11:13-16

 

오늘은 설 명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떠난 날입니다.

고향은 정말 어머니, 가족과 더불어 가장 정겨운 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고향에 대한 몇 가지 성경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1. 먼저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입니다.

 

미국 문학의 거장인 토마스 울프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젊어서 꿈꾸던 모든 소원을 성취합니다.

돈도 많이 벌고 명예도 얻은 이 사람은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고 똑똑한 자녀를 골고루 두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그리던 고향 애쉬빌로 돌아갑니다.

나름 금의환향이라고 생각하고 고향에 갔지만 그러나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그는 몹시 당황하고 실망합니다.

고향은 너무나 변해 있었습니다.

거리는 현대화되고 인심도 변했고 친구들은 남이 되고 자기는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그곳은 이미 자기가 꿈에 그리던 마음의 고향은 아니었습니다.

주인공은 돌아오는 기차에 다시 올라 슬프게 고백합니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어제의 평화와 고요함으로 돌아갈 순 없다.

길이 있다면 앞으로 나가는 길뿐이다.

뒤로 가는 길은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많은 인간이 과거의 향수 속에서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의 과거를 아름다운 신화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사람은 40세가 되면 변화를 싫어하고 대개 안정을 구한다고 합니다.

그런 마음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성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고향을 떠났을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고향은 순례의 길을 떠난 성도들이 돌아가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한참 인기가 올라갈 때 고향 나사렛을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고향인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를 벼랑으로 몰아가서 떨어뜨려 죽이려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태연하고 용기 있는 권위에 눌려 마을 사람들은 살해일보직전에서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때 예수가 가르친 것이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잘 아는 이웃이나 친구들이 많은 고향에서는 지도자 노릇하기가 어렵다는 통속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이 말씀은 그런 의미를 뛰어넘은 위대한 진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너무나 분명하게 돌아가서는 안 되는 고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1 돌아가서는 안 되는 첫 번째 고향은 애굽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에 블레셋 사람의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길은 분명 가까운 길이었지만 인도하지 않으신 이유는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기 때문입니다.(13:1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없는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가 돌아가서는 안 될 첫 번째 고향은 바로 애굽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애굽을 동경하였습니다.

애굽에 있었으면 편했을 텐데 왜 이렇게 이끌어내서 이 고생을 하며 죽게 하느냐고 부르짖었습니다.

바로의 군대가 쫓아올 때나,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플 때나, 물이 없어 목마를 때나 그들은 한 결 같이 애굽을 동경하였습니다.

비록 노예생활이었지만 먹고 마실 걱정 없이 그 생활이 편하고 좋았다는 것입니다.

급기야 10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받은 후에는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선동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14)

 

여러분, 우리가 절대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고향은 애굽입니다.

옛 신앙입니다. 옛 생활입니다. 옛 풍습입니다.

하나님은 롯과 그의 가족을 고향의 풍요와 안정으로부터 떠나게 했습니다.

떠나가면서 절대 어떤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가 그 말씀을 어기고 뒤를 돌아본 결과 소금기둥이 되어 영원한 화석으로 저주받았습니다.

아무리 가고 싶은 고향이요 풍요와 안정과 친구와 친척들이 있어도 그곳은 돌아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워도 가서는 안 되는 곳이고 보고 싶어도 만나서는 안 될 곳입니다.

그곳으로 돌아가면 심판이 있고 죽음이 있고 멸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안타까운 말 가운데 하나가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입니다.(딤후4:10)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녀들이 애굽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이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정말 너무나 안타깝고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1-2 돌아가서는 안 되는 두 번째 고향은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6절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여기서 다른 복음은 율법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절대 돌아가서는 안 되는 두 번째 고향은 율법입니다.

성도들이 율법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내 힘으로 무엇을 하려는 인간의 본능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엇을 이룬다는 것은 우리의 본능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땀 흘리고 노력하고 수고해야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 속에 꽉 들어차있기에 구원의 은혜를 용납하지 못하고 자꾸만 율법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의 구원문제는 결코 인간의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올바르게 살아서 구원을 얻을 육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10)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율법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1-3 돌아갈 수 없는 세 번째 고향은 육체의 욕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 속에는 아직도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싸우며 자신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라고 요구합니다.

이런 싸움에서 육체의 소욕을 물리치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를 시험하면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갈 것을 유혹합니다.

그런 유혹에 빠져 돌아가서는 안 될 고향으로 돌아가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고위 공직자 청문회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것이 부정축제,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자녀들의 군 생활 면제 등입니다.

이런 문제는 당분간 1,20년은 계속되리라고 봅니다.

7,80년대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을 때 돈이 있는 사람치고 부동산 투기 하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누구나 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좋은 자리를 준다고 해도 거절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새 생활을 시작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돌아가서는 안 될 고향은 육체의 욕심을 이루는 생활입니다.

술 취함과 방탕함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음행과 호색 같은 것에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2. 둘째는, 돌아가야 할 고향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아간 이유를 한 마디로 돌아갈 고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은 육신의 고향이 아니라 더 나은 본향,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유치원에 있는 아이가 목사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하늘나라가 있어요?” “그럼. 있지

그럼 하늘나라가 좋은 곳이에요? 나쁜 곳이에요?”

좋은 곳이란다.”

그럼 목사님이 하늘나라에 가보셨어요?”

아니 안 가봤는데” “그럼 어떻게 아세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어요? 이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늘나라가 얼마나 좋은지 간사람 중에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단다.”

우리가 이 세상을 마치고 돌아갈 고향은 너무나 좋은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 주님이 계시고 우리가 사랑했던 믿음의 선진들이 먼저 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 돌아갈 생각을 하면서 그 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라의 상급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래전에 아프리카선교사로 평생을 헌신하던 미국인 선교사 부부가 은퇴를 하여 배를 타고 뉴욕 항구에 도착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환영을 했습니다.

얼마나 감격을 하고 반가웠겠습니까?

그러나 환영 인파는 미국의 유명한 비행사 린드버그가 단발 비행기로 대서양을 횡단하는데 성공하고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인파였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선교사는 과연 이것은 옳은 것입니까?’ 하나님께 섭섭했습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목숨을 걸고 한 평생을 복음을 전하는 일이 비행기로 대서양을 횡단한 일보다 못합니까?”

이때 하나님은 이 선교사 부부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의 충성된 종아! 너무 속상해 하지 말라.

너희들이 진짜 고향에 돌아올 때는 린드버그의 환영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 환영을 할 것이다.

그때는 너희를 환영하기 위하여 천군 천사가 나팔을 불고 먼저 천국에 온 사람들이 마중을 나갈 것이며 내가 직접 너희들의 손을 잡고 환영할 것이니 그때까지만 참고 있으라.󰡓

 

3. 셋째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고향입니다.

 

12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은 육신의 고향에 돌아가는 대신에 자기가 머무는 곳을 고향으로 만드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갔던 것도 새로운 고향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금의환향은 없었습니다.

성공하면 고향에 돌아가 집짓고 편히 살겠다는 생각을 결코 하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꿈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케 하고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사는 하나님 나라 건설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도 빌립보서 320절에서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하면서 돌아갈 본향을 생각하였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온 생애를 바쳤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다면, 아니 돌아갈 하늘의 본향을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생각하면서 진정한 고향을 만들어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내 마음과 내 가정과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살아가는 것이 진짜 고향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항상 얼마나 가졌는지, 못 가졌는지에 대해서 평가를 합니다.

성공이냐? 실패냐? 에 따라서 사람들을 평가하고 대우가 달라집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교회마저도 성공한 교회, 실패한 교회에 대해서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다르신 분이십니다.

세상이 다 나를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여도 하나님은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지 않으시고 내 사랑하는 내 딸아, 내 아들아라고 우리들을 부르십니다.

간음하다 걸린 여인을 향해 세상 사람들은 죄인이라고 하셨지만 예수님만은 비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도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죄인이라고 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무나도 사랑해서 만드신 그 하나님의 창조된, 피조물로 보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이런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런 나라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고향입니다.

 

서울에 사는 아들의 집을 찾아온 아버지가 아들의 하소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기 집 한 귀퉁이 자투리땅에 동네사람들이 쓰레기를 갖다 버린다는 것입니다.

냄새나고 지저분하고 환경이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경고문을 붙여 놓아도 소용이 없어서 화가 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다음날 시장에 나가 호미를 사왔습니다.

그리고는 쓰레기를 버리고 돌을 골라내어 텃밭을 만들어서 그곳에 상추와 고추를 심었습니다.

상추가 자라자 아버지는 상추가 필요하신 분은 마음대로 가져가십시오. 고추가 필요하신 분은 양 것 가져가십시오.라고 크게 써놓았습니다.

상추가 파릇파릇하게 크고 고추열매가 맺혀지자 동네사람들이 열심히 가져갔습니다.

그 일로 그 집이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동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당신이 언제나 저희 곁에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했다는 겁니다.

사랑은 우리가 속해있는 곳을 고향으로 만들어가는 첫 번째 비결입니다.

이런 사랑이 있을 때 우리의 가정이 진정한 고향이 될 것입니다.

말 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랑이 있을 때 우리 교회가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진정한 고향이 될 줄 믿습니다.

 

남아프리카 잠비아의 북부 고원지대에 사는 바벰바족은 범죄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 비결은 다른 민족과 달리 죄 짓은 사람을 처리하는 방법이 특이하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마을 한복판 광장에 세우고 동네 사람들이 다 모입니다.

그리고는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큰 소리로 외치는데 그 사람의 잘못과 범죄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칭찬하는 말을 외칩니다.

죄인이 과거에 했던 좋은 일들을 떠 올리며... 그의 장점, 선행, 미담들을 하나씩 말합니다.

이 때, 과장이나 농담은 일체하지 못하고 아주 심각하고 진지하게 그를 칭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칭찬의 말이 바닥이 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한마디로 칭찬 폭격을 하는 것입니다.

다 했다 싶으면 이 사람을 위해 마을 사람들이 축제를 엽니다.

죄인이 이제 새사람이 되었다고 인정하고 축하하는 잔치를 벌이는 것입니다.

바벰바족 마을에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가 아닙니까?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비난이나 정죄가 아니라 칭찬입니다.

이렇듯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고 좋은 점을 찾아 칭찬을 해 주는 것이야 말로 그 공동체와 구성원을 건강하게 만드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만나면 힘이 될 수 있는 공동체가 진정한 의미의 고향입니다.

단점은 덮어주고 장점은 드러내 주면서 용기를 주고 소망을 주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사랑하는 곳이 진정한 의미의 고향입니다.

이런 고향을 만들어가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그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여러분들이 있는 그 곳을 진정한 고향으로 만들어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진정한 가족으로 만들어가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가고 싶고 힘을 얻고 위로를 받은 진정한 고향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barnaba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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