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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아들 2013. 8. 23. 11:11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신 10:12-15)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엄마가 밤마다 잠들기 전에 간난 아기 때부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했습니다. ‘아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해 주세요.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아들을 위해 어런 저런 기도를 하고 마지막에는 ‘엄마 말 잘 듣는 아들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아들은 고개를 숙이고 엄마의 기도를 듣고 잠이 듭니다. 이렇게 엄마가 기도해 주는 것을 듣고 자랐습니다. 이제 유치원에 다닐 때 쯤 되었을 때 어느 날 ‘엄마 오늘은 내가 기도할게’. 라고 하기에 엄마는 기특하게 여기고 ‘그래라’고 했습니다. 이제 아들이 엄마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합니다. 엄마가 하던 기도를 그대로 따라 하더니만 마지막에 ‘우리 엄마가 내 말 잘 듣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더랍니다.

 

사랑에는 아가페 사랑과 에로스 사랑이 있습니다. 다 같은 사랑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아가페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접어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소원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따르고 그분만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로스 사랑은 내가 중심이 되는 사랑입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랑입니다. 내가 사랑을 받아야겠다는 사랑이 에로스입니다.

 

결혼문제가 복잡해지는 가정들을 보면 어떤 사랑이라고 생각합니까? 아가페 사랑이 아닌 에로스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의 사랑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 달라는 것이 강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그 사람,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말을 합니다. 내 한데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혼해도 별 수 없습니다.

 

나는 유행가를 잘 모르는데 ‘애모’라는 유행가에 ‘나는 그대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지 몰라’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것 이것이 바람직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점점 위대해지고 커지는 것이 바람직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훨씬 결과가 좋은 것입니다. 내 뜻을 버리고 상대방의 뜻을 기뻐하고 훨씬 더 높이고 따르는 것이 에로스 사랑에서 벗어나 아가페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희생하면서도 행복해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신앙생활도 자기중심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철학, 자신의 뜻을 채우려고 집착하는 교인이 있습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신앙은 열심히 대단합니다. 자신의 소원이 이루기를 바라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깁니다. 교회 일도 잘합니다. 신앙자체가 수단화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금식도 합니다. 철야도 합니다. 40일 또는 100일 작정 기도를 합니다. 누구를 위해 작정기도를 합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작정기도 하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자기 욕망을 위해서 작정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원망하게 됩니다. ‘왜 안주시느냐고, 나는 이렇게 열심히 섬기고, 기도하는 데 왜 안주시느냐’고 원망을 하게 됩니다. 자기 욕심에 집착하는 신앙은 에로스 신앙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우면 주기도문만 외우세요. 우리 할머님이 연세가 많아 기도하는 것도 힘드시니까 주기도문을 자주 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기도문’은 기도의 모범 답안지니까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내 뜻을 포기하고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가 진정한 기도입니다.

 

아가페 신앙은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신앙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나를 사랑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받는 사랑이 아니라 주는 사랑입니다. 받기를 원하는 사랑이 아니라 주기를 원하는 사랑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는 에로스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랑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면 아가페 사랑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랑주기를 원하는 사람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을 주면 자연히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받기를 원하면 원하는 것만큼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자신의 요구부터 하나님께 구합니다. 건강을 구합니다. 자녀들이 잘 되기를 요구합니다. 사업이 잘 되기를 구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지 않고 대뜸 자신의 요구부터 먼저 구합니다. 자신의 요구를 구하는 것은 에로스 신앙입니다.

 

내가 구하기 전에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부터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요구는 접어두고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가페 신앙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전에 자신의 요구부터 하나님께 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백성은 마땅히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준수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성도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요구를 준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가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없고 하나님께서 요구만 하셨다면 하나님은 이기적인 분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요구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12절 말씀에 네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라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경외하다’란 ‘두려워하다’, ‘깜짝 놀라게 하다’라는 의미로 감정적인 반응으로서 공포심에 대한 말이기도 하지만 성경에서는 대부분 왕이나 하나님께 대한 존경이나 경외심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경외는 두려움을 수반하기도 합니다. 이런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외부적인 두려움과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경외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의 모든 도에 행하는 것입니다.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도’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친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야 말로 행복의 비결이며, 강성의 비결이며, 장구의 비결이며, 축복의 비결이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신 11:1-32).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히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을 축복으로 받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여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무는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의 행복과 형통을 위해서 말씀하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를 사랑하며”.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로 영광스러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비천한 우리의 사랑을 원하고 계신다니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우리에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9)고 사도 요한은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또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섬기다’란 말은 ‘일하다’, ‘종으로서 주인을 위해 봉사하다’란 의미입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봉사 외에 종교적인 의미로 ‘숭배하다’, ‘경배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이 주인을 위해 수고하고 봉사하듯이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예배하므로 그를 섬겨야 합니다. 이와 같은 섬김을 영어권에서는 ‘Service’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봉사자로서, 종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유일하게 섬김을 받아야 할 분이시며, 우리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12). 또한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마22:37). 이 말은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우리의 생명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생명이 다하기까지 오직 하나님만을 힘써 섬겨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러한 요구를 하셨는가를 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네 행복을 위하여” 이러한 것들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요구를 하시는 것은 성도들을 속박하기 위해서가 아님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하나님의 요구가 우리에게 짐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참된 기쁨의 생활을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요구하시는 것을 하지 않았을 때는 스스로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짓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준행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하게 해 주십니다.

 

탕자가 집을 나가기 전에는 유산을 바라보고 아버지를 섬겼습니다. 그래서 유산을 받아 나갔습니다. 그러나 방탕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유산 때문에 아버지를 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종으로 아버지를 섬겼습니다. 돌아왔을 때는 유산을 바라지 않고 아버지를 섬겼습니다. 어느 것이 진정한 아버지의 아들입니까?

 

명절에 자녀들이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까지 몇 시간을 차를 타고 옵니다. 아무리 복잡해도 부모님을 찾는 것은 유산을 바라고 찾는 자녀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것은 효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시어머니가 큰 며느리에게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큰 반지를 보여주며 내가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인데 내가 죽을 때 너에게 물려준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큰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잘 하더랍니다. 이제 시어머니는 둘째 며느리에게 또 아무도 모르게 반지를 보여주며 ‘내가 죽을 때 이 반지를 네게 주마’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둘째 며느리도 시어머니를 잘 섬기는 것입니다. 셋째 며느리에게도 역시 똑 같은 말을 해 주었더니 셋째 며느리도 시어머니에게 잘 하더랍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죽고 나니까 그 반지는 가짜였답니다. 며느리들이 반지를 준다는 말을 듣고 시어머니를 잘 섬긴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위한 에로스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받은 축복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듣고 준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복을 주십니다. 행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준수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준수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부탁합니다.

 

 

 

출처 : 우림과둠밈
글쓴이 : 우림과둠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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