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생활을 잘하는 성도가 됩시다.
고전 12;12-31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 중에 일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딱 한 가지입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 4개의 분파로 나뉘어서 싸우고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너희는 하나이기 때문에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하나이며, 어떠한 직분을 갖고 있든지 하나이며, 갖고 있는 은사가 다르더라도 하나라는 것이 사도 바울이 이 본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내용입니다.
그 말을 하면서 사도 바울이 사용한 비유가 몸의 비유입니다.
저는 교회를 몸으로 비유한 사도 바울의 이비유는 교회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아주 탁월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비유의 내용은 12절 말씀에서 표현한대로 교회가 우리의 몸과 같다는 것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그 한 몸의 지체가 많아도 한 몸인’ 것같이 교회도 많은 지체가 있지만 교회는 하나라는 것이 몸의 비유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2절을 잘 살펴보면 교회라는 말 대신에 그리스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교회도 그러하니라.” 고 해야 될 것 같은데 교회라는 말 대신에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와 그리스도가 하나임을 잘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골로새서에 보면 ‘그의 몸 된 교회’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의 몸 된 교회’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는 말이요 이 말은 교회는 곧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는 곧 교회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교회는 곧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교회생활에 대하여 비판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제 둘째애가 서울 백주년 기념교회 청년부에서 구역 권찰을 맡았다고 합니다.
권찰은 글자 그대로 구역원들을 돌보는 역할입니다.
집사람이 그 이야기를 하면서 큰 애보고 두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다고 말하자 큰 애가 대뜸 하는 말이 ‘엄마, 권찰만 맡으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거야. 그건 그냥 구역원들을 돌보는 거야. 믿음이 없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하더랍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생활과 믿음과를 일치시키지 않고 분리시키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만 다니면 최고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야지’ 이런 말도 하고요.
‘교회문턱만 밟지 않고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게 하옵소서.’이렇게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교회출석만 잘하고 헌금만 잘하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거야?’
물론 이러한 말의 의미와 그렇게 말하는 이유도 알고 있지만 사실 여러분,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은 곧 교회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고 교회에 충성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것이고 교회생활을 잘하는 것이 곧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느낌이 있는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할머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주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먹을 것을 내왔다.
아이들은 하나 같이 영리했고, 할머니가 색다른 질문에는 대답을 못한다는 것을 알고 할머니를 놀리곤 했다.
이번에는 톰이 놀릴 속셈으로 말을 꺼냈다.
“할머니 요즘도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세요?”
“물론 나가지.”
“교회에 가서 뭘 배우세요? 지난 일요일 복음 내용을 이야기 해 주세요.”
“잊어 버렸어. 지금 기억나는 건 그 복음 말씀이 아주 좋았다는 것뿐이란다.”
“알았어요. 그런데 담임목사님께서 설교하신 내용은 알고 계시죠?”
“그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이젠 나이가 많아 기억력이 점점 없어지는구나.
내가 기억하는 건 그분의 말씀이 매우 감명 깊었다는 것뿐이란다. 아주 좋았지.”
“그럼 할머니, 교회에 나가면서 아무 것도 얻는 게 없다면 교회에 나갈 필요가 없잖아요?”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얘들아 나랑 부엌에 좀 가자”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 벽에 걸려 먼지가 쌓여있는 망태기를 꺼내 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얼른 냇가에 가서 여기에다 물을 담아 오너라.”
톰은 어이가 없었다.
“할머니, 우리를 놀리시는 거죠? 망태기에 물을 어떻게 담아 와요? 장난하시는 거죠?”
“톰 아무 말도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너희들에게 보여줄 것이 있어서 그래.”
톰은 몇 분도 안 되어 물에 흠뻑 젖은 망태기를 들고 돌아왔다.
“자 보세요. 할머니 망태기에 물을 담을 수는 없어요.”
“네 말이 맞다. 하지만 얘들아, 그 망태기가 얼마나 깨끗하고 말끔해졌는지 보렴.
너희들은 얻을 게 없으면 교회가 나가지 않는다고 했지?
하지만 너희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깨끗해진단다.”
그렇습니다.
교회생활을 잘하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고요, 교회생활을 잘하면 믿음도 좋아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가지된 너희들이 포도나무인 나에게 붙어 있을 때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인 성도들이 포도나무인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열매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지된 우리가 어떻게 포도나무인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물론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잘 붙어 있고 교회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교회생활 잘하는 것이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고, 교회생활 잘하는 것이 포도나무인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 일 년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하여 생명에 필요하고 열매 맺기에 필요한 영양분과 수분을 공급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출석에 최선을 다하시고 헌금생활에 충실하시고 교회에서 맡겨준 사명에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시간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고 특별히 오후 예배시간에도 모든 성도들이 꼭 참석할 수 있어서 그리스도에게 꼭 붙어 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교회생활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내가 주님의 몸 된 교회에 꼭 필요한 지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지체라는 말은 몸으로 표현할 때는 몸의 각 기관들을 가리키는 것이고 교회로 표현할 때는 교인들,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몸에서 필요 없는 기관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모두가 제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하고 만약 한 지체가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그 몸은 건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가운데 당뇨로 고생을 하시다가 은퇴를 하시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당뇨 합병증으로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만 눈이 보이지 않고 눈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몸은 정말 어려운 형편에 처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다른 기관은 얼마든지 더 목회할 수 있는 능력과 건강을 갖고 있지만 눈이 따라와 주지 않으니까 은퇴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 지체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사람을 우리는 장애인이라고 부르고 장애의 몸을 가진 사람은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은 몸으로 표현된 교회도 꼭 같습니다.
교회는 많은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지체들은 모두가 다 중요합니다.
여자도 중요하고 어린이들도 중요하고 돈 없는 사람도 중요하고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도 중요합니다.
또한 교회의 지체된 모든 성도들은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잘 감당할 때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지체든지 자신의 역할을 소홀히 하고 등한히 하면 그곳에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는 고스란히 교회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건강하고 우리 교회가 성장하고 주님이 맡겨주신 일들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들이 나는 이 교회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 생각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일에 소홀히 하고 등한히 하면 교회는 분명 손상당하고 건강을 잃고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시간 한 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나는 주님의 몸 된 교회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나 없으면 교회는 안 됩니다.’
자신의 이름을 넣어가며 다시 한 번 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생활을 잘하는 것은 내가 주님의 몸 된 교회에 꼭 필요한 존재인 것을 믿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교회생활을 잘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과학에서 쓰는 말 가운데 최소량의 법칙이 있습니다.
독일의 화학자인 리비히가 주장한 최소량의 법칙이란 한 원소가 최소량이하이면 다른 원소가 아무리 많아도 생육할 수 없으며 원소 또는 양분 중에서 가장 소량으로 존재하는 것이 식물의 생육을 지배한다는 법칙입니다.
리비히는 이것을 식물에 적용했는데 이것은 식물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적용이 되는 법칙입니다.
예를 들어, 판자로 만든 직사각형의 물통이 있는데 이 판자는 사면의 길이가 다릅니다.
한쪽은 70센티이고 한 족은 80센티이고 한 쪽은 90센티입니다.
그런데 한 쪽이 10센티이면 다른 쪽이 아무리 길어도 물은 10센티밖에 저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조업에서도 많이 적용되는 이론인데 무언가 물건을 만들 때 다른 재료가 아무리 많아도 꼭 필요한 한 가지가 없으면 제품은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칙 때문에 음식은 골고루 먹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건강에 좋다고 그것만 집중적으로 먹고 다른 것을 먹지 않으면 과잉공급된 것 때문에 문제가 되고요, 공급받지 못한 결핍한 원료 때문에 건강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몸 된 교회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하는 생각과 더불어 ‘당신도 주님의 몸 된 교회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꼭 필요하면 다른 사람도 꼭 필요하고 내가 꼭 있어야 하면 다른 사람도 꼭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에 대한 인식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도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고 한 성령으로 마시게 하셨다는 것입니다.(13절)
둘째는 다른 사람도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우리 교회에 두셨다는 것입니다.(18절)
셋째는 다른 사람도 다 몸 된 교회에 꼭 필요한 쓸모가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른 성도들을 나와 똑같은 입장에서 똑같은 선에서 보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다른 지체를 나와 다른 입장에서 다른 선에서 보다가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을 똑같이 보지 않고 차별을 두었습니다.
종과 주인을 똑같이 보지 않고 사회적인 위치에 따라 구분하고자 했습니다.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느냐하는 것을 가지고 끼리끼리 모였습니다.
어떤 은사를 가졌느냐를 가지고 서로 순위를 매기고 줄을 세웠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서로 싸우고 경중을 가리고 하나 되지 못하였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질 수밖에 없었고 성도들의 신앙은 성장하지 못하고 복음의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된 모든 성도는 나와 똑같이 중요하고, 나와 똑같이 필요하고, 나와 똑같이 꼭 있어야할 존재인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지체를 꼭 필요한 지체로 보내주셨다는 생각을 가지고 함께 더불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교회생활을 잘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세 번째는 그렇게 함께 지체된 성도들이 서로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25절 말씀을 보면,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중요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중요하고 다른 사람은 나에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중요한 사람들끼리 분쟁하지 말고 서로 돌보아 주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돌보아 주는 일을 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분쟁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나누어지는 것은 몸을 찢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몸이 찢어질 때 얼마나 아픕니까?
우리가 분쟁하고 나누어질 때 주님은 우리보다 얼마나 아파하시고 괴로워하시는지 모릅니다.
절대로 나누어지지 않고 싸우지 않고 분쟁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모든 성도들은 절대로 비교의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교회에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구성원들도 다양했고 은사의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다양성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그 다양성을 축복으로 받지 못하고 순위를 매기고 경중을 따지고 서로를 비교하였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방언을 가장 중요한 은사로 생각하였고 그러다보니까 모두가 방언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방언을 받은 사람은 우쭐한 반면 받지 못한 사람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사는 더 중요한 것도 없고 덜 중요한 것도 없고 모두가 다 필요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사나 직분이나 사회적인 어떤 선물을 가지고 절대 비교하지 마시고 서로를 인정해주는 지체의식을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아울러 돌보아 주는 일을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생각할 때 고린도교회의 이런 문제는 한 마디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진단을 했던 것입니다.
사랑만 있으면 분쟁도 하지 않을 것이고 사랑만 있으면 서로 돌보는 일을 잘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바울은 더욱 큰 은사인 사랑을 사모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랑으로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비판에 앞서 남의 허물을 가리어줍니다.
사랑은 쓸데없다고 하지 않고 꼭 필요하다고 인정해줍니다.
사랑은 약한 지체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함께 지체된 성도들을 서로 돌보기 위해 사랑을 사모하시고 사랑으로 모든 일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유기체적인 조직일 뿐 아니라 한 몸의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잘되면 내가 잘되고 교회가 평안하면 내가 평안하고 교회가 건강하면 내 신앙이 건강하게 됩니다.
반대로 교회가 어려우면 내가 어렵고 교회가 안 되면 내가 안 되고 교회가 병들면 내가 병듭니다.
교회는 우리 신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존재입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씀은 교회를 떠나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교회를 내 교회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와 나의 교회, 우리 교회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교회로 사랑하여 교회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성도 여러분의 2013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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